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문화웹진 ‘나비’에 실린 정진세 작가의 「군대문학의 종언」은 계간지 『자음과모음』2009년 여름호 <미니픽션>에 실린 축약본입니다. 이번 주 ‘나비’는 정진세 작가의 「군대문학의 종언」원본(미발표작)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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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대문학의 종언
“내가 「군대문학의 기원」을 구상한 것은, 98년 프랑스월드컵의 열기가 사그라들고, 막 일병을 달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국방부 소속 일본어 통역병이었던 나는 전방으로 재배치 받아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갓 부임한 소위와 함께 이동하던 차에 지원차량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파속에 휩쓸려 갈아타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했고, 소위도 사라졌습니다. 급한 마음에 다음역에 내려 전화를 했습니다. 헌병이라도 있었으면 잡혀갈 일일 테지만, 다행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사용은 불법이지만 소위는 휴대폰을 갖고 있었습니다. 양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받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소위도 놀랐는지, 전화 속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갈아탔니, 고진?”
나는 군대문학의 위기가 이러한 예로부터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군기(軍氣) 상실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다. 군대문학의 기원이 엄격한 군기에서 비롯되었듯이, 집단의 영향력 저하가 현저해진 지금, 개인의 나사 풀린 행태는 이제 군대문학을 접어야할 시기라고 단정하게끔 하는 바입니다.”
2. 장흥(長興)으로 가는 문열(文列)
“오늘도 이렇게 문학열차를 찾아주신 많은 문학청년, 문학중년 그리고 한국문학을 사랑하시는 독자여러분 반갑습니다. 국립 문예원과 국방부가 합동으로 마련한 민족문학기행 문학열차가 어느덧 벌써 3번째 출장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문학평론가 고진씨를 모시고 군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주제로 약 1시간 반 동안 강연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에는 선생님께서 선별한 문학작품의 낭독 시간도 있사오니, 자리를 뜨지 마시고 경청하여 주십시오. 하긴, 열차 안이라 어디 갈만한 데도 없군요. 하하하.”
덜컹 덜컹, 열차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주욱 나아갔다. 강사의 소개말을 마친 이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젊은 시인이었다. 열차가 제법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데도 그는 침착하게 균형을 잘 잡고 있었다. 완전히 수리된 열차의 내부는 마치 작은 강의실처럼 느껴졌다. 문학열차가 사용하는 칸에는 서른 남짓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에서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이 면면에 가득했다. 모두가 빠짐없이 수첩을 꺼내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광경이 더욱 강의실을 연상시켰다. 앞줄에서 세 번째 창가에 앉은 나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녹음기의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열차는 장흥으로 간다. 몇 시간동안은 취재라는 명목으로 그 강의를 꼬박 기록해야 한다. 나는 월간 <우주문학>의 취재 담당 새내기 기자다. 열차는 수원을 지나고 있었고, 문학평론가 고진의 강의는 이제 막 서두를 끝냈다.
“군대문학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육군의 창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무하던 내무반의 서재는 전후(戰後) 『무찌를래! 공산당』, 『6.25의 진심』, 『성웅, 맥아더』 과 같은 반공서적으로 풍성하게 채워졌습니다. 군대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풍성함 속의 획일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혹시 여기 군대 경험이 있으신 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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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정진세
연극인. 극단 문(Theater Moon) 소속 작가. 2008년 희곡 <디아제팜, 삼촌>, 음악극 <미인>, 인형극 <나의 열살> 등을 쓰고 공연했다. 현재 뮤지컬 <쌈마미아!>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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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개중에는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을 귀에 붙여 올린 여자도 있었다. 군대에서 읽은 책 중에 기억나는 책이 있냐는 고선생의 물음에, 사람들은 군대문학이어야 하느냐고 반문했고, 고진선생은 옅은 미소를 띠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직된 목소리의 승객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전쟁과 평화, 삼총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군대에서 금서(禁書) 아닌가요”
시인의 응대에 웃음의 물결이 열차 안에 번졌다. 딱딱하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고진 선생은 입으로 손을 가리며 웃었다.
“세계명작의 배급은 군대문학의 다양화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80년대 동서양문학이 동시에 배급되었을 때, 동양권의 우세한 수용으로 판명났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많이 접했던 책은 『영웅문』이나 『삼국지』 였을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앞선 답변자가 열거했던 책 제목에 대해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들의 질시어린 시선이 단번에 정리된 듯 했다. 그들은 고진선생의 강의에 퍽 빠져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선생이 즐겨 사용하는 말투와 예(例)는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구석이 있었던 게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열차의 파열음도 묘하게 어우러져 집중력을 더해주었다. 대타로 취재를 내려오긴 했지만 적응하기 수월한 분위기였다. 그냥 가만히 수업을 듣다가 정해진 질문을 던지면 된다.
