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금 창녕의 한 국립 정신병원에 계신다. 술 때문이다. 아버지를 병원에 가두고 나온 고모의 얼굴은 피를 한 됫박 쏟은 사람처럼 꺼칠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갇힌 게 가슴 아픈 모양이었다. 나도 곧 똑같은 심정이라는 듯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 날 내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면 주인아주머니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내 비명 소리를 듣고 112에 신고를 한 후 고모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고모가 남긴 연락처였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경찰이 오는 지도 모르고 양은 쟁반으로 내 머리를 내리친 것이고 나는 동네 사람 다 들으라는 듯 머리를 감싸쥐고 울부짖었다.
“술 사러 갈께요. 사러 가면 되잖아요!”
아버지는 그 소리에 더 화가 난다는 듯 양은 쟁반을 벽에 내동댕이쳤다.
“필요 없어. 그 까잇 게 법이라고 나한테 대드는 거야! 그 까잇 게 법이라고.”
벽에 걸린 거울이 박살났다. 그때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루에는 빈 소주병이 6병, 부엌에는 50병이 있었다. 1년 마신 것도, 한 달 마신 것도 아니었다. 1주일 정도 마신 것이었다. 그 중에는 내가 사다준 것도 있었다. 미성년자는 술을 못산다고 심부름을 가지 않으면 아버지는 물건을 집어던지며 나를 팼다. 요령껏 자리를 피하거나 마지못해 술을 사다주기도 했지만 그 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째 시험을 보고 온 날이었다. 시험이 아니라 더한 걸 해도 술을 마실 아버지였지만 공부하는 딸에게까지 술을 사오라는 데는 화가 나고 서러웠다.
“법적으로 미성년자는 술 못 사는데예.”
“뭐어… 법?”
아버지가 술잔을 소리나게 내리고 내게 다가왔다. 시험 기간인데 설마 때리기야 할까 싶어 나는 도망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대로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나는 그 순간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신을 버리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과거를 믿지 않기로 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을 한 사람이 어떻게 시험공부를 하는 딸에게 술을 사오라고 하고 술을 사오지 않는다고 때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의 과거는 단지 술을 먹기 위한 핑계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아버지가 진짜 술주정꾼으로만 보였다. 술에 빠져 가족의 생계를 팽개치고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와 나를 때리고 그 다음 날이면 지난밤에 자신이 누구와 싸우고 누구를 때렸는지도 알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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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정영선
1997년 중편 『평행의 아름다움』으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평행의 아름다움』과 장편소설 『실로 만든 달』을 펴냈다. 부산수설문학상·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분포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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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놔요.”
나는 머리채를 붙잡은 아버지의 손을 꼬집고 할퀴면서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가 나를 벽에 확 밀쳤다.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아버진 비틀거리며 방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런 술주정뱅이에게 맞은 게 억울하고 분해 악을 썼다.
“아버지가 뭔데 날 때려! 왜 때려!” 아버지가 돌아섰다. 얼굴은 겨울 하늘의 달처럼 창백했다. 두 눈을 덮은 붉은 실핏줄이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아버진 문지방을 넘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내 턱을 한 손으로 들어올리고 정확하게 뺨을 때렸다. 처음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맞았다. 맞을 때 마다 아프지는 않는데 충격적이었다. 머리가 휑하니 비고 푹 꼬꾸라질 것 같았다. 이때까지는 그렇게 했다. 뺨 한 대만 맞으면 아버지에게 항복을 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함부로 대들었다고 반성을 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아버지도 이 동네에 사는 술주정뱅이 중의 한 명일뿐이었다. 나는 뺨에 손을 대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입술이 터졌는지 턱을 타고 피가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버진 털썩 마루에 주저앉아 남아있는 소주를 맥주잔에 부어 마시고 있었다. 슈퍼에서 얻어온 무김치 씹는 소리가 날 때마다 뺨이 저절로 발갛게 상기되었다. 무슨 권리로 저렇게 당당한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의 법은 뭔데예? 술이…” 아버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은 쟁반을 엎었다. 맥주잔이 깨지고 소주병, 김치 그릇이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아버지가 양은 쟁반을 들고 김치 물을 밟으면서 내게로 왔다. 붉은 발자국이 일직선으로 이어졌다. 아아악, 내 몸은 터져나올 듯한 비명으로 부풀어 올랐다.
