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폼이란 방망이로 무언가를 때리려고 할 때의 모든 행동을 말한다. 야구공이든 밥이든 똥이든 낮잠이든 검색이든 하여간 때리려는 건 다 타격 폼이다.
세상에 똑같은 타격 폼은 하나도 없어서 골 때린다. 개개인의 자세가 너무 다양해서 통계를 내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타격 폼은 매혹적인 이성이 자신을 향해 속씨식물의 생식기관 같은 미소를 품은 채 다가오길 상상하는 조촐한 꿈을 표현하는 방식이거나 오늘 퇴근 후의 회식자리 안주는 삼겹살 대신에 ‘에피쿠로스식 타조 앞다리 수블라키’ 같은 것이면 좋겠어, 라는 사소한 갈망의 진동수 같은 것이다. 즉, 조리 있게 무언가를 희망하는 것이 바로 타격 폼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 필요 없고, 내가 생각하는 타격 폼이란 남다른 꿈을 빠는 자세이어야만 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웃기려는 몸부림이거나 세상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바로 그 자세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내가 정한 타격 폼의 반대말은 개폼이다.
실력이라곤 바닥에 널브러진 밴드가 어디서 줄줄이 본 듯한 데커레이션을 하고 서서 들어주기 민망한 음악을 오로지 ‘멋’만 부리면서 연주하는 걸 듣는 운 나쁜 순간에 말하는, ‘개폼잡고 있네.’ 라는 표현. 그것은 인간이 구현하면 안 되는 개 같은 폼을 말한다. 요건 분명 타격 폼과는 죽도록 다른 부조리인 것이다.
개폼 잡는 것에도 여러 가지 다양성이 있다.
정말 멋진 품종의 개가 멋진 자태를 좔좔 흘리며 주인과 산책을 하는데 주인이 치질전문 항문외과 홈페이지 Q&A게시판처럼 생겼고 산책로는 비에 젖은 MTB 힐 클라이밍 코스 같거나, 해서 개만 폼 나는 경우도 개폼이고 7옥타브까지 올릴 수 있는 락 보컬이 머리를 짧게 깎고 ‘일상의 환희’ 따위를 노래하거나 전위적인 시를 쓰는 시인이 오카리나를 불며 난초를 키운다거나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이 매일 술 마시고 바지를 벗어도 개폼이다.
과학 잡지 <Neoton>의 2015년 8월호 특집 기사는 겨울 하늘,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과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는 지구상의 모든 개들이나 인간들이 저마다 짓는 개폼을 관장하고 있음을 증명한 논문을 특집 꼭지로 게재할 예정이다. 아닐 거라면 미안하다.
개폼은 또한 본질에 지배된다. 아무리 멋을 부려도 개폼인 건 개폼이고 아무리 개폼을 지으려고 해도 멋진 폼은 멋진 폼이다.
여하간 개폼은 내가 얘기하려는 이원식 씨의 타격 폼과 딱 반대다. 민망하지만 부끄럽지 않고 작지만 질량이 큰 그 무엇인가인 것이다. 아 이런 얘기 너무 어렵다.
타격 폼의 의미를 관장하는 별은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마도 핼리혜성이 아닐까 하는 설이 유력하다. 아니래도 모르겠다. 핼리혜성은 76.3년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평균수명 이상만 운 좋게 살아내면 인생과 한 번은 관련이 있다. 이 사실을 근거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76.3 년에 한 번쯤은 제대로 된 타격 폼을 가진 사람을 한 명 만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타격 폼이란 ‘니미 뽕’ 하지 않은 폼을 말하는 것이다. 자, 그게 이원식 씨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당신들은 이원식 씨를 잘 모른다.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정력을 걸고 확신한다. 혹시 핼리혜성을 타 본 적이 있는가? 핼리혜성을 탄다는 건 엿 같은 얘기지만 당신들 중에는 그래본 사람이 없지 않은가?
만약 친구 중에 이원식 씨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가 이야기하려는 이원식 씨는 ‘핼리혜성에 탔고,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가진 이원식’ 씨다. 만약 이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다면
미안하다.
