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나와라, 흙이나 먹어라. 선생이 제 눈에 황토 반죽을 붙였다. 붕대를 처맨 눈 밑으로 누런 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는 수건으로 그의 뺨을 닦아준다. 무명 수건에 황톳빛 얼룩이 점점이 찍혔다. 아프지 않아요? 응, 이렇게 하면 조금 시원해. 커졌는지 한번 볼까요? 놔둬라. 흙 먹으러 기어나올 거다. 선생은 낮은 한숨을 내쉰다. 전에는 눈을 자주 껌뻑이는 정도였는데 요새는 내내 찡그리고 있다. 아프겠지. 점점 아플 것이다. 반듯하던 얼굴이 다 망가져버렸다. 어서 나와라, 내 눈알 먹지 말고 흙을 먹어라. 선생은 흥얼거리며 황토 반죽을 꾹꾹 누른다.
크지도 않은 눈동자에 벌레가 들어앉았다. 선생은 태평했다. 제 눈알에서 벌레가 크는 걸 신통하게 생각했었다. 이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제법인데. 거울을 좌우로 돌려가며 눈동자를 살폈다.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 지놈이 다 자라면 날아가겠지. 내가 불안해서 쳐다볼 때마다 선생은 얼굴을 돌려버린다. 놈이 뭘 먹고 자라겠는가. 점점 커지면서 눈알을 다 파먹고 말 텐데.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 사람들은 봐도 모르겠다고 한다. 당장은 큰 지장이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눈이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른다. 나로선 해줄 것이 없어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안과에 함께 가보기는 했다.
젊은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요. 저절로 빠져나올 겁니다. 코안이라면 몰라도 눈동자는 유충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거든요. 많이 불편하시면 라식 수술처럼 각막을 깎아내 유충을 제거할 수 있어요. 의사는 선생과 내 옷에 묻은 흙자국을 힐끔거렸다. 선생을 부축하던 내 손도 유심히 보는 눈치였다. 나는 얼른 손을 치웠다. 손톱에 누런 흙이 잔뜩 끼어 있었다. 시력이 상하지는 않을까요? 내가 묻자 의사는 상태를 더 두고 보자고 했다. 수술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눈이 아프면 다시 나오라고만 했다. 사흘치 진통소염제가 처방의 전부였다.
유충은 자라고 있다. 옆에서 자세히 보면 선생의 오른쪽 눈동자가 약간 솟았다. 눈동자의 색깔도 연한 갈색으로 변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충천은 야망이 큰 놈이다. 언젠가는 눈알을 뚫고 나와 하늘로 날아갈 것이다.
이틀 동안 건조대에 두었던 그릇을 만진다. 손가락에 미세한 흙이 묻어난다. 수분을 머금은 그릇의 표면은 파우더를 바른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하다. 윤기가 반들거리는 단단한 그릇과는 사뭇 다르다. 형태는 그릇이지만 촉감은 흙에 가까운 이것들이 귀여워 슬며시 웃는다.
작업대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어제 하다 만 소접시의 굽을 깎기 시작한다. 방송에서는 휴가 얘기가 한창이다. 재미도 없는 사연을 엿들으며 흥흥 웃는다. 문지방 밟는 소리가 나더니 술내가 진동을 한다. 아침부터 퍼마셨구나. 선생이 쿨럭 기침을 한다.
“오늘 가마에 넣자. 초벌 마친 거 너무 오래 두었지.”
날이 습해서 문제다. 잘 마르지도 않거니와 마냥 오래 둔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릇은 공기중의 물기를 빨아들여 제멋대로 주저앉기도 한다.
“날씨가 불안한데요.”
지금이야 날이 좋지만 중간에 비라도 오면 큰일이 아닌가.
“내 몸이 허라고 한다.”
선생은 신경통이 있어 기압이 낮은 날은 귀신처럼 알았다. 선생이 괜찮다면 해야지, 뭐. 지난주부터 가마에 기물을 넣을 날만 기다리던 참이다. 나도 이번 전시회를 마음에 두고 있다. 장마가 오기 전에 한바탕 해치우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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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명지현
경기도 파주 심학산 인근에서 남편과 두 자녀, 그리고 백구 한 마리와 살고 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를 거쳐 2006년 <현대문학>에 「더티 와이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정크노트』와 소설집 『이로니, 이디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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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옥수수수염 달인 물, 어디 있지?”
나는 냉큼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물 담은 대야에 뜨거운 주전자를 통째로 넣어두었다. 그새 주전자는 맞춤하게 식었다. 엉킨 실타래 같은 옥수수수염이 주전자의 누런 물 안에 가라앉았다. 웅크린 모양이 내 마음 같다. 주전자 뚜껑을 닫고 대야에서 꺼낸다. 물이 고인 대야의 밑바닥에는 눈부신 여름 햇살이 둥글게 퍼져 있다. 뜨듯한 물에 든 내 손가락은 짤막하다. 손가락을 갈퀴처럼 편다. 이 손으로는 아직 멀었다. 그릇다운 그릇을 치려면 더 고생을 해야 한다.