빈 소주병을 본 경찰이 혀를 찼다. 한 경찰은 아버지를 끌고 밖으로 나갔고 한 경찰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입술이 터지고 귀밑이 화끈거렸다. T 셔츠의 어깨솔기가 터져 살이 비쳤다. 머리카락이 뽑힌 것처럼 머리 밑이 따가웠다. 바닥은 깨진 거울과 엎어진 김치 그릇들로 발 디딜 때도 없었다.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고모가 신을 신은 채로 방안으로 들어와 나를 안고 울부짖었다.
시험을 마친 날 줄무늬 정장 차림의 조사관에게 불려갔다. 조사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때렸냐고 물었다. 때리지 않는 날도 있다고 했다. 그렇겠지. 매일 소주를 예닐곱 병씩 마시는데 그때마다 맞았으면 죽었지. 그녀는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음은 인정했지만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자주 나를 때렸다는 사실만은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곧 이어 무엇으로 때리더냐고 물었다. 손으로, 빗자루로, 먼지떨이로, 양은 쟁반으로… 내가 한 마디씩 할 때 마다 조사관은 입술을 꼭 다물고 메모를 했다. 마지막 질문이라며, 아버지가 혹시 성기를 보이거나 내 몸에 손을 대지 않았냐고 물었다. 여자끼리니까 숨길 필요가 없다며 솔직하게 답하라고 했다. 나는 다른 질문에 비해 이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좁은 집에 살다보면 성기를 볼 가능성은 많았다. 불쑥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본 적도 보인 적도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을 만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진 술이 취하면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지독한 술 냄새와 땀 냄새에 숨이 막혔다. 아버지의 더러운 손이 등을 쓰다듬을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조사관은 흘러내리지도 않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나의 대답을 재촉했다. 코를 한번 훌쩍이기도 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아버지의 운명을 결정할거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수그리며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손이었다.
“답을 말하기가 곤란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생각하지 말고 한 남자라고 생각해.”
나는 그 손길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까지 병원에 갇혀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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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은 산을 밀어 만들었는데도 나무가 없었다. 아이들이 햇빛에 대들듯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서너 대 맞은 것처럼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르막길 때문인지 큰 전봇대가 없었다. 간이 전봇대 전깃줄이 세든 집이 많은 옥상의 빨랫줄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곳은 등굣길 가운데 있는 사거리뿐이었다.
눈은 폼으로 달고 있나? 사거리로 내려오던 트럭의 기사가 까만 승용차의 여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까만 승용차에 탄 여자는 창문을 내리지도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옆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한 명 타고 있었다. 승용차 뒤로 몇 대의 차가 붙어 섰기 때문에 뒤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거리 아래에서 안 가고 뭐하냐는 고함 소리 뒤에 크랙션이 울렸다. 운전도 할 줄 모르면서 차는 왜 끌고 나와서… 젠장. 트럭 기사는 한번더 여자를 쏘아붙인 뒤 차를 빼기 시작하였다. 무표정하게 올라가던 아이들이 잘코사니라는 표정으로 승용차 안의 여학생을 힐긋 바라보았다.