그럼에도 그 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인종과 종교와 시차와 배기량을 막론하고 모두 쉽게 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이란 ‘꿔어어 꽃병’ 같은 것이다. 이해력에 윤활유를 끼얹기 위해 예를 들면 ‘꿔어어 꽃병’은 ‘비틀스’, ‘차이니즈 레스토랑’, ‘에피쿠로스식 타조 앞다리 수블라키’ 같은 것이다. 만약 비틀스나 중국음식이나 에피쿠로스학파를 무작정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달나라에나 가서 딸딸이나 쳐라. 그리고 에피쿠로스식 타조 앞다리 수블라키를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꿔어어 꽃병 어서 가서 빨리 먹어보라. 어디에서 파는지는 이원식 씨 이야기를 모두 다 한 다음에 알려주는 편이 스릴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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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박상
나이 같은 건 모르겠고, 기분엔 이천년 대에 태어난 것 같음. 태어난 곳 부산, 다시 태어난 곳 서울, 런던, 전주. 기분엔 안드로메다에서 태어난 것 같음. 문창과에 들어가서 아주 간신히 졸업했음. 음식배달, 트럭운전, 택시운전을 하다가 면허정지 취미에 빠져 그만둠. 정신 차리고 삼겹살집 차렸다가 냅다 말아먹었음. 절망으로 찌그러져 있었지만 2006년 신춘문예에서 운이 좋았음. 인생 모르겠음.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문학 동지들과 아직도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애정이 있음. 쉽게 부끄러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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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졸업했고 급기야 대학에도 가는 등 대다수 성장기 한국인이 겪는 ‘피박’을 썼다. 그가 남들 다 가는 대학까지 간 건 거의 아무 생각이 없는 평범한 십대였을 때 애석하게도 ‘야동’보다 교과서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그의 부모가 버럭 실종되어버려서 인생의 향방에 대한 애정 있는 조언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그의 부모는 그가 처음 라면을 스스로 끓여먹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무렵, 비밀리에 우주 비행에 나섰다가 대기권 진입 각도를 잘못 맞춰 튕겨나가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핼리 혜성에 가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설도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인지 아는가? 단언컨대 알면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말 너무 자주 해서 미안하다. 이 이상을 얘기해 줄 수가 없다.
비밀리에 우주에 가는 인간들은 몹시 많은데 그들 중에 세상에 드러나는 병신은 거의 한 명도 없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우주인들 빼고 드러난 우주인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라면을 팔러 온 외계인들이다.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중 3때부터 혼자 라면 같은 걸 끓여먹으며 살고 싶지 않다면 그들을 만나서는 안 되고 궁금해 해서도 안 된다. 이미 만났다면 라면이나 열심히 팔아주면 된다. 여하간 깊이 알려고 하면 세상은 깊이 위험한 법이다.
그는 결국 대학에 가서 진로를 생각해 보기로 하고, 선생이 적성과 취향을 개 무시한 채 성적에 맞춰 찍어 준 싸구려 개폼 잡는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입학하고 석 달이 지나도록 그 자신의 진로라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주를 결정하게 되었다. 소주만큼 그의 부조리를 잘 이해해주는 부조리한 액체는 없었다. 그는 소주를 엄청나게 마셔대는 신입생으로 인식되었다. 교양과목들이야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전공과목조차 필사적으로 재미가 없었고 전공을 바꿔 보려고 시도 했지만 그 대학에 개설된 과라곤 어이없게도 ‘대기업 취업반’과 이원식 씨가 속한 ‘공무원 고시 준비반’ 밖에는 없었다.
그 대학에선 이원식 씨를 좋은 곳에 취직시키기 위해 갖은 지랄을 다하고 있었다. 취업알선소, 직업훈련원들을 우습게 만드는 수준의 발광이었다. 비싼 등록금을 처 받고 그런 ‘먹고사는’ 일이나 가르치다니.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고사는 것은 퍽 중요한 것이지만 라면으로 충분히 연명이 가능한데 왜 대학처럼 특별한 곳까지 먹고사는 논리에 지배되어버렸는지 안타까워했지만 그 모든 것이 유머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웃기려고 그러는 거라면 다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와 학생들이 니미 뽕만 하고 있다니 웃다가 복근 생기겠네.’ 이원식 씨가 소주에 취해 대학 담벼락에 처음으로 낙서를 하는 순간 그는 우주 속에서 미아처럼 떠돌던 자신의 자아를 덜컥 각성했다. 그것은 사라진 그의 부모가 우주에서 전송해 준 것인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만난 그의 자아는 매끄러운 야구방망이처럼 생겼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음 날 그 낙서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럼 굶어 죽어라. 멍청아.’
