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마침내 잠들었다. 우리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다. 둘 다 사내아이였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받고 서며 남편은 룸미러로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남편은 얼마 전 삼백이십 밀리미터 와이드 룸미러를 새로 달았다. 보통 룸미러보다 면적이 확연히 넓고 모서리마다 구십 도로 각이 져 있었다. 아이들이 잠결에 뒤척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뒷좌석에서 들려왔다. 남편은 차선을 바꾸면서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남편은 아이들이 깨어나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남편의 두 눈동자가 룸미러를 흘끔 향하며 얼굴이 긴장하듯 굳었다. 아이들이 깨어나면 차 안이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연년생인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며 떠들었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어서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고 온 남편은 지쳐 보였다. 남편은 두 달 전 불가피하게 직장을 옮겼다. 직장을 또 옮겨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편은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출근을 해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퇴근을 했다. 남편은 간혹 사무실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와 아이들이 잠들었는지를 물어오고는 했다.
전날도 남편은 밤 아홉시쯤 사무실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남편은 다짜고짜 물었다.
“아이들은 잠들었어?”
아이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 말하자 남편은 삼사 초 간 침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침묵하는 동안 남편은 짜증 섞인 한숨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아이들은 좀처럼 잠들지 않으려고 했다.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잠재우는 것은 여간 성가스럽고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었다. 저희들 스스로 잠들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속편했다. 밤 열시가 조금 넘어 남편은 집으로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아이들이 막 잠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군.”
남편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고 사십 분쯤 지나 남편은 집으로 왔다. 남편의 직장에서 집까지는 차로 삼십 분 거리였다. 나는 거실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전자키로 바꾼 뒤로 나는 남편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일일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남편은 내 쪽으로 곧장 걸어오더니, 내 손에 들려 있는 리모컨을 빼앗듯 낚아챘다. 리모컨을 작동해 티브이 소리를 음소거로 해놓았다.
“아이들이 깨면 어쩌려고 그래.”
남편은 낮게 소리 지른 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조금 열려져 있는 방문을 꼭 닫았다. 방문이 닫히는 순간 잠금 고리가 돌아가는 것 같은 찰칵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이 안에서 잠겼을 수도 있었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남편은 문고리를 고친다고 하면서도 고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꼭 닫힌 방문 앞에 서서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방문에 매달아 놓은 박제 새가 날아오르기라도 할 듯 허공을 향해 모가지를 길게 빼고 있었다. 핑크빛 부리가 남편의 눈동자를 파먹기라도 할 듯 그악스럽게 벌어져 있었다. 꿩 종류의 새였는데, 꼬랑지와 날개 부분의 보라색 깃털이 방금 니스를 칠해 놓은 듯 반질거렸다. 일 년 전 남편이 중국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사온 새였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박제 새를 세 마리나 사왔다. 남편은 박제 새 세 마리 중 한 마리를 아이들의 방문에 매달았다. 남은 두 마리는 아이들의 품에 안겨주었다. 아이들은 박제 새를 끌어안고 몹시도 좋아했다.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려고 해서 박제 새를 한 마리씩 안겨주었어.”
내가 농담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남편은 웃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래도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쩐지 정말로 아이들이 박제 새를 한 마리씩 끌어안고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은 잠버릇이 심한 편이었다. 아이들이 뒤척거리다 박제 새의 부리가 아이들의 턱이나 얼굴, 목을 찌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 뒤 나는 소파에서 스르르 일어나 아이들 방문 쪽으로 다가갔다. 방문 손잡이를 움켜쥐던 나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며 낮게 비명을 내질렀다. 박제 새의 부리가 내 머리를 콕 찔러왔던 것이다.