교무실에 내려갔던 친구가 들어오면서, 시내 중심가에서 여학생 한 명이 전학 왔다고 했다. 학교 올라오다 본 까만 승용차에 탔던 여학생이 생각났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3반에도 5반에도 한 명씩 있었다. 동네 선배들 말을 들으면 해마다 그런 일이 몇 번씩 있다고 했다. 내신 성적 때문이었다. 시내 중심지에서 80퍼센트 밖인 아이들도 우리 학교에 오면 단박에 3,40%안에 들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쉽게 합격했다. 그 때문에 우리들 중 한 명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못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교육청에 고발하자, 왕따 시키자,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놓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셨다. 감색 주름치마, 리본이 달린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이 뒤따라 들어왔다. 회색 치마에 와이셔츠 식으로 된 우리 학교 교복 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가방 빈폴이다.”
짝지가 귓속말을 했다. 우리 학교에서 진짜 빈폴 가방을 들고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수업 예비종이 울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급하게 전학생을 소개했다. 윤승주라고 했다. 재수없이 내 옆 분단에 앉는 바람에 시간마다 피곤했다.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그 애를 챙기는 바람에 나까지 사정권 안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3교시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함수를 설명하다가 혀를 깨문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한눈을 팔고 있던 아이들까지 칠판을 향했다. 샤프 끝으로 책상에 구멍을 파고 있던 명근이까지 고개를 들었다.
“니 목에!”
선생님은 비엔나 소시지처럼 통통한 손가락을 쫙 펴서 누군가를 가리켰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그 손가락 끝을 향했다. 어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선생님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과 똑같은 비명을 비르고 인상을 찡그렸다.
“니 목이!”
아이들의 눈이 그제야 선생님이 가르치는 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오늘 전학 온 승주였다.
승주의 목에 진짜 손가락만한 두드러기가 툭툭 불거져있었다. 턱밑에 난 두드러기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턱을 타오를 것 같았다.
“빨리 보건실로 가야겠다. 보건실이 어디 있는 줄 아니?”
승주가 고개를 저었다. 승주를 데리고 가겠다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승주 때문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든 손을 보지도 않고 나를 가리키며 가라고 했다. 실망하는 아이들의 탄성을 지르며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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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간병일을 하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병원에 갇힌 지 이틀 뒤에 돌아왔다. 아버지 몰래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본 것은 여섯 달만의 일이었다. 무거운 가방 때문인지 피부 깊숙이 박힌 까맣고 작은 눈동자가 땀에 젖어있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 밑으로 시커멓게 끼인 기미만 없었다면 초등학생으로 보일 만큼 작은 키였다. 키 때문에 어머니는 늙지 않은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눈가와 입가에 잔주름이 많았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결혼할 때도 이 모습이었고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이십대 초반에도 이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이 보다 먼저 늙은 것이지 늙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선풍기는?”
콧등의 땀을 닦으며 어머니가 선풍기를 찾고 있었다.
“아버지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뻑 하면 발로 차거나 집어던져 일년에 한 대로는 늘 모자랐다. 어머니가 벽에 기대 이마를 짚었다. 집을 나가기 전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힌 날이거나 동네 사람이 술 취한 아버지를 끌고 온 뒤에도 저 모습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울거나 울음을 삼키고 있지 않나 마음이 쓰여 안절부절이엇다. 어쩌다 눈이 한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어머닌 울고 있지도 비참한 표정도 아니었다. 눈을 껌벅거리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때리다 짐승처럼 잠든 아버지도 어지러운 방안도 모두 잊은 듯 했다.