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돌산도(島)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뒤로 밀려날 정도로 돌진을 하다가 급회전을 하면서 원을 그렸다. 달려오는 제 위세에 놀란 배가 사정없이 기우뚱거리며 자신의 파도에 거칠게 흔들렸는데 그 여파로 중심을 잃고 시퍼런 바닷물 향해 순간 빨려들 듯하다가 갑판에 가슴을 부딪히며 뒤로 퉁겨 나온 세포댁은 오씨를 노려본다.
“잘 잡어, 잘.”
오씨는 키를 반듯하게 하며 이물 쪽으로 냅다 소리를 질러 쏘아오는 눈빛을 막아낸다. 배는 가막만(灣) 가운데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나진(羅陣) 앞바다에 자리를 잡았다. 어스름이라 가느다란 노을이 빈 하늘에 날카로운 획을 그으며 화양면 너머 여자만(灣)으로 뻗어나가고 있고 어제보다 좀 수그러지기는 했지만 아직 성질머리 꺾지 않은 바람이 뒤에서 부추기고 있다.
잔뜩 엔진을 뽑아 올렸다가 갑자기 떨어뜨린 탓에 터질 듯하던 기계 소리 잦아졌고 바다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바람 소리의 세계로 돌아갔는데 남편 쪽을 노려보는 아내 눈초리는 쉬 가라앉지 않는다. 오씨는 콧방귀를 뀌며 배 멈춘 곳이 적당한가를 표시 나게 살펴본다.
하늘에 걸린 날카로운 노을의 가시들은 아래 세계에도 영향을 주어 저만치 보이는 화양반도 소나무 숲 머리채가 붉고 노랑 기운들로 알룩달룩한데 그 아래 갯가 주름잡힌 안쪽으로 나진리가 옴팍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그의 고향이다. 오씨는 그곳에서 낳고 자라 뱃일을 배웠고 또래들 하나 둘씩 장가가던 즈음에 백야도 방면 땅 끝 세포리 처녀였던 아내와 중매로 만나 결혼하여 살 섞고 산 지 서른 해가 넘었다.
그는 이곳에서 백야도를 향해 주낙을 놓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의 고향 마을 앞바다에 첫 낚시를, 아내 고향 마을 앞에 마지막 낚시를 던질 것인데, 아이들 크고부터 옮겨 산 여수시 인근 갯가 마을에서 주낙 어장 하면서 종종 찾아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고향 땅을 지천에 두고 시댁이나 처가 안부 한마디 없는 것은 서로 심사가 잔뜩 뒤틀려 있는 탓이다.
“줄 잡어.”
“…”
오씨 목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 있고 세포댁 눈 또한 발끈한 기운을 한끝도 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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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한창훈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닻」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열여섯의 섬』, 기행문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공저), 동화 『검은 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가 있다. 대산창작기금, 한겨레문학상, 제비꽃 서민 소설상을 받았다. 지금은 거문도에서 바다 바라보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원고 쓰고, 짬짬이 생계형 낚시를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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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줄 잡으랑께.”
“잡었소. 보믄 모르요?”
둘은 싸우듯 악을 지른다. 남이 보았다면 아마 가는귀먹은 부부라 할 만하다. 그녀는 남편을 쏘아보다가 스티로폼에 깃발 꽂아 만든 부표를 신경질적으로 바다에 던진다. 크러렁. 배는 전진 기어를 받아 파도를 타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쨌든 부부의 어장은 시작된다. 배의 속도에 맞춰 세포댁은 간밤에 미끼 달아 동그랗게 말아놓은 주낙을 휙휙 던진다. 연승줄이 뱅그르르 춤을 추며 순서대로 낙하를 한다. 고등어살 끼운 낚시는 천천히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러면 부부는 말이 없다. 한 사람은 키를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적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남은 한 사람은 주낙 놓는 일만 한다. 차라리 이게 편하다. 노을의 자투리 기운이 두 사람의 볼 한쪽에 옮겨오고 간혹 뱃전에서 튀어 올라온 물방울이 옷을 적시기만 할 뿐이다.
