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버렸다. 냉장고에는 양념에 재워둔 갈비와 파김치와 사골국물이 들어 있었다. 음식은 모두 상했고, 그래서 반찬그릇을 열 때마다 온 집 안으로 악취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숨을 참지 않았다. 양념갈비와 파김치는 어머니의 생일에 맞춰 장만해놓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양념갈비를 파김치에 싸 먹는 것을 좋아했다. 사고가 난 날, 그날 아침, 외할머니는 가게에 출근하기 전에 갈비를 재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틀 후에 찾아올 어머니의 생일, 외할머니는 모두를 초대해서 생일잔치를 열어줄 생각이었다. 파김치도 일주일 전에 해두었고 잡채 거리도 사서 다듬어두었다. 외할머니는 물컹거리는 검은 비닐봉지들을 버렸다. 그 안에는 아마도 도라지, 꽈리고추, 시금치, 당근 등등이 들어 있을 것이다. 도라지무침과 꽈리고추볶음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할 생각이었다. 발인을 하는 날이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나는 그날을 위해 세 달이나 용돈을 모았고, 고모는 이미 스카프를 사두었고, 할머니는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단골 정육점에 전화를 걸어 양지머리를 좋은 걸로 남겨두라고 당부를 해두었다.
외할머니는 사십육 년 전에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도를 닦았다는 남자는 음식을 먹고는 돈을 내지 못했다. 마침, 가게 주인이 자리에 없었고 그래서 외할머니는 얼른 가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밥값이라며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때 가게 쪽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가 깨어나 울었다. 외할머니는 얼른 방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안았다. 그러자 이내 어머니가 다시 잠이 들었다. “딸인가봐요. 그놈 잘생겼네.” 남자가 말했다.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어머니의 사주를 불러주었다. 남자가 보따리에서 한지를 한 장 꺼내더니 거기에 한문으로 글자들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참 글을 쓰던 남자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내려쳤다. 외할머니가 왜요? 하고 물었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던 어머니가 그 소리에 깨어나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사주가……”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급한 마음에 외할머니가 주머니에 있던 천원짜리 한 장을 남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남자는 어머니가 큰 사고를 여러 번 겪게 될 사주라고 했다. 물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해요, 하고 남자가 당부를 했다. 남자가 글자를 적은 한지를 접어서 다시 보따리에 넣었다. “그럼, 이만.” 남자는 자고 있는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거 잘생겼네. 이틀만 더 참았다 태어나지. 그럼 천하를 호령했을 텐데.” 외할머니는 남자가 혼자 중얼거린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동그라미를 치고 그 아래에 딸이라고 써놓은 달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외할머니는 달력을 떼어냈다. 도배를 한 지 오래된 쪽방 벽은 달력을 떼어내자 그 자리만 하얗게 보였다. 외할머니는 달력을 태웠다. 그리고 맥주회사에서 주고 간,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이 바위에 앉아 있는 사진이 있는 달력을 방에 걸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태어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날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그 아래 ‘딸, 생일’이라고 적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당신의 진짜 생일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진짜 생일은 돌잔치가 마지막이었다. 돌잔치라고 해봤자 가게 주인과 단둘이 미역국을 끓여 먹은 게 전부였지만.
냉장고가 텅 비었다. 외할머니는 아직 먹을 만한 김치까지도 모조리 버렸다. 냉장고에서는 문이 열렸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외할머니는 그 소리가 신경쓰였고 그래서 냉장고 플러그를 뽑았다. 오래된 냉장고였다. 어머니는 집에 들를 때마다 냉장고 좀 바꾸자, 하고 잔소리를 했다. 한번은 카탈로그를 가지고 와서 냉장고를 고르라고 조르기도 했다. “돌아가다 멈추면 그때 바꾸마.” 외할머니는 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냉장고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외할머니는 기다려주고 싶었다. 냉장고뿐만 아니었다. 세탁기도, 텔레비전도, 가스레인지도, 모두 이십 년은 족히 넘은 것들이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생일이, 그러니까 가짜로 만들어준 그날이, 사실은 진짜라고 믿었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이틀 뒤였으니까. 만삭을 한 외할머니는 가게 일을 쉴 수가 없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발밑으로 쥐가 지나갔다. 외할머니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양수가 터졌다. 만약 쥐에 놀라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예정일에 태어났을 것이고 그랬다면 제대로 된 자신만의 사주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쓰레기봉지를 묶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쥐새끼만 아니었어도.”
외할머니는 사십육 년 전에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도를 닦았다는 남자는 음식을 먹고는 돈을 내지 못했다. 마침, 가게 주인이 자리에 없었고 그래서 외할머니는 얼른 가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밥값이라며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때 가게 쪽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가 깨어나 울었다. 외할머니는 얼른 방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안았다. 그러자 이내 어머니가 다시 잠이 들었다. “딸인가봐요. 그놈 잘생겼네.” 남자가 말했다. 외할머니는 남자에게 어머니의 사주를 불러주었다. 남자가 보따리에서 한지를 한 장 꺼내더니 거기에 한문으로 글자들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참 글을 쓰던 남자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내려쳤다. 외할머니가 왜요? 하고 물었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던 어머니가 그 소리에 깨어나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사주가……”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급한 마음에 외할머니가 주머니에 있던 천원짜리 한 장을 남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남자는 어머니가 큰 사고를 여러 번 겪게 될 사주라고 했다. 물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해요, 하고 남자가 당부를 했다. 남자가 글자를 적은 한지를 접어서 다시 보따리에 넣었다. “그럼, 이만.” 남자는 자고 있는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거 잘생겼네. 이틀만 더 참았다 태어나지. 그럼 천하를 호령했을 텐데.” 외할머니는 남자가 혼자 중얼거린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동그라미를 치고 그 아래에 딸이라고 써놓은 달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외할머니는 달력을 떼어냈다. 도배를 한 지 오래된 쪽방 벽은 달력을 떼어내자 그 자리만 하얗게 보였다. 외할머니는 달력을 태웠다. 그리고 맥주회사에서 주고 간,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이 바위에 앉아 있는 사진이 있는 달력을 방에 걸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태어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날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그 아래 ‘딸, 생일’이라고 적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당신의 진짜 생일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진짜 생일은 돌잔치가 마지막이었다. 돌잔치라고 해봤자 가게 주인과 단둘이 미역국을 끓여 먹은 게 전부였지만.
냉장고가 텅 비었다. 외할머니는 아직 먹을 만한 김치까지도 모조리 버렸다. 냉장고에서는 문이 열렸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외할머니는 그 소리가 신경쓰였고 그래서 냉장고 플러그를 뽑았다. 오래된 냉장고였다. 어머니는 집에 들를 때마다 냉장고 좀 바꾸자, 하고 잔소리를 했다. 한번은 카탈로그를 가지고 와서 냉장고를 고르라고 조르기도 했다. “돌아가다 멈추면 그때 바꾸마.” 외할머니는 말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냉장고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외할머니는 기다려주고 싶었다. 냉장고뿐만 아니었다. 세탁기도, 텔레비전도, 가스레인지도, 모두 이십 년은 족히 넘은 것들이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생일이, 그러니까 가짜로 만들어준 그날이, 사실은 진짜라고 믿었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이틀 뒤였으니까. 만삭을 한 외할머니는 가게 일을 쉴 수가 없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발밑으로 쥐가 지나갔다. 외할머니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양수가 터졌다. 만약 쥐에 놀라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예정일에 태어났을 것이고 그랬다면 제대로 된 자신만의 사주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쓰레기봉지를 묶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쥐새끼만 아니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