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청소를 했다.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가기 전까지 고급 아파트 단지의 파출부로 있었다. 어머니는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손 걸레를 사용했고 쪼그리거나 엎드려서 청소를 했다. 파출부로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속옷은 락스에 담그지 않고 팍팍 삶았다. 한번 입은 옷은 꼭 빨아야했고 마른 옷을 꼭 새 옷처럼 개어 서랍 안에 정리한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어머닌 버스 종점 근처의 식당에 취직을 했다. 오전에는 남천동 아파트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고 오후 6시에 식당에 일하러 갔다. 새벽에 돌아오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늘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대부분 아침에 옆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지만 가끔 내 책상 위에 앉아 가계부를 적고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한 달 수입과 지출을 백 원 단위까지 계산하는 것은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뻔한 살림살이인데도 간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있는지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그때 어머니의 눈이 잠깐 반짝였다. 어디선가에서 본 듯한 눈빛이란 생각을 하다말고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식당에 나간 뒤부터 어머니는 아침이 되어도 잘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를 부르려다 말고 부엌에 나가 밥솥을 열었다. 이틀 전에 퍼 넣은 밥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 밥을 냄비에 넣고 삶았다. 밥상에 숟가락과 반찬을 놓는 동안 밥이 끊었다. 대접 두 개에 똑 같이 밥 삶은 것을 나누어 담고 방으로 들어갔다. 옆집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 놈의 집구석에 들어온 내가 미친년이지. 가장이라는 인간은 천날만날 술만 빨고 저 새끼는 살살 눈치만 보고… 석환이 새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그 소리에 잠깐 눈을 떴다 도로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나중에 먹겠다며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화장을 지운 어머니의 얼굴은 시장에서 파는 옥수수 빵처럼 누렇게 부풀어 올랐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은 닭발처럼 딱딱했다. 발이 아니라 손으로 걸어 다닌 것 같았다. 밥 삶은 것을 혼자 먹으면서 나는 어저께 고모에게 전해들은 말을 전했다. 할머니의 생일이 다음 주 화요일인데 당겨서 이번 주 토요일에 한다고 했다. 고모 동네의 삼겹살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할머니는 고모집 옆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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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면 교실은 명절을 앞둔 시장처럼 부산했다. 복도로 난 창문으로 누군가 머리를 들이밀며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몇 명이 모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책상 사이로 쫒고 쫒기는 장난을 치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었지만 승주는 수업 시간의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영어책을 국어책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다른 반 아이들이 볼일을 보러온 척하고 승주를 보고 갔다. 내신 성적을 잘 받기위해 전학 왔다고 대놓고 비난하는 아이도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제일 마지막에 줄을 섰다. 승주 앞에 선 몇 명 아이들이 먹지도 못할 밥과 반찬을 식판이 넘치도록 받아갔다. 승주 차례가 되면 밥은 말라있었고 반찬은 동이 나고 없었다. 승주의 어머니가 교무실에 떡과 과일을 돌렸다는 사실을 안 이후엔 더 노골적이었다.
성적이 나온 뒤 진학상담을 받기 위해 교무실로 내려갔다. 상담을 하러 갈 때 선생님이 미리 내주신 용지에 진학할 학교를 표시를 해야 했다. 나는 실업계에도 인문계에도 동그라미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무 표시도 없는 용지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옆 반인 석환이도 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새어머니 말은 잘 듣냐?”
석환이 담임선생님께서 물었다. 석환이가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선생님이 재차 물었다. 개인 상담이라 해도 칸막이가 없어 앞이나 옆자리까지 말소리가 훤하게 들렸다. 석환이가 이마를 찡그리며 나를 힐긋 바라보았다.
“몰라요.”
석환이가 얇은 입술을 뾰족 내밀고 말했다.
“이 자슥이!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나가 봐.”
