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운동화와 운동복이 보였다. ‘깨끗하게 빨았다.’ 옷 위에 메모가 놓여 있었다. 전날 밤, 작은삼촌은 신발장에서 내 운동화를 꺼내 살펴보았다. 무엇인지 갈색의 끈끈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다 흘린 자국이었는데, 작은삼촌은 혹시 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가락에 침을 묻혀 닦아보았다. 작은삼촌은 신발의 사이즈를 보고는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제 내년이면 나보다 더 큰 신발을 신겠네. 세 형제들 중에서도 작은삼촌은 가장 발 사이즈가 컸다. 작은삼촌은 카펫을 걷어내고 거실 한가운데 희미하게 남아 있는 내 첫 발자국을 그린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양말을 벗은 뒤 맨발을 그 위에 대보았다. 삼촌은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어느 여자가 맨발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줄을 서라는 표시로 그려놓은 발바닥 모양의 그림을 밟고 있었다. 삼촌이 내려다보자 여자가 말을 했다. “제 발이랑 딱 맞아요. 마치 이 발을 대놓고 그린 것처럼.” 지하철이 다가왔다. 그 순간 삼촌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옷을 잡아당겼다. 여자가 삼촌을 보았다. 잠시 후, 삼촌의 놀란 눈빛을 뚫어지게 보던 여자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저 안 죽어요. 안 뛰어든다고요.” 여자가 말했다. 삼촌은 그 사건 이후로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서서 여자를 기다렸다. 그후로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혹시 만나게 되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말하겠다고 삼촌은 다짐했다. 작은삼촌은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 신었던 운동화를 빨았다. 칫솔로 운동화를 빨다가, 삼촌은 그 칫솔이 아버지가 쓰던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형, 발이 이렇게 자랐어.’ 작은삼촌은 중얼거렸다. 삼촌은 밤새 드라이어로 운동화를 말렸다. 그리고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 운동화와 운동복을 두었다. 삼촌은 방을 나가기 전에 내 옆에 누워보았다. 자신이 나보다 조금 더 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쪼그리고 잔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처음 삼 킬로미터 정도는 뛰는 게 즐거웠다. 부러졌던 새끼발가락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거지? 하는 질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생각하기에는 숨이 너무 가쁜 탓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보았다. 하지만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고를 때에도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삼촌이 말해준 첫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편의점이었다. 점장이 웃으면서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삼각김밥을 하나 사먹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두번째 가게에 도착했다. 두번째 가게는 도장가게였다. 가게 주인이 거의 걸어오더구먼, 하고 말했다. “도장을 찍어줄 수 없어. 다시 뛰어와.” 그렇게 말하고 가게 주인은 다시 도장 파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트레이닝복의 윗도리를 벗어 땀에 젖은 러닝셔츠를 보여주었다. “이것 봐요. 뛰었단 말이에요.” 그래도 가게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도장만 팠다. 한참이 지나서야 종이 줘봐, 하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편의점 점장의 사인 아래에 가게 주인이 새로 판 도장을 찍었다. “잘 찍혔네.” 세번째 가게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었다. 나는 약국 건물에 기대어 서서 땅 밑에 하수관을 까는 것을 구경했다. 저것들이 온 집마다 연결되어 있다니. 나는 땅 밑의 세상만 그린 지도가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사인을 한번 더 받으니 지도의 반이 지났다. 떡볶이 아줌마는 내게 어묵국물을 공짜로 주었다. 아줌마는 어쩌다 그랬니? 어쩌다가, 하고 중얼거리면서 주걱으로 떡볶이를 저었다. “뭐가요?” 나는 어묵국물을 한 국자 더 마시면서 물었다. “친구를 때려 이가 네 개나 나갔다며. 니 삼촌이 합의금으로 이천만원이나 들었다고 하더라.” 떡볶이 아줌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비록 길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지만 쌍둥이인 두 아들은 전교 1, 2등을 놓고 서로 싸울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너도 참. 얼른 뛰어라.”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떡볶이 아줌마가 내가 뛰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네번째 사인을 받을 곳은 약국이었다. 약국 주인은 내게 박카스 한 병을 주었다. 자기도 학창 시절에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며, 나이 들어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박카스를 따지 않고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마지막 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걸었다. 무릎이 시큰거려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여행을 가면 그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구경하곤 했다고 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달리는 모양은 똑같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는 모습, 웃는 모습, 그리고 달리는 모습은 같은 법이라고. 나는 걷다 말고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얼굴에 점이 몇개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어머니 쌍꺼풀이 왼쪽이 더 짙었는지 오른쪽이 더 짙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세 살인가 네 살 무렵에, 저 풀은 강아지풀이라고 한단다, 하고 말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차가운 내 손을 잡고 입김을 불어주던 어머니의 붉게 상기된 두 볼도 기억났다. 아버지의 첫사랑은 어머니였을까? 영영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처음 삼 킬로미터 정도는 뛰는 게 즐거웠다. 부러졌던 새끼발가락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거지? 하는 질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생각하기에는 숨이 너무 가쁜 탓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보았다. 하지만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고를 때에도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삼촌이 말해준 첫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편의점이었다. 점장이 웃으면서 종이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삼각김밥을 하나 사먹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두번째 가게에 도착했다. 두번째 가게는 도장가게였다. 가게 주인이 거의 걸어오더구먼, 하고 말했다. “도장을 찍어줄 수 없어. 다시 뛰어와.” 그렇게 말하고 가게 주인은 다시 도장 파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트레이닝복의 윗도리를 벗어 땀에 젖은 러닝셔츠를 보여주었다. “이것 봐요. 뛰었단 말이에요.” 그래도 가게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도장만 팠다. 한참이 지나서야 종이 줘봐, 하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편의점 점장의 사인 아래에 가게 주인이 새로 판 도장을 찍었다. “잘 찍혔네.” 세번째 가게로 가는 길은 공사중이었다. 나는 약국 건물에 기대어 서서 땅 밑에 하수관을 까는 것을 구경했다. 저것들이 온 집마다 연결되어 있다니. 나는 땅 밑의 세상만 그린 지도가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사인을 한번 더 받으니 지도의 반이 지났다. 떡볶이 아줌마는 내게 어묵국물을 공짜로 주었다. 아줌마는 어쩌다 그랬니? 어쩌다가, 하고 중얼거리면서 주걱으로 떡볶이를 저었다. “뭐가요?” 나는 어묵국물을 한 국자 더 마시면서 물었다. “친구를 때려 이가 네 개나 나갔다며. 니 삼촌이 합의금으로 이천만원이나 들었다고 하더라.” 떡볶이 아줌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비록 길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지만 쌍둥이인 두 아들은 전교 1, 2등을 놓고 서로 싸울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너도 참. 얼른 뛰어라.”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떡볶이 아줌마가 내가 뛰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네번째 사인을 받을 곳은 약국이었다. 약국 주인은 내게 박카스 한 병을 주었다. 자기도 학창 시절에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며, 나이 들어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박카스를 따지 않고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마지막 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걸었다. 무릎이 시큰거려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여행을 가면 그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구경하곤 했다고 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달리는 모양은 똑같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는 모습, 웃는 모습, 그리고 달리는 모습은 같은 법이라고. 나는 걷다 말고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얼굴에 점이 몇개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어머니 쌍꺼풀이 왼쪽이 더 짙었는지 오른쪽이 더 짙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세 살인가 네 살 무렵에, 저 풀은 강아지풀이라고 한단다, 하고 말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차가운 내 손을 잡고 입김을 불어주던 어머니의 붉게 상기된 두 볼도 기억났다. 아버지의 첫사랑은 어머니였을까? 영영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