비가 갑자기 흩뿌렸다. 남편은 와이퍼를 작동시키며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횡단보도에서 급하게 신호를 받고 서며 남편이 또다시 룸미러를 재빠르게 흘끔거렸다. 브레이크가 밀리며 차가 불안정하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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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숨
소설가.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가 있고 장편소설로 『백치들』, 『철』이 있다. 현대 '작업'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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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파주에 있다는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경기도 구리에 살고 있었다. 구리에서 파주까지는 넉넉잡아 두 시간 거리였다. 강변북로를 타고 서쪽으로 무작정 달리다보면 자유로에 접어 들 수 있었다. 자유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파주였다. 시간은 오후 세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섯시쯤이면 장례식장에 도착해 있을 것이었다. 장례식장이 파주 어디쯤인지는 남편만이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장례식장에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다. 죽은 이는 남편의 이모부 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남편의 이모부라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갔을 것이다. 아이들은 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대형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과자나 갖고 싶은 장난감을 손쉽게 살 수 있었다. 강변북로가 막히지만 않는다면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가로수들이 어수선하게 흔들릴 만큼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렸다. 대낮이었지만 헤드라이트를 밝힌 차들이 간간이 보였다. 아까부터 남편의 차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차도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흰색 승합차였는데, 남편의 차를 앞지르지 못해 안달이 난 듯했다. 교차로를 통과할 때 흰색 승합차는 우리의 차를 아슬아슬하게 앞질렀다. 우리의 아이들이 타고 있는 뒷좌석 쪽을 들이받을 듯 앞질러서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남편은 반사적으로 클랙슨을 누르며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클랙슨 소리에 아이들이 깨어나기라도 했을까봐 염려가 되어서였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검은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나와 아이들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혼자 장례식장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오후 두시쯤 퇴근해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장례식장에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감기고 얼굴을 씻겼다.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장례식장에 다녀올 수는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냉동만두를 한 봉지 프라이팬에 구워 아이들에게 먹였다. 서른 개나 되는 냉동만두를 아이들이 한 개도 남김없이 먹어치운 뒤에야 냉동만두의 유통기한이 십사 일 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복통을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소화제를 두 알씩 먹였다.
차가 신호를 받고 설 때마다 남편은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차는 첫째아이와 둘째아이가 태어난 산부인과병원 앞 사차선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차량이 유난히 많아서 우리 차는 산부인과병원 앞을 천천히 지나쳐갔다. 산부인과병원 건물은 리모델링을 해 외관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정사각형의 유리가 비늘처럼 외관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나는 산부인과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팔 년 전 첫째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문득 떠올렸다. 남편은 그 애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애를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임신 칠 개월이 조금 못 되었을 때 나는 뱃속의 아이가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귀띔해주었다. 남편은 뱃속의 아이가 자신을 닮았을까봐 두려워했고, 두려워하던 대로 아이는 남편을 꼭 닮아 있었다. 남편은 자신을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애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애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던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술에 취해 그 애가 세상에서 가장 두렵다는 고백을 내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그 애가 아니라 둘째아이다. 그 애가 첫째보다 자신을 더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는 자랄수록 점점 더 남편을 닮아가고 있었고, 남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흘끔 흘끔 룸미러로 아이들을 살피는 사이, 차는 어느새 강변북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강변북로는 교통이 원활한 편이었다. 초저녁처럼 날이 어두워서인지 강변북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켜지 그래.”
남편은 그러나 룸미러를 흘끔거리기만 할 뿐 헤드라이트를 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헤드라이트를 켜!”
“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해…”
남편이 룸미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뭘…?”
“내가 죽였다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해.”
“도마뱀 말이야?”
한 달 전쯤 아이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도마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마뱀은 아이들이 잠든 동안에 사라졌고,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도마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은 도마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도마뱀이 무섭게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무섭게 자라던지, 겨우 남편의 새끼손가락만 하던 녀석이 일 년 만에 남편의 팔뚝만 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잠든 동안 도마뱀이 그만 죽어버렸단다’ 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당장 도마뱀을 찾아내라고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잠든 동안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별 의심을 품지 않았다.
“나는 그저 도마뱀이 죽었다고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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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나를 흘끔 바라보고는 룸미러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도마뱀을 죽였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이 도마뱀을 죽인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내가 도마뱀을 죽였다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해…”
남편은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설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뒷좌석에서 저희들끼리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궁금했지만 룸미러는 운전석 쪽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었다. 남편만이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살필 수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내가 아이들을 살피려면 고개를 뒷좌석 쪽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러나 꼼짝 하기가 싫었다. 고개를 조금 돌리는 것조차 짜증나고 귀찮았다.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도마뱀을 죽이는 시늉을 해보인 적이 있어.”
남편은 속도를 조금 더 높이며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차선을 2차선에서 3차선으로 바꾸더니 속도를 구십 킬로까지 높였다.