그사이 노을이 지고 오씨는 갑판 불을 켰고 샛별이 떴다. 다섯 벌 주낙을 다 던져 넣자 세포리가 몇 개 불빛을 반짝이며 이만치 가까워져 있고 이미 밤은 진행 중이다. 파도가 자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기세가 남아 있어 세포댁 윗도리는 거의 젖어 있다.
오씨는 그곳에서 처가 동네를 버리고 맨 처음 시작했던 자기 고향 마을 쪽으로 배를 몬다. 60촉짜리 전구가 바람 부는 밤바다 한가운데 움직이는 작은 한 점이 된다. 출발점에 되돌아온 오씨는 비로소 키를 고정시키고 담배 하나를 문다. 이제 밤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이다.
봄이 익어간다고는 하지만 아직 밤 기온이 차다. 낮이 꽃피는 계절에 반팔 차림이라면 밤은 곧 눈이라도 올 듯한 시절에 외투 입성이다. 해가 저물면 바다 위로 차가운 칼바람이 불었고 바닷물은 아직도 겨울이다. 수온(水溫)이 올라가려면 한두 달 더 지나야 한다. 그는 흰 물보라를 바라보며 흠칫 몸을 떤다.
주낙을 건져 올리려면 세 시간은 있어야 한다. 그 정도면 집엘 다녀올 시간은 되지만 오가는 거리가 짧지 않아 집 잘 있나 구경만 하고 돌아와야 하는데다 기름이 닳기도 하고 혹 주낙이 다른 배에 상할 수도 있어 이렇게 바다 위에서 죽치는 게 오랜 생리이다. 제자리 찾은 배는 돌산 쪽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른 날 같았으면 옷이 다 젖었네, 파도가 아직 좀 씨구만, 얼른 수건으로 좀 닦소, 뭐 이런 빈말 공치사라도 했겠지만 심사가 말이 아니라 못 본 척하고 만다. 아내가 주섬주섬 풀어놓은 도시락만 노려볼 뿐이다. 그녀는 그녀대로 모자 아래로 얼굴을 숨기고 있다. 입에 돌을 달고 마지못해 손만 움직인다.
반 평 남짓한 고물 갑판 위에서 보자기가 몸을 푼다. 동그란 스테인리스 찬합(그녀가 시집올 때 해왔던 것으로 그들은 삼십 년 동안 배에서는 거기에 담긴 밥을 먹었다)에 밥이 굳어 있고 플라스틱 네모 반찬통에는 김치와 시래기 나물과 말린 숭어 양념장에 찐 것, 그렇게 담겨 있다. 국도 없다. 예쁘면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이지만 미우면 윙크도 안질이라 타박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게 뭐여, 시방. 뭔 반찬에 돼지 비계 쪼가리 하나가 없어, 그래.”
세포댁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제 밥그릇에 밥 한 사발 푸고는 나물을 처억 올려놓는다.
“염병. 날도 춥구만 멀국이라도 한 사발 담아오지, 이렇게 묵고 뭔 일 하겄어.”
차가운 바람도 한번 뒤틀린 심성을 얼리지 못한다.
“깜박했소. 그람, 컵라면 잡술라요? 뜨신 물은 가지고 왔응게.”
그러나 목소리에 미안함 같은 것은 없다. 그녀는 마지못해 하는 동작으로 가방에서 컵라면 하나 꺼내 봉지 열고 보온병의 물을 따른다. 가느다란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오씨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지금 밥을 먹고 몇 시간 기다린 다음 한 벌씩 걷어올리면 얼추 새벽이 된다. 그러면 신항 어판장에 생선 넘기고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새벽 세네 시 정도 되면 배가 몹시도 출출해지는데 컵라면은 그때 몫으로 아껴두는 것이다. 그런데 새벽 참거리를 지금 거침없이 꺼내놓고 있지 않은가.
“라면을 지금 묵으라고?”
“…”
“지금 묵어불믄 이따가는 뭐 묵으라고?”
“…”
“뭔 밥을 앞뒤 분간도 안 하고 내밀어. 하다못해 된장국이라도 한 사발 안 담아오고 집구석에서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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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냥 있는 대로 묵으시오.”
그예 세포댁은 새된 소리 한 대목 지르는 것으로 남편의 성화에 구색을 맞춘다. 오씨는 뺨 맞은 사람처럼 눈을 부라린다.
