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너무 바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족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동호회 사람이 글을 남기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 게다가 넋놓고 있다가 3번 테이블 손님을 4번 테이블 손님으로 착각해서 계산을 하는 외할머니 때문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가게 벽에는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 나갔던 장면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외할머니가 가운데 있고 그 양옆으로 고모와 어머니가 서 있는 사진이었다. 외할머니는 삶은 족발을 썰고 있었다. 액자는 외할머니가 앉은 카운터에서 정면으로 보였고 그래서 외할머니는 사진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예전 같으면 가게를 둘러보다가 손님이 젓가락만 떨어뜨려도 재빨리 가져다주었고, 그래서 손님들에게 친절한 가게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여기 물 좀 주세요, 하고 손님이 소리쳐도 잘 듣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고모에게 액자를 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모는 어머니가 나오지 않는 화면을 찾아 다시 액자로 만들 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모는 액자를 떼어서 신문지로 쌌다. 그리고 집으로 가져와 창고에, 학창 시절 아버지가 읽던 책 옆에, 두었다. 액자가 걸렸던 자리에 네모나게 흔적이 남았다. 외할머니는 조금 덜 빛바랜 그 자리에 투명한 액자가 걸려 있다는 상상을 했다. 어머니가 어떤 웃음을 짓고 있었는지, 어머니의 오른손이 어떻게 도마를 만지고 있었는지, 앞치마의 무늬는 어땠는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였다. 사회자가 외할머니에게 고모와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이 두 분은 누구세요? 하고 묻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 외할머니는 내 딸들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자가 묻는다면 외할머니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리라. 외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주방과 홀을 왔다갔다하는 고모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고모는 집에 오면 잠만 잤다. 어느 날 작은삼촌과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 마주쳤는데 작은삼촌이 오랜만이다, 하고 인사를 했다. 작은삼촌은 수염을 길렀고 얼굴이 까맣게 탔다. 그제야 고모는 작은삼촌과 얼굴이 마주친 게 세 달 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집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고모는 미안한 마음에 작은삼촌의 뺨을 두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농담을 했다. “그사이 왜 이렇게 멋있어졌어. 모델 같네.” 작은삼촌은 장례식이 끝난 후에 앨범 사이에 끼워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오래 전 아버지가 집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쓴 서약서였다. 작은삼촌은 그것을 아직까지 간직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작은삼촌은 혹시나 형이 약속을 취소한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동안 생활비를 번 것은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작은삼촌에게 그 동안 수고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부턴 내가 책임지마.” 작은삼촌은 그 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작은삼촌은 식탁에 늘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기껏 이딴 것을 찍으려고 그 먼 곳까지 간 거야, 하고 비웃었다. 소파에 누워서 케이블 텔레비전만 보아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은삼촌은 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했다. 달리기라고는 팔 년 전인가 구 년 전인가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미친 개에 쫓겨 뛰어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삼촌이지만 그래도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완주를 마친 삼촌은 백화점에 가서 가장 비싼 운동복을 샀다. 러닝화도 샀다. 그리고 주말마다 삼촌은 운동장을 달렸다. 삼촌은 달리면서 막내로 태어나 장남이 되어버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조카와 시집도 안 간 누나를 영영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뜻이 없었지만, 작은삼촌은 그 대가로 집을 물려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작은삼촌은 나를 볼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선생님 말 잘 듣고.” “머리는 감았니?” “단추를 위까지 채워라.” 작은삼촌은 할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그만, 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던 사람이었다. 나도 작은삼촌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만, 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속으로 결혼도 안 한 노총각이 갑자기 아버지 행세를 하려니 저런 거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에 자주 결석을 했다.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이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 저녁때까지 숨어 있었다. 신발만 감추면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가 이층으로 올라오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고모가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고모방과 작은삼촌의 방을 돌아다니며 서랍을 뒤져 옛날 일기나 수첩 따위를 찾아 읽었다. 작은삼촌은 멋진 스포츠카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작은삼촌은 행글라이더를 배우고 싶어했고, 피아노를 전공한 여자를 사귀고 싶어했다. 식구들 몰래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돈을 전부 날리기도 했다. 나는 커튼을 열지 않았다. 요를 펴지 않고 늘 맨 바닥에서 잠을 잤다. 다시 태어나 내가 작은삼촌의 형이 되는 꿈을, 고모의 언니가 되는 꿈을 꾸었다.
고모는 집에 오면 잠만 잤다. 어느 날 작은삼촌과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 마주쳤는데 작은삼촌이 오랜만이다, 하고 인사를 했다. 작은삼촌은 수염을 길렀고 얼굴이 까맣게 탔다. 그제야 고모는 작은삼촌과 얼굴이 마주친 게 세 달 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집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고모는 미안한 마음에 작은삼촌의 뺨을 두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농담을 했다. “그사이 왜 이렇게 멋있어졌어. 모델 같네.” 작은삼촌은 장례식이 끝난 후에 앨범 사이에 끼워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오래 전 아버지가 집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쓴 서약서였다. 작은삼촌은 그것을 아직까지 간직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작은삼촌은 혹시나 형이 약속을 취소한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동안 생활비를 번 것은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작은삼촌에게 그 동안 수고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부턴 내가 책임지마.” 작은삼촌은 그 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작은삼촌은 식탁에 늘어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기껏 이딴 것을 찍으려고 그 먼 곳까지 간 거야, 하고 비웃었다. 소파에 누워서 케이블 텔레비전만 보아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은삼촌은 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했다. 달리기라고는 팔 년 전인가 구 년 전인가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미친 개에 쫓겨 뛰어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삼촌이지만 그래도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완주를 마친 삼촌은 백화점에 가서 가장 비싼 운동복을 샀다. 러닝화도 샀다. 그리고 주말마다 삼촌은 운동장을 달렸다. 삼촌은 달리면서 막내로 태어나 장남이 되어버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조카와 시집도 안 간 누나를 영영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뜻이 없었지만, 작은삼촌은 그 대가로 집을 물려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작은삼촌은 나를 볼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선생님 말 잘 듣고.” “머리는 감았니?” “단추를 위까지 채워라.” 작은삼촌은 할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그만, 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던 사람이었다. 나도 작은삼촌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만, 하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속으로 결혼도 안 한 노총각이 갑자기 아버지 행세를 하려니 저런 거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에 자주 결석을 했다.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본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이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 저녁때까지 숨어 있었다. 신발만 감추면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가 이층으로 올라오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고모가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고모방과 작은삼촌의 방을 돌아다니며 서랍을 뒤져 옛날 일기나 수첩 따위를 찾아 읽었다. 작은삼촌은 멋진 스포츠카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작은삼촌은 행글라이더를 배우고 싶어했고, 피아노를 전공한 여자를 사귀고 싶어했다. 식구들 몰래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돈을 전부 날리기도 했다. 나는 커튼을 열지 않았다. 요를 펴지 않고 늘 맨 바닥에서 잠을 잤다. 다시 태어나 내가 작은삼촌의 형이 되는 꿈을, 고모의 언니가 되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