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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는 가게 일을 마치고, 셔터를 내릴 때마다 등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뒤를 돌아보면, 취객들이 하도 오줌을 누어서 지린내가 밴 전봇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가게 문을 닫기 전이면 그 전봇대에 물 한 양동이를 부었다. 그러면 냄새가 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술 좀 따르라고 말하는 손님이 있는 날이면 전봇대에 물을 두 양동이나 부었다. 그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상하게도 전봇대가 좀 자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화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는 어린 어머니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전봇대가 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모는 작은 화분들을 사서 전봇대 아래에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전봇대에 오줌을 누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고모는 문을 닫기 전에 화분들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가게 불을 끄면서 내일 보자, 라고 중얼거렸다. 고모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아직 환하게 불이 켜진 가게들을 보았다. 온통 음식집들뿐이었다. 고모는 가게들을 지나갈 때마다 먹고, 먹고, 먹고, 입고, 먹고……라고 중얼거렸다. 고모는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두 오빠들이 죽기 한참 전부터 고모를 따라다니던 질문이었다. 고모가 즐겨 읽던 동화책에는 난로도 켜지 못하는 방에서 기침을 하며 죽어가는 아이가 나왔다. 고모는 이름이 민지인지 민정인지 하는 짝과 동화책에 나오는 비극의 여주인공들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무 때나 기침을 했고, 아무 때나 머리를 만지면서 어지럽다고 중얼거렸다. 길을 걷다가 쓰러지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차마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 민지인지 민정인지 하는 짝은 아침마다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고, 그래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 역을 연기하기에는 몸이 지나치게 튼튼했다. 고모는 아침마다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시장에 가서 도라지를 사와 하루 종일 도라지를 달였다. 초등학교 일학년이 먹기에는 도라지 달인 물은 지나치게 썼다. 고모는 비극의 여주인공 놀이를 그만두면서 짝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엔 난로도 없고 침대도 없어. 방바닥이 너무 따뜻해서 그 아이처럼 되기가 너무 힘들어.” 초등학교 이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병으로 입원을 했다. 맹장수술이니 걱정 말라고,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시간에 웃으면서 말했다. 반장이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자고 했고 아이들은 맞춤법이 틀린 철자로 편지를 썼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 담임이 된 선생님이 니들 선생님은 사정이 있어서 멀리 외국으로 이사를 가셨단다, 하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수술을 하다 죽었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퍼졌다. 맹장수술을 하다가 죽는 것만큼 슬픈 죽음은 없을 것이라고 고모는 생각했다. 고모는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런데 울다보니 어느새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죽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고모는 고등학생 때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병실에서 서럽게 울었다. “누가 보면 죽을병에 걸린 사람인 줄 알겠다.” 할아버지가 농담을 다 할 정도였다. 고모는 식구들 중에서 가장 몸이 튼튼했다. 병원에 간 것은 맹장을 수술할 때와 사랑니를 뽑을 때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고모는 늘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고모는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삼십 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의 막차를 기다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고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이,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먹을 걸 사오라는 주문 전화였다. 고모는 버스를 탔다. 처음 보는 기사였다. “새로 오셨나봐요?” 고모가 물었다. 기사가 예, 하고 대답했다. 막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모두 네 명이었다. 고모는 그 기사들과 가벼운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모는 두 오빠들이 죽었을 때마다 왜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난 일찍 죽을 거야, 라고 말하던 철없는 어린아이가 늘 고모를 따라다녔다. 미안해, 하고 고모는 중얼거렸다. 길을 걷다 뒤돌아보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 뒤에 서 있었다. 미안해. 그러니 이제 그만 따라다녀. 새로 온 운전기사는 룸미러로 맨 뒷자리에 앉은 고모를 보았다. 승객은 고모 한 명밖에 없었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혼잣말을 하지?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신호를 지켜가며 천천히 운전을 했다. 고모는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눈 밑의 주름도 깊어졌다. 그 얼굴은 할머니와 놀랍게 닮아 있었다. 고모는 늙기도 전에 이미 늙어버린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차가 고모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멈추었다. 고모가 기침을 한번 하고는 버스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