이원식 씨의 자아는 그 댓글을 읽는 순간 문화인류학에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했다. 어째서 인간이 비둘기처럼 구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건 학생이나 교수나 도대체 아무도 하지 않았다. 관련학과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 연구했다. 하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교수들은 그런 이원식 씨를 매일 피해 다녔다. 이원식 씨는 그런 교수들을 매일 잡으러 다녔다. 하지만 교수들은 타조처럼 빨라서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원식 씨가 던지는 질문들은 그의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적인 것들이었고 교수들은 이원식 씨가 던져대는 질문들 때문에 대학 교수직을 하면서 먹고산다는 것도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자연적으로 몸이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원식 씨는 교수들보다 더 빨리 뛰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심각한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은 늘 한 수 위고 역시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에겐 세상 모든 것이 똥 폼 같았다. 세상에 먹고사는 일을 위해서만 부릅뜬 눈은 절대 꿈꾸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원식 씨에겐 여자가 없었다.
이원식 씨가 주로 하고 다니는 닭벼슬 머리나, 진지하면서도 귀여워 보이는 마스크는 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대생들은 모두 ‘니미 뽕’ 하는 남자들만을 좋아했다. 참 빌어먹을 학교였다. 이원식 씨가 다른 남자애들처럼 ‘니미 뽕’을 할 생각을 품지 않는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그는 외로움에 떨며 생각했다. 하나같이 똑같은 폼으로만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여자라는 복잡 무진장한 성별이 있는지를 그의 동창녀들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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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니미 뽕’을 좀체 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어떠한 여자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여자들도 그가 말을 걸면 어이없어 할 만큼 ‘니미 뽕’ 하지 않는 그를 싫어했다. 좀 개털같이 외로웠지만 ‘니미 뽕’ 따위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게 지겹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여자들이라면 그 역시 말을 걸기 보단 다리를 걸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거듭했다. 공부라는 건 늘 그렇듯이 하다보면 염증이 생긴다. 그 염증은 발작적인 것이라 어느 바람이 차가운 여름날 도저히 왜 바람이 차가운 건지 이해하지 못해 먹겠다며 산책을 나왔다. 그는 그때 교정 한구석에서 어떤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 음악은 교내 락밴드 동아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락! 그는 그 음악을 듣자마자 자신의 자아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했고 당장 문을 박차고 동아리방에 들어섰다.
“나는 03학번 이원식이다. 이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는 상태다.”
그러나 이원식 씨는 그 동아리에 가입할 수 없었다. 그가 가입하지 못한 이유는 무려 세 가지나 되었다.
첫 번째는 그가 선배들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사용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 학교 동아리 밴드는 아무것도 분출하고 싶지 않다는 종류의 ‘니미 뿅큰롤’을 목표했기 때문이었고, 세 번째는 그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니미 뿅큰롤’은 누구나 알다시피 <잠시 하는 것일 뿐, 결코 목숨을 걸지 않으리> 라는 끈질기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가 막 들어섰을 때 음악은 중단되었고 너바나(NIRVANA) 누가 하자 그랬어? 그렇지? 별로지? 뭐냐 이거, ‘니미 뽕’ 하지가 않잖아. 말도 마, 소리만 지르는데 심지어 ‘니미 병신 뿡’ 하지도 않아. 같은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의 락밴드 동아리이고 훌륭하게 연주해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는 부조리에 치를 떨어버린 그는 그날부터 인류학을 때려치우고 자신이 발견한 락이라는 영롱한 세계에 대해 혼자 깊숙이 빠져들었다.
당장 락의 역사에 대해서 파고든 그는 한 달 밤을 새워가며 파헤친 끝에 태양이 지구를 돌면 부조리, 락 음악이 ‘니미 뿅큰롤’ 해도 부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희와 열정에 들뜬 그는 다시 동아리방을 찾아가 락 정신에 대해 설명을 휘둘렀다.
“안 된다! 여기엔 락의 굳은살이 없어.”
하지만 그는 전혀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로 처참히 패배했다.
“이건 웬 달걀 같은 후배가 선배한테 뭘 가르치려고 드는 시추에이션?”
경어를 쓰는 한국 땅에서 그걸 넘어설 방법은 나이를 더 먹고 선배가 되는 것뿐이었다. 진실을 얘기해도 후배가 하면 안 되는 것이 그 학교의 전통이자 이 사회의 전통이었다.
“선배면 뭘 좀 알라고. 동아리 장르를 바꾸거나 진짜 락을 해.”
하지만 선배들은 머리가 ‘메롱’인 걸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라 이원식 씨를 두들겨 팼다. 이원식 씨는 ‘존나’ 두들겨 맞았다.