“뭐한다고 국 한 그럭 갖고 투정을 부리요, 부리기는.”
“이런, 말하는 것 좀 보소이.”
“이녁이 쬐깐한 아그들이요? 밥 주라 국 주라, 사람 성가시게 하기는.”
“그란께 내 말이 그 말 아니여, 날도 추운디. 이 짓 어디 하루 이틀 해? 흔해빠진 멀국 한 그럭 싸오는 것이 뭐가 어려워? 알아서 잘하믄 되잖어.”
새된 반응과 부아 난 언성은 서로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래, 어렵소, 어려워. 어려워서 못 싸왔소.”
“이런, 빌어먹을.”
“놈들은 메느리가 뜨신 밥 해 바치는 거 받아묵는디 나는 없던 애새끼들까지 들러붙어 뒤치다꺼리에 셋바닥이 빠지는구먼.”
“…”
“쬐깐한 것들도 성가셔 죽겄는디 왜 당신까지 이러요.”
세포댁도 아예 마음먹었는지 숫제 밥숟가락 던져놓고 몸을 바로 한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파도는 찰싹거리고 60촉 전구는 밝고 그 바깥은 하늘, 바다, 같은 색으로 컴컴하고 별은 총총 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러니 듣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것이 다행이기는 하다.
“왜 이리 악을 지르고 지랄이여.”
오씨는 꼬여 있는 중에 마누라가 자신을 손자 녀석들과 한꾸러미로 엮어서 도매금 처분하는 게 더 분하고 기분 상한다.
“내가 소리 안 나게 됐소, 지금?”
“염병, 요즘 누구네 집 집구석에서 며느리가 해준 따신 밥 받아묵고 있는가. 지금 혼자 고생이여? 혼자 고생한다고 유세여? 그럼, 나는? 아, 나는.”
“좋소, 그런 집 없단 것도 잘 아요. 하지만 팔자에 없는 애 농사 짓느라 뜬금없이 쎄가 빠지는디, 이녁은 뭐요? 갈래기(발정기) 도진 강아지도 아니고.”
갈래기 소리에 오씨는 재차 울컥, 한다.
“서방한테 갈래기? 개? 이런 씨부랄 여편네가 있냐.”
“…”
“그래, 갈래기 도졌다고 치자. 치자구. 저 새끼들 오고부터 도대체 뭐여, 도대체 나는 뭐여? 난 사람도 아니여? 뭔 일 있어도 할 것은 하고 살어야지, 그거 하자는 소리에 개를 갖다 붙여?”
그는 꾹꾹 눌러둔 말을 꺼내는 순간 한바탕 사고 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씨팔, 좆같이. 나 안 묵어.”
뜨끈뜨끈하게 잘 익어가던 컵라면이 파편을 휘날리며 바닷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그게 가라앉아서 밑밥이 될지 안 될지 구분할 새도 없이 오씨는 내친김에 보온병까지 걷어차버리고 말았는데 그래서 말라붙은 고물 갑판에는 잠시 뽀얀 김이 오른다. 세포댁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서방을 빤히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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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씨는 아침나절부터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벽에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다. 내리 사흘째 샛바람이었다. 돌산도 산을 타고 넘은 바람이 재작년 새삼 재미 붙였던 월드컵 축구 선수들 우 달려가듯 가막만 너른 바다를 흔들며 화양면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스치는 곳마다 일일이 흰 물보라가 일어 보기에도 영 눈이 편치 못했다. 봄이라 낯바닥은 따뜻한데 콧구멍 속으론 찬바람만 들어왔다.
사리철이라 피하고 바람 불어 공치고 하여 어장 못 나간 게 벌써 얼마나 되었나. 이대로 놀면 어장하기 좋은 조금철이 또 가버릴 것이어서 그는 며칠째 바다만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예보에 오늘 밤부터 바람이 잔다고는 하등만.”
그와 같은 업종으로 벌어먹고 사는 옆집 송이 담 너머로 얼굴만 내민 채 바다를 탐색하다가 말을 걸어왔다. 바람에 눈동자를 저 안으로 말아 넣고 있는 송은 까치집 지은 반백 머리카락 꼭지가 결을 이뤄 하늘로 올라가 붙어 있다. 같은 일, 비슷한 나이에 이웃이라 그가 보이면 오씨는 거울 볼 필요가 없었다. 둘은 멀뚱하니 담벼락으로 목에 줄 그어놓은 채 말을 주고받았다.