“군대문학이 위대한 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김진명(眞明)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발표되면서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 이현세 작가의 『까치 병장』 이나 『울부짖는 산하』 같은 역작이 있기는 했지만 만화가 아닌, 장편 소설로, 또한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무.꽃.피』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선생의 입에서 책 제목이 나오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경탄의 소리를 냈다. 시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흘러내린 안경을 살짝 올리고 선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북한이 적이 아닐 수 있다는 발상은 다수의 적들을 양산해 냈고, 이후 군대문학은 실로 다양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동시에 군대문학의 위기의 단초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군대문학의 역작인 『데프콘』 시리즈 - 한중(韓中)전쟁, 한일(韓日)전쟁, 한미(韓美)전쟁이 완간되고, 더 이상 군인이 맞설 수 있는 적이 없을 때 이미 종언의 징후들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선생들은 올바른 말을 사용하자고 입을 모으지만, 그들의 말투는 부지기수로 번역체다.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의 다독(多讀)을 말해 준다. 외국에서 공부한 이들은 자연스레 무엇에 의하여, 무엇이 되어졌다는 ‘구조’ 적인 논리 설명의 말투가 입에 배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여’ 나 ‘내가 도대체 뭔 잘못을 했다는 거여’ 라는 - 열차 밖의 풍경 속에나 어울릴 법한 - 일자무식의 촌부(村夫)들처럼 뒤떨어진 사고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뇌구조를 갖고 있었다.
“물론, <DMZ>나 <실미도>와 같은 군인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문제작들은 존재했습니다 만 내무반에서 장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군대문학의 서가(書架)는 다양해져서 『연탄길』 이라든지, 『괭이부리말 아이들』 같은, 전혀 군인과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이 또 다른 다양성을 이끌어 낸 셈이지요.”
터널을 지나자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고진 선생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군대 생활이 떠올랐다. 열차 창밖 너머에는 괭이 부리말 아이들처럼 생긴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두루치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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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대문학의 정의
“선생님, 그런 관점에서라면 야설(夜說)도 군대문학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다지 재미있는 농담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가 짧고 키가 작으며 험상궂게 생긴 질문자는 얼굴이 발개졌지만, 꾹 참고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사내는 내심 야설이 군대문학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듯 했다.
“포르노 그라피라고 하죠. 수용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군대문학은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곤 합니다. 즉, 군인에 의한, 군인을 위한, 텍스트이기 때문이죠. 허나 고전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군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군인’ 이 등장 인물이어야 하는 필연성을 가지지요. 그러나 상식적으로 포르노에 ‘군인’ 이 나오겠습니까?”
적절한 응수에 열차에 모인 사람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계속해갔다. 명쾌한 구석이 있는 논리였다. 그러고 보니 야설에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등장해 왔다. 군대문학에는 다소 금욕적인 바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 이라는 특정 신분이 심리적 억압기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이를 깬다면, 크게 주목받을 수 있는 화두가 되리라. 수첩의 맨 뒷장을 펼쳐 빈 공간에 군대문학과 야설, 이라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메모했다. 생각이 여기가지 미치자 갑자기 시(詩)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내뱉으며 차창 너머의 들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택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군대문학은 철저하게 개인의 군복무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여야 했었습니다. 그것은 군인이야기이며, 동시에 군대이야기입니다. 개인과 집단이 혼연일체되어 전투를 치러 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문학이야말로 최강의 군대문학인 셈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적의 개념이 혼란스럽게 되었을 때 더 이상 군대는 주적으로 인한 갈등, 소설에선 중요한 요소이지요. 이를 생산해낼 동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연일체. 한때는 작가를 꿈꾸었다. 국문학과를 다니던 시절, 열에 다섯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열에 셋은 작가를 꿈꾸었으며, 열에 둘은 공부를 계속하려 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공부를 할 거라는 말을 해 왔고, 결국은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다행히 국문학과 관련된 직종이고, 글은 계속 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문학이라는 세계와 접해있을 뿐 그 자체는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혼연일체지, 양다리는 아니다.
“남한의 적, 역사의 적이 가상의 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군대문학의 종언의 징후 배후에는 ‘저그’, ‘프로토스’ 라는외계의 적들이 있습니다. ‘공군’ 에서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존재물들은 전략으로 운용하는 스포츠를 받아들임으로서 ‘상무’ 정신은 가상 세계로의 확장을 꾀하게 된 것입니다.”
