동대문시장을 가는 길에 어머니는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세 명이나 보았다. 첫번째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눈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 하나가 누군가의 눈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뭘 봐요?” 남자가 어머니의 배를 흘끗 보더니 말했다. 어머니가 남자의 티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눈이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티셔츠를 보았다. “이거요?” “아니요. 그 옆에요.” “이 눈이요?” 남자가 왼쪽 옆구리를 가리켰다. “네, 저런 눈빛을 어디서 본 것 같아서요.”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엔 비슷한 사람이 많아요.” 남자가 담배를 던졌다. 담배는 포물선을 그리다 도로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어머니와 남자는 트럭 바퀴가 담뱃불을 끄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번째 사람은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사람보다 키가 작았다. 시장 입구에서 같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어깨가 부딪혔을 때 어머니는 누군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에서 하품만 해대던 나도 처음으로 저 밖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출장중이었다.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병원에 있다는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제가 갈 때까지 못 낳게 하세요.” 아버지는 말했다. “그건 뱃속의 있는 놈 마음이죠.” 간호사가 대답했다. 천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간호사는 이 세상은 생각보다 간단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족발을 썰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외할머니는 전화를 끊고 다시 부엌으로 가서 마저 족발을 썰었다. 가게에는 할아버지 세 명이 깍두기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족발을 담은 그릇을 깍두기 옆에 놓았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하나 끌어와 할아버지들 사이에 앉았다. “나도 한잔.” 외할머니가 소주잔을 들었다. “건배.” 외할머니가 잔을 비웠다. 외할머니는 빈 잔에 다시 소주를 채웠다. “건배.” 외할머니가 또다시 잔을 들었다. “오늘 뭔 일 있어?” 눈 밑에 점이 있는 할아버지가 물었다. “응, 빨리 마시고 가라고. 가게 문 닫아야 하거든. 손자가 태어난다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신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할아버지는 정말 화가 날 때마다 뒷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 뒷산이 아파트로 변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전화를 받자마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먹고 싶은 게 많으면 직접 하지. 또, 반찬이 맘에 안 든다고 저러고 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수화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일주일 내내 설렁탕이다.” 할아버지는 같은 반찬이 상에 올라오면 밥을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미워질 때마다 사골을 끓여 국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상에 올렸다. “엄마, 아버지한테 그렇게 반찬 투정하시면 우리 분가한다고 전해주세요. 손자 얼굴도 안 보여줄 거예요.”
아버지는 같이 출장을 간 과장에게 차를 빌렸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밟자 엔진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내 돌잔치에 온 과장은 과속딱지 다섯 장을 아버지에게 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택시를 탈 것인지 버스를 탈 것인지를 놓고 싸웠다. “돈이 썩어나지.” 택시를 타려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는 가계부까지 검사하지 않는 게 어디냐는 생각을 하며 화를 삭였다. “당신은 버스 타고 와요. 난 택시 탈 테니.”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택시 문을 닫았다. 족발을 썰다 손을 베었을 때도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갔던 외할머니는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었다. 큰삼촌은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삼 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삼촌은 왼쪽 팔에 깁스를 한 채 나타났다.
“안녕.” 고모가 두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안녕,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게 뭐냐?” 아버지가 물었다. “플래카드를 만들 시간이 없어서.” 고모가 말했다. “날 닮은 것 같아.” 작은삼촌이 말했다. “있을 건 다 있냐?” 할아버지가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보다는 키가 커야 해.” “처음으로 빠진 이는 나를 줘.” 큰삼촌의 책상 서랍에는 동생들의 젖니가 보관되어 있었다. “아직 이도 안 난 애한테 잘한다.” “처음으로 할 줄 아는 말이 고모였으면 좋겠어.” 외할머니가 손등으로 내 이마를 만졌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 닮았네.” 나는 식구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뭐,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네. 적어도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