“어째, 나가볼랑가?”
“가봐야지 어쩌겄어. 아들놈 차 온 김에 잇갑(미끼) 사러 가볼까 하네. 바다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디 메르치 한 마리 손에 들어오나, 제기랄.”
옳은 말이다. 안 그래도 한번 나가야 할 텐데 하고 있던 차에 마침 송이 미끼 사러 간다니 마음이 더 혹했다. 그때 뭔가가 다리를 잡아당겼다.
“한나부지.”
손자이다. 다섯 살 난 큰녀석이 콧구멍을 흰 콧물로 막고 올려다보고 있다.
“바람 찬디 뭐할라고 기 나왔어.”
아이는 히잉, 하는 얼굴이었다. 아침에 제 할미가 낯바닥 씻어주는 걸 분명히 봤는데 그새 뭘 했는지 원상태로 완벽하게 돌아가 있다.
“아이구, 꼬라지하고는.”
눈이 깊숙이 들어가 나중 크면 성질 좀 있겠다 싶은 것은 아들 거쳐 대물림해놓은 제 탓이겠지만 벌어진 콧방울이며 아랫입술 튀어나온 심술보 낯바닥은 제 어미한테 받은 것이다. 신발도 어디서 흘렸는지 맨발이다. 이게 이른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것이다. 이렇게 올려다보고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들어 담벼락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구 추워, 이 새끼야. 쬐깐한 자식이 뭐한다고 꼭 바람 부는 바다를 보겠다는 거여. 그러니 노상 감기를 달고 살지.”
물론 애는 귀를 닫고 있다.
“워치께 할랑가?”
송이 물었다.
“나 두 상자만 사다주소. 오늘 채비해서 낼이라도 나가봐야지. 애새끼들 믹이느라 집구석에 세종대왕이 씨가 말랐어. 어째, 지금 돈 주까?”
“일없네. 이따가 금 봐서 주소.”
그때 나도 있어요, 하는 소리가 안방에서 들렸다. 제 형 빼닮은 둘째 녀석이 으앙, 울음을 터뜨린 거였다.
“가만히 좀 있어, 이놈아.”
마누라 소리다. 사람이 나이 먹으면 여러 가지 순해지는 곳 중에 첫째가 입이라고들 하던데 저 사람은 나날이 쇳소리만 늘어갔다. 그게 다 아들, 손자 탓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귀에 거슬려 뭐한다고 애를 울려, 안방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에서는 별 대꾸 없이 으앙, 아이 우는 소리와 내가 못 살어, 소리가 화답을 하는데 반응은 엉뚱하게도 손에 쥔 큰 녀석에게서 나왔다. 뒤쪽 바라보느라 손에 힘을 놓은 탓에 아이가 발길질로 담을 박차 순간 화단 아래로 넘어질 뻔했다. 조그마한 녀석이 힘은 왜 이리 센지 그는 기도 안 차서 할 말이 없었다.
주낙 어장으로 밥 먹고사는 내외에게 손자가 손님이 아니고 군식구로 들어선 게 석 달 전 겨울이 한참일 때였다. 아들이 내려놓고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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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잡아 대학까지 가르쳐놓은 아들은 뭘 배웠는지 남들이 손 내젓는 사업마다 벌였다가 끝내 털어먹고 마는 버릇이 있었다. 그게 최근에 생긴 버릇이 아니라는 걸 부부는 알고 있었다. 말리는 결혼을 밀어붙인 쓸데없는 저돌성이나, 결혼 때보다 더 말리는 이혼을 감행하는 과단성, 자식 둘 책임지고 키워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당당함이 그 버릇과 궤를 같이 했는데 두 아이 슬쩍 내려놓고 이번에 벌이는 일만 잘 되면 돈을 덤프트럭으로 싣고 와 안겨주겠다고 실실 웃을 때는 이것을 옛날에 더 때려놨어야 했는데, 싶었다.
“너는 심지어 똥 눌 때도 쇠 들고 방위 봐서 눠야 할 놈이여.”