젊은 친구들은 피식, 입꼬리가 올라갔다. 표정에는 이미 저들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본질적으로는 영상문화의 침투입니다. 과거에 글과 만화로 대체되던 전투씬은 <라이언 일병구하기> 에서 보여준 전투장면으로인해 보다 현실화되었습니다. <블랙 호크다운> 이라는 영화는 리얼리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문학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쓰리킹즈> 라는 영화는 패러디 문학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비견될만한 것이라면, <쓰리킹즈>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비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거대서사적인 씨퀀스는 군대문학이 가지고 있는 장엄성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는 군대문학의 종언의 실질적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웰컴투동막골>은 선생님께서 앞서 언급한 『돈키호테』 였죠? 이같은 패러디 문학의 영역에 다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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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하던 시인은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한국적인 사례를 들어주었다. 방청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그의 과도한 친절이 그들의 지적수준을 폄하하기라도 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 앉은 줄무늬 스웨터의 여인은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아아’ 하며 입을 벌렸다.
“실제로 군대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 던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읽는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이현세 『남벌』의 ‘국경’ 의 개념을 영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세대 장병들은 이미 전쟁과 전투의 현장성과 핍진성을 영상으로 체험한 세대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문자 상상력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전쟁’만 나오면 군대문학으로 분류했던 과거 방식도 조만간 사라질 것입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 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발간 당시에는 훌륭한 진중문고였습니다만 지금은 작가의 다른 작품 『남한산성』과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이 그리 다르게 분류되지 않습니다.”
선생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급한 듯한 진행이 버거운 걸까, 종언을 맞이하는 작금의 사태가 애석했던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근본적으로 요새 군인들은 스토리를 읽으며 자신의 일상과 가상 전투를 일치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진중문고가 군인의 삶과 유리될 때 내무반의 서가는 사회의 서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군대문학의 정체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셈이지요.“
녹음기의 액정 시간을 확인해 보니 48분이 흘렀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간다. 아무래도 강의가 지루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행 떠날 때의 설레임이 애틋함으로 바뀐 것 외에는 열차 안의 큰 변화는 없었다. 낭독과 여행의 결합, 문학기행이라는 의외의 프로그램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시인의 꿈은 눈물이 나올 만큼 삶과 비참하게 연결되어 있다. 애써 지우려고 노력해 왔다. 자신에게 솔직해 지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곳은 ‘군대’ 에서였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금씩 해 나갔던 습작. 지난 기억을 떠올리면 그 때의 절절함이 온몸을 에워싼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직업상 작가를 만나면 신경이 곤두서고 몸이 굳어진다. 속내를 모르는 작가들은 냉정하고 사무적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제길, 저놈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다.
“군대문학의 종언은 군 복무기간이 1년 6개월로 줄어듦에 따라 거의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계급에 시간이 최소한 6개월 이상 부여될 때만이 자신의 이야기는 개인사(史)가 됩니다. 그 이하는 단순히 '체험'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군인 작가들이 자신의 역사를 말해왔습니다만, 이제 군인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단순히 나열하는, 이른바 고백록의 형식을 띄게 될 것입니다. 경험을 말하는 정도의 고백록이라면, 군대문학은 권위를 잃게 될 것이고 과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다양해지는 한편, 단편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내가 군대 있을 때는…" 이라고 시작되는 고백은 보편성과 역사성을 지닌 이야기였습니다만, 지금의 군대 이야기는 모두가 공감하기에는 너무 고생(苦生)의 기반이 허약합니다. 진정성이 떨어진 문학은 결단코 문학이 아닙니다. 확대 재생산된 담론일 뿐이지요.”
고백록이라, 군대에서 쓰던 수양록이 그러했다. 상상력과 문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되도록 솔직하게 경험을 옮겨 적곤 했다. 이 방법은 입대 전 재학시절 수업시간에 현역 작가로부터 들은 일종의 ‘기술’ 같은 것이었다. 무턱대고 스스로 솔직해지려고 애썼고, 경험 속에서 가장 순수한 감정들을 뽑아내려고 머리를 싸맸다. 결과는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된 수양록이 부대 상관에 의해 공개되면서, 부대는 뒤집어졌고, 그리하여 수양록에 등장했던 고참들은 영창 신세를 졌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면, 과거 군대문학이 추구하는 군대축구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따라서 보편성과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는 없으면서 호응하는 독자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의 시시함이랄까. 그 전통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축구' 소재의 군대문학은 사회문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전통의 상실은 군대문학의 종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의 기억은, 되도록 지우려고 다짐했으므로, 그만 두기로 하자. 쉽게 지워지지 않을 테지만. 군대문학의 종언이라. 취재는 늘 짓이겨진 시인의 심장을 다시금 줍고, 털어 확인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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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대문학 종언의 예
“제가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 두 편의 ‘소설’ 은 바로 군대문학이 종언을 구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은 본격 군대문학이며, 한편은 일반 대중 소설입니다. 이 두 편이 어떻게 ‘군대’ 를 보고 있느냐, 군대 이야기가 어떻게 다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책 선정의 기준이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연분홍 가방 속에서 준비한 두 편의 책을 꺼냈다. 한편은 낯이 굉장히 익었고,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이에 맞춰 사람들도 각자 준비한 책을 꺼냈다. 완전히 새 책도 있었고, 하도 읽어서 낡은 책도 있었다. 두 권이 문학열차에서 낭독할 책들이었다. 선배가 전해준 서류 봉투 안에서 두 편의 책을 꺼냈다.