주전자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개수대 옆에 엎어놓은 그릇들은 성치 않은 게 더 많다. 흠이 조금 있다고 그릇을 버리면 선생의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이왕이면 좋은 컵에 따라주려고 포개진 그릇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이건 내가 만든 사발이고 저건 누가 만든 접시더라. 선생은 자신이 만든 그릇이 아니면 반드시 앞뒤로 살펴본다. 그리고 한마디를 보탠다. ‘이건 그릇이 아니라 반죽이다.’ 냉랭한 말투가 내 가슴을 찔렀다. 선생이 주로 쓰는 황토색 사발을 찾아내 주전자를 가파르게 기울인다.
작업실에 돌아가자 선생은 벌레를 그리고 있다. 한 눈은 붕대를 처매고 불개미거미를 접시에 그려넣는다. 선생은 벌레 이미지에 흠뻑 빠졌다. 플라스틱 상자에 든 벌레들과 갖가지 곤충도감이 작업대에 그득하다. 좀머리멸구, 귀매미, 딱정벌레, 고추잠자리… 이 벌레들은 다 선생의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그놈의 벌레가 눈에서 골까지 기어들어가 선생의 머릿속을 온통 벌레로 만들어버린 걸까? 벌레 문양을 새기기 시작하자 그릇이 팔리지 않는다. ‘독특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그릇은 인기가 없어요. 호감 가는 종류는 아니잖아요.’ 인사동 박소장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선생은 옥수수수염 물을 단숨에 마시지 않고 두어 모금 입에 머금다가 만다. 신장이 좋지 않아 보리차 대용으로 늘 마시지만 컵을 기울일 때마다 표정이 좋지 않다. 맛이 없는 모양이다. 언젠가 선생이 밖에서 술을 먹고 돌아와 작업하던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적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열심히 한다는 격려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선생에게서 옥수수수염 냄새를 맡았다. 술냄새보다 그게 더 진했다. 시큼한 물냄새에 나는 스르륵 녹아버렸다. 그런 일은 그때 한 번뿐이었다. 선생은 기억조차 못 하는 눈치다. 일부러 모른 체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나는 곤충 소년이었잖아. 배운 게 이 짓이라 그릇이나 치고 있지만 공부만 잘했으면 생물 선생인데 말이야.”
예전에는 곤충 소년, 지금은 곤충의 숙주. 저 징그러운 것들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자세히 그리면 진짜 벌레 같잖아요.”
선생은 어,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릇에 얼굴을 바짝 댄다. 불개미거미의 오른쪽 몸통과 다리 한쪽이 완성되었다. 선생은 붓질을 하며 고개를 점점 더 숙인다. 얼굴이 접시에 붙겠다. 가마 작업을 지시해놓고 왜 그림을 그리나.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모양이다.
“언제부터 기물을 넣을까요?”
나갔다 와서 하자, 건성으로 대꾸한다. 선생은 외출을 하려고 택시를 불러두었다고 한다. 불개미거미의 나머지 반은 그리지 않는다. 그대로 완성인 듯 사인을 한다. 선생은 익살스럽게 생긴 ‘애꾸눈 잭’을 접시의 뒷면에 그린다. 이 접시는 공방에 두고 쓸 모양이다.
“아차, 벌레집은 봤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그저께 밀가루로 틈을 막았어요.”
선생은 고개를 숙인 채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조금 늦출 수 있지? 이왕이면 사람들이랑 같이 보면 좋은데. 우리끼리 보기 아깝다.”
눈이 그렇게 되고도 충천 때문에 또 들뜨다니. 손님을 청하는 것도 귀찮고 여럿이 북적거리는 것도 싫다. 선생의 공방이니 내 맘대로 거부할 수도 없다. 선생의 손님이란 죄다 잘난 예술가들이다. 손님이 많으면 그중에는 선생한테 꼬리치는 여자가 하나둘 끼어들게 마련이다. 나는 쟁반을 들고 나가며 먹다 남은 옥수수수염 물을 땅바닥에 촤악 끼얹는다. 비나 콸콸 쏟아져라.
슬리퍼를 끌고 마당으로 나간다. 오늘은 벌레집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날이 쾌청하다. 늘어진 가지에 붉은 자두가 줄줄이 매달렸다. 곧 있으면 따먹어도 되겠다. 뒷마당의 흙가마는 이제 터만 남았다. 가스 가마를 들인 뒤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허물어진 가마 뒤로 못 쓰는 흙과 깨진 사기 조각이 켜켜이 쌓였다. 조심조심 걷는다. 사기 조각에 발가락을 찔릴까 겁이 난다.