구석에서 그나마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어떤 녀석에게 들은 한 마디가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우린 니미 뽕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애들을 위해서 니미 뿅큰롤 하고 있을 뿐이라고. 네가 말하는 락 따위가 대체 뭔지 몰라. 멍청아.”
이원식 씨는 부조리와 싸워 패했다는 것을 꾱꾱꾱 꽃병 쓸쓸하게 생각했다.
힘 빠진 음악들만 죽죽 늘어뜨리며 락 정신의 계승에 대해 반항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락 스러웠던 그 동아리방을 나와 하염없이 걷다가 이원식 씨는 급기야 울분했다.
락 정신은 죽지 않는다. 락 정신은 진화하고 락 정신은 장르를 바꾸더라도 살아남는다. 세상이 파멸할 때까지! 라고 생각했던 이원식 씨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락 정신을 오해하는 사람이나 락 정신이 뭐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락 밴드 동아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파멸이 왔음을 말하고 있었다. 끝났다.
이원식 씨는 실의에 빠져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소주만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 가는 길에 학교 운동장에서 뭔가 공과 막대기와 커다란 장갑을 낀 채 뭔가에 열중해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다. 이제 야구를 만나는 순간이다. 오래 기다렸다면 미안하다.
그들은 니미 뽕 대신에 우아한 동작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 마이 갓 야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관중석에는 응원하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여자들은 하나같이 예뻤고 짧은 스커트나 청바지를 입고 있는 다리들이 감상적으로 황홀했을 뿐더러 눈빛들이 맹금류들처럼 총총했다. 니미 뽕과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여자들이었다. 그는 곁에서 야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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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는 구경한 지 딱 5초 만에 야구에 경도되어버렸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모든 부조리들에 대한 터질 듯한 불만의 폭발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하고 있었다. 야구에 그런 분출 같은 속성이 어디 있냐고 묻겠지만 정말 있다. 다이아몬드가 그려진 그라운드는 열망의 대상이며 그 세계엔 부조리라고는 없고 모든 투구와 타격과 수비와 주루는 그 완전함에의 폭발이다. 심지어 확장하자면 관중석에 앉는 것조차도 열망이며 선수들에게 손을 흔드는 것조차도 폭발이다. 그의 자아는 온전한 야구방망이 형태 같은 것으로 불뚝 일어섰다.
“저도 시켜주세요!!”
이원식 씨는 그라운드에 뛰어들다 베이스에 걸려 자빠졌지만 그렇게 존댓말로 고함질렀다. 감독으로 보이는 배 나온 사람이 이원식 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원식 씨를 불렀다. 그는 엉덩이를 두들겨 탄력도를 측정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 돼. 자네 엉덩이는 야구라는 근육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구만.”
이원식 씨는 그날부터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일에 주력했다. 마치 엉덩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 왔다는 듯이 엉덩이 근육만 키웠다.
이원식 씨가 닥치고 엉덩이 근육만 키우다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자, 이원식 씨는 보기 드문 오리궁둥이가 되어있었다.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 엉덩이도 한 명 생겼다. 그녀는 그날 스탠드에 있던 동기 여학생이었는데 이원식 씨가 저도 시켜주세요! 라고 외치며 감독에게 갔을 때, 이원식 씨의 엉덩이를 자신도 몹시 만져보고 싶었다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해 왔고, 이원식 씨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스’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이 스였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올 수 없었다고 이원식 씨에게 말했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원식 씨는 그녀가 딴 여자들처럼 니미 뽕 하지 않다는 것을 한 눈에 눈치 깠다. 역시나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이원식 씨는 멋진 엉덩이가 완성되자 당장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스는 이원식 씨를 여렬히 응원해 주었다.
“열심히 치고 달린 뒤에 홈에 돌아와. 내가 당신의 홈이 되어줄게.”
이원식 씨의 엉덩이를 다시 체크해 본 감독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안 돼. 자네 뇌세포는 야구라는 지식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구만.”
이원식 씨는 순간적으로 좌절할 뻔했다. 그러나 그가 좌절의 잽 스트레이트 훅 보디블로 연타를 허용하기 직전에 감독이 다시 말했다.
“그건 내가 좀 가르쳐 줘야겠어.”