“이 책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준비 못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출간된 이 책은 군대문학을 부정하는 전형적인 텍스트입니다. 여기서 군대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루어지는 지 한번 읽어 봅시다. 어디냐 하면…”
“203페이지입니다.”
방청객 속에서 야단이었다. 시인은 일어나, 책의 쪽수와 읽을 사람을 지목해 주었다. 맨 앞줄에서 경청하던 젊은 학생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또박또박 낭독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과연, 5분후의 삶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흥에서 돌아온 나는 조르바의 조언대로 입대를 했고, 누구의 조언도 필요 없이 당연하게 제대를 했다. 군대의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별로 할 얘기도 없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군대 얘기 따윈 들어왔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책의 앞뒤 장을 넘겨보는 사람도 있었고, 눈을 찌푸리며 방금 읽은 구절을 확인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독자들은 자신들이 이 구절을 발견했을 때의 상실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치명적인 뭔가를 빠뜨린 듯한 충격이었다. 고진 선생은 덮은 책을 흔들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작가는 299페이지에 달하는 ‘나’ 의 이야기 가운데 군대의 경험을 단 한 줄로 끝내며, 이도 부족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라는 단정적인 어투로 기록을 마치고 있습니다. 군대문학을 매도(罵倒)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인이 건네준 또 다른 소설을 건네받은 고진 선생은 흥분을 누그러뜨리고, 사람들이 잘 보이도록 자기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책을 세워 놓았다. 표지에는 군인과 축구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반면 정진삼 작가의 『군대스리가』 는 20년을 살아온 ‘나’ 의 경험을 ‘군대’ 와 결부시켜 진술하고 있습니다. 군대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텍스트라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앞부분을 낭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1년 1월. 신병으로 부대에 전입 왔을 때, 맞은편에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 또 하나의 신병이 있었다. 그의 오른편 가슴팍에는 휘갈겨 쓴 명찰이 붙어 있었다. 이. 문. 원. 글월 문(文)자에, 멀 원(遠). 그 이름에 걸맞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그 마인드에 어울리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일주일 앞선 신병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참 진(眞) 자에, 석 삼(三) 의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에 걸맞는 정신세계와, 그 정신에 맞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보다 일주일 늦은 신병이었다. 이문원은 내 가슴팍에 달린 이름을 뚫어지게 보고는 마치 자기가 고참이라도 되는 듯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 감히, 이등병이? 웃어? '웃는 이등병' 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터라, 화들짝 놀랬고, 그는 곧 미소를 감추었다. 그것이 그와 첫 대면이었다. 그는 생김새나 이름으로나, 마인드로나 88사단 무적폭풍 수색대대에 어울리는 군인임에 분명했다. 그에 반해 나는 수색대에 어울리기는커녕 폭풍에 휩쓸려 날아갈 듯한 체구에, 수색대가 오히려 찾아서 구조해야할 법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행정 절차상의 오류거나,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증거였다.”
“이 작품은 굴욕과 창피의 88사단이라고 불리는 육군 최후방 보병사단 무적폭풍부대의 축구 리그에서 수색대대가 결승에 진출하는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지요.”**************************************************
5. 군대문학의 본질
군인(軍人)과 문인(文人)은 모두 군대와 문단에서 활동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때 문인과 군인의 숫자는 비슷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수적으로 우세한 문인들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다. 또한, 선생님이 연필을 가지고 오지 않은 학우에게 “군인이 전쟁 갈 때 총 놓고 가냐?” 라고 하는 말에서는 둘의 원형적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별다른 특기 없음으로 보병이 되고나서는 훈련과 초소 근무로 2년을 보냈다. 총을 멘 오른쪽 어깨의 주머니엔 항상 펜을 끼워놓았다. 군대는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므로, 주로 짬이 날때는 뭔가를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배겨내지 못했으리라. 군대에서 습작의 공간이었던 초소의 이름이 불현듯 떠올랐다.