천호대교를 지날 즈음 ‘우주관광’이라고 적힌 노란 관광버스 네 대가 4차선으로 줄을 지어 지나갔다. 네 대의 관광버스 전부 운전석에만 사람이 앉아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청담대교를 못미처 네 대의 관광버스는 한 대씩 차례로 우리 차 앞으로 끼어들어왔다. 관관버스들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차선을 바꾸기를 바랐지만 남편은 굳이 차선을 바꾸지 않았다.
“도마뱀을 소파에 거꾸로 누여놓고 모가지를 손으로 조르는 시늉을 해보였어. 도망치지 못하게 한 손으로는 도마뱀의 배를 꾹 누르고서 말이야.”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그 광경을 보았다. 소파가 아니라 식탁이었다. 남편은 유리가 깔린 식탁 위에 도마뱀을 거꾸로 누여놓고 손으로 모가지를 졸랐다.
“장난이었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 거야. 아이들도 그쯤은 알아.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리지도 않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난 장난이 아니었어.”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 높고 크게 튀어나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때 정말로 도마뱀을 죽일 작정이었어…!”
남편은 그리고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살폈다. 곤히 잠들었는지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차량이 조금 많아 속도가 육십 킬로를 넘지 못했다. 적재함 그득 돼지를 실은 트럭이 우리 차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우리 차는 2차선을 달리고 있었고, 돼지들을 실은 트럭은 3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차창을 다 올렸는데도 돼지들이 풍기는 오물 냄새가 차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냄새는 구역질이 나도록 역겨웠다. 적재함에 지붕처럼 씌워놓은 파란 방수천이 날아갈 듯 펄럭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강변북로에서 뜻하지 않게 돼지들을 보면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나할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돼지들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아이들을 깨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장례식장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죽었을까?”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내게 불쑥 물었다.
“뭐가?”
“도마뱀 말이야.”
남편은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원효대교까지 우리 차와 돼지들을 실은 트럭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렸다. 마포대교를 조금 못미처 트럭은 멀찍이 뒤처졌다. 마포대교 위쪽으로는 비가 오지 않았다. 썩은 두부 같은 구름들 사이로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차 안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빛 때문에 눈이 부신지 남편이 미간을 찡그리며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사고라도 났는지 양화대교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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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대교를 지나 자유로에 들어서서도 남편은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 그렇게 네 명이나 타고 있는데도 차 안 공기가 춥게 느껴졌다. 핸들을 움켜잡고 있는 남편의 손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히터를 켰다. 따뜻한 기운이 차 안에 퍼졌다.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차 속도를 백 킬로까지 높였다. 자유로에서의 제한속도는 시속 구십 킬로였다.
행주산성 입구를 지나 조금 더 달려가다가 한강 쪽에서 날아오르는 새 떼를 보았다. 스무여 마리쯤 되는 새들이 허공에서 브이 자를 그리며 질서 있게 날고 있었다.
“저기 좀 봐, 새 떼야…”
수 마리,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은 새 떼가 허공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날고 있는 새도 보였다. 새들은 추락하듯 조금 낮다 싶게 날고 있었다. 자유로 왼편과 오른편으로 펼쳐진 추수가 다 끝난 논에는 새 떼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대체로 몸집이 닭만큼 크고 검은빛이나 잿빛을 띤 새들이었다.
비닐을 물어뜯는 것 같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차 안에까지 들려왔다.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남편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잠든 아이들을 깨워놓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그때, 은색 카니발이 깜박이도 켜지 않고 남편의 차 앞으로 급하게 끼어들었다. 남편이 반사적으로 클랙슨을 누르며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남편은 깜박이를 넣고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을 바꿨다.
“부조만 할 걸 그랬어.”
남편은 차가 막히는 것도 아닌데도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더구나 자유로에는 유턴을 할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당신 이모부잖아.”
“부조만 했어도 됐어. 더구나 이모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걸.”
“그 이모님은 언제 돌아가셨는데?”
“내가 고등학교 삼학년 때 돌아가셨으니까 이십 년도 더 지났어.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내 방에서 훌쩍훌쩍 울고 계셨어. 왜 내 방에서 울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이모가 돌아가셨다고 하셨지. 나는 그저 어머니가 내 방에서 울고 계시는 게 짜증났던 것 같아.”
