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의 마지막 문장을 쓸 때면 전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이제 놀아야지. 늘 밤을 새우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원고의 마지막 부분을 쓸 때면 밤을 새우게 됩니다.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쓰기 시작한 십여 년 전의 어느 날부터 그랬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새벽 여섯시쯤 됩니다. 간단한 세면도구를 들고 대중목욕탕을 가지요. 그 시간에 목욕탕에 가면 할머니 한두 분이 앉아 계십니다. 원고가 잘 풀린 날에는 할머니 등 밀어드릴까요? 하고 선심을 쓰기도 합니다만, 솔직히, 그런 경우는 지금까지 서너 번도 없었네요. 저는 탕에 몸을 담그고는 속으로 노래를 불러봅니다. 새벽에 쓴 원고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생각하다보면 ‘이건 아니야. 집에 돌아가거든 다 지워야지’ 하는 생각밖에는 안 드니까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따뜻한 국에 밥을 반공기만 말아 먹습니다. 반찬은 따로 꺼내지 않고요. 그러고 다시 한번 원고를 읽어봅니다. 원고를 기다릴 편집장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이제 원고를 지우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저는 제 자신에게 겨우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에 잘 쓰자.
그러니까, 제 경우, 모든 원고는 다음에 잘 쓰자는 격려로 겨우 살아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제 자신에게 다음에 잘 쓰자는 말을 백 번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제 방 창에서는 옥상에 커다란 평상이 있는 집이 보입니다. 이번 여름, 저는 그 집 식구들이 평상에 앉아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을 두어 번 보았습니다. 그 평상 위에 쌓인 눈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저 집 옥상엘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그 평상에 누워보면 어떨까 하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밖에서는 보이지 않네요. 평상이 있는 집 옆에는 삼층짜리 연립주택이 있습니다. 모두 네 동으로 이루어진 주택입니다. 그 집들은 옥상이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첫번째 건물에만 있고요. 그 다리 위에 쌓인 눈도 아직 그대로입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그날 이후 아무도 옥상을 올라가지 않았나봅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아마도 저는 그 다리를 건너가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길고, 지루하고, 시시한 글을 백 번이나 클릭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부끄럽네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