조심에 조심을 더하라고 그렇게 일러 보내고 나자 아이들 둘만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할아비, 할미가 까짓 손자 못 봐주겠는가마는, 이게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에다가, 하나는 걷기는 하되 기저귀를 찼고 하나는 미운 다섯 살이라 짐작보다 훨씬 수고스러웠다. 감기는 형제가 공놀이하듯 주고받고 떼쓰는 것은 협동으로 단결하고 밤중에 우는 것은 불침번 교대하는 듯하고 밥은 각자 개인 식단을 원하고 뭘 부수고 깨는 사고는 뭐라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일어나니 세포댁은 차라리 죽은 시엄씨를 다시 모시는 게 낫겠다고 고시랑거리고 오씨는 오씨대로 삶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죽을 맛이었다. 자식이 상전이라면 손자는 상감이었다.
사지 뻗대며 앙탈 부리는 큰 녀석 원하는 대로 담장에 추켜올려주며 언뜻 보니 그예 갔는지 송은 보이지 않았다. 담 아래 개 한 마리만 바람에 제 털을 빗고 있을 뿐이다. 날씨도 날씨지만 오씨는 공연히 미끼를 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이 봐줄 사람으로 시내 사는 딸을 찍어놓고는 있으나 아직 물어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고등어 두 상자 받아 회 뜨듯 조목조목 칼질한 뒤 다섯 벌 주낙 미끼 단 게 저녁부터 새벽 세시까지 일이었다. 일 있다고 거절하는 딸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해서 반승낙 얻어놓고 아이고 죽겄네, 소리부터 내지르는 마누라 재촉하여 벌인 일이었다. 송이 말한 대로 밤부터 여수 앞바다는 점차 파도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일기예보가 장담하는 것도 한몫했다.
저녁상 치우고 손질해서 광 속에 넣어둔 주낙 꺼내 미끼 끼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두 내외 달려들어 열두시 못 되어 끝났을 거였다. 문제는 녀석들이었다. 밥 먹이랴, 싼 것 치우랴, 씻기랴, 옷 갈아입히랴, 싸우는 것 말리랴, 칭얼대는 거 업고 달래랴, 재우랴, 손 하나가 제대로 빠져나가 한참 더뎠다.
케이비에스 마감 뉴스 시작할 때 찡찡대던 투정 마감하고 두 녀석 잠들자 나갔던 손이 비로소 돌아와 붙었는데 이미 탄력을 잃은 판이라 속도가 나지 않아 쥐나 고양이 안 타게 뒷정리해놓고 보니 세시가 다 되었다. 그는 하품만 만들어내는 아내에게 소주 한잔을 부탁하고는 밤바다를 한번 돌아보았다.
장담대로 바람이 좀 수그러진 듯도 싶었다. 내일은 조금 끝물에 물 때 좋기도 하거니와 한동안 바람이 불어대서 어장을 쉬었기에 이래저래 놓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풍랑 인 직후에는 비교적 어장이 괜찮으니만큼,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 한몫 잘 올리면 다른 때 두번 세번 나가는 폭이 되고도 남을 듯싶었다.
그는 좀 들뜬 기분이 되어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 다독이다가 늘 먼저 잠들곤 하던 세포댁이 모처럼 깨어 있지 않은가. 석 달 동안 부부 합환은 고사하고 살 한 점 만져보지 못했던 것이다. 삼십 년 넘게 살아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눈 감고도 환하지만 기억만으로 바늘 끝만큼이라도 해소된 적이 있던가 어디. 살 붙여보자고 여러 날 기회를 노리던 끝에 막상 기회가 오자 그는 몸이 금방 달아올랐다.
그러나 아내는 쟁반에 반쯤 든 되들이 소주병, 마늘쫑 하나 달랑 붙여놓고 벌써 몸을 눕힌 뒤였다. 어느새 가느다랗게 코까지 골고 있었다. 그는 큼큼, 마른기침을 하며 참고 마셨다. 자신도 모르게 설핏 잠든 모양인데 깔끔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 조금 있다가 씻으러 일어나려니 싶었던 것이다.
입 적시던 소주가 점점 내려와 아랫도리까지 다다르자 세포댁 코고는 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는 못 참고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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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안 씻고 잘랑가?”