이원식 씨는 그가 하게 된 운동이 야구라는 것이며 그가 처음에 해야 하는 일은 공을 모으는 등의 장비 정리와 끊임없는 그라운드 흙 고르기라는 사실을 매우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에게 야구는 야구 이외의 모든 부수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부조리가 아니었으므로 개폼이 아니었다. 그가 야구공들을 모아 바구니에 담는 것이 전형적인 야구였고 그가 내야 그라운드의 흙을 롤러로 고르는 것도 정통적인 야구였다. 그의 여자친구는 관중석에서 그가 하는 기초적인 야구를 내내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었다.
이원식 씨는 열심히 야구를 한 끝에 6개월 만에 팀의 2루수 겸 1번 타자를 맡게 되었다. 그때 감독과 선배들은 처음 보는 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나름대로 야구장에서 안 놀라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그의 타격 폼이 지닌 포텐셜potential에 턱관절을 놓을 뻔했다. 그가 타자로 나서면 어떤 투수든 웃겨서 공을 잘 던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자 드디어 기다렸던 타격 폼 얘기다. 안 기다렸다면, 부끄럽다.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은 정말 웃겼다. 엉덩이를 빼고 짧게 움켜쥔 방망이를 귀 뒤에 바짝 붙이고 눈빛은 절실하게 투수의 눈망울을 보고 있는 그 폼은,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푸훕!’ 하는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앞쪽으로 한껏 숙인 채 헬멧 챙 안쪽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불쌍한 표정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끄윽끅끅’ 하면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진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은 크하하, 우히히, 푸핫 등등처럼 소리 내는 단계를 거치기 전에 속에서 터져버리는 엄청난 폭소였다.
그가 헛스윙이라도 하면 헬멧이 어김없이 벗겨지면서 그의 불쌍한 표정이 활짝 드러났다. 그 표정을 한 번이라도 본 투수는 그 다음부터 컨트롤이 흔들렸다. 컨트롤이 완전히 왜곡돼 버려 타자로 전향하는 녀석도 있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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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는 그런 식으로 투수를 교란해 내야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미친 타조처럼 뛰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새끼는 100년이 넘어가는 한국 야구사에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원식 씨는 잘 자빠졌다. 안타성 타구를 때려놓고도 자빠지는 바람에 아웃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수비수들도 이원식 씨가 자빠지는 모습을 보면 제대로 수비하기 힘들어했다. 야구는 진지한 자세로 해야 한다는 통념을 허무는, 아예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태도 자체를 허무는 그 무언가를 이원식 씨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원식 씨를 타박하지 못했다. 이원식 씨는 달리다 넘어져 아웃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지으며 홈에서 1루까지 가는 주루선상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야구를 하는 세상의 어떤 새끼보다 진지했던 것이다. 간혹 주루플레이 하다 베이스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해서 간발의 차로 세이프가 선언되는 경우에 다른 사람 같으면 타이밍 좋은 슬라이딩이었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원식 씨가 하면 뛰다가 베이스 앞에서 운 좋게 자빠지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저 놈은 이제 조금 야구를 알기 시작한 것 같군.”
감독은 그때부터 그를 자기 새끼처럼 좋아했다.
그런 이원식 씨가 혼자 득점을 올린 적도 있었다. 상대 투수가 웃겨서 밋밋한 공을 던졌을 때 마침 이원식 씨가 땅볼을 때리고 달리기 시작하면, 그 평범한 공을 잡아 1루에 던지려던 내야수가 이원식 씨의 뛰는 폼을 보고 웃겨서 악송구를 하고, 이원식 씨는 필사적인 웃긴 폼으로 2루까지 뛰고, 커버해서 공을 잡은 선수가 다시 이원식 씨의 자빠지는 슬라이딩 폼에 웃음을 터뜨리느라 더듬는 사이 3루까지 가고, 웃음기를 거둔 다른 선수가 홈에 공을 던졌을 때 포수가 달려 들어오는 이원식 씨 표정 때문에 웃겨서 공을 놓치는 식의 웃기는 득점이었다.
비록 실책이 포함되기 때문에 그라운드 홈런은 아니었지만 그런 득점을 한 이원식 씨의 세리머니는 9회 말에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린 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몸 개그였다. 팔짝팔짝 뛰다가 개다리춤을 추다가 너바나의 <Territorial Pissings>를 부르며 에어기타를 치다가 텀블링을 하고, 타조처럼 뛰다 관중석 스탠드 앞에서 모자를 벗어 돌리며 뛰다 대박 자빠지는 식이었다. 실제로 보기 전엔 이게 얼마나 웃긴 건지 상상도 못한다. 만약 상상할 수 있다면, 부끄럽다.