남편은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며 2차선에서 3차선으로 차선을 바꿨다. 다른 차들도 어지럽게 차선을 요리조리 바꾸고 있었다. 남편은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살피는 틈틈이 사이드미러도 살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면 어머님이 서운해 하실 거야. 지금쯤 장례식장에서 당신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계실 걸.”
남편은 그렇지 않아도 외아들이었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이 지금 입고 있는 검은 양복과 넥타이도 실은 시어머니가 특별히 맞춰준 것이었다.
논에 흩어져 있는 새들 중에는 박제된 듯 꼼짝도 않는 새들도 있었다. 논들 너머 멀리 아파트들이 보였다. 나는 집에 두고 온 박제 새들을 생각했다. 거실 소파에 놓아둔 박제 새들이 살아서 집 안을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플라스틱만큼이나 딱딱한 핑크빛 부리로 집 안의 거울과 유리창들을 모조리 깨뜨려 놓을 것만 같았다.
“호석이는 박제 새가 살아 있는 줄로만 알고 있어.”
호석은 둘째아들의 이름이었다. 남편은 룸미러만 흘끔 바라볼 뿐 아무 대꾸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글쎄 박제 새의 부리로 뭘 넣어주었는지 알아?”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4차선을 달리고 있던 덤프트럭이 3차선을 달리고 있는 우리 차를 깔아뭉개기라도 할 듯 덤벼들었다. 적어도 우리 차의 대여섯 배는 되는 덤프트럭은 무작정 3차선으로 밀고 들어왔고 남편은 차가 휘청거릴 정도로 급하게 2차선으로 차선을 바꾸었다.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두 번 길게 울렸다.
“미친 새끼!”
남편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차를 살피는 것일 수도, 뒷좌석의 잠든 아이들을 살피는 것일 수도, 그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글쎄 배가 고플 거라면서 박제 새의 부리로 생쌀을 한 알 한 알 넣어주고 있지 뭐야.”
남편은 룸미러만 흘끔흘끔 바라볼 뿐 아무 대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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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연구소>라고 적힌 표지판을 지나면서부터였다. 최고제한속도인 구십 킬로를 훌쩍 넘겨 백십 킬로까지 치닫던 차의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육십 킬로까지 떨어지더니 사십 킬로 대까지 떨어졌다. 사십 킬로를 정점으로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아예 멈춰서고 말았다. 앞차가 멈춰서버렸기 때문에 남편의 차도 어쩔 수 없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옴짝달싹 않는 앞차를 향해 클랙슨을 짧게 울렸다. 남편은 클랙슨 소리가 아이들을 깨우기라도 할까봐, 손으로는 클랙슨을 누르면서도 두 눈으로는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그러나 옴짝달싹 못하는 것은 앞차뿐만이 아니었다. 앞차의 바로 앞차도 마찬가지였다. 양옆 차선의 차들 또한 꼼짝을 않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이들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굳이 뒷좌석 쪽을 살피지 않고도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차 밖과는 다르게 차 안은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별다른 뒤척거림도 없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십여 분이 지나도록 차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남편은 시동을 끄는 대신 기어를 중립으로 해놓은 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만 흘끔 흘끔 살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네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선 지 한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히터를 틀어놓아서 차 안 공기가 후덥지근하고 답답했지만 남편도, 나도 차창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갓길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고 있는 여자아이도 보였다. 새들이 끼우룩 끼우룩 울며 차들과 사람들 위를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새들 때문에라도 차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오 분여가 더 지나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남편은 룸미러만 빤히 들여다 볼 뿐 아무 대꾸가 없었다.
“시동을 끄지 그래.”
나는 연료 계기판을 살피며 남편에게 말했다. 연료가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닌데도 남편은 시동을 끄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래도 정체가 곧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십여 분쯤이 더 지나서야 차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들은 이십 킬로에도 못 미치는 속도로 기듯이 움직이며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고 있었다. 백 미터쯤 가다가 차는 또다시 멈춰 섰다. 다른 차들도 꼼짝없이 멈춰 섰다. 차선 위에 어중간하게 서 있는 차도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많겠지…”
나는 중얼거리며 히터를 껐다.