“샤갈의 눈 내리는 초소”
2평 남짓한 초소에는 커다란 샤갈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멘트로 사방이 발라진 회색벽 한 가운데 시계. 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 후임병은 창문 밖으로 공간(空間)을 경계(警戒)하고, 고참병인 나는 벽에 걸린 시계로 시간(時間)을 경계(境界)한다. 시계는 늘 정확했다. 심장 박동과 일치하게 되면, 일초에 한 단어씩 생각이 났고, 1분이 지나면 그것은 시(詩)가 되었다.
누군가는 시계에 써진 샤갈이라는 영문을 가만히 되뇌어 보았을 것이고, 어느 날부터 그 초소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리라.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곳은 샤갈이었으나, 곧 다른 병사들에 의해서 ‘싸갈’, ‘차골’ 등등의 이름으로 유린당했다.
샤갈의 눈 내리는 초소는 습작의 공간이 되었다. 손바닥 만한 수첩에 빼곡하게 시구(詩句)들이 적혀있었다. 함께 근무를 선 졸병들은 무언가를 막 적어대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별다른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대하소설이라도 쓸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루는 공간을 탐지하고 있는 그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시(詩)를 아냐?”
“네! 이십일시 삼십분입니다.”
“그 시(時) 말고.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같은 시.”
“잘 못들었습니다?”
“시!”
“쉬?”
“시!”
시로 시작하는 욕이 나올 뻔 했지만, 폭력은 금물. 문학의 정신은 바로 폭력을 낭만으로 바꾸는 우아함이다. 하여, 졸병에게 암송 할 수 있는 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예상대로 우렁찬 “없습니다.” 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에게 ‘메이드 인 샤갈’ 의 내 시를 들려주기로 하려다가, 곧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대신 때 마침 생각난 시인의 시를 낭송해 주었다. 왜 그 시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달픈 군 생활과 날씨 때문이었으리라.
“잘 들어라.”
“네!”
“제목, 겨울 슬픈 겨울.”
“네!”
“동창이 밝았느냐 동창이 밝았으렴
굶는 늙은이 우지진다 굶는 늙은이 우지지렴
개 잡는 아이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개 잡는 아이는 푹 쉬렴
쓰레기 더미 속 야윈 똥개는 잡아 무삼 하리요
태평가를 부르거나 절명시를 쓰거나
세상은 제멋대로 웃고 울고 개판인데
길은 미끄럽고 눈발은 흩날리는데
보따리 든 내 어머니 뇌진탕 걸리시겠네
술 취한 젊은 시인 또 돌아가시겠네
동창이 하염없이 끝없이 천번 만번 밝았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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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샤갈의 시계가 열 한번 째깍였다.
“그게… 시입니까?”
“그래.”
“누구… 시입니까?”
“김영승이라는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시다.”
“네…”
시를 외는 고참과 미간을 괴는 졸병이 샤갈의 눈 내리는 초소에서 ‘고도를 기다리듯’ 다음 교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름대로 시공간이 점령된 블랙홀의 우주를 견디는 절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그는 이런 시가 없다고 우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군대에서는 시를 쓸 수도, 써지지도, 쓴 시를 암송하지도 못할 거라 장담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쓰다가 걸리면 창피와 굴욕을 당해야 한다. 그런 위태함 속에서 문학은 태어났어야 했는데… 고진 선생이 말하는 군대문학의 본질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나 결국 작가는 되지 못했다. 시작은 미미했고 끝은 창피했다.
6. re군대스리가
고진 선생은 계속해서 낭독 중이었고, 방청객들은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마침 녹차와 커피가 모두에게 전달되어, 차의 향기가 열차 안에 그윽하게 피어올랐다.
“2002년 7월. 이문원의 존재는 처음부터 군대축구, 이른바 군대스리가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내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군대축구' 라는 종목은 엄밀히 말해 축구도, 미식축구도, 이종격투기도 아닌 ‘오프사이드 반칙’ 과 무승부마저 없는 승부를 위한 게임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돼먹잖은 게임을 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축구를 위해 입대라도 한 듯한 이문원의 신들린 발놀림과 생존을 위해 대안적으로 발생한 나의 수비기술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무리없이 착착 진행되던 문학열차 낭독시간이 지체되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커피를 마시던 한 노인이 일으킨 기침 때문이었다. 그는 사래가 들린 듯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기침을 해댔다. 심지어 그는 구토를 일으키기도 했고, 옆에 앉은 스웨터 차림의 중년 여성의 부축에 따라 뒤 칸으로 옮겨졌다. 나는 재빨리 옆으로 두 칸을 이동해 고진 선생의 정면에 앉게 되었다. 선생은 자기보다도 더 연배가 있는 노인이 후송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낭독을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2002년에 붉은 옷 한 벌 입지 못한 우리는 전 국민이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난리칠 때, 내무반에서 그나마 비슷한 계열의 주황색 츄리닝만 입고 이리저리 바둥거렸다. 축구를 위해 입대한 몇몇의 대한민국 남아의 몸속에서는 게르만의 전차부대의 정박자와 삼바 축구의 엇박자 리듬이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월드컵이 끝나자 정확히 1주 뒤에, 88사단의 군대스리가는 시작되었다. 오직, 군인들에 의한, 군인들을 위한, 군인들의 축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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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그제야 자신 앞에 배달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짧은 헛기침을 했다. 몇몇 승객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일본에 오래 산 탓인지 선생은 어눌하고 특이한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군인을 ‘구닝’, 군대를 ‘궁대’ 라고 발음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러한 발음을 좋아했다. 선생은 책 앞장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주었다.