이원식 씨는 그 모든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이원식 씨의 타격 폼’ 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이원식 씨와 함께 야구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슬픔에 빠진 친구가 있으면 가장 위로하기 좋은 말은 ‘어서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떠올려봐!’ 였다. 그러면 아무리 강력한 슬픔에 빠진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끅끅,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실연을 당했건, 초상이 났건, 장르불문하고 통했다. 이원식 씨의 타격 폼, 만 잊지 않으면 그들은 평생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핑크빛 룰루랄라까지 했다.
이원식 씨는 그해 대학 야구의 스타가 되었다. 그는 전국 대회에 나가 전국적으로 웃겼고 꽤 많은 비련의 인생들을 슬픔의 늪에서 구출해냈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배터 박스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이 니미 뽕 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꿔어어 꽃병 같은 아름다움이 그의 전신을 유머와 열망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의 타격 폼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꽤 인기 있는 동영상으로 한참을 돌아다녔다. 검색창에 ‘이원식 타격 폼’ 이라고 때려 보라. 누구든 미친 듯이 웃을 수 있다.
핼리혜성은 그 모든 과정을 흡족해 하듯 대차게 날아왔다. 때가 오고 있다는 계시 같았다.
이원식 씨는 야구만 하다 대학의 탈을 쓴 직업 훈련원을 강하게 때려치웠다. 실은 학점이라곤 한 점도 얻지 못했고 돈을 대주던 부자 친척이 공부를 못한다며 학비지원을 끊어버리자 제적당한 것이었지만 졸업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를 아껴주는 감독의 충고대로 프로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자네 타격 폼은 프로에서도 통하는 유머라는 생각이 드는군. 이걸 들고 찾아가 봐.”
이원식 씨가 감독의 추천서를 들고 프로 팀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갔을 때 관계자는 그라운드를 2바퀴 반이나 돌며 웃었다.
“세상에! 어디 있다 이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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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한국 프로야구 제 10구단 참이슬 드링커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는 ‘니미 뽕’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들로 꽉 채워진 관중석을 바라보며 이런 세상도 있구나, 라는 것을 핼리혜성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시즌이 개막되고 7경기 만에 대타로 그라운드에 데뷔할 수 있었다. 8회 말 투아웃 만루. 스코어는 5-3.
2점 차로 지고 있었고 한 방이면 역전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가 타석에 서자 관중석은 홈팀과 원정팀을 막론하고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끅끅 하고 웃느라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보고 있는 상대 배터리는 견딜 수 없이 웃겨서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투수코치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즉시 마운드로 달려 나왔다.
“야구가 점점 쇼가 되어 가는군. 저딴 수작에 넘어가지 마. 우린 프로니까. 가장 슬픈 일을 생각해 보자고. 지금 저 광대를 못 잡으면 연봉이 1억이나 깎이는 거야. 오케이?”
하지만 투수는 진정할 수가 없었다. 마운드에서 슬픈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웃겼고, 그의 야구인생에 이토록 웃긴 타격 폼은 처음 본다, 라는 생각이 말초신경계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결국 투수코치는 ‘연봉 1억이 깎인대, 끅끅끅’ 하면서 콧물범벅이 되어버린 그 투수를 내리고,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투수를 불렀다. 인생이란 정말 미안하고 고달픈 것일 뿐이야, 라는 인상을 가진 투수였다. 그는 그 인상으로 타자들에게 공을 던졌는데 정말 미안해서 치기 어려울 정도의 공이라 심성 착한 타자들이 많이 말려들기로 유명했다.
그는 마운드에서 이원식 씨를 노려보았다. 세상이 웃긴 것만은 아니라구 애송이. 프로가 뭔지 배우지 않겠나, 라는 눈빛이 역력했다.
첫 공은 이원식 씨의 무릎 근처에 깎은 듯이 제구 된 직구였다. 코스가 좋긴 했지만 대단히 느린공이었는데 노장 투수의 표정을 보자 너무 미안해서 칠 수 없었다.
두 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 이원식 씨는 크게 헛스윙을 했다. 심판이 잠깐 경기를 중단시켰다.
심판이 웃음을 참다 못해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물 때문에 볼 판정을 잘할 수 없게 되자 잠시 중단시킨 것이었다. 그는 심판 교범을 떠올렸다.
- 웃긴 플레이어가 나와 정상적으로 판정을 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의 귀밑머리를 세게 잡아당겨 경기를 속행해야 한다.
그는 귀밑머리가 뽑히도록 잡아당겨 간신히 웃음을 멈추었다.