선생은 산속의 벌레집을 기어이 이리로 옮겼다.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 이번 여름, 또하나를 얻으려다 눈이 그렇게 되었다. 벌레집을 뜯어내다가 알이 얼굴에 튀었다고 한다. 젤리처럼 뭉글뭉글한 점액이 눈꺼풀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날 선생은 종일토록 눈을 비벼댔다. 아무래도 눈병이 옮은 것 같다며 자꾸만 눈을 비벼댔다. 유충은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따스하고 촉촉한 눈동자를 제 요람으로 차지해버린 것이다.
돌 틈에 끼어앉은 벌레집은 구불구불한 모양이 굴껍데기 같다. 벌레집 틈새를 막은 밀가루 반죽이 바짝 말랐다. 반죽에 흙을 더 넣을 걸 그랬다. 다 뜯어먹고 빠져나올라. 벌레집에 귀를 댄다. 들리지 않는다. 귀를 따끈한 벌레집에 붙이고 신경을 집중하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안에서 들린다. 바늘의 뾰족한 끝으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아주 가늘고 섬세한 소리다.
놈들은 지금 빛을 만들고 있다. 제 꽁무니에 빛을 키우느라 부산할 것이다. 벌레집에 손바닥을 댄다. 진동이 없다. 더 기다려야 한다. 벌레집 옆에 선생이 남긴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선생은 이놈들에게 왜 그리 관대할까. 그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째서 밉지가 않을까. 나는 돌덩어리 같은 벌레집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이 못난 벌레집 덕분에 내 인생도 바뀌었다. 공방의 동료들은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 충천을 함께 본 나는 선생을 떠날 수가 없다. 처음 이놈들을 봤던 그날이 내게는 각별하게 남았다. 나도 충천이 좋다. 놈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떠나면 며칠간은 속이 허했다.
하늘에 오른 놈들 중 반은 죽는다. 그래도 기를 쓰고 오른다. 그것이 놈들의 사명인 모양이다. 나는 은하수가 된 놈들보다 대열에 끼지 못해 방황하는 벌레들에게 마음이 간다. 언제나 아래부터 살핀다. 못 오르는 놈들을 보느라 내 시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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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나와라, 내 눈알 먹지 말고 흙을 먹어라.”
선생이 노래를 부른다. 눈에 붙인 황토 반죽을 리듬에 맞춰 꾹꾹 누른다. 붕대 밑으로 반죽하던 황토를 그대로 넣었다. 황토색 눈물이 뺨을 지나 턱수염에 모인다. 나는 조용히 흙반죽에 매달린다. 골고루 섞이도록 치대다가 반죽판에 세게 내던진다. 반죽을 떼어 만져본다. 아기 귓불처럼 말랑말랑하다. 점력은 아직 멀었다. 상체의 힘을 실어 치대고 또 치댄다. 두 가지 흙을 섞어 하나의 반죽으로 만든다. 누르스름한 비파색 흙덩이에 하얀 점이 군데군데 박혔다.
선생은 눈을 질끈 감고 그릇을 친다. 어제도 종일 작업을 해놓고 또 미친 듯이 그릇을 친다. 선생의 집중력이 전과 다르다. 시력을 잃을까봐 마음이 조급해졌나. 느닷없이 개인전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포스터에 이렇게 쓰라고 해. 사발의 대가, 오십대 중견 미남 작가. 벌레 도예가, 또 뭐 있냐? 아, 장님 예술가가 하나 더 붙겠구나. 이야, 너무 주목받으면 부담스러운데.”
“장님이 아니라 애꾸잖아요, 애꾸눈 잭.”
“하나가 망가지면 둘 다 놓치기 마련이야. 슬슬 준비를 하라는데?”
아, 또 저 소리.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부축을 받아 주춤주춤 걷는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은 안경을 쓴 선생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나. 책을 읽어주는 나. 전화번호를 대신 눌러주는 나.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나야 상관없다. 이게 어디 눈 뜨고 하는 일이냐? 흙이야 만져보면 아는 거고, 물레질은 전부터 눈 감고 했다.”
선생은 다시 눈을 감는다. 그의 소경 연습은 확인 작업이다. 물레 위를 빙글빙글 도는 그릇을 사려 깊게 만지다가 눈을 뜨고 확인하고, 못마땅하면 다시 허물고, 다시 시작하고. 손의 감각을 키우려고 시각을 포기하는 거다. 그 느낌이 뭔지 안다. 가끔은 손과 눈이 따로 놀 때가 있다. 뻔히 보면서도 끌이 엇나간다. 그건 손의 잘못이지만 눈도 실수가 잦다. 두 그릇의 무게가 다른데도 눈은 그것을 몰라본다. 내 공부란 다른 게 없다. 단지 손과 눈을 제대로 부려먹는 방법을 익히는 거다.