“장례식장에서 애들이 소란이 떨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야…”
차창 밖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리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우리 차 바로 옆에 ‘우주관광’이라고 쓴 노란 관광차 한 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강변북로에서 만났던 관광차는 아닌 것 같았다. 강변북로에서 만났던 네 대의 관광차는 전부 텅 비어 있었지만, 지금 우리 차 바로 옆에 서 있는 관광차에는 사람들이 그득 타고 있었다. 순 늙은 사람들뿐인 걸로 봐서는 단체로 관광이라도 가는 길인 듯했다. 늙은 사람들은 잠들어 있거나, 뭔가를 우물우물 먹고 있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단체로 통일동산이나 판문점을 둘러보러 가는 길인지도 몰랐다. 차창에 머리를 찧듯이 박고서 잠들어 있는 늙은이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늙은이의 입이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이 타고 있는 우리 차를 향해 발악적으로 벌어져 있었다. 그저 무심히 늙은이의 입 속을 들여다보던 나는 그만 소리를 내질렀다.
“왜 그래?”
내 비명 소리에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혀가 없어…!”
“무슨 소리야?”
“혀가 없다니까…!”
나는 손으로 늙은이의 입 속을 가리켰다. 남편은 그러나 룸미러로 뒷좌석의 잠든 아이들을 살피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두려웠지만 늙은이의 입 속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유심히 들여다봤지만 금을 씌운 어금니만 얼핏 들여다보일 뿐 혀는 찾을 수 없었다. 잠이 들어 있어서인지 늙은이는 죽은 듯 보이기도 했다. 차 밖에서 들여다보면 내 아이들도 죽은 듯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 아이들도 저 늙은이처럼 잠들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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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큰 사고가 벌어진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사십여 분이나 지나도록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내 말 듣고 있어?”
남편은 그러나 입을 꾹 다문 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만 살폈다.
“돌아가신 이모부는 어떤 분이셨어?”
나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남편에게 물었다.
“이모부가 어떤 분이냐고 물었어.”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하며 히터를 다시 켰다.
“모르겠어…”
남편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고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모르겠다고 했잖아…”
남편은 두통이라도 오는지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살폈다. 기어는 중립에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이모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당신 이모부였잖아. 게다가 그분은 바로 전날 밤에 돌아가셨어. 돌아가신 지 스물네 시간도 안 지났어.”
“목소리 좀 낮춰. 그러다 애들이 깨겠어.”
남편은 내 목소리에 애들이 깨기라도 할까봐 짜증을 냈다.
남편과 내가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이십여 분이 지났다. 그 이십여 분 동안 나는 히터를 끄고 켜기를 대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히터를 켜면 차 안 공기가 답답할 만큼 더웠고, 끄면 금세 추워졌다.
나는 팔짱을 끼며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정체가 앞 차의 잘못이기라도 한 듯, 앞차를 쏘아보았다. 우리 차 바로 앞에 서 있는 차는 흰색 아반떼였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만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서로를 향해 거칠게 손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차 뒤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은색 승용차가 갑작스레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차 안을 후비듯 비추었다. 어두침침하던 차 안이 느닷없이 밝아져서 나는 마치 발각이라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흐렸기 때문에 뒤의 차가 고의적으로 헤드라이트를 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멈춰 서 있는 대부분의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실내등까지 환하게 밝히고 있는 차도 더러 보였다. 헤드라이트를 밝히지 않은 차는 우리 차뿐인 것 같았다.
“저기 좀 봐?”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남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강변북로에서 만났던 그 돼지들이야.”
나는 남편이 돼지들을 바라봐주기를 바랐지만, 남편의 두 눈동자는 아예 룸미러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돼지들일 거야.”
남편이 돼지들을 바라보는 척하다가 얼른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살들이 뒤룩뒤룩 쪘어.”
남편은 돼지들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기지개를 켜며 룸미러만 흘끔거렸다. 나는 어쩐지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바로 뒤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차 안에 남편과 나, 둘밖에는 타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차들이 꼼짝도 안 하는 바람에 조금 더 살게 되었어.”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차 안이 갑자기 조금 전보다 더 밝아져 있었다. 비현실적인 빛이 차 안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이상해… 왜 이렇게 밝은 거지?”
빛이 룸미러와 좌우 백미러에 반사되며 미간이 찡그려질 만큼 눈이 부셨다.
“너무 밝아…!”
