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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커튼이 없었다. 아버지는 카운터에 전화를 해서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커튼이 왜 없어요? 모텔 주인이 되물었다. 모텔 주인은 장부를 뒤져 낮에 402호를 대실한 손님이 있었는지를 찾아보았다. 없었다. 부인이 그런 식으로 비상금을 만든다는 것을 모텔 주인은 모르고 있었다. 그날 낮, 꿈의 궁전 402호에는 사귄지 16년이나 된 커플이 묵었다. 남자친구가 화장실에 갔다 온 뒤 손을 씻지 않는 모습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 뒤로, 여자친구가 자기보다 더 뚱뚱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 뒤로, 그들은 오직 모텔에서만 데이트를 했다. 그들의 유일한 취미는 모텔에서 물건을 훔쳐 하나씩 나눠 갖는 거였다. 커튼을 떼면서 여자는 대낮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저녁이었다면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을 것이고, 그랬다면 자신이 아주 초라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결혼을 반대한 남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렸지만,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 때 보리차 대신 녹용 달인 물을 마셨다는 남자의 어머니는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모텔 주인은 바꿔줄 빈방이 없다고, 원한다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방이 없다는데요?” 아버지가 묻자 어머니가 고개를 끄떡였다. “괜찮아요. 그냥 있을게요.”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침대 시트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을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낮에 묵었던 연인들의 한숨이 아직 모텔 방에 남아 있었고, 그래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십 년은 넘게 사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아이스박스에 갇힌 적이 있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사이 어머니는 침대 시트에서 갈색 머리카락 하나를 더 찾아냈다. “이틀이나 갇혔었죠.” 골목길에 버려진 아이스박스를 주워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김장을 하기 전에 아이스박스를 땅에 묻을 생각이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증조할머니는 살얼음이 살짝 도는 김치를 종종 썰어서 국수를 말아먹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저녁을 짓고 있었고, 아버지는 부엌 문지방에 앉아서 도마질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는 문지방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낮잠을 자는 증조할머니의 머리에서 실핀 하나를 뺐다. 그리고 구멍에 실핀을 넣어보았다. 실핀 끝에 나뭇밥이 묻어나왔다. 아버지는 바닥에 흩어진 나뭇가루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곱고 부드러웠다. 엄마. 아버지가 할머니를 불렀다. 매워. 딴 데 가서 놀아. 양파를 썰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음식 솜씨가 없는 할머니는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는 인간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처녀 때는 박꽃같이 웃는다는 말을 자주 듣던 할머니였는데, 결혼한 지 이 년 만에 위장병에 걸렸다. 늘 속이 쓰렸고, 그래서, 늘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아서 구멍에서 벌레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는 문지방을 혀로 핥아보았다. 생각보다 썼다. 밥물이 끓어넘쳤다.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와 침을 뱉었다. 침은 아버지의 그림자 안으로 떨어졌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부모님이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죠. 그 동화책을 읽다 쓸쓸하다,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전 단번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