“군대스리가는 장병의 한달 월급이 걸린 사활의 도박장이요, 욕설과 갈굼, 평안과 미소, 희비가 교차되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무조건 '이기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열정, 라면 뽀글이도 익게 하는 그 열기의 시간을 돌파한 이문원과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떼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종(異種)격투기의 그라운드로 떠밀려 올라간 냉정한 한 군인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손을 모아 박수를 쳤다. 낭독의 끝을 알리는 우렁찬 소리. 창밖에는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녹음기의 액정을 보니 이미 두 시간이 넘었다. 대전을 지난 지는 한참이 되었다. 이제 문단을 지나 풍기역에 이르렀다. 곧 있으면 대구를 거쳐 목적지인 장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시간 한 시간.“우리는 이 소설로 인해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군대문학이 재미의 장르가 아니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부상과 고통의 드라마임을, 민족 문학의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점에서 군대 축구 이야기는 그 자체로 피와 땀과 뼈의 드라마인 것입니다. 허허, 본의 아니게 책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려.”
7. 군대문학의 위기
“이제 낭독의 시간은 다 끝났고요,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선생님께, 혹은 군대문학에 대해서, 아니면 방금 읽은 책에 대해서도 좋습니다. 손들고 의견 말해주십시오.”
시인은 이러한 자리가 익숙했는지, 능숙하게 사회를 보고 있었다. 시인은 까치발로 뒷좌석에서 손을 든 사람을 용케 발견해냈다.
“선생님께서 군대문학에 주력하고 계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기, 일단은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편하게들 질문하세요. 흠흠.”
선생은 시인의 요청을 가벼이 물렸다. 출신성분이 다양한 승객들을 배려하기 위한 처사다. 저들은 대체로 작가를 꿈꾸는 문학청년 혹은 문학중년들이다. 평범한 독자들은 군대문학의 위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특정 장르의 흥망성쇠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다양한 볼거리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대문학의 사태에 민감한 이들이란, 전공자이거나, 그 분야를 습작하고 있는 예비 문인들이다.
“비효율성으로 대표되는 낭만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시대에 ‘낭만’ 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군대라서 그런가요? 군대문학의 종언을 구하러 여기에 서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군대문학은 휴머니즘의 공간인가요?”
전공자로 보이는 학생이 부연설명을 삭제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질문을 풀이하면, 낭만의 종착역인 인본주의, 즉 휴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군대라고 생각하느냐,다. 질문은 어려운 듯 했지만 답은 뻔했다. 이미 많은 문학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휴머니즘이 신자유주의 자본 사회에서 배겨낼수 있는 공간도 역시 그러하지요. 사회에서는 인간의 '의지’ 라고 하는 것이 도저히 ‘자본’ 을 이길 수 없습니다만, 오로지 군대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의지, 혹은 ‘협동’ 이라든지 ‘우애’ 라고 하는 가치가 여전히 발동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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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記者)의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학부시절 쓴 논문 덕분이었다. 「현대 문학의 골상학(骨狀學)적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한 논문이 잡지에 실리면서, 지금 회사에 어렵지 않게 취직할 수 있었다. 입사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지만, 내 국문학적 바탕을 높이 산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이 나를 받아 주었다. 1년을 휴학하면서, 습작을 포기하고 쓴 그 논문은 작가들의 얼굴에 관한 연구였다. 즉, 현대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나’ 혹은 ‘그’, ‘김씨’, 'K' 등등은 독자로부터 상상의 얼굴을 부여받게 되는데, 그 얼굴은 바로 작가의 얼굴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즉, 주인공은 대체로 젊고 능동적인 자아인데, 그 얼굴은 작가의 분신으로 책의 접힌 표지에는 늘 젊고 미소 띤 얼굴을 첨가해야만 한다는 결론이었다. 논문이 발표되고 이에 수긍하는 출판사들은 너도나도 작가들의 화사한 얼굴을 책에 실었다. 매출은 전보다 훨씬 늘었다는 후문이었다. 별로 기분좋은 뉴스는 아니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이론가가 되기는 싫다. 이론을 하거나 혹은 기자를 하면 오히려 작가의 길과는 멀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면서… 먼 훗날에. 그건 분명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났고, 군대에서 제대하고선 한 쪽 길을 강렬히 열망하면서도, 다른 길로 가고야 말았다.