어서 나와라, 내 눈알 먹지 말고… 신음 같은 노랫소리가 다시 들린다. 선생의 노래 실력은 그저 그렇다. 작곡 실력도 신통치 않아 모든 가사가 도레미 안에서 통용된다. 어느 날은 트로트, 어느 날은 타령조로 편곡을 한다. 가끔은 나도 따라 부른다.
선생과 나는 양쪽으로 비켜앉아 각자의 작업에 몰두한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식사 얘기가 없다. 선생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 나도 모른 척한다. 시켜 먹든지 차려 먹든지 둘 중의 하나다. 문하생들이 많을 때는 식사시간이 즐거웠다. 요새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약간은 초조한 기분이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다.
“아, 되게 아프다.”
선생이 붕대 밑으로 황토 반죽을 떼어낸다. 얼굴에 누르스름한 흙물이 흥건하다. 다른 쪽 뺨도 눈물이 번들거린다. 선생의 숨소리가 몹시 거칠다. 나는 흙을 던져놓고 선생에게 간다.
“당장 병원에 가요.”
“놈들이 나오면 눈에 든 놈도 따라나서겠지. 이놈이라고 내 눈깔이 좋겠냐.”
선생은 붕대를 매만진다. 많이 아프냐고 묻자, 술이나 마셔야겠다, 남은 거 있으면 가져와라. 의자에 길게 기댄다. 참으로 답답하다. 나는 다시 병원에 가보자고 재촉한다. 팔을 붙잡고 일으켜세우려 하자 선생이 내 손을 뿌리친다. 벌컥 화를 낸다.
“가봤다. 병원에 가봤어. 결과를 아니까 제발 놔둬라.”
병원에서 대체 뭐라고 했기에. 매정하게 뿌리치는 손길은 대수롭지 않다. 내가 몰랐던 사실이 나를 밀어낸다. 어쩔 줄 몰라 주춤거리다가 선생 옆을 떠나 문가로 간다. 창문을 활짝 연다. 방충망까지 다 열어젖힌다. 탄내가 가시질 않는다. 아까는 쑥냄새답게 향긋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릿하게 가라앉았다. 오늘 아침, 약천사의 스님이 선생에게 침과 쑥뜸을 놔주고 갔다. 더 일찍 해볼 걸 그랬다. 황토 요법보다 쑥뜸이 벌레 퇴치에 걸맞다.
다시 반죽을 시작한다. 때리고, 내리치고, 다시 던지고. 화풀이 대상으로 흙만큼 좋은 건 없다. 때리면 때릴수록 내게 이롭다. 뭉친 반죽을 물레 위에 올린다. 페달을 밟아 물레를 빙글빙글 돌린다. 막상 물레가 돌자 망설여진다. 모든 흙에는 그 흙에 어울리는 형태가 있다. 반죽에 손가락을 대고 그릇의 모양을 생각한다. 호흡을 크게 한다. 선생은 생각지 않는다. 그의 눈도 잠깐 잊자.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자. 손가락의 감각에만 집중해야 한다. 물레는 페달을 밟는 내 발의 강약에 따라 속도를 점점 달리한다.
가마를 식히면서 내내 불안했다. 망친 작품은 깨버릴 수도 없다. 전이 비틀어지거나 살짝 주저앉은 그릇들은 마당에 쌓아두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쓴다. 이번에도 내 작품은 곧장 마당으로 보내질 것이다. 선생의 평가가 내려지기 전에 내가 이미 판단을 했다. 아직 서툴고 미숙해도 선생의 방식만을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는다. 선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고집불통이라고 내게 화를 내곤 했다. 나는 묵묵히 꾸지람을 들었다. 혼이 나는 순간에는 내 속에서 은근히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내 욕심을 버릴 수는 없다. 선생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든다. 그래야 내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얼굴에서 붕대를 슬슬 풀어낸다. 허연 붕대를 천천히 길게 풀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나는 모르는 척, 그릇만 친다. 선생이 뚫어져라 나를 본다. 눈에 든 벌레도 나를 본다. 그 눈동자에는 나도 들었을 것이다. 지금 선생의 눈동자에는 벌레와 내가 들었다.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발소리도 없이 쓱 빠져나간다. 그가 나간 문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주황색 석류꽃이 문틈으로 보인다. 나는 그 꽃을 보며 방금 전의, 그 수척한 몸을 기억한다. 왜 저리 작아졌나. 내가 처음 이 공방에 왔을 때보다 선생의 몸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작업이 많을 때는 더욱 그렇다. 선생은 흙이 섞인 땀을 흘리고 진흙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릇을 친다. 제 몸을 덜어내 그릇에 보탠다. 선생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흙이다. 완성된 그릇을 품에 안을 때마다 그의 몸은 조금씩 작아지고, 또 작아지고… 이제는 벌레까지 선생을 먹으려 든다. 그놈의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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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부터 주변 숲에 작은 반딧불이가 무리지어 다녔다. 공방에서 마을버스를 타려면 후미진 길을 한참 걸어내려가야 한다. 마침 그 벌레가 나타나면 기분이 든든했다. 날아다니는 작은 빛 알갱이는 보기만 해도 유쾌했다. 밤에 마당에 나와보면 하얀 눈이 위로 동동 뜨는 것 같았다.