선생님이 석환이를 한 대 쥐어박으면서 집에 가라고 했다. 석환이가 입술을 내밀고 교무실 출입문 쪽으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잠시 석환이를 보고 있다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인문계를 갈지 실업계를 갈지 정해 와야 상담을 하지. 그것까지 내가 정해줄 수는 없잖아.”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좀더 생각을 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백퍼센트 인문계로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남의 학교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었다. 철책에 기대 텅 빈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1분이라도 늦으면 큰 손해라도 보는 듯 허겁지겁 친구들 꽁무니를 따라 교문을 빠져나갔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는 동네를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는 이 동네를 무척 싫어하셨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오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며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Y동을 그리워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이 동네에 산다는 것에 별 불만이 없었다. 학교가 산중턱에 있어서 그렇지 집 값 싸지, 물건 값 싸지,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아주 가끔 술이 덜 취한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야아, 그건 니가 몰라서 그래.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쪽팔리는 거야. 시내 나가봐라. 이 동네 산다하면 대놓고 무시한다니까. 아버지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큰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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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의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집에서 학교를 올려다보아도 학교에서 동네를 내려다보아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옥상마다 놓여있는 파란 물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동네 입구에 크고 높은 아파트가 세워진 뒤로는 더 눈에 거슬렸다. 팔십 평짜리 아파트도 있다고 했다. 누군가 만만한 도덕 선생님에게 팔십 평이 얼마나 크냐고 물었다. 교실과 복도를 합한 것보다 더 넓다는 말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축구를 해도 되겠다는 남학생의 말에 선생님은 기가 차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아파트 옆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새로 세워졌다. 빨간 벽돌에 흰 유리창틀을 한 예쁜 학교였다. 큰 강당이 있고 미술실 책상은 하얀 원탁이라고 했다. 교실에는 새 컴퓨터와 개인 사물함이 있다고 했다. 우리 학교는 아직 신발장도 없어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녀야하는데… 학교의 시설이 전해질 때 마다 우리는 입을 쫙 벌렸다. 체육 시간에 조례대 맨바닥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나올 때 그 학교에는 매트가 백 장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학교에 대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가 들은 것은 그 학교의 시설이 좋다는 것이었고 선생님들이 전달하는 것은 그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것이었다. 특히 영어듣기 시험이 끝나면 영어 선생님은 우리 때문에 큰 망신을 당한 듯 화를 냈다. 도대체 너희들은 귀가 있나 없나. 몇 명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뒤를 돌아보고 떠들었다. 선생님이 버럭 화를 냈다.
“니들은 도대체 구제불능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며칠 뒤 교육청의 높은 분들이 학교에 들이닥쳤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배정을 받지 않기 위해 데모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길 가다 이유 없이 뺨을 맞은 것처럼 몹시 기분이 나빴다. 몇 명 아이들이 운동장 스탠드 위에서 아파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침은 몇 개 아래의 계단에 떨어졌지만 조금은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의 생일을 당겨서 점심을 먹기로 한 토요일 어머니와 나는 속옷 한 벌을 사들고 고모가 말한 식당으로 갔다. 어머니는 속옷과 돈이 든 봉투를 내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할머니도 고모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폭력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하나 자식을 버리고 도망을 간 걸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몇 번이나 칼을 휘두르는 걸 아는 고모도 말없이 고기를 굽기만 했다.
할머니는 물김치를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고 난 뒤에는 사람만 만나면 울기부터 했다.
“엄마 또 왜 이래. 생일날에”
고모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짐짓 나무랬다.
“밥이라도 먹고 있는지,”
“지금 밥이 문제요, 비싼 돈 주고 있는데.”
할머니가 고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모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할머니도 아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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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착하고 똑똑한 놈이 세상을 잘못 만나서…”
할머니의 말에 이번에는 고모도 고기를 뒤집던 집게를 놓았다. 감자조림을 집으로 가던 어머니도 젓가락을 다시 놓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똑똑한 인간이 시험 앞두고 오른 팔을 달아매. 엄마나 나나 지 공부시킨다고 안 입고 안 먹고 얼고 떨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전두환이가 대통령을 하면 어때서 뭐가 부끄럽다고 가짜 기부스를 하고는, 같이 공부한 종우는 판사가 됐다는데…”
고모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꼭 처음 듣는 사람처럼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여전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고모와 할머니는 그러고 있는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고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크게 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한 아들, 집에서 먼 고등학교를 배정받고도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은 아들, 책 살 돈을 달라 해놓고도 돈이 없다하면 군소리 없이 돌아서던 아들, 운동화에 구멍이 나도, 바지가 작아 복숭아 뼈까지 올라와도 아무 말이 없던 착한 아들이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대학 다닐 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생활비로 내놓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고모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도저히 더 이야기를 못하겠다는 듯 울음을 삼키며 휴지를 뽑았다. 고모는 눈물을 찍어내면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런 사람이 술 좀 먹는다고 집을 나갔냐고 어머니를 나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처음부터 어머니는 할머니와 고모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할머니는 선생님을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었다. 여선생님이 아니라면 공무원…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나이만 들어가고 술을 마시는 시간만 늘어났다. 어머니와 결혼을 했을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코끝이 빨간 서른여섯의 노총각이었다.