“군대문학의 이후에는 어떤 시대가 옵니까?”
고진 선생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미래가 그의 입에 달려 있다. 관념적으로 이해하던 군대문학이 종언이 이제 실재의 영역으로 다가 올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내일부터라도 군대문학을 버리고, 선생님이 말하는 그 ‘시대’ 의 문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선생은 은근히 뜸을 들였다. 실룩거리는 입술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저마다의 머릿속에서는 무언가를 예상하고 있을 터다.
“민족문학입니다.”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준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다.
8. 방법론
“발톱 뺐냐, 민?”
내성발톱으로 고민하던 시절, 말년 고참은 걱정스레 내게 물었다. 군대에서는 온전한 호칭을 갖기 힘들었다. 고진(高眞)이라는 이름은 다른 병사들에 의해서 ‘꼬진’, ‘후진’, ‘꼬질꼬질’ 등등의 이름으로 놀림당했다. 그나마 기분이 덜 상한 호칭이 ‘고민’ 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명찰에 휘갈겨진 이름을 그대로 불렀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두가 영창으로 가버리자 남아있던 고참은 유일하게 그 뿐이었다. 수양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글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이상하게도 내 시는 늘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수업시간에 내 시를 낭독하고 나면, 모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대체로 다들 딴청을 피웠다. 너무 과한 열정으로써간 것이 문제였다. 노년의 시인 교수는 나에게 생각하는 것 외에 쓰는 것이 문제라고 일러주었다. 적당선(的當線). 시에도 시인이 부려야할 중용의 미덕이 있는데 자네는 그게 너무 결핍되어졌어. 하며 딱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아직은 멀었네. 제길, 주둥아리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
“민족문학의 부활입니까?”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중년의 신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부활이라, 독립군이 해방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 만큼의 떨림이었다.
“그렇습니다.”
“어… 어떻게요?”
“암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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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민족’ 과 ‘암살’ 은 잘 어울린다. 고진 선생의 입에서 나온 암살이라는 단어는 마치 나에게 중용의 개념을 일러준 그 시인을 표적삼아 행해야 할 임무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열차 안은 술렁거렸고 고진 선생과 젊은 시인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암살’ 이란 것은 문학 내부에서 쓰이는 일종의 은유법 인 듯 했다. 문학 담당기자인 나도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 도대체 누구를 죽이라는 것일까.
“군대가 사회를 점령하는 것을 쿠데타(coup d'état) 라고 합니다. 쿠데타는 지배계급 내의 일부세력이 폭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활동을 의미하지요.”
시간이 꽤 흘렀다. 선생의 강의도 슬슬 지쳐간다. 아까부터 말들을 흘려듣고 있다. 온통 시인 생각뿐. 엄밀히 말하면 피해의식이다. 인정하기는 싫다. 그러나, 그렇다. 훌륭한 작가가 아닌 고로, 나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어낸다. 생각하는 것만 쓰게 된다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 이상으로 모르는 말을 내 뱉고 나서야, 글이 나를 끌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생각 없음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생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은 무작정 달려들어 쓰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것임을 알 것이다. 충분히 사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훌륭한' 이들에게나 가당할 것이다. 훌륭하지 않은 작가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며, 그 말이 작가 자신에게 손을 뻗어 준다.
“현재 문단에서 활동하는 있는 작가들, 이를테면 아까 읽은 이처럼 군대문학을 깔보고 매도하는 이들, 젊은 작가들, 군대문학이 정체성을 흩트리는 작자들. 이들을 모두 두 대의 관광버스에 태웁니다. 이들은 대관령이든 추풍령이든 한계령이든 안개에 휩싸인 고갯길을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장된 사고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지요. 자연스럽게 우리 문단은 세대교체, 물갈이가 됩니다. 민족문학이 시작이지요.”
9. 군대문학의 종언 이후의 문학
“이제 저는 군대문학의 종언을 구하고 민족문학을 계승, 발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듭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나는 민족문학을 할 것입니다.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서라도 민족을 져버리고서, 대체가 키보드의 'r' 을 쳐댈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선생님, 그 민족문학이란 게 대체 무엇입니까?”