“뒤 차가 상향등을 켰어.”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뒤 차가 헤드라이트를 켠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상향등을 켠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향등은 시야가 현저하게 어두울 때나 점등하는 장치였기 때문이었다. 날이 어둑하기는 했으나 헤드라이트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을 뿐만 아니라, 차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향등 불빛 때문인지 남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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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두 눈을 룸미러에 고정시킨 채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운전을 하는 동안 참아서인지 담배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담배를 피우려거든 차 밖으로 나가 피우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차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도 차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은 차창을 반 뼘 정도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담배를 급하게 빨며 룸미러를 흘끔 살폈다. 차창을 아주 조금밖에는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담배 연기가 그대로 차 안에 들어찼다.
상향등 불빛과 담배연기가 뒤엉켜 차 안이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나, 그리고 잠든 우리의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 것이 1998년에 출고된 금색 베르나 승용차가 아니라 매캐한 담배연기와 서늘하도록 푸르스름한 상향등 불빛인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새들의 울음소리와 클랙슨 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차 밖에서 이명처럼 들려왔다. 나는 안전벨트가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안전벨트를 풀지는 않았다. 차 안에 안개처럼 들어차 있던 담배연기가 걷힌 뒤에도 상향등 불빛은 집요하게 우리 차를 비추고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편을 흘끔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뒤 차 말이야…”
꼬리에 꼬리는 문 차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차에서 내리고 있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새들도 눈에 띄게 몰려들고 있었다. 내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새떼들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뒤 차는 상향등뿐만 아니라 안개등까지 밝히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중얼거리며 한강 쪽에서 몰려오는 새 떼를 보았다. 적어도 서른 마리는 될 것 같은 새 떼가 브이 자를 그리며 날아오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예 행렬을 지어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앞쪽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도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지 라디오를 틀고 교통방송에 채널을 맞추었다. 남편은 라디오 소리가 아이들을 깨우기라도 할까봐 소리를 최대한 작게 해놓고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교통방송은 서울시내와 내부순환도로의 정체 상황만을 알려줄 뿐 자유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통정체 상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도대체 왜 아무도 무슨 일 때문에 차들이 꼼짝도 안 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 걸까?”
나는 남편이 차에서 내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알아봐주기를 바랐지만 남편은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만 살필 뿐이었다.
“이러다 장례식장에도 못 가겠어.”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내 탓이 아니야.”
남편이 룸미러를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누가 당신 탓이래?”
“하여튼…!”
시간은 어느새 저녁 여섯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뒤 차는 여전히 헤드라이트와 상향등, 안개등을 전부 밝히고 있었다. 차가 들들 떨렸다. 폭발이라도 할 듯 들들 떨리는데도 남편은 룸미러만 흘끔거릴 뿐 시동을 끄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와야겠어.”
불안해진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차문을 닫으며 차 안을 들여다보니 남편은 룸미러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차 뒷문에 매달려 차창 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뒷문 차창의 썬팅이 지나치게 짙어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룸미러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차 밖으로 나와 보니 차 안에서 짐작하던 것보다 정체가 더 극심했다. 소실점 끝까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었다. 행렬을 이루어 앞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들 때문에 사람들은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초초해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년 남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지만, 남자는 자신도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검정색 카니발 안으로 숨듯이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 행렬에 끼어 걷기 시작했다. 내 바로 앞에서는 갓난아기를 안은 키가 작고 마른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는데 얼굴이 여자의 머리카락에 파묻혀 있었다. 허리까지 길게 기른 여자의 머리카락은 굵고 검었으며 억세어 보일 만큼 뻣뻣했다.
“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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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바로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머리카락 때문에 애가 질식하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여자는 뒤를 돌아다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열 발짝쯤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고장이라도 난 멈춰 서 있는 수많은 차들 속에서 우리 차를 찾았다. 노란 관광차 덕분에 우리 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뒤 차가 내쏘고 있는 헤드라이트와 상향등, 안개등 불빛 때문에 우리 차는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 차 안에 남편과 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잠든 내 아이들이… 차 안은 마치 텅 빈 듯 보이기도 했다. 그 안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좀 비켜요.”
오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지나갔다. 나는 휘청거리며 행렬을 따라 앞쪽으로 더 걸어가야 할지, 아니면 그쯤해서 우리 차로 되돌아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계속 앞쪽으로 걸어가다가는 남편의 차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깨어났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남편 혼자 두 아이를 감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한 떼의 검은 새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새들은 지나치게 낮게 날고 있었고 저주를 퍼붓듯 끼우룩 끼우룩 울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들려올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올려 얼른 머리를 감쌌다.