세 번째 공은 이원식 씨의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높은 공이었다. 급하게 피하던 이원식 씨의 헬멧이 벗겨졌다. 아, 그러나 헬멧 안에 감춰져 있던 이원식 씨의 표정. 그것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절정의 웃긴 타격 폼을 완성하고 있었다.
눈은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다 한 판을 다 엎은 사람처럼 처절하게 동그랗고, 눈썹은 이마 위로 바짝 곤두서 이런 ^ ^ 모양의 이모티콘처럼 팽팽해져있고, 입은 오(O)자 형태로 매우 크게 벌린 채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데, 그 얼굴을 또 프라이팬으로 땅! 때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포텐셜이 최고로 폭발한 것이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선을 다해 이원식 씨는 데뷔전에서 가장 웃긴 타격 폼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원식 씨가 이겼다. 그 타격 폼을 본 노장 투수는 흔들려버렸다. 네 번째 공은 포수의 머리위로 날아가는 와일드 피치. 그것은 에라 인생 뭐 진지할 것 있겠냐, 라는 주장을 하는 것 같은 가벼운 공이었다. 그 폭투로 순식간에 주자 2명이 들어와서 동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원식 씨는 될 대로 돼라, 하고 날아온 다섯 번째 공을 두들겨 유격수 앞 땅볼을 만들었으나 이미 웃음을 참을 대로 참고 있던 유격수가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며 웃고 자빠진 사이 3루 주자가 들어와서 역전.
이원식 씨는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고 말았다.
무명의 이원식, 서울 돔을 웃기다. 괴물대타등장!! 주무기는 타격 폼, 등등의 대문짝만 한 타이틀 아래 ‘드링커스 감독 오늘은 안 취해’ ‘족집게 실책유발 작전’ 등등의 기사가 포털사이트 스포츠 카테고리마다 업로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원식 씨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원식 씨의 여자친구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라커룸에 찾아와 기쁨에 취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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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혜성은 이때다 하고 지구에 거의 접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정한 법이다. 스킨헤드가 아니라면 누구나 귀밑머리가 있고 그곳을 잡아당기면 어떤 일이 있어도 기분이 안 좋아진다.
프로들은 역시 프로였다. 그들은 이원식 씨가 타석에 들어서면 자신들의 수비 위치에서 열심히 귀밑머리를 잡아당겼다. 정신집중을 위해 머리를 빡빡 민 선수들은 이원식이 나오는 경기마다 벤치신세여서 귀밑에 발모제를 발라대야 했다.
선수들이 일제히 귀밑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을 보는 관중들만 신나게 웃을 뿐이었다.
그 뒤로 이원식 씨는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다. 이원식 씨는 평소에 하지 않던 타격 폼도 취해보고 억지로 오버해서 웃겨 보려고도 했으나 그런 건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적인 타격 폼에선 안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감독이 이원식 씨에게 원하는 건 그런 안타가 아니었다.
그는 결국 1할 5푼 8리라는 통산 타율을 기록하고 반 시즌정도 지났을 때 귀밑머리를 잡아당기다 그만 쏙 빠져버려 매우 기분이 나빠진 투수에게 빈볼을 얻어맞고 헬멧이 깨지고 정신이 이탈하는 마지막 타격 폼을 보여준 뒤 부상자 명단에 올라갔다가 천천히 프로무대에서 사라지는 스텝을 밟았다.
휴먼다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에 잠시 소개되어 재활하는 과정의 참담함 시리즈 5부작으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웃긴 걸 마지막으로 이원식 씨는 사람들로부터 잊힌 꽁꾱꾱 꽃병이 되어갔다. 역시 사람들은 웃긴 것보다는 우울한 것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그를 측은해 하는 어떤 방송국 사장의 배려로 그는 일일 야구 해설자로 나섰으나 멍해진 머리로 저 친구 타격 폼은 안 웃겨요! 같은 얘기만 반복하다 팬들의 비난을 받다 퇴출 된 게 공식적으로 마지막 자리였다. 이원식 씨는 어려서부터 야구를 한 사람이 아니니까 야구인이 아니야, 라는 니미 뽕 하는 반응들이 돌아왔다.
그는 급기야 절망했다. 그리고 나날이 정신을 놓아갔다.
빈볼을 맞은 후유증으로 정신이 점점 많이 이탈한 채 돌아오지 않게 된 그는 하루 종일 락 음악만 들으면서 지냈다. 그가 사랑했던 야구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날마다 시름에 잠겼다.