선생은 재미 삼아 벌레를 유리병에 담거나 양파 망에 넣어두는 걸 좋아했다. ‘이건 반딧불이가 아냐. 너무 작잖아. 내가 곤충박사인데 이걸 모르겠어? 어릴 때 반딧불이는 실로 묶어서 옷에 매달고 놀았거든. 이렇게 작은 건 처음 봤다.’ 선생이 유리병 안을 보며 말했다. 벌레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우리는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놈들은 초파리와 비슷했다. 낮에는 초라한 검은 벌레지만 밤에는 화사한 빛 알갱이였다.
우리는 그놈들에게 ‘반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공방 주변을 환하게 만든 ‘반짝이’들. 동료들은 그것이 좋은 조짐이라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밥집 아줌마도, 산 아래 카페 주인도 모두들 벌레 얘기를 했다. “얘들은 대체 어디서 배터리 충전을 하는 거야? 편의점? 아니면 태양광 전지인가?” “사람도 자체 발광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두운 데서 열쇠를 찾을 때, 극장에서 자리 찾을 때, 좋잖아?” “맞아, 애인이랑 그거 할 때는 은은하게 조절하고.”
그즈음 우리는 다른 공방과 연계한 단체전을 준비중이었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원금도 약속받았겠다, 작품만 잘 만들면 되는 전시회였다. 그런데 전시회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다른 공방에 비해 우리는 더디기만 했다. 선생 때문이었다. 선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머릿속에는 벌레 생각만 가득한지 걸핏하면 벌레 얘기만 했다.
“저것들은 어디서 온 거지? 혹시 중국제 흙에 묻어온 게 아닌가? 지방에서 사온 흙은 내가 골라온 거라 요만큼도 안 버렸거든. 중국제 흙은 가끔 저기 가마터에 내다버렸었다.”
“그냥 어디서 날아왔겠지요. 곤충도감에 없다고 여기 없는 벌레는 아니죠.”
선생의 추측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선생과 알고 지내는 중국인 도예가에게 전화를 건다, 메일을 번역한다, 한동안 수선을 떨더니 기대한 성과는 있었다.
어느 날인가 거나하게 취한 선생이 한자가 가득한 종이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충천(蟲天)이라는 한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이것이 저 벌레의 이름이라고 했다. 충천의 고향은 중국이 아니라 태국이었다. 그래도 중국 운남성에는 이 미터가 넘는 벌레집이 있다고 했다.
“쫑티엔이라 했던가, 퉁티엔? 하여간 그 비슷한 발음인데. 충천은 흙이랑 밀을 좋아한단다. 역시 흙을 먹는 놈이었어. 부화하면서 와르르 몰려 하늘로 오르는 은하수 벌레란다. 하나씩 돌아다니는 건 낙오병인 셈이지. 그 커다란 대열을 어떻게든 봐야 하는데. 이런 게 많이 모이면 빛이 어마어마하겠지?”
그다음부터 선생은 종적을 감췄다. 거의 매일 공방을 비워놓고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가끔 보면 얼굴은 볕에 그을려 거무튀튀하고 옷은 흙투성이였다. 그래도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생동감이 흘렀다. 산 빛깔이 스몄다고나 할까. 묘한 기색이었다. 선생이 메고 다니는 배낭은 점점 불룩해졌고 희한하게 생긴 등산장비가 공방에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생이 새로운 흙을 캐올 거라 믿었다.
우리는 보름 넘게 스승이 버린 공방을 지켰다. 늦은 밤에나 돌아온 선생은 사막을 헤매고 온 사람처럼 늘 기진맥진이었다. 얼굴에 발진이 돋은 것처럼 불그스름하기도 했다. 새로운 흙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작품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도 선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진행상황을 의논하자 방으로 쓱 들어가버렸다. 곧이어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시회는 코앞인데 자신 있게 내놓을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제일 믿을 만한 오 년차 선배도 자신의 작품을 감당 못 해 허덕거렸다. 모두들 다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전시회를 선생 때문에 망치기는 싫었다.
어느 이른 저녁에 선생이 불쑥 공방으로 들어섰다.
