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었다. 감기 걸렸니? 하고 여자가 묻자 전학생이 에취, 하고 대답했다.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고 가지 않겠냐고 여자가 권했을 때, 전학생은 괜찮아요, 하고 말하려 했지만 역시 에취, 하고 대답했다. 여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손잡이가 녹아버린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여자는 탁자 아래에서 네모난 상자를 꺼냈다. 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가 있었고, 여자가 그중에서 신중하게 차를 골라냈다. 가게 안은 추웠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자 땀에 젖은 속옷이 엉덩이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가 목도리로 주전자 손잡이를 감싼 다음에 물을 따랐다. 전학생은 여자의 생일날 멋진 주전자를 선물하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여자의 생일은 영영 알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실연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전학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가슴속이 환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박하사탕을 먹었을 때보다도 더. “감기에 좋은 차야.”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차를 마시지 않고 뜨거운 잔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전학생은 차를 두 모금 만에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안녕히 계세요, 라고 인사를 해야지. 전학생은 생각했다. 하지만 전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게 문을 열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전학생은 달렸다. 전학생은 지독한 독감에 걸리고 싶었고, 그래서 잠바를 벗었다. 눈발이 다시 날리고 있었다. 사실은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들이 바람에 날리는 것이었지만, 전학생은 그 사실을 몰랐다. 달리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입속으로 눈들이 들어왔다. 환해졌던 가슴속이 더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전학생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숨 고르기를 했다.
전학생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도로 한가운데서 넘어졌다. 저 멀리서 달려오던 차 한 대가 전학생의 앞에 멈추었다. “그때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어. 여기 새끼손가락하고.” 전학생이 내게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면 약간 휜 것처럼 보였다. 전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발가락이 부러진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하고 결심을 했다. 깁스를 한 전학생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에 미끄러져서 넘어진 것도 아니었고, 달리기를 하다 넘어진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눈이 오는 날 다리가 부러졌다면 조금 더 근사한 핑계거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전학생은 생각했다. 전학생이 넘어진 이유는 누군가 먹다 남은 사과를 밟았기 때문이었다. 사과는 혼자 사는 회사원이 출근길에 먹던 것이었다. 회사원은 최근 얼굴이 푹석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비타민 섭취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새해 결심을 했었다. 사과를 한 박스 구입했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늘 사과를 한 알씩 먹었다. 하지만 그날 먹은 사과는 썩어 있었고, 그래서 회사원은 먹다 만 사과를 길에 버렸다. 잠시 뒤, 영어학원에 가던 고등학생이 보도블록에 버려진 사과를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해서 먹다 남은 사과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자린고비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다친 아들을 위해서 일인용 의자를 사주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면 발걸이가 앞으로 나오는 의자였다. 전학생은 그 의자에 앉아서 저 멀리 비닐하우스 위에 눈들이 녹는 것을 보고 또 보았다. 전학생은 깁스를 풀면, 가장 먼저 십자수가게로 달려가리라고 생각했다. 가서 가슴이 환해지는 차를 한잔 더 달라고 말을 하리라. 전학생은 아버지가 사준 의자에 누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자와 소풍을 가는 꿈을 꾸었다. 창밖을 보며 실없이 웃는 아들 때문에 전학생의 어머니는 한약을 한 재 해먹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 전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약을 지어주기 위해서 하루에 두 시간씩 연장근무를 시작했다. 마침내 봄이 되고, 전학생은 깁스를 풀었다. 전학생은 절뚝이며 십자수가게로 걸어갔다.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던 여자가 전학생을 보자 말했다. “어머, 너 왜 이렇게 뚱뚱해졌니?” 그사이 매일 사골을 먹었던 전학생은 몸무게가 십오 킬로그램이나 불었다. 전학생도 여자를 보는 순간 말했다. “머리는 왜 잘랐어요?” 머리를 자르자 여자는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전학생은 가슴이 환해지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머리카락 하나 때문에. 전학생은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때렸다. “그러니까 그때 난 알았어. 내가 시시한 놈이라는 것을.” 전학생이 말했다. 나도 그래, 하고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
전학생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도로 한가운데서 넘어졌다. 저 멀리서 달려오던 차 한 대가 전학생의 앞에 멈추었다. “그때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어. 여기 새끼손가락하고.” 전학생이 내게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면 약간 휜 것처럼 보였다. 전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발가락이 부러진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하고 결심을 했다. 깁스를 한 전학생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에 미끄러져서 넘어진 것도 아니었고, 달리기를 하다 넘어진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눈이 오는 날 다리가 부러졌다면 조금 더 근사한 핑계거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전학생은 생각했다. 전학생이 넘어진 이유는 누군가 먹다 남은 사과를 밟았기 때문이었다. 사과는 혼자 사는 회사원이 출근길에 먹던 것이었다. 회사원은 최근 얼굴이 푹석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비타민 섭취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새해 결심을 했었다. 사과를 한 박스 구입했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늘 사과를 한 알씩 먹었다. 하지만 그날 먹은 사과는 썩어 있었고, 그래서 회사원은 먹다 만 사과를 길에 버렸다. 잠시 뒤, 영어학원에 가던 고등학생이 보도블록에 버려진 사과를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해서 먹다 남은 사과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자린고비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다친 아들을 위해서 일인용 의자를 사주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면 발걸이가 앞으로 나오는 의자였다. 전학생은 그 의자에 앉아서 저 멀리 비닐하우스 위에 눈들이 녹는 것을 보고 또 보았다. 전학생은 깁스를 풀면, 가장 먼저 십자수가게로 달려가리라고 생각했다. 가서 가슴이 환해지는 차를 한잔 더 달라고 말을 하리라. 전학생은 아버지가 사준 의자에 누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자와 소풍을 가는 꿈을 꾸었다. 창밖을 보며 실없이 웃는 아들 때문에 전학생의 어머니는 한약을 한 재 해먹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 전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약을 지어주기 위해서 하루에 두 시간씩 연장근무를 시작했다. 마침내 봄이 되고, 전학생은 깁스를 풀었다. 전학생은 절뚝이며 십자수가게로 걸어갔다.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던 여자가 전학생을 보자 말했다. “어머, 너 왜 이렇게 뚱뚱해졌니?” 그사이 매일 사골을 먹었던 전학생은 몸무게가 십오 킬로그램이나 불었다. 전학생도 여자를 보는 순간 말했다. “머리는 왜 잘랐어요?” 머리를 자르자 여자는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전학생은 가슴이 환해지는 차를 마시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머리카락 하나 때문에. 전학생은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때렸다. “그러니까 그때 난 알았어. 내가 시시한 놈이라는 것을.” 전학생이 말했다. 나도 그래, 하고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