나는 떠밀리듯 열대여섯 발짝 더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훌쩍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거센 물살을 거스르는 심정으로 사람들을 거슬러 우리 차로 향했다.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치거나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깜짝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물이 올라오도록 멀미를 느꼈다. 남편과 아이들이 타고 있는 차는 여전히 텅 빈 듯 보였다.
나는 간신히 남편과 아이들이 타고 있는 차로 되돌아왔다. 우리 차와 앞 차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토했다.
“차들로 꽉 막혔어.”
나는 차에 올라타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나를 흘끔 바라보는 척하다가 룸미러를 흘끔 흘끔 살폈다. 나는 남편을 흘겨보다 앞 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앞 차는 운전석에만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지 알아보기 위해 차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조수석에도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도 나처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러 간 모양이었다.
“나는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있어… 당신의 이모부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남편의 입이 벌어지더니 가늘게 떨렸다.
“당신은 왜 나한테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조차 말해주지 않는 거야?”
남편이 빨려들기라도 하듯 룸미러로 머리를 바짝 들이밀었다. 벙긋 벌어져 있는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해가 안 돼…”
나는 중얼거리며 차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돼지들을 실은 트럭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중키의 통통하고 늙은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트럭과 돼지들을 버려둔 채 앞쪽으로 걸어가는 행렬을 따라 사라졌다. 한 무리의 새떼가 요란하게 울며 몰려오더니 돼지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트럭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공포에 질린 돼지들이 트럭 좁은 적재함 속에서 서로 뒤엉키며 쾌홱 쾌홱 울어댔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더 몰려왔고, 돼지들 주위를 맴도는 새들과 한 무리를 이루었다. 새들은 부리로 돼지들의 살점을 뜯어먹기라도 하듯 공격했다. 새들이 내지르는 울음소리와 공포에 질린 돼지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뒤섞여 차 밖은 몹시 시끄러웠다.
“새들이 저러다 돼지들을 다 잡아먹어버리겠어.”
새들은 정말이지 돼지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듯 그악스럽게 굴고 있었다. 내가 새들과 돼지들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앞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앞차도 텅 비었어…!”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지 무려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만큼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잠이 몰려왔다. 멀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좀 자야겠어.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깨워주겠어?”
남편은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나는 남편이 깨워주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남편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 또한 잠들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나는 기절이라도 하듯 잠들었고 새들의 발악적인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들은?”
나는 얼떨결에 남편에게 그렇게 물었다. 남편이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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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어.”
나는 아이들이 자고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꿈을 꾸었어.”
깜박 잠든 동안 나는 한 무리의 새 떼가 돼지를 통째로 잡아먹는 꿈을 꾸었다. 새들이 돼지의 등에 까맣게 내려앉아서는 핏빛 부리로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꿈 얘기를 남편에게 해주었다.
“꿈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새들이 돼지를 잡아먹었어.”
“그럴 리가…”
“돼지의 등과 머리에 까맣게 내려앉아서는 부리로 살점을 뜯어먹고 있었어.”
나는 남편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꿈을 꾸지 않았거나 남편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잠들었던 게 아닌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던 걸까.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새떼가 돼지를 잡아먹는 광경을 구경이라도 했던 것일까. 어쨌든 돼지들이 실려 있는 트럭 주위를 빙빙 맴돌던 새들은 이미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앞차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다른 차들도 둘러보았는데 내가 잠들기 전보다 텅 빈 차들이 더 늘어나 있는 것 같았다.
대여섯 마리의 새들이 강 쪽에서 도로 쪽으로 끼우룩 끼우룩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닭만큼이나 큼직하고 검은 새들이었다. 새들이 우리 차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가 싶더니, 그 중 한 마리가 차 앞유리에 와서 부딪쳤다. 새는 차가 뒤흔들릴 만큼 세게 부딪쳤다. 남편과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이 반사적으로 클랙슨을 눌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남편의 두 눈이 룸미러에 고정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아이들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앞유리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털실 뭉치 같은 것을 보고는 한 번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지?”
나는 그것이 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에게 물었다.
“새잖아.”
남편이 마지 못한다는 듯 건성으로 말했다.
“죽은 것 같아…!”
