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 있는 돌 하나가 거울 가운데로 떨어진 뒤, 아주 잠깐 동안, 어딘가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나중에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천둥소리를 닮았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했다. 그랬다면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텐데. 하지만 그것은 분명 가래 소리였다. 할아버지의 친구 중에서, 하나뿐인 외동딸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에 알코올중독자가 된 박씨 할아버지에게서 늘 그런 가래 끓는 소리가 났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이 무너졌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어머니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돌은 그 위로 떨어졌다. 부모님은 그 순간 미처 떠올리지 못했겠지만, 십여 년 전 곤충 박물관에서 지진을 만났을 때와 너무나 똑같은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찾았다. 그때 나는 장수하늘소나 뭐 그런 곤충을 구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진이 난 것도 모른 채.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달랐다.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 둘은 서로를 향해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겁쟁이였던 아버지는 여행지에서는 함부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 끓인 음식이 아닌 것도 웬만해선 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시금치를 싫어했지만 꾹 참고 먹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그 달을 보면서 온 가족의 건강을 빌어보기도 했다. 아침마다 팔굽혀펴기를 했고 저녁이면 간단한 체조를 했다. 카레이서가 꿈인 적도 있었지만,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꿈을 접은 적도 있었다. 웃통을 벗고 세수를 하는 나를 보면서 저놈은 나중에 어떤 여자를 만날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 혼자 웃은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아직 남아 있는 많은 날들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허공을 걷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돌무더기에 깔린 누군가의 몸이 보였다. 아버지는 그 몸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푸른색 셔츠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 셔츠임을 알게 되자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살면서 어처구니가 없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모든 기억들이 흑백으로 남아 있던 어린 시절에 밥을 많이 먹고 죽은 거지를 보았다. 동네에서 환갑잔치가 열리던 날이었다. 거지는 밥을 일곱 그릇이나 먹었다. 그리고 식혜를 한 대접 마시고는 아 잘 먹었다,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지는 발을 한 걸음밖에 내디디지 못했다. 왼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거지는 배를 움켜쥐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것이 어머니가 본 최초의 죽음이었다. 중학생 때는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버스에 치인 아이였는데 머리에서 끝없이 피가 나왔다. 중학교 이학년 때는 유리창 청소를 하다가 떨어진 친구가 있었다. 이층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화단을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벽돌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그후로 유리창 청소는 금지되었고, 얼룩이 진 창 너머로 지는 해를 보게 되었다. 코끼리 변비를 치료하기 위해 관장을 하던 수의사가 코끼리가 눈 똥더미에 파묻혀 죽었다는 뉴스를 볼 때도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어머니는 해외토픽에 나오는 황당한 죽음을 보면서 웃긴 죽음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늘 생각했다. 슬픈 죽음이란 거의 비슷비슷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웃긴 죽음이란 것은 다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돌고 돌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수의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겨우 이겨내고 살아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어머니에게 글쎄요, 어느 동물원에서는 코끼리 똥에 묻혀 죽은 사람이 있다네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그러면 수의사의 어머니는 그것이 당신의 아들 이야기라는 것도 모른 채 우리 아들도 그랬다오, 하고 대꾸를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피가 흐르는 당신의 두 다리를 어루만져주었다. 하지만 만져지지 않았다. 당연히 피가 흐르는 다리를 만지던 두 손에도 피가 묻지 않았다. 손에 피가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몸이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머니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가 억울한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억울해, 하고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