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가 350번 버스에서 기침을 하는 순간,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 꽃에 물을 주다가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거나, 연인에게 목도리를 선물하려고 뜨개질을 하다 실수로 코를 빠뜨리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데 자신도 모르게 배가 고프다는 말이 나와버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봄까지 나뭇가지 안에 잠들어 있어야 하는 새순이 기침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오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모의 기침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고작 기침소리에 놀란 버스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 등을 밟았다 뗀 일뿐이다. 뒤따라오던 승용차가 버스의 브레이크 등이 켜졌다가 이내 꺼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침소리를 들은 사람은 운전기사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고모가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을 사오기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 내 귀에 대고 아버지는 말했다. 니 고모 감기 들었나보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장식장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가 회사 창립 50주년 때 창립기념일 선물로 받아온 커다란 약상자가 있었다. 약상자를 열어보니 쌍화탕이 두 병 보였다. 나는 두 병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 냄비에 쌍화탕 두 개를 붓고 반으로 졸 때까지 끓였다. 고모는 집 앞에 와서야 삼각김밥을 사오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고, 그래서 다시 골목길을 내려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다 팔렸다 그러지, 뭐. 고모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대문에서 쇳소리가 난 지 오래되었지만 작은삼촌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모가 세수를 하고 이층 방으로 올라왔을 때 화장대에는 쌍화탕이 놓여 있었다. 고모는 에취, 하고 기침을 한번 한 다음 쌍화탕을 마셨다. 그리고 삼각김밥을 사올걸, 하고 후회를 했다. “고모, 뭐 잊은 거 없어?” 내가 맞은편 방에서 소리쳤다. “다 팔렸더라고. 네가 싫어하는 불고기김밥만 남았어.” 고모가 방문을 열고 고개만 밖으로 내민 다음 말했다. 고모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기침은 내게로 옮아왔다. 병원을 세 군데나 옮겼지만 기침은 쉽게 낫지 않았다.
수학문제를 풀 때도,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급식으로 나온 두부조림을 먹을까 말까 망설일 때도, 간이 맞지 않은 국을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맛있다고 거짓말을 할 때도, 기침이 나왔다. “에취.” 기침을 하니, 어머니의 뱃속에서 듣던 옆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가 치던 곡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떠올랐다. 음정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아 어머니도 그리고 외할머니도 무슨 곡인지 맞히지 못했던 노래였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고 부르는 동요였다. “에취.” 기침을 하니,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스물다섯 살의 내가 보였다. “에취.” 장난감 포클레인을 갖고 싶다고 가게 앞에서 울던 일곱 살짜리 내가 보였다. “에취.” 늘 앞머리에 딸기 모양의 핀을 꽂던 여학생의 뒤를 쫓아가던 중학생의 내가 보였다. 나는 큰삼촌이 남긴 수첩에서 발견한 멋진 구절들을 인용해가며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몰래 뒤쫓아 알아낸 여학생의 집으로 가서 편지함에 편지를 넣었다. “에취.” 다시 기침을 하니, 그 편지가 여학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학생은 그 집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편지는 주인집 딸이 발견했다. 주인집 딸은 죽을 때까지 그 편지가 자기 앞으로 온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훗날, 자신의 딸에게 이 엄마도 학교 다닐 때는 인기가 많았다, 라고 말을 할 것이다. 기침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살을 뺀다고 줄넘기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질 것이고, 친구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가 바늘에 눈이 찔려 실명을 할 뻔하고, 와이셔츠에 김칫국물이 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회사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기침을 한번 할 때마다 식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첫 월급을 타면 할머니에게 장갑을 사주게 돼.” “내 아이는 작은삼촌을 닮았어.” “고모가 끓여준 시금칫국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지금은 입에도 대지 않는 시금치를 서른다섯 살이 넘기 시작하면서 먹기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고모에게 해주었다.
수학문제를 풀 때도,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급식으로 나온 두부조림을 먹을까 말까 망설일 때도, 간이 맞지 않은 국을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맛있다고 거짓말을 할 때도, 기침이 나왔다. “에취.” 기침을 하니, 어머니의 뱃속에서 듣던 옆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가 치던 곡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떠올랐다. 음정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아 어머니도 그리고 외할머니도 무슨 곡인지 맞히지 못했던 노래였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고 부르는 동요였다. “에취.” 기침을 하니,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스물다섯 살의 내가 보였다. “에취.” 장난감 포클레인을 갖고 싶다고 가게 앞에서 울던 일곱 살짜리 내가 보였다. “에취.” 늘 앞머리에 딸기 모양의 핀을 꽂던 여학생의 뒤를 쫓아가던 중학생의 내가 보였다. 나는 큰삼촌이 남긴 수첩에서 발견한 멋진 구절들을 인용해가며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몰래 뒤쫓아 알아낸 여학생의 집으로 가서 편지함에 편지를 넣었다. “에취.” 다시 기침을 하니, 그 편지가 여학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학생은 그 집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편지는 주인집 딸이 발견했다. 주인집 딸은 죽을 때까지 그 편지가 자기 앞으로 온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훗날, 자신의 딸에게 이 엄마도 학교 다닐 때는 인기가 많았다, 라고 말을 할 것이다. 기침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살을 뺀다고 줄넘기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질 것이고, 친구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가 바늘에 눈이 찔려 실명을 할 뻔하고, 와이셔츠에 김칫국물이 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회사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기침을 한번 할 때마다 식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첫 월급을 타면 할머니에게 장갑을 사주게 돼.” “내 아이는 작은삼촌을 닮았어.” “고모가 끓여준 시금칫국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지금은 입에도 대지 않는 시금치를 서른다섯 살이 넘기 시작하면서 먹기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고모에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