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시작된 지 한 달쯤 되는 날이었다. 전학생의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자신이 살던 동네를 찍어달라고 전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공짜로?” 전학생이 말했다. 녀석은 태어나서 한 번도 이사를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다섯 살 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던 언덕길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고, 녀석은 말했다.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기 전에 자신이 태어난 집을, 어머니가 늘 다니던 생선가게를, 아버지가 종종 외상을 긋던 술집을 찍어두고 싶다고 전학생은 부탁을 했다. 나는 녀석에게 혹시 문설주 어딘가에 키가 자랄 때마다 그어두었던 눈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점심으로 자장면은 사줘야 해.” 전학생이 나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재개발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린 동네에 들어서자 전학생이 캠코더의 전원을 켰다. 전학생은 빨래가 널려 있는 어느 집의 옥상을 찍었다. 이사를 해 텅 빈 집 마당에 버려진 항아리를 찍었다. 어느 집 대문에 꽂혀 있는 우편물을 찍었다. 녀석의 어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씩은 가던 생선가게는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전학생은 가게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주인의 옆모습을 찍었다. 전학생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삐쩍 마른 남자가 텔레비전을 트럭에 간신히 올렸다. 트럭에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장롱이 보였다. 아마도 여자아이가 있는 집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을 해보았다. 스티커가 죄다 공주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인부 두 명이 커다란 식탁을 들고 나왔다. 외할머니가 머리를 반만 말린 채 목욕탕을 빠져나오던 그 시각이었다. 외할머니는 목욕탕에는 왜 공짜 드라이어가 없는 것인지 투덜대며 길을 걸었다. “에취.” 외할머니가 기침을 했다. 곧 하늘을 날 사람인데 감기 따위야, 우습지, 하고 외할머니는 생각했다. 감기가 올 것 같으면 외할머니는 늘 생강차를 한잔 마시고 잠을 잤다. 외할머니는 집에 가는 길에 생강을 사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외할머니는 다시 한번 기침을 했다. “에취.” 그 순간, 세 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있던 나도 기침을 했다. “에취.” 식탁을 나르던 인부 한 명이 대문 앞에서 휘청거렸다. 식탁이 대문에 부딪쳤다. “학생, 놀랬잖아.” 인부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침을 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삿짐 트럭이 짐을 싣고 떠날 때까지, 전학생이 촬영을 다 마시고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어야 했다.
기침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경우를 의사는 살면서 처음 보았다고 했다. “저도 처음이에요.” 나는 농담을 했지만 의사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서 있던 간호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주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사골국은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냥 맛없는 병원 밥을 먹겠다고. “속이 탈난 것도 아닌데. 왜?” 할머니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그러고 싶어.”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잠을 자다 눈을 뜨면 옆 침대에 입원해 있는 꼬마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오토바이에 치였다는 꼬마는 눈을 깜빡거리며, 꼼짝도 안 해서 죽은 줄 알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작은삼촌과 같이 마당에 묻은 항아리를 파내는 꿈을 꾸었다. 아무리 삽질을 해도 땀이 나지 않았다. 이참에 수영장이라도 만들까? 작은삼촌이 말했다. 그럴까요. 내가 대답했다. 할머니가 현관 계단에 앉아서 사내놈들이 왜 이리 힘이 없어, 하고 잔소리를 했다. 할머니, 노래 불러줘. 나는 삽을 땅에 꽂고는 기지개를 켰다. 할머니가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꿈속에서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꼬마 녀석도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눈을 떴다. 햇빛에 눈이 부셨다. 누군가 커튼을 쳐주었으면. 나는 생각했다. 갈비뼈가 붙으려면 한참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