코고는 소리가 조금 낮아질 뿐이었다.
“내금새 날 텐디 씻고 자지 그래?”
그제야 끄응, 돌아누우며 이불 차낸 큰 녀석 덮어주면서 잠결에 답했다.
“뭔 내금새가 난다고…”
오씨는 아내 뒤통수를 한번 노려보다가 내쳐 입을 더 열었다.
“아, 좀 씻고 와봐.”
“밤중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다냐, 이 양반이. 애들 깨겄구먼.”
“소리 안 지르게 됐어? 좀 씻고 오라고 했잖어.”
세포댁은 고개 돌려 편치 않은 얼굴로 이쪽을 보며 대꾸했다.
“술 자셨으면 얼른 자기나 하시오. 내일 어장 나간다고 이때껏 잇갑 끼놓구서.”
오씨는 술잔에 술 남은 걸 마치 아버지 죽인 원수로 여긴 듯 단숨에 털어 넣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큰소리에 작은 녀석이 발길질을 하며 뒤척였던 것이다.
“니기미. 속이 꽉 찼는디.”
그러나 못 들었는지 그새 코고는 소리로 답을 했다.
“염병. 아무리 피곤해도.”
그는 거기까지 해놓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투정을 하던 둘째가 기어이 깨나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아이가 방해를 한 듯해서 신경질이 나면서도 영영 잠들어버릴 아내가 그 덕에 깨날 것 같기도 해 그는 어느 쪽으로 표를 던져야 할지 혼동되기도 했다.
“아, 애 울어.”
“…”
그는 아내 머리맡을 향해 홀로 돌아다니는 베개를 찼다.
“애 운당께.”
날아든 베개를 벽 쪽으로 휙 집어던진 아내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올라간 게 그때였다.
“작은 새끼 좀 얼른 보듬으시오. 되(고단해)서 꼭 죽겄구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요. 이녁이 애 깨놨응게 알아서 달래시오.”
그렇게 쏴붙이고는 이불 둘둘 말아 철갑 두르고 자버렸던 것이다. 오씨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신경질을 누르며 우는 아이를 한동안 달랬는데 그런 까닭에 아침이 되어서도, 그리고 오후 어장 나올 때까지도 뒤틀려 있었던 거였다.
“참말로, 라면이 뭘 잘못했다고 그것을 버리고 그러요.”
넘어진 보온병을 세우며 세포댁은 따져 들었다.
“생각이 있으믄 생각을 좀 해봐. 애새끼들 들어왔다고 하지만 안 키워본 새끼들도 아니고, 생각이 쫌만이라도 있으믄 서방을 이렇게 홀대해서 쓰겄어? 쪼금만 맘을 쓰믄 그것이 뭐가 어려워.”
이를테면 오늘 새벽에, 이쪽이 이렇게 뭔가 가득 차서 해소해야 할 필요가 충분한데, 한두 해 산 게 아니라서 어느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빤히 아는 마당에 그 정도면 눈치를 챘어야 옳고, 눈치 챘다면 인지상정으로, 상정이 아니면 오래도록 해왔던 습관대로 고쟁이 한번 내려주면 맘도 안 상하고 몸도 개운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다문 입 속에서 돋아났다가 도로 들어가 소화불량이 되는 그 내용이었다.
“씨부랄, 어장 잘되겄다. 아나 어장이다. 어장이고 뭐고 확 끊어불고 다 때려치워불라.”
“듣자 듣자 항께요, 참말로 염병하네. 이녁은 그렇다고 치고, 나는, 나는 뭐요. 부를 때마다 오는 쫑이요? 메리, 해피요?”
어쨌든 돌아가는 폼이 저가 거시기 하자고 칭얼대는 게 본 내용이라 그는 이를 악물고 담배 하나를 다시 문다.
“당신이야말로 생각이 있으믄 생각 좀 해보시오. 내가 몸뚱아리가 두 개 시 개도 아니고, 이녁하고 거시기는 새로간에 물 한번 제대로 해본 게 언젠지 모르는디.”