“다들 어디로 갔나?”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우물거렸다. 난데없이 공방에 나타난 선생이 낯설기만 했다. 아무도 없다면 너라도 가자고 하면서 선생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모두들 작품을 마무리하러 인근 도예촌에 가 있었다. 아예 그곳에 주저앉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 역시 같은 결심이었다. 단지 문양 자료를 가지러 왔다가 마주친 거였다. 선생의 차를 얻어타고 산속으로 가면서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게는 어렵고 어려운 선생이다. 꾸지람이 무서워 배우는 동안 질문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전시회만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고 할까. 나 같은 건 없어져봤자 찾지도 않을 텐데. 집안 사정을 핑계로 댈까.
차에서 내려 산길을 한참 오르며 선생은 지겨운 벌레 얘기를 또 늘어놓았다. 선생의 배낭에서 쇠뭉치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손전등의 불빛을 따라가며 나는 딴생각만 했다. 산속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이 어디로 갈 것인가만 관심이 있었다. 대학원을 포기하고 선생에게 온 건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동생의 결혼식 전에 어떻게든 전시회를 해야 한다. 그래야 떳떳하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시회 얘기를 간신히 꺼냈다. 선생이 내 말문을 막았다.
“바로 여기다. 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선생은 덤불을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들어가더니 뭔가를 열심히 떼어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돌덩이에 허연 반죽이 말라붙어 있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벌이 들어 있나. 날갯짓 소리 같다. 이게 뭐냐고 물었다. 선생은 대꾸도 없이 전등을 꺼버렸다. 돌덩이 사이에서 가느다란 빛이 새어나왔다. 소리도 그 속에서 났다. 선생이 허연 부스러기를 벗겨내자 작은 빛 알갱이가 하나씩 빠져나왔다. 꽁무니에 빛을 매단 벌레들이었다.
선생은 배낭에서 무쇠끌을 꺼내 벌어진 바위 틈새에 박았다. 끌을 힘껏 당기자 돌조각이 떨어지며 와르르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환한 빛에 눈이 부셨다. 빛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빛 알갱이들이 순식간에 어둠을 지워버렸다. ‘반짝이’들은 선생의 얼굴과 머리카락 속을 들락거렸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났다. 선생의 몸 전체에 벌레가 붙었다. 야광페인트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내 꼴도 우스운지 선생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우우웅우우웅 날갯짓 소리가 숲 전체를 휘몰았다. 선생이 내 귀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이게 바로, 충, 천, 이야! 이걸 찾느라, 죽을 고생, 했다.”
빛무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두꺼워졌다. 수천 개의 크리스털, 수천 개의 찬란한 빛이 눈앞에 가득했다. 눈이 부셔 시력을 잃을 것만 같았다. 머리 위를 맴돌던 빛은 점차 하나로 모여들었다. 벌레가 많아질수록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성냥불을 끄고 난 다음처럼 매캐한 단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벌레들은 대열을 따라 뱅글뱅글 돌며 조금씩 위로 올랐다. 선생의 얼굴이 불이 켜진 듯 환했다. 주변을 돌다 떨어지는 놈도 있었다.
충천은 귀가 아프도록 날갯짓 소리를 냈다. 웅웅대는 소리의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빛의 회오리, 번뜩이는 회오리.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휘저어 빛을 털어냈다. 갑자기 놈들이 내게 덤볐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살갗이 따끔따끔해 몸을 웅크렸다. 선생이 고함을 쳤다. 뭐라고 하는지 벌레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도 빛은 계속 어룽댔다. 벌레들은 일제히 내게 불침을 놓았다. 겁이 덜컥 났다. 성난 짐승 같다. 아니, 이게 더 무섭다. 선생이 우악스럽게 나를 일으켜세웠다. 땀내 나는 점퍼에 싸인 나는 선생의 손을 잡고 소경처럼 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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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식사를 마친 다음 맥주를 주문하고, 먼지 안 나게 마당에 물을 뿌리고, 또 뭐더라? 마음이 바쁘니까 젓가락질이 빨라진다.
“유릿가루를 구해야겠어.”
상추 위에 묵은 된장을 바르며 선생이 말한다. 커다란 상추쌈을 기술적으로 집어넣는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상쾌하다.
“유릿가루는 왜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묻는다. 저놈의 벌레가 보기 싫다. 선생이 자신의 플라스틱 안대에 벌레 그림을 그려넣었다. 잘록한 몸통과 날개, 꽁무니의 불빛까지 커다랗게 그렸다. 모양은 근사하지만 실제보다 훨씬 크고 사실적이다. 나는 그것이 징그러워 눈을 돌린다. 왜 그러냐고 묻기에 솔직히 말했다.
“네 눈에 안 징그러운 게 있냐? 징그럽다는 건 상대적이지. 제발 징그러운 그릇 좀 만들어봐라. 네가 자꾸 고운 그릇만 만드니까 그릇에 기운이 없다.”
