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달리기를 할 때 꼭 이 모자를 쓸게.” 나는 전학생에게 말했다. 전학생은 나에게 달리기를 해? 하고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혼자 낄낄거리며 웃었다. 전학생은 달리기를 하는 애 치곤 내가 몸매가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턱걸이를 다섯 개도 하지 못했는데, 전학생은 이미 초등학교 삼학년 때 턱걸이 다섯 개를 거뜬하게 해냈었다. 전학생이 웃자 나는 친구와 싸워 이를 네 개나 부러뜨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학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학생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항상 이마를 찡그리고 입술을 왼쪽으로 씰룩거렸다. 전학생이 마흔이 넘게 되면 이마에 굵은 주름이 질 것이다. 그러면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전학생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달렸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나는 달리기를 할 때 오직 그 두 단어만을 생각했다. 숨이 가빠지면 그 단어 사이로 많은 단어들이, 많은 이야기들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엽서들보다 더 많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도장가게 주인은 시계를 닦고 있었다. 나는 가게 앞에 멈춰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달리기를? 하고 비웃던 전학생이 숨을 헐떡였다. “저 주인 아저씨의 등에는 용 문신이 새겨져 있어.” 내가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말했다. 가게로 들어가보니, 요구르트 두 개가 빨대가 꽂힌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말없이 요구르트 한 개를 들었다. 나를 보고 전학생도 요구르트를 집었다. 도장가게 아저씨는 저 멀리서 내가 달려오는 것을 보면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두었다. 도장을 파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내가 달리는 것을 본다는 것이 나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요구르트는 내가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책상에 놓여 있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삼십 년째야. 도장 파는 일이.” 도장 아저씨는 삼십 년째 창밖을 내다보는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그렇게 여러 가지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와 전학생은 일주일 동안 도장을 파간 사람들의 이름을 구경했다. 전학생이 능숙하게 한자로 된 이름 하나를 읽었다. “똑똑하네.” 도장 아저씨가 나보다 전학생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요구르트 하나를 더 주었다. 도장가게를 나오면서 전학생이 내게 속삭였다. “사실 아까 그 이름. 우리 아버지 이름이랑 한자가 같았어.”
떡볶이 아줌마는 나를 보자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를 볼 때마다 떡볶이 아줌마는 합의금 이천만원이 생각났고, 그럴 때마다 쌍둥이인 아이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떡볶이 아줌마는 전학생에게 너도 뭔 사고 쳤니? 하고 물었다. 나는 이쑤시개로 어묵만을 골라 먹으면서, 이 녀석은 친구에게 돌을 던져 이마를 찢어놓았어요, 하고 말했다. 전학생은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전학을 오기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약국까지는 걸었다. 전학생은 걷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와서 저녁 해가 질 때까지 걸은 적도 있었다. 길을 걷다 힘들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걷다 놀이터가 보이면 미끄럼틀도 한번 타보고, 걷다 버려진 물건들이 보이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주인이 누구였을지를 상상해보았다. 전학생의 몸에서 땀냄새가 났다. 바람이 불면 나는 티셔츠를 펄럭이며 몸을 식혔다. 약국 앞을 지나가면서 나는 약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약사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손님이 와도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저 약사는 변비환자야. 한 달에 두 번도 못 간대.” 전학생은 이 세상에서 변비라는 말이 가장 웃겼다. 칼국숫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칼국숫집을 지키기 위해서 대기업의 연구원을 그만둔 남자가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칼국숫집은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전학생이 맛은 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굶어 죽어도 그 가게에서 절대 음식을 사먹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하자 전학생이 결심은 그런 데 쓰는 법이 아니라고 전학생이 말했다. “맛있으면 먹는 거지. 결심은 왜 하냐.” 전학생이 칼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여전히 젓가락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돈 갚아야지. 사먹을 돈이 있어?” 칼국숫집 청년이 말했다. 전학생이 제가 낼 거예요, 하고 대답했다. “전 남의 이를 부러뜨리지 않았거든요.” 청년이 그릇이 넘치도록 칼국수를 담아왔다. 우리는 깍두기를 다섯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밀가루보다 무가 더 비싸.” 청년이 구시렁거렸다. “칼국수보다 깍두기가 더 맛있어요. 김치장사 하세요.” 내가 말했다. 전학생은 칼국수를 다 먹었고 나는 조금 남겼다. 우리는 칼국숫집 앞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모자를 벽에 걸었다. 옆에는 오래 전에 큰삼촌이 물려준 모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모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벽을 오 초 정도 바라보았다.
떡볶이 아줌마는 나를 보자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를 볼 때마다 떡볶이 아줌마는 합의금 이천만원이 생각났고, 그럴 때마다 쌍둥이인 아이들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떡볶이 아줌마는 전학생에게 너도 뭔 사고 쳤니? 하고 물었다. 나는 이쑤시개로 어묵만을 골라 먹으면서, 이 녀석은 친구에게 돌을 던져 이마를 찢어놓았어요, 하고 말했다. 전학생은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전학을 오기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약국까지는 걸었다. 전학생은 걷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와서 저녁 해가 질 때까지 걸은 적도 있었다. 길을 걷다 힘들면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걷다 놀이터가 보이면 미끄럼틀도 한번 타보고, 걷다 버려진 물건들이 보이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주인이 누구였을지를 상상해보았다. 전학생의 몸에서 땀냄새가 났다. 바람이 불면 나는 티셔츠를 펄럭이며 몸을 식혔다. 약국 앞을 지나가면서 나는 약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약사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손님이 와도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저 약사는 변비환자야. 한 달에 두 번도 못 간대.” 전학생은 이 세상에서 변비라는 말이 가장 웃겼다. 칼국숫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칼국숫집을 지키기 위해서 대기업의 연구원을 그만둔 남자가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칼국숫집은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전학생이 맛은 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굶어 죽어도 그 가게에서 절대 음식을 사먹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하자 전학생이 결심은 그런 데 쓰는 법이 아니라고 전학생이 말했다. “맛있으면 먹는 거지. 결심은 왜 하냐.” 전학생이 칼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여전히 젓가락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돈 갚아야지. 사먹을 돈이 있어?” 칼국숫집 청년이 말했다. 전학생이 제가 낼 거예요, 하고 대답했다. “전 남의 이를 부러뜨리지 않았거든요.” 청년이 그릇이 넘치도록 칼국수를 담아왔다. 우리는 깍두기를 다섯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밀가루보다 무가 더 비싸.” 청년이 구시렁거렸다. “칼국수보다 깍두기가 더 맛있어요. 김치장사 하세요.” 내가 말했다. 전학생은 칼국수를 다 먹었고 나는 조금 남겼다. 우리는 칼국숫집 앞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모자를 벽에 걸었다. 옆에는 오래 전에 큰삼촌이 물려준 모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모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벽을 오 초 정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