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서른두 장을 접어 넣자 전학생의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나는 점퍼의 안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쪽팔리게. 주려면 만원짜리로 주지.” 내가 중얼거렸다. 전학생이, 난 한 번도 지갑을 가져본 적이 없어, 하고 말했다. 전학생의 아버지는 먼 친척이 전기담요를 팔러 왔다가 사은품으로 준 비닐로 된 지갑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늘 오천원이 들어 있었다. 전학생은 십만원 이상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전에는 절대 지갑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우리는 흑염소가게 앞에 있는 인형 뽑는 기계에 오백원을 넣었다. 전학생은 전학 오기 전에 뽑기의 황제였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토끼인형의 귀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니. 왜 이런 데 오락기가 있는 거야?” 전학생이 낄낄거렸다. 전학생의 말처럼 누린내를 맡아가면서 인형을 뽑을 초등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흑염소 주인이 인형 뽑는 걸 좋아하나보지.” 전학생은 네 판을 하고 포기를 했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는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전학생은, 아까 인형을 뽑았어야 했는데, 하고 말했다. 인형을 뽑았다면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을 거라고. “인마, 유괴범 취급이나 받지.” 내가 녀석의 뒤통수를 쳤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팥빙수와 감자튀김을 사먹었다. 가게에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들로 가득했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도 따라서 울었다. 가게 안에서는 겨울도 아닌데, 크리스마스는 더더욱 아닌데, 캐럴이 울려퍼졌다. “이게 뭔 일일까?” 전학생이 팥빙수를 한 입 먹고는 허공에 대고 입김을 불어보았다. 나는 감자튀김을 집어먹은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청바지에 두 손가락 모양의 기름 자국이 남았다. 우리는 팥빙수를 반이나 남겼다. 패스트푸드점을 나오면서 전학생이 나는 왜 캐럴을 틀었는지 알아, 하고 말했다. 전학생의 말에 의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태어난 아이를 둔 어머니일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동호회 말이야.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다가 가게에 담배 냄새도 배어 있지 않은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거든.” 나는 캐럴을 틀어야만 울지 않는 아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보았다.
우리는 계속 길을 걸었다. 저 멀리, 달리기를 할 때 처음으로 도장을 찍었던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러 비타민C가 들어간 음료수를 사먹곤 했다. “저 편의점 보이지?” 나는 전학생에게 저 편의점 점장은 두 다리가 다 의족이야, 하고 거짓말을 했다. “트럭이 깔고 지나갔대.” 실제로 나는 한 번도 점장이 카운터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손님이 와도 늘 앉아서 인사를 했다. 나는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카운터에 턱을 괴고 멍하니 CCTV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점장을 보았다. 나는 나를 보지도 않는 점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때 문득 전학생이 우리 모자 살래? 하고 말했다. “모자?” 그러자 전학생이 모자를 파는 리어카를 가리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리어카였다. “그래 사자.” 내가 말했다. 전학생은 검은색 스포츠모자를 썼다. 며칠 머리를 감지 않은 듯한 남자가 깨진 거울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안 어울리는데.” 내가 웃었다. “좋아하는 야구팀 없어?” 전학생이 물었다. 스포츠모자를 고를 때 가장 편한 법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모자를 사는 것이라고 전학생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좋아하는 야구팀도 좋아하는 축구팀도 없었다. 우리는 열여덟 살짜리 남자애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모자를 골라달라고 했다. 남자가 챙이 나달나달하게 닳은 모자를 골라주었다. “어때?” 모자를 푹 눌러쓰자 전학생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내가 챙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똑같은 거 두 개 주세요.” 전학생이 말했다. 남자는 잠깐만, 하고 말하더니 리어카 아래에 넣어둔 박스를 꺼냈다. 남자가 다섯 개의 박스를 모두 뒤지는 동안 우리는 보도블록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을 구경했다. “여기 있다.” 남자가 마침내 똑같은 모자를 찾아냈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동시에 모자를 썼다. 모자를 쓰자 나도 모르게 전학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공장에서는 똑같은 옷이, 똑같은 모자가, 똑같은 신발이, 수없이 찍혀 나올 텐데.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계속 길을 걸었다. 저 멀리, 달리기를 할 때 처음으로 도장을 찍었던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러 비타민C가 들어간 음료수를 사먹곤 했다. “저 편의점 보이지?” 나는 전학생에게 저 편의점 점장은 두 다리가 다 의족이야, 하고 거짓말을 했다. “트럭이 깔고 지나갔대.” 실제로 나는 한 번도 점장이 카운터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손님이 와도 늘 앉아서 인사를 했다. 나는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카운터에 턱을 괴고 멍하니 CCTV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점장을 보았다. 나는 나를 보지도 않는 점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때 문득 전학생이 우리 모자 살래? 하고 말했다. “모자?” 그러자 전학생이 모자를 파는 리어카를 가리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리어카였다. “그래 사자.” 내가 말했다. 전학생은 검은색 스포츠모자를 썼다. 며칠 머리를 감지 않은 듯한 남자가 깨진 거울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안 어울리는데.” 내가 웃었다. “좋아하는 야구팀 없어?” 전학생이 물었다. 스포츠모자를 고를 때 가장 편한 법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모자를 사는 것이라고 전학생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좋아하는 야구팀도 좋아하는 축구팀도 없었다. 우리는 열여덟 살짜리 남자애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모자를 골라달라고 했다. 남자가 챙이 나달나달하게 닳은 모자를 골라주었다. “어때?” 모자를 푹 눌러쓰자 전학생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내가 챙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똑같은 거 두 개 주세요.” 전학생이 말했다. 남자는 잠깐만, 하고 말하더니 리어카 아래에 넣어둔 박스를 꺼냈다. 남자가 다섯 개의 박스를 모두 뒤지는 동안 우리는 보도블록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을 구경했다. “여기 있다.” 남자가 마침내 똑같은 모자를 찾아냈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동시에 모자를 썼다. 모자를 쓰자 나도 모르게 전학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공장에서는 똑같은 옷이, 똑같은 모자가, 똑같은 신발이, 수없이 찍혀 나올 텐데.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