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항아리를 묻은 사람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이사를 온 다음해의 일이었다. 증조할머니는 이삿짐을 나르던 인부들에게 항아리를 깨기만 하면 일당은 없을 줄 알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인부 하나가 트럭에서 항아리를 내리다가 귀퉁이를 깼다. “할머니, 죄송해요.” 남자가 항아리에서 새어나오는 간장을 손으로 막았다. 목장갑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다가 학비가 없어서 휴학을 한 남자는 하도 물건을 많이 깨서 제대로 일당을 받은 날이 거의 없었다. 할머니가 접시를 깼을 때도 이틀 동안이나 역정을 내시던 증조할머니는 이상하게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내년엔 학교에 다니고.” 증조할머니는 사장 몰래 남자에게 일당을 더 얹어주면서 말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한글을 쓸 줄 몰랐던 증조할머니는 대학생이라는 말만 들으면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해, 간장을 달이던 날, 휴학생이 찾아왔다.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가지고서였다. “제 어머니한테 물어보니까 오늘이 길일이라 그래서요. 틀림없이 간장을 달일 것 같았어요.” 휴학생은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간장을 저었다. 이제 그 사람도 늙었겠지. 어느 날, 할머니는 그 휴학생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이를 닦다 말고, 콩나물국에 간을 하다 말고, 걸레질을 하다 말고, 이제 그 사람도 늙었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학생 물 좀 마셔요, 라고 말해본 것이 전부였는데. 할머니가 내민 물컵을 받아든 남자는 한 번에 들이켰다. 그때 손이 스쳤던가. 할머니는 옛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물컵을 주고받던 두 손이 스쳤는지 스치지 않았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가 선물로 가지고 온 항아리는 가을이 될 때까지 장독대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간장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되자 할아버지는 장독대 옆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겨울에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가 땅을 파는 것을 큰삼촌과 작은삼촌과 고모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다. 할아버지의 옆에서 교련복을 입은 아버지가 숫자를 세었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그러자 할아버지가 삽질을 멈추고 삽을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는 서른을 세며 삽질을 하였다. 그렇게 둘이 서른 번씩 삽질을 주고받았고, 부엌에서 할머니가 칼국수를 다 끓일 때쯤에 항아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을 팠다.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 김치를 보관하지 않은 지 십 년도 더 지났다. 할머니는 마당으로 나가 항아리 위에 올려놓은 널빤지를 걷어냈다. 항아리 뚜껑을 열고 그 안을 향해 아, 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소리가 여러 겹으로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도통 자신의 목소리와 닮지 않았다. 혼자 땅속에 파묻혀 있는 항아리라니. 할머니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드라마에서 아무리 슬픈 이야기가 나와도 눈물은커녕 저게 말이나 되냐, 하고 오히려 투덜대던 할머니였다. 그랬는데 길모퉁이에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만 보아도 눈물이 나곤 했다.
할머니는 늦잠을 자고 있는 작은삼촌을 깨웠다. “일요일 하루 정도는 좀 쉽시다.” 작은삼촌이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말했다. “마당에 묻은 장독을 꺼내야겠어.” 할머니는 이불을 들쳤다. 작은삼촌은 팬티만 입고 있었다. 할머니는 창문을 열었다. “추워.” 작은삼촌이 말하자 할머니가 추우면 옷 입어라, 하고 대꾸했다. “대신 저녁에 백숙 해줘야 해요.” 작은삼촌은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창고에서 낡은 삽을 한 자루 꺼냈다. 할머니는 항아리를 깨기만 하면 백숙뿐만 아니라 한 달 동안 고기반찬은 없을 줄 알라고 잔소리를 했다. 작은삼촌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작은삼촌에게 항아리를 묻던 날 그 안에 한 번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작은삼촌은 그때의 일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가 작은삼촌의 겨드랑이를 잡고 항아리 안에 넣어주었다. 작은삼촌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생각보다 따뜻해, 아빠.”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럼, 거기서 살래, 하고는 뚜껑을 닫는 시늉을 했다. 겁쟁이였던 작은삼촌이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항아리는 왜 파는 건데요?” 할머니는 작은삼촌의 물음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막 얼기 시작한 땅은 쉽게 파지지 않았다. 작은삼촌이 내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공부 안 하는 거 알아. 이리 나와봐.” 내가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작은삼촌의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젊은 놈이 좀 파라.” 작은삼촌이 삽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큰데요. 내가 들어가도 되겠어요.” 그러자 작은삼촌이 한번 들어가볼래? 하고는 내 등을 살짝 밀었다. 나는 삽을 들어 항아리 주위를 넓게 파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보다 등이 먼저 젖기 시작했다. 작은삼촌은 항아리를 파던 할아버지의 굵은 팔뚝이 생각났다. 항아리를 묻고 어린 형제들이 그 주위의 흙을 발로 꼭꼭 밟아 다지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 큰형이 무슨 노래를 불러줬는데. 