“…”
“그것도 뭔 마음이 돼야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요. 죙일 애새끼들 치다꺼리에 정신도 하나 없고 안 쑤시는 데가 없는디, 서방이라고 뭐하나 거들 생각은 안 하고 그것만 안 준다고 저렇게 떼를 쓰니.”
오씨는 자꾸 입이 씰룩거리는 것을 참으며 담배만 빤다. 자신이 어린 손자들과 맞물려가는 게 거듭 뭐했기 때문이다.
“나도 늘그막에 애새끼들 보는 것이 좋겄소? 좋겄냐고.”
“적당히 보믄 되잖어.”
“그 새끼들이 내 것들만이요? 이녁 새끼들은 아니요? 아이고 팔자야, 팔자야.”
“…”
“에이, 드러워서 나도 안 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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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라는 게 마음이 먼저 풀리면 일도 따라 저절로 풀리고 마음이 꼬이면 일도 덩달아 꼬이는 법이다. 라면 던져버린 서방과 숟가락 놓아버린 아내는 각자의 화를 삭이느라 말도 없이 파도에 흔들리기만 했는데 불편한 와중에 더디게 시간은 갔다.
일은 일이라서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 선다. 아무 말 없이, 해왔던 습관대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부표를 걷어올리고 나란히 앉아 오씨는 롤러로 주낙을 당겼고 세포댁은 그것을 차곡차곡 감아 상자에 담기 시작한다. 이게 어장이 되려면 첫 번째 낚시에서부터 주렁주렁 달려 올라오는데 세 개 중에 입이 지나가 하얗게 남은 바늘은 그나마 하나뿐이다. 250미터짜리 첫 벌에 쥐노래미 댓 마리와 그나마 쓸 만한 것으로 민어가 하나 물었는데 어느새 문어가 붙었는지 한쪽 얼굴이 상해 있다. 눈을 파먹고 간 것이다. 이러면 팔 수가 없다.
다음 번 벌도 별 차이 없다. 오씨는 마음 더 가라앉을 곳이 없는 상태에서 줄을 올렸고 세포댁은 남은 미끼 빼내고는 낚시를 순서대로 나무 상자 모서리에 꾹꾹 눌러 끼우며 챙기기만 한다.
배 엔진이 갑자기 털털거리다가 꼬르륵 꺼져버린 것은 세 번째 줄을 끌어올리던 도중이었다. 놀란 오씨가 손에 쥔 것을 내던지고 기관실로 뛰어갔으나 엔진은 급살맞은 것처럼 몇 번 몸을 들썩이다가 목숨을 놔버린다.
기름통 살피니 연료는 아직 남아 있고 전구 불빛이 그대로이니 배터리가 이상 있는 것도 아니다. 기관실에 물이 찬 것도 아니다. 시동을 걸어보아도 틀틀, 소생 불가의 신음만 내다가 다시 죽는다.
남편 자리로 옮겨 앉은 세포댁이 주낙을 올리며 이쪽을 살피는데, 이런 시간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 엔진이 스스로 꺼져버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엔진 오일이 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한 가지이다.
역시나 그거였다. 선미루 갑판 아래 척척 부딪히는 물살 사이로 보니 프로펠러에 적잖은 밧줄이 칭칭 감겨 있다. 얼마나 단단히 감겼는지 프로펠러와 이어진 회전축이 가려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이처럼 엔진이 멈춰버릴 정도로 된통 당하기는 아주 모처럼 만이다.
올라오라는 생선은 아니 오고 오지 말라는 이런 것이 왔는데, 왔으면 쉬 갈 것이지 이렇게 헤어진 지 십팔 년 된 오누이처럼 딱 달라붙어 있으니 오씨는 기가 찬다.
“이런 니미럴.”
그는 낫 감아 묶은 대나무를 집어넣는다. 닳고 낡은 밧줄이라면 낫질 몇 번에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회전축이 매끄럽게 나타날 텐데 이번 것은 아예 맘먹고 달려든 빚쟁이처럼 너 죽고 나 붙자식으로 한 꺼풀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씨부럴… 지미럴… 이 좆같은… 씨팔.”
낫질 한 번에 딱딱 아귀 맞춰 후렴구 넣듯이 욕질 해대던 오씨 뒤로 세포댁이 다가온다.
“뭐 단단히 걸렸소?”
