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눈을 감고는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숫자를 세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너진 현관문 아래에 깔렸다. 문은 돌무더기 위로 쓰러졌고 그래서 그 아래 한 사람이 누울 정도의 작은 틈이 생겼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현관문에 달린 어안렌즈였다. 나를 꺼낸 구급대원은 나처럼 운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포클레인이 돌무더기를 치우는 동안 구급대원은 내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곧 자신의 아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삼 년 후면 분양을 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것이라고, 작년에는 트럭에 깔린 일곱 살짜리 아이를 구했는데 뼈가 부러진 곳이 하나도 없었다고, 구급대원은 쉴새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모님은요? 하고 물었다. 구급대원은 괜찮아, 괜찮아, 하고 두 번 연거푸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부모님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분이 괜찮다면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라곤 구급대원들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오른손을 보았다. 손은 놀랍게도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집이 무너지기 전에 잡은 것인지, 문이 내 앞으로 쓰러질 때 잡은 것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혼자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은 분명했다. 비겁한 자식! 나는 중얼거렸다. 그 말은 좁은 공간 안에서 울려퍼지고 또 울려퍼졌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웃다가,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내가 이래도 되나,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살았다면, 십 년 후 어머니는 체인점이 스무 개가 넘는 족발집의 사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보고 음식 솜씨가 좋은 여자를 사귀어야 한다고 매일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벚꽃 피는 봄이면 가게 문에 ‘우리는 소풍 갑니다’라고 써붙이고 경주로 벚꽃여행을 떠날 것이다. 스무 개가 넘는 체인점의 모든 직원들도, 그리고 모든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경주로 모일 것이다.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생각보다 훨씬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외할머니가 난방이 되지 않은 가게에서 쪽잠을 자면서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너는 나보다 더 멋진 삶을 살게 될 거란다, 라고 날마다 기도를 해주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뱃속에 있던 몇 달 동안의 기억이 토막토막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양잿물을 마시려고 할 때, 외할머니의 배를 발로 힘껏 걷어찼던 것도 생각났다.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이 동상에 걸려 진물이 흘러나오는 외할머니의 손가락이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도 가장 먼저 본 것은 손가락이었다. 엄지가 뭉뚝한 손가락을. 아버지는 자신의 손가락과 똑같은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살아났다면 그 아들이 점점 자신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들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오십대 사진 옆에 내 오십대 사진을 걸어놓으면 누구나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죽을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일 년에 한 번씩 국토횡단을 하게 될 것이다. 뱃살이 저절로 줄어들게 될 것이고,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어느 여자를 보고 잠깐 가슴이 설레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는 그 여자의 집 앞을 서성이다가 가로등 아래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등이 구부정한 그림자는 도통 자신의 것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배운다는 것도 영영 모르리라. 내가 그 자전거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가졌던 자전거의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배울 것이다. 아무도 뒤에서 잡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빠 놓지 마, 놓으면 안 돼, 하고 말할 것이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할 것이다. “거의 다 되었다.” 구급대원이 말했다. 나는 여전히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이제 눈을 감아라.” 구급대원이 말했다. 포클레인이 현관문을 들어올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제야 나는 손잡이를 놓았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 새끼발가락이라니! 나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서 작은삼촌에게 나 혼자 문을 열고 나오려 했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눈물이 흘러도 깁스를 한 두 팔 때문에 그 눈물을 닦을 수 없도록. 나는 죽을 때까지 그 발가락이 낫지 않기를 빌었다. 뼈가 아물 때면 나는 부러진 발가락으로 담벼락을 걷어차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