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염색을 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외할머니가 카운터에 앉아 있는 것만 보고도 손님들은 음식이 맛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외할머니는 가게에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그리고 종일 천장에 매달아놓은 텔레비전을 보았다. 외할머니는 세계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케이블 방송을 즐겨 보았는데, 손님들이 야구나 축구 시합을 보여달라고 해도 채널을 돌려주지 않았다. 화가 난 손님 몇은 음식을 먹다 말고 가게를 나가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그럴 경우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한 손에는 계산기를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는 죽기 전에 하늘을 한 번만 날아봤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외할머니는 지구 저편에 사는 어느 노인이 아흔 살 생일 기념으로 스카이다이빙에 도전을 했다는 해외 뉴스를 본 후로는 스카이다이빙을 해보리라고 결심을 했다. 심장이 좋지 않아 하루에 한 알씩 아스피린을 먹는 외할머니로서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외할머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다가 하늘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죽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하지만 스카이다이빙 강사를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스피린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강사는 몇 해 전에 하늘을 날아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던 할아버지를 태웠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젊어서 유도선수를 했다는 그 할아버지는 덩치가 강사보다 더 컸다. 그런데도 그 할아버지는 강하를 하자마자 기절을 했다. 강사는 외할머니에게 죄송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하고 말했다. “늦다니, 뭐가?” 외할머니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강사가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가리켰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진들이었다. “여길 보세요. 다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외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원은 비행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그 아들이 군대에서 헬기 추락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아이가 있는 곳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외할머니는 말했다. 외할머니의 거짓말은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부부는 아들이 죽은 후 매일같이 산에 올랐다. 노부부가 산 정상에 서서 하늘을 향해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며 외할머니는 망할 년, 하고 욕을 했다. 가게를 청소하던 고모가 그 소리에 저요? 하고 물었다. “둘 다.” 외할머니가 말했고 고모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게 짐작을 했다. 강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해병대를 나온 강사는 군대에서 사고로 죽은 동료가 생각났고,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울던 다리를 저는 동료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강사가 말했다.
외할머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난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를 쉬리라고 다짐을 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서라도 전국의 유명 사찰들을 돌아보리라고 다짐도 했다. 내친 김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여행을 다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사돈. 집 나가면 고생이에요.” 할머니가 말했다. “결혼도 안 한 자식들 아침밥을 해주느니 여행을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요?” 외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망할 것들이라고 욕을 했다. 또 외할머니는 색이 바랜 벽지를 걷어내고 꽃무늬 벽지로 집을 단장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집 앞에 있는 지물포에 가서 벽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예쁜 것이 너무 많아서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마라톤 경기를 앞둔 선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육점에 가서 1등급 한우 등심을 샀고 저녁마다 구워먹었다. 아침에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었다. 사과주스를 갈아 먹었고, 아침 일곱시 십분에 방송되는 ‘건강한 아침’이란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체조를 따라 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날 아침 외할머니는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밀이에게 몸을 맡겨보았다. 머리를 말리는데 검은 머리카락들이 보였다. 외할머니는 머리를 거울에 바짝 붙인 채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뿌리들이 검게 변해 있었다. 이 나이에 다시 검은 머리가 나다니. 외할머니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거울에 새겨져 있는 ‘영남 산악회 증’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 않을 글자였다. 외할머니는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드라이어에 백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머릿속이 금방 따뜻해졌다. 외할머니는 검은 머리를 한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머리를 반도 말리지 못했는데 드라이어가 멈추었다. 외할머니는 두 볼이 발갛게 상기된 채 목욕탕 밖을 나왔다. 에취, 기침이 나왔다. 에취. 기침을 하며 외할머니는 하늘에서 딸의 이름을 한번 불러본 다음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강사는 몇 해 전에 하늘을 날아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던 할아버지를 태웠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젊어서 유도선수를 했다는 그 할아버지는 덩치가 강사보다 더 컸다. 그런데도 그 할아버지는 강하를 하자마자 기절을 했다. 강사는 외할머니에게 죄송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하고 말했다. “늦다니, 뭐가?” 외할머니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강사가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가리켰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진들이었다. “여길 보세요. 다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외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원은 비행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그 아들이 군대에서 헬기 추락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아이가 있는 곳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외할머니는 말했다. 외할머니의 거짓말은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부부는 아들이 죽은 후 매일같이 산에 올랐다. 노부부가 산 정상에 서서 하늘을 향해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며 외할머니는 망할 년, 하고 욕을 했다. 가게를 청소하던 고모가 그 소리에 저요? 하고 물었다. “둘 다.” 외할머니가 말했고 고모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게 짐작을 했다. 강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해병대를 나온 강사는 군대에서 사고로 죽은 동료가 생각났고,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잡고 울던 다리를 저는 동료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강사가 말했다.
외할머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난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를 쉬리라고 다짐을 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서라도 전국의 유명 사찰들을 돌아보리라고 다짐도 했다. 내친 김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여행을 다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사돈. 집 나가면 고생이에요.” 할머니가 말했다. “결혼도 안 한 자식들 아침밥을 해주느니 여행을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요?” 외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망할 것들이라고 욕을 했다. 또 외할머니는 색이 바랜 벽지를 걷어내고 꽃무늬 벽지로 집을 단장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집 앞에 있는 지물포에 가서 벽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예쁜 것이 너무 많아서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마라톤 경기를 앞둔 선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육점에 가서 1등급 한우 등심을 샀고 저녁마다 구워먹었다. 아침에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었다. 사과주스를 갈아 먹었고, 아침 일곱시 십분에 방송되는 ‘건강한 아침’이란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체조를 따라 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날 아침 외할머니는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밀이에게 몸을 맡겨보았다. 머리를 말리는데 검은 머리카락들이 보였다. 외할머니는 머리를 거울에 바짝 붙인 채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뿌리들이 검게 변해 있었다. 이 나이에 다시 검은 머리가 나다니. 외할머니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거울에 새겨져 있는 ‘영남 산악회 증’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 않을 글자였다. 외할머니는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외할머니는 드라이어에 백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머릿속이 금방 따뜻해졌다. 외할머니는 검은 머리를 한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머리를 반도 말리지 못했는데 드라이어가 멈추었다. 외할머니는 두 볼이 발갛게 상기된 채 목욕탕 밖을 나왔다. 에취, 기침이 나왔다. 에취. 기침을 하며 외할머니는 하늘에서 딸의 이름을 한번 불러본 다음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