“고시원에서 몇 달을 공부한 놈이… 오른 팔에 기부스를 해가지고 나타나서 그 팔로는 시험을 칠 수 없다고 할 때 진짜 다친 줄 알았재. 전두환이 때문인 줄은 우찌 알았겠노. 니가 알았으면 이야기나 좀 허지.”
할머니가 고모를 원망했다.
“나도 몰랐어요. 종우가 합격하고 나니까 그러데요. 친구들은 데모하다 잡혀가는데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시험 칠 수 없다며.”
고모는 다시 휴지를 빼내 눈물을 닦았다.
“인물 좋지, 덩치 좋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위가 훤했는데… 그런 놈이.”
할머니가 휴지를 움켜쥐고 입을 막았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노랗게 익은 삼겹살이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해 어머니와 나를 때리던 아버지가 진짜인지 아니면 전두환 시절에 출세하자고 사법고시 치는 게 부끄러워 오른 팔을 달아맸다는 아버지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를 병원에 가두고 나온 고모의 까칠한 얼굴을 볼 때처럼 내가 아버지를 일부러 쫒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켕겼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술 한 병 사다주고 공부해도 될 텐데, 뭐 대단한 공부라고 집 옆에 있는 슈퍼 가는데 법을 들먹이고 한 대 맞을 수도 있는 걸 울고불고 비명을 지르고. 말은 안했지만 모두들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정미 스무 살까지 병원에 갇혀있어야 한다고 해도 원망 한마디 없이 고개만 푹 수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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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의 고개가 푹 꺾였다. 어머니까지. 그제야 나도 아버지에게 대들고 조사관 앞에서 했던 대답들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잠시 후에 다시 푹 숙였다. 세상에, 어머니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졸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내 마음은 어머니의 목고개 만큼 꺾였다 섰다를 반복했다. 할머니와 고모가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상 밑으로 발을 펴서 어머니를 꾹꾹 찌르기도 했다. 반쯤 눈을 뜬 어머니는 귀찮다는 듯이 내 발이 미치지 않게 발을 모우고 또 꼬박 졸았다. 할머니와 고모의 말은 계속되었다.
“식구들조차 지 속을 모른다고 을매나 우리를 원망했겠냐. 그러게 내가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해도. 언제 면회 간다캤노?”
“이번 달 말에.”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고모와 할머니는 다행히 어머니가 졸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곧 식당 주인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존 표시도 없이 얼른 계산대로 가서 음식값을 계산하고 식당에 일하러 갔다.
아무래도 학교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침 보다 밤이 나을 것 같아 어머니를 기다리기로 했다. 12시를 넘자 잠이 쏟아졌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이상하게 머리를 감고 나니 더 잠이 왔다. 머리가 마르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늦게 잠이 든 탓일까. 열쇠 돌리는 소리도 문 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느 새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있었다. 낡은 수첩 주위로 슈퍼에서 받아온 영수증이 몇 개 상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 중에는 내가 아이스크림과 라면을 사고 받아온 것도 있었다. 계산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실눈으로 어머니를 훔쳐보았다. 어머닌 지갑에서 영수증 한 장을 더 찾아 머리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그 눈빛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내가 잠결에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어머니는 정리를 다한 듯 수첩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내 옆에 눕는 순간 나는 그 눈빛을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힌 후 부엌 벽에 기대있던 어머니의 눈빛이었다. 그때도 어머니는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고 있었을까. 잠시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가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깨우기 위해 생선을 굽기로 했다. 다행히 고등어 한 마리가 냉장고에 있었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다 굽기도 전에 어머니가 일어났다. 나는 밥을 차리다말고 인문계 고등학교 가도 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간단하게 말했다.