작은삼촌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기억해보려고 했지만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 아는 노래 없니. 한 곡 불러봐.” 작은삼촌이 내게 삽을 건네받으면서 말했다. “삼촌. 난 음치야. 음악 실기점수가 늘 C라니까.” “나도야.” 작은삼촌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삽질을 멈추고는 할머니에게 엄마라도 노래 좀 불러줘요,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싫다, 싫어, 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도 음치야.” 할머니는 햇볕이 드는 현관 계단에 앉아서 작은삼촌과 내가 삽질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땅을 팠다. 작은삼촌은 어렴풋하게나마 할머니가 왜 항아리를 꺼내려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해가 집 뒤로 넘어갔다. 현관 계단에도 그늘이 졌다. 할머니는 엉덩이가 시려왔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에취.” 할머니가 기침을 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집으로 들어가요. 노인네. 감기 걸려 우리 속 썩이지 말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사내놈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할머니가 잔소리를 했다.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 김치를 보관하지 않은 지 십 년도 더 지났다. 할머니는 마당으로 나가 항아리 위에 올려놓은 널빤지를 걷어냈다. 항아리 뚜껑을 열고 그 안을 향해 아, 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소리가 여러 겹으로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도통 자신의 목소리와 닮지 않았다. 혼자 땅속에 파묻혀 있는 항아리라니. 할머니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드라마에서 아무리 슬픈 이야기가 나와도 눈물은커녕 저게 말이나 되냐, 하고 오히려 투덜대던 할머니였다. 그랬는데 길모퉁이에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만 보아도 눈물이 나곤 했다.
할머니는 늦잠을 자고 있는 작은삼촌을 깨웠다. “일요일 하루 정도는 좀 쉽시다.” 작은삼촌이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말했다. “마당에 묻은 장독을 꺼내야겠어.” 할머니는 이불을 들쳤다. 작은삼촌은 팬티만 입고 있었다. 할머니는 창문을 열었다. “추워.” 작은삼촌이 말하자 할머니가 추우면 옷 입어라, 하고 대꾸했다. “대신 저녁에 백숙 해줘야 해요.” 작은삼촌은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창고에서 낡은 삽을 한 자루 꺼냈다. 할머니는 항아리를 깨기만 하면 백숙뿐만 아니라 한 달 동안 고기반찬은 없을 줄 알라고 잔소리를 했다. 작은삼촌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작은삼촌에게 항아리를 묻던 날 그 안에 한 번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작은삼촌은 그때의 일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가 작은삼촌의 겨드랑이를 잡고 항아리 안에 넣어주었다. 작은삼촌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생각보다 따뜻해, 아빠.”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럼, 거기서 살래, 하고는 뚜껑을 닫는 시늉을 했다. 겁쟁이였던 작은삼촌이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항아리는 왜 파는 건데요?” 할머니는 작은삼촌의 물음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막 얼기 시작한 땅은 쉽게 파지지 않았다. 작은삼촌이 내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공부 안 하는 거 알아. 이리 나와봐.” 내가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작은삼촌의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젊은 놈이 좀 파라.” 작은삼촌이 삽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항아리를 들여다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큰데요. 내가 들어가도 되겠어요.” 그러자 작은삼촌이 한번 들어가볼래? 하고는 내 등을 살짝 밀었다. 나는 삽을 들어 항아리 주위를 넓게 파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보다 등이 먼저 젖기 시작했다. 작은삼촌은 항아리를 파던 할아버지의 굵은 팔뚝이 생각났다. 항아리를 묻고 어린 형제들이 그 주위의 흙을 발로 꼭꼭 밟아 다지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 큰형이 무슨 노래를 불러줬는데. 작은삼촌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기억해보려고 했지만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 아는 노래 없니. 한 곡 불러봐.” 작은삼촌이 내게 삽을 건네받으면서 말했다. “삼촌. 난 음치야. 음악 실기점수가 늘 C라니까.” “나도야.” 작은삼촌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삽질을 멈추고는 할머니에게 엄마라도 노래 좀 불러줘요,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싫다, 싫어, 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도 음치야.” 할머니는 햇볕이 드는 현관 계단에 앉아서 작은삼촌과 내가 삽질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땅을 팠다. 작은삼촌은 어렴풋하게나마 할머니가 왜 항아리를 꺼내려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해가 집 뒤로 넘어갔다. 현관 계단에도 그늘이 졌다. 할머니는 엉덩이가 시려왔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에취.” 할머니가 기침을 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집으로 들어가요. 노인네. 감기 걸려 우리 속 썩이지 말고.” 작은삼촌이 말했다. “사내놈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할머니가 잔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