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지 네 시간 십 분 만에 마지막 사인을 받을 가게에 도착했다. 칼국숫집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혼자 앉아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문에는 종이 달려 있어서 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 앞으로 다가가 종이를 내밀었다. “사인해주세요.” 겉절이김치를 반으로 찢던 아주머니가 놀라 젓가락을 놓쳤다. “누구?” 아주머니가 물었다. “달리는 사람이요. 삼촌이 부탁했을 텐데.” 아주머니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친구를 때려 이를 네 개나 부러뜨린 놈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김사장이 말한 애가 너구나.” 아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을 다시 주웠다. 그리고 앞치마에 젓가락을 닦고는 다시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칼국수를 다 먹을 동안 맞은편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그릇을 들어 남은 국물을 다 마셨다. “사람 패는 놈은 굶겨야 해. 그래야 주먹에 힘이 빠지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접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 맨 아래에 아무 사인이나 그려넣었다. 생각해보니 삼촌이 사인까지 알 리는 없었다. 삼촌이 거짓말을 했으니 나도 거짓말을 하는 거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가게를 나서려는데 젓가락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들어왔다. “주인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내가 주인인데.” 청년은 아주머니가 앉았던 테이블로 가더니 빈 그릇을 들었다. 그러자 그 아래에 오천원이 보였다. “에이, 팁 좀 주고 가시지.” 청년은 돈을 주머니에 넣더니 티셔츠와 똑같은 그림이 프린트된 앞치마를 둘렀다. “너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어?” 청년이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놀란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있는 돈을 다 꺼내 였다. 천오백원이 있었다. “천오백원밖에 없는 놈이 이천만원짜리 이를 날려?” 청년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내가 들고 있는 종이를 빼앗아 종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랗게 사인을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굶어 죽어도 이 가게에서 음식은 안 사먹는다, 하고 다짐을 했다. 가게를 나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누군가 앞에서 큰 소리로 달려야지, 하고 외쳤다. 신호등 옆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나물을 파는 아주머니였다. 조금 전에 칼국수를 먹던. 나는 보란 듯 그 앞을, 천천히, 걸어갔다.
작은삼촌은 퇴근을 하자마자 내 운동화부터 살펴보았다. “정말 달렸네.” 나는 작은삼촌에게 사인받은 종이를 주었다. “두 시간 삼십 분 걸렸어.”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놀랍게도 잘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너 그거 거짓말이지, 하고 묻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침대 맡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 ‘거짓말인 거 티난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삼촌이 종이를 보더니 맨 아래에 있는 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니가 몰래 하려다 실패한 거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작은삼촌에게 조카를 폭력청소년으로 만들어서 좋았냐고 되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작은삼촌이 거짓말쟁이가 될까봐 꾹 참았다고 나는 말했다. 내 뒤통수를 때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작은삼촌은 내 두 손을 잡고는 미안해, 하고 대답했다. “불쌍한 놈이 되는 것보다는 한심한 놈이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 작은삼촌이 말했다. 나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삼촌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떻게 견뎠을까? 내겐 이젠 삼촌이 한 명밖에 남지 않았고 고모에게도 오빠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그냥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사인한 종이, 선물로 줄게요.” 나는 작은삼촌에게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학교도 가고 일요일마다 달리기도 하겠다고 나는 말했다.
작은삼촌은 퇴근을 하자마자 내 운동화부터 살펴보았다. “정말 달렸네.” 나는 작은삼촌에게 사인받은 종이를 주었다. “두 시간 삼십 분 걸렸어.”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놀랍게도 잘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너 그거 거짓말이지, 하고 묻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침대 맡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 ‘거짓말인 거 티난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삼촌이 종이를 보더니 맨 아래에 있는 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니가 몰래 하려다 실패한 거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작은삼촌에게 조카를 폭력청소년으로 만들어서 좋았냐고 되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작은삼촌이 거짓말쟁이가 될까봐 꾹 참았다고 나는 말했다. 내 뒤통수를 때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작은삼촌은 내 두 손을 잡고는 미안해, 하고 대답했다. “불쌍한 놈이 되는 것보다는 한심한 놈이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 작은삼촌이 말했다. 나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삼촌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떻게 견뎠을까? 내겐 이젠 삼촌이 한 명밖에 남지 않았고 고모에게도 오빠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그냥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사인한 종이, 선물로 줄게요.” 나는 작은삼촌에게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학교도 가고 일요일마다 달리기도 하겠다고 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