“니 가고 싶은 데로 가라.”
핑 돈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어머니가 고마웠다. 노릇노릇 구운 고등어로 어머니의 아침상을 차려두고 집을 나섰다.
출산 휴직을 하신 국어 선생님을 대신해서 온 임시 선생님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셨다. 다른 선생님을 구할 때까지 자습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들 중 누군가 왜 선생님이 그만두었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너무 공부를 못해 그만 두었다고 했다. 하나도 웃기지 않는 농담이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자습하라며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명근이와 내 짝지가 석환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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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환이가 가출을 했다. 새어머니의 임신한 딸이 불룩한 배를 내밀고 집으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스무 살 정도 되었다고 했다. 석환이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밤이면 그 누나는 석환이랑 같은 방에서 잔다고 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볼록한 배를 공처럼 안고 껌을 씹어가며 야한 만화책을 뒤적인다고 했다.
옆 분단에 앉은 승주가 시끄럽다는 듯이 왼손을 들어 목덜미에 얹었다. 통통하고 흰 손이었다. 햄스터 한 마리가 목덜미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표 나게 미간을 찡그렸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석환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승주 짝지와 그 앞에 앉은 아이까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석환이는 집을 나와 친구 대성이를 찾아갔지만 대성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군대간 대성이 형의 여자 친구가 임신한 몸으로 들어와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석환이는 대성이네 부엌에서 자고 그 다음 날 일찍 학교 간다고 나갔다는데 그 다음 날부터 계속 결석이었다. 배고프면 지발로 찾아올 것이라는 석환이 새어머니의 말을 들은 명근이가 바닥에 침을 뱉고 시커먼 실내화로 문댔다. 교실 바닥에 남은 칙칙한 흔적을 보고 있던 승주가 손가락을 세워 뒷목덜미를 긁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아래서 왼손이 조금씩 움직였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흘깃 본 승주의 목덜미엔 동전만한 붉은 반점이 보였다. 아이들은 계속 석환이 이야기를 했다.
“승주 목 봐!”
옆에 있던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귀밑에 손가락만한 두드러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머리 밑도 빨갛다야.”
승주 앞에 앉은 아이가 돌아다보며 말했다. 진짜 애벌레가 살고 있는 듯 머리 밑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승주는 두 눈을 감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붉은 벌레가 턱밑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보건실에 가야겠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는 승주를 재촉했다. 이마와 볼에도 두드러기가 솟아있었다. 승주는 발딱 일어나 뒷문으로 걸어갔다. 이젠 익숙해져서 굳이 따라갈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승주 뒤를 따라나섰다.
승주는 천천히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승주가 일부러 목을 긁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긁지 않았으면 두드러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친구들은 데모하다 잡혀가는데 사법고시 시험을 치는 게 부끄러워서 깁스를 했다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승주야.”
두어 발자국 앞에서 승주가 돌아보았다. 볼에 있던 두드러기가 코 옆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너무 징그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승주가 몸을 돌려 조금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서 한번 더 승주를 불렀다. 승주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걸어가 승주 바로 뒤에 붙었다.
“내신 잘 받아서 인문계 고등학교 가도 괜찮아.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마.”
승주가 돌아섰다. 눈 속까지 두드러기가 퍼진 듯 붉었다. 아버지의 술 취한 눈이 생각났다.
“오해하지 마. 나는 이 학교에 다니는 게 부끄러울 뿐이야.”
승주는 아주 또렷하게 말하고 재빨리 걸어갔다. 나 같은 아이와 같이 보건실로 가는 게 부끄럽다는 듯 .
나는 층계참에 그대로 서있었다. (*)
<좋은 소설> 2008년 여름호, 통권 5호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