매운 꾸지람, 잘 알아들었다. 그래도 저 커다란 벌레를 보며 어떻게 밥을 먹나.
넓적한 상추잎을 골라 손바닥에 올린다. 밥과 고등어살을 상추에 올리자, 이건 왜 안 먹어? 하며 선생은 된장종지를 내 앞으로 밀어준다. 나는 이번에도 고추장만 조금 뜬다. 진흙처럼 시커멓게 굳은 된장은 싫다. 선생은 상추잎에 된장만 발라서 먹는다. 된장을 먹으려고 상추를 이용하는 셈이다. 유릿가루가 왜 필요하냐고 다시 물었다.
“빛을 그릇에 넣을 거야. 점토에 유릿가루를 넣고 모양을 잡아 접시 바닥에 유리 조각을 이렇게 일직선으로.”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눈만 껌뻑인다. 유리. 그러다가 손을 베면 어쩌려고. 유리의 빛. 눈을 찌르는 빛. 솟구치는 빛 알갱이. 잠깐의 생각으로 무수하게 많은 빛이 떠오른다. 슬며시 눈을 감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빛의 무리가 눈의 안쪽으로 시원스레 쏟아진다. 충천이로구나. 선생은 그것을 접시에 담으려 한다. 그 찰나가 아쉬워 그릇에 가두려 한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한발 늦었다. 아니 많이 처졌다. 별수 없으니 나는 나대로의 방법을 찾는다. 오늘부터 밥 많이 먹고 약게 버텨야지. 결심만큼 상추에 밥을 많이 담는다. 선생이 또 된장을 권한다. 이번에는 숟가락에 떠서 준다. 나는 재빨리 쌈을 싸버린다. 보란 듯이 입을 크게 벌려 왁, 하며 집어넣는다. 쌈이 너무 컸다. 입아귀가 늘어나 아플 지경이다. 고추장 때문에 입안이 화끈하다.
선생은 내 밥사발을 번쩍 들어 이리저리 살핀다.
“이거 만들었을 때는 잘 나왔다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별로다.”
선생은 구닥다리라고 일축해버린다. 그렇지 않다. 옥색 바탕에 자주색 그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빼앗긴 밥사발을 되찾는다. 손바닥의 촉감은 반질반질, 울툭불툭. 두 손으로 사발을 받치자 예사롭지 않은 감촉이 손가락을 긴장시킨다. 제멋대로 갈라진 사발 바닥의 균열이 선생의 성미와 비슷하다.
“그럼 유리 작업은 오늘부터 시작인가요?”
“오늘은 작업 없잖아.”
아니, 왜요? 얼굴을 들자 선생의 안대부터 눈에 띈다. 에이 저 놈의 벌레, 크기도 하다. 내 앞에는 언제나 둘이 앉았다. 선생이 나를 보면 눈동자에 든 그놈도 나를 봤다. 이번에는 안대에 든 놈이 나를 넘겨다본다. 내 눈동자에도 선생과 저놈이 들었을 것이다.
“잊었냐? 어제 약속해놓고.”
선생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다정하게 말한다. 내가 갸우뚱하자 이거 보라는 듯 안대를 톡톡 친다. 아차, 오늘밤에는 충천을 보기로 했다. 당황해서 커다란 열무김치를 집어먹는다. 선생은 웃는 얼굴로 쌈을 만든다. 오늘은 중요한 날. 충천을 보는 날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아작아작 열무 씹는 소리가 관자놀이에서 경쾌하게 울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손님을 초대하지 않아 오늘은 단둘이다. 선생과 나만의 피크닉… 멍하게 생각에 잠긴 사이 선생이 내 밥 위에 된장을 슬쩍 올려놓았다. 진흙처럼 시커먼 된장. 방심하다가 당했다.
밤이 무르익는다. 오늘따라 어둠이 온화하게 느껴진다. 선생은 천천히 부채질을 하며 모기를 쫓아낸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덤불숲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벌레 방지 약을 팔뚝과 다리에 골고루 뿌린다. 모기 쫓는 허브향의 팔찌도 낀다. 선생의 팔에도 끼워준다. 여러 번 겪다보니 이력이 붙었다. 전에는 이 마당에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오늘은 호젓하다. 조명도 필요 없고 음악도 필요 없다. 충천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
뒷마당의 밤나무 아래가 명당자리다. 돗자리를 넓게 펼친다. 오늘은 누워서 볼까. 마당에 내놓은 모시방석을 가져온다. 반으로 접어 두 개를 나란히 놓는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건 너무 노골적이다. 방석을 다시 평평하게 깐다. 가급적 멀찌감치 떨어뜨려놓는다.