“민족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족의 아픔을 생각하며 쓰는 것입니다. 민족의 아픔이라는 게 뭡니까? 홍역, 식중독, 폐암, 말라리아, 감기, 교통사고,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고진 선생은 여느 때와 달리 격앙된 인상을 보였다. 저 양반도 저렇게나 애쓰는구나. 실로 문학의 힘이란… 아까부터 계속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논의된 군대문학과 민족 문학,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 그 미학적 주체의 대열에 서고 싶다. 자신이 없다. 여기 모인 저들처럼, 그들의 눈빛에 아로 새긴 문학의 열정이 내 안에서는 다 소진되었는가. 자문자답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민족문학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민족의 한 많은 세월을 응축하여, 간결하게 미적 문장으로 만들어 줄줄이 나열하는 방식 으로 빵, 터뜨리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재미의 관점에서 보면 꽝, 입니다. 하다보면 재미있는 민족문학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발상은 집어 치우고, 민족문학은 재미없다는 진리를 가슴에 품고, 그냥 묵묵히 전진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안 되는가? 답은 쉽다. 내 시는 문단을 전복하거나, 편집장이 눈을 반짝이며 접근해오거나, 주위사람들이 사비(私費)를 털어가며 책을 내줄, 시인으로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단이라는 바다에서는 ‘전복’ 보다 한참 못한 ‘해삼멍게말미잘’ 같은 존재였고, 편집장이 눈을 부라리며 시를 내던지고 시비(是非)를 걸면 주위사람들이 말릴 정도의, 시인이었기 때문이리라.
“등단(登壇)하는 방법은 입대하는 방법만큼이나 쉬워질 것입니다. 때를 기다렸다가, 오라는 데로 오고 가라는 데로 가면, 등단입니다. 살아남은 젊은 작가들은 아마도 반발하겠지만서도, 기성의 문단, 특히 민족문학 진영은 환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젠 더 이상 민족문학의 계승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얄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북한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 환경폐기물 방류에 신음하는 비무장지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게 사실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스물일곱 번의 신춘문예 실패와 여덟 번째 투고에서 좌절한 후, 그제야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갑자기, 늘 위대하면서도 사소한 사상만을 깨달아 축적하기때문에 글을 못 쓰는 건 아닐까, 하는 딴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당시의 그 위대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재능과 성격은 반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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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하여
예고 3학년 문창과 교실에는 “소설 써, 이년아”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군 생활 말년의 좌우명은 “시 써, 말년아” 였다. 제대만 하면 곧 시인이 될 줄 알았던 나는, 여전하다. 역시나 분명해진 사실은 재능과 성격은 반비례한다, 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고진 선생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방청객들도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일일이 호응하며 연신 박수로 화답하고 있었다. 열차도 서서히 장흥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제 곧 끝이다. 나의 고백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여러분은 모두 민족문학의 가능성을 지닌 작가입니다. 아직 그 분야는 무궁무진 합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지리산맥, 소백산맥, 설악산맥, 가리왕산맥 등등 산맥시리즈를 줄줄이 집필할 것이고, 민족문학의 대가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산맥시리즈가 다하면, 섬시리즈, 강시리즈, 댐시리즈 까지도 줄줄이 써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평양 축전에 가서 만세를 부르고, 금강산에서 손을 흔들고, 몽골에서 따그닥 따그닥 말을 타고, 노래방에서 아침이슬을 불러 제끼면 됩니다. 나는 가슴에 손을 모으고 여러분에게 기원합니다.”
고진 선생의 격려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포기한 지난 날, 준비가 덜 된 치기어린 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바로 나였고, 아직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어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한번 해보자, 는 말은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몸속에 가득한 시의 언어들을 무언가 굳세게 억누르고 있었다. 몸은 부르르 떨렸고, 눈물은 줄줄 흘러내렸다. 고진 선생도 마침내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자, 이 시대 작가를 꿈꾸는 일만이천 문학청년들이여~ 내 마지막 말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롤리타』 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독자, 즉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선생은 가운데 통로로 걸어 나와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모두들 감동어린 몸짓으로 선생의 손을 맞잡았다. 선생의 뒤에선 젊은 시인이 눈을 훔치고 있었다. 취재라는 목적도 잊은 채, 나 역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 놓아 울 것만 같았다. 드디어 선생은 내 거친 숨소리를 눈치 챌 만큼 가까이 왔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감정이 북 받혔다. 참아야 한다. 수없이 속으로 되뇌고 있다. 참자, 참자, 참아보자꾸나. 그러나 선생이 내 손을 잡는 순간, 완전히 맥이 풀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 시가 쓰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