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연재를 시작하며
최근에 저는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하는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없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도 이러한데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또 오죽할까요. 그래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존 버거의 말을 빌리자면 “일어나는 일마다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일은 불필요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그 단어에 자유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그 단어들을 초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어리둥절해하기로 했습니다. 미로를 헤매다보면 뭔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겠지요.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고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마 그럴 겁니다. ‘나’는 자기 자신의 삶을 구경꾼의 자세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해를 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상 저편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소파에, 방바닥에,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읽다 만 책을 배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천장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 앞으로 읽을 책들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지요. 이야기들이 마구 흘러가도록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몸은 너무나 소설이 쓰고 싶다고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제게 말하지만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이야기 스스로가 질서를 부여할 때까지. 이야기 스스로가 문장을 원할 때까지. 그러다 겨우 첫 문장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습니다.
윤성희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가 있다. 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과 제2회 올해의 예술상을, 2007년 제14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