배달시킨 맥주가 도착했다. 주문했던 품목은 다 왔는데 하나가 잘못 왔다. 다른 담배를 가져왔다. 선생은 독한 팔팔담배만 피운다. 담배 한 보루 때문에 다시 오가기엔 날이 어둡다. 선생이 괜찮다고 하기에 값을 지불했다. 슈퍼 아저씨가 가자마자 선생이 투덜댄다. “운전면허부터 따라고 했잖아. 차 있겠다, 금방 사오면 되는걸.” 나는 웃옷을 걸쳐입고 나선다. 심부름꾼이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이럴 때 몹시 서럽다. 슈퍼에 내려가서 담배를 바꿔오겠다고 나서자 선생이 냉랭한 태도로 담뱃갑을 뜯는다. 파란 연기 사이로 타이르는 목소리. “앞으로도 필요하잖아. 도자기 나를 때마다 매번 택시를 탈 거냐? 아무쪼록 운전면허부터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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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이제부터는 내가 선생을 싣고 날라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만 보면 겁부터 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 말고도 많다. 선생의 눈이 그렇게 되기 전부터도 일은 많았다. 도자기를 포장하고 나르는 일부터 힘에 부친다. 토련기에 들어갈 흙을 옮기고 나면 기운이 쏙 빠진다. 작업실 청소도 해야 하고, 선생의 점심도 걱정해야 한다. 전에는 불 피우는 영감이 잔일을 돌봐줬다. 영감이 나간 뒤로 망가진 선반이며 쥐가 갉아먹은 담벼락이 그냥 방치되었다. 모퉁이마다 거미줄, 말라붙은 흙자국. 물청소를 한번 해줘야 하는데. 무능한 나 때문에 선생이 손해를 본다. 나도 조금은 지쳤다.
“사람을 더 들이면 안 될까요? 운전 잘하고, 선생님 뒷바라지 잘할 사람이 있어야 해요.”
선생은 담배꽁초를 돌에 비벼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동안 찾아왔던 사람들은 선생이 다 돌려보냈다. 동료들이 한꺼번에 나가버린 일이 선생에게는 큰 상처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선생은 선선히 동의를 한다.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네, 놈들이 안달이 났다.”
선생은 벌레집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오늘따라 바람이 시원하다. 밤나무 이파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촉촉한 공기가 목덜미에 가 닿는다. 이번 여름은 덥지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뒷짐을 지고 앞서 가던 선생이 발걸음을 멈춘다.
“너도 나가고 싶은 거구나.”
담담한 목소리가 외려 서글프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선생의 마른 등을 바라보며 그저 따라 걷는다. 아니라고 하면 믿기나 할까. 전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선생이 벌레집에 노란 전등빛을 비춘다. 전과 달리 소리가 몹시 시끄러워졌다. 어지간히 날고 싶은 모양이다. 반죽만 떼어내면 바로 솟구치겠다. 밀가루 반죽으로 벌레집의 입구를 틀어막는 방법은 선생이 배워온 것이다. 이게 없으면 우리 모르게 저희끼리 날아가버린다.
“어서 나와라, 내 눈알 먹지 말고 어서 나와라.”
어둠 속에서 선생이 하얀 안대를 벗는다. 지금은 그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 최근에는 선생이 눈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았다. 작업을 하다 낮잠을 잘 때도 안대를 풀지 않아 나 혼자 흉한 상상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내놓는다. 충천이 날면 눈에 든 놈도 나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놈이 간단하게 빠져나와 선생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쪼그려앉아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듣는다. 웅웅웅 약이 오른 벌레들이 어서 문을 열라고 성화다. 선생이 주머니에서 끌을 꺼내며 나를 본다. 컴컴해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안다.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있다. 선생은 늘 어둠 속에서 나를 본다. 내가 보지 않을 때 나를 본다. 시선을 감추려는 건가, 눈을 감추려는 건가. 한참이나 본다. 선생의 눈 속에서 그놈도 나를 보고 있다. 나도 선생의 눈동자에 들어가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열심히 놈을 꼬드긴다. 이제 그만 나와라. 오래 머물면 날 수가 없다. 선생의 눈이 아닌 네 눈으로 보아라. 어서 나와서 날아올라라. 한 번은 빛을 뿜어라… 선생이 끌로 말라붙은 반죽을 벗겨낸다. 안에서 소리가 요동을 친다. 문을 두들기며 어서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안달을 떤다.
틀어막은 입구를 개봉하자 돌 틈으로 빛이 새어나온다. 한 놈씩 틈을 비집고 나온다. 빛 알갱이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그렇게 많이 봤는데 또 새롭다. 놈들은 곧 분수처럼 하늘로 솟구칠 것이다. 주변이 환하자 선생의 얼굴이 드러난다. 선생의 한쪽 눈에 시선이 간다. 같은 것을 보면서 또 저렇게 웃는다. 나는 고개를 들고 위를 본다. 검은 하늘에 유리알 같은 빛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로니, 이디시』에서 전재 (명지현, 문학동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