그러나 이미 타격 폼의 정점에 서보았던 그에게 그런 시들한 전락은 찾아오다 길을 잃게 마련이었다. 그는 어느 날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눈을 떴다. 구원이라니, 빌어먹을 만큼 개떡 같은 단어지만 그가 프로 때 몇 달간 받은 연봉과 방송 출연료가 떨어지고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굶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바로 그 구원이란 미친 단어가 찾아왔다.
그는 강화도에 내려가 주거형 비닐하우스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의 여자친구가 가진 돈을 다 털어 비닐하우스를 빌려주었다. 다행히 전기도 들어오고 수도도 있는 곳이었다. 이원식 씨는 여자 친구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남들이 사는 것처럼 니미 뽕 하기는 죽기보다 싫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윙을 했다. 스윙이 그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은 따듯했다. 겨울에도 방망이를 돌리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는 바닥에 말뚝을 박고 타이어를 세워 놓은 뒤 니미 뽕을 하지 않으려고, 진짜 야구를 하고 싶어서 계속 배팅 연습을 했다. 정신이 계속 이탈해 가는 현상 때문에 락 음악을 들으면서 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비닐 하우스였기에 자신의 싸구려 오디오로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스윙을 했다.
그런데 배트가 공기를 찢는 소리와 온갖 기타와 드럼과 베이스와 보컬이 공기를 찢어놓는 소리가 겹치자 신비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스윙과 락음악이 구원을 불러 온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도저히 몰라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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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천 번 스윙을 하자 이원식 씨의 눈에 이상한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스윙하며 사는 지금의 모든 세계.
이만 번 스윙을 하자 달빛이 예사롭지 않아졌다. 자신이 스윙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세계. 이거였구나. 니미 뽕이 어째서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어.
후유증 때문에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이원식 씨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사람들이 락을 듣고 술을 마시고 야구를 사랑하는 등의 아름다운 쾌락을 즐기지 않아서라고 했다.
삼만 번 스윙을 하자 먹고 니미 뽕 생활이라는 절제에 인간들의 꿔어어 꽃병이 타들어 가는데도 인간들은 인간다운 즐거움을 멀리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만 번 스윙을 했을 때 인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그는 모조리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고 인간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만 했던 자신을 참회했다.
그때 드디어 핼리혜성이 긴 꼬리를 쭉 뻗어 흔들며 지구에 몹시 가까이 왔다.
이원식 씨가 핼리혜성에 오르게 되었을 때는 그 비닐하우스에서 십만 번 스윙을 했을 때였다.
누구라도 과학을 개 무시하고 핼리혜성에 타보고 싶다면 락을 들으며 십만 번의 스윙을 하면 된다. 야구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로 다른 혜성들에 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개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였다. 검도로는 락을 들으며 19만 번의 빠른 머리치기, 농구라면 락을 들으며 21만 번의 레이업슛, 영어 공부라면 락을 들으며 470만 단어 암기, 뭐 그런 식이다.
어쨌든 이원식 씨는 스윙으로 핼리혜성에 올랐다.
이 소식이 완전 멋진 사실만은 아니다. 핼리혜성에 탄 이원식 씨는 핼리혜성에 잘 탔지만 지상의 이원식 씨는 지나친 타격연습으로 온 몸이 꾱꾱꾱 되어 죽었으니까. 이원식 씨는 대략 칠만 번째 스윙 때 죽었는데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삼만 번을 더 휘둘렀다. 그리고 그녀의 여자친구가 슬픈 락을 틀어놓고 처절하게 이만 번을 오열했을 때 그녀도 핼리혜성에 올라가버렸다.
지상에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아직 우리는 여전히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떠올리며 슬픔을 견딜 수 있다. 만약에 기억한다면 말이다. 기억하지 못하겠다면 이젠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여하간 결론이다.
이원식 씨는 핼리혜성 위에 내리자마자 이름을 ‘윙’이라고 바꾸었다. 자신이 핼리혜성을 탈 때 날아오른 그 기분이 너무 꿔어어 꽃병 날개처럼 상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핼리혜성 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외계의 어딘가에서 멋진 타자가 눈부시게 멋진 타격 폼으로 때린 세상에서 제일 멋진 타구처럼 생긴,
그 핼리혜성 위에서 그의 여자친구 ‘스’ 와 끝내주는 락을 연주하며 절찬리에 팔고 있는, 에피쿠로스식 타조 앞다리 수블라키의 맛 때문이다. (*)
『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서 전재 (박상, 이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