새는 모가지가 부러지고 몸통이 터진 채로 앞유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남편이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새는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와이퍼는 새를 더 비참한 몰골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그런데도 와이퍼의 작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워셔액까지 분사하고, 와이퍼를 더 빠르게 작동시켰다. 왼쪽 와이퍼가 새와 엉키며 작동을 멈췄다. 새의 뭉개진 몸통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와이퍼로는 안 되겠어.”
남편은 그러나 와이퍼의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와이퍼까지 고장 나겠어. 그만 해!”
남편이 그제야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와이퍼의 작동을 멈추었다.
“내려서 치워야겠어.”
“내버려둬…!”
남편이 낮게 소리 질렀다.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잖아. 내버려두었다가는 앞유리가 피 범벅이 될 거야.”
“내버려두라니까!”
“아이들이 깨어나면 놀랄지도 몰라. 아이들한테 죽은 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주유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화장지를 챙겨들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새의 날개를 집으려는 순간 새의 부리가 나를 향해 벌어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모가지가 부러지고 몸통이 터졌는데도 새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나는 앞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피가 묻은 화장지 뭉치를 도로에 버리고 차에 올랐다.
“새가 살아 있어.”
내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그러게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그렇지만 곧 죽겠지. 날도 추워지고 있잖아. 앞유리에 달라붙은 채 얼어버리면 어쩌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치워버려야 하는데… 아이들이 무척이나 놀랄 거야.”
남편은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움켜쥔 채 룸미러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새를 치워야겠어.”
나는 다시 차 밖으로 나갔다. 손가락으로 새의 모가지 쪽을 건드려보았다. 새는 죽은 것 같았다. 나는 날개 끝을 잡고 새를 집어 들었다. 새는 웬만한 닭보다도 무거웠다. 나는 새를 들고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남편이 차창을 아주 조금 내렸다. 나는 남편에게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말하고 차 뒤쪽으로 걸어갔다. 피를 뚝뚝 흘리며 축 늘어져 있는 새를 트렁크에 던져 넣었다. 새의 벌어진 주둥이에서 끼이이,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새의 숨이 아직도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성급히 트렁크를 닫았다. 뒤 차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뒤 차도 텅 비어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상향등, 안개등을 켜둔 채로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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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으로 걸어가는 행렬이 점차 거대해지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손에 풍선을 들고 걸어가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메밀가루를 수북이 뿌려놓은 듯한 허공에는 새들이 널려 있었다. 살아 있는 새들이 아니라 박제된 새들이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행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얼른 차에 올라탔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는 남편에게 경고라도 하듯 말했다. 남편은 그러나 룸미러만 흘끔 바라볼 뿐 차 시동을 끄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보고 와야겠어…”
남편이 룸미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는 차 시동도 끄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남편이 행렬에 휩쓸리는 것을 바라보며 차창을 내렸다. 남편을 불렀지만, 남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연료 부족 경고등이 깜박 깜박 들어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남편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 둘 중 한 명은 차 안에 남아 있어야 했다. 잠든 아이들만 차에 둘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만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무척이나 놀랄 것이었다.
나는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룸미러는 뒷좌석 쪽을 향해 이물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이십 분이 지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그만 깨울까 하다가 관뒀다. 남편이 차로 돌아올지 몰랐다. 아이들이 깨어 있으면 남편은 무척이나 당황할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남편은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차 트렁크에 처박아둔 새가 지금쯤이면 죽었을 거라는 문득 생각을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차 시동이 꺼졌다. 나는 깜짝 놀라 룸미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흘끔 흘끔 바라보다가 룸미러로 손을 뻗었다. 룸미러의 방향을 내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틀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뒷좌석이 내 시야에 온전하게 담겨올 만큼 룸미러의 방향이 내 쪽으로 틀어졌을 때, 나는 룸미러를 운전석 쪽으로 홱 돌려버렸다. 내가 너무 세게 밀어서인지 덜커덕 소리가 나더니 룸미러가 반쯤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룸미러를 쏘아보다가 나는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꼭 닫았다. 여전히 우리 차를 향해 헤드라이트와 상향등, 안개등 불빛을 내쏘고 있는 뒤 차를 잠깐 바라보다가 사람들에 휩쓸려 앞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백 미터쯤 걸어가서야 진을 치듯 몰려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겹겹으로 진을 치듯 서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을 보았다. 지금쯤 내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며… (*)
『작가세계』 2008년 가을호, 통권 78호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