“주낙 안 잡고 뭐하러 와.”
오씨는 쳐들어오는 적군에게 고함치는 장수처럼 일갈을 내지른다.
“다 올렸소.”
하긴 그 말이 맞다. 프로펠러에 밧줄 걸렸다고 올리던 주낙을 내던질 사람이 아니다. 뻔히 알고 있지만 노느니 개 팬다고 당장 눈에 걸리는 마누라에게 역성을 낸 것이고 세포댁 또한 정황이 정황이라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성질을 일단 받아주느라 목소리가 수그러진다. 주낙 다 올린 배는 바다에서 붙잡아줄 게 아무것도 없어 천천히 떠밀리기 시작한다.
“기계까지 섰을 정도믄 뭐가 단단히 감았는갑소이.”
“…”
부릴 수 있는 역정은 이미 부려버려서 마땅히 대답할 게 없는 그는 신경질적으로 낫질에 힘을 주는데 힘이 과했던지 그만 낫 모가지가 쑥 빠져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는 빈 대나무를 들어올려 빤히 쳐다보다가 휙 휘둘러 패대기를 친다. 대나무는 뱃전에 부딪히며 빠직, 반으로 허리를 접고 만다. 그러는 사이 배는 점점 화양면 갯바위 쪽으로 떠밀려간다. 아직 건져내지 못한 주낙 두 벌은 그럴수록 저만치 멀어지기만 한다.
순간 마음이 다급해진 오씨는 제가 무엇을 부러뜨렸다는 것도 잊고 좌우로 고개를 돌린다. 바다에 배를 묶어놓을 수 있는 양식장 같은 것을 찾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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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닻, 닻.”
그 소리에 세포댁은 달려나가 닻을 던지고는 능숙하게 뱃머리 기둥에 묶는다. 떠밀리던 배는 길게 원을 그리다가 바람 불어오는 돌산도 쪽으로 주둥이를 틀고는 멈춘다. 그러나 그뿐. 이게 항구에 정박한 것이라면 모를까, 밤바다 가운데 일단 세운 상태이고 아직 올리지 못한 주낙과 시동이 안 걸릴 정도로 단단히 줄이 감긴 프로펠러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제 할 일 마친 세포댁이 고물 쪽으로 건너와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혀를 찬다.
촘촘히 밤하늘에 박힌 별과 그사이를 유장하게 흐르는 은하수. 그것들을 말갛게 닦으며 지나가는 샛바람. 별빛을 반짝반짝 반사하는 파도. 담배 문 오씨 눈에는 물론 그것들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달도 안 뜬 밤바다. 추운 날씨. 하루 종일 꼬여 있는 심사. 그것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아내. 그리고 멈춰버린 배. 이것만이 숙제처럼 그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담배를 핀들 무슨 수가 날 것일까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것밖에 없어 그는 뻑뻑 밤바다 가운데 작은 불똥 하나를 키웠다 죽였다를 되풀이한다.
“씨팔. 되는 일이 없어, 되는 일이.”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꼬인 속을 풀 수 있는 것이 담배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는 그 다음 할 일을 찾았다는 듯 아내 들으라고 또 한바탕 주절거린다.
“…”
“좆같이. 집구석에서부터 꼬이니 뭔 일이 제대로 되겄어.”
세포댁은 발끈한 얼굴로 뭐라고 대꾸를 하려다가 긴 숨만 내쉬고 만다. 이 상황에서 싸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가 장화 벗고 칼 찾아든 것은 순간이다.
“오매, 지금 뭐한다요?”
놀란 것은 세포댁이다.
“뭐하기는, 보믄 몰라?”
“오매, 세상에. 들어갈라고라?”
“그러면?”
오씨 얼굴에서는 큰일을 작정한 사람 특유의 결연함 같은 게 도드라진다.
“쪼끔 기다려봅시다. 뭔 배 하나만 지나가믄.”
“니미. 여기서 집에까지 채다(견인)줄 배가 어디 있고 설사 그런다한다믄 그 사람들이 돈은 안 받고? 저 주낙은 또 어칙하고, 지랄.”
“거, 욕 좀 안 하고는 말 못하요? 입이 썩겄소, 썩어.”
“입구멍이 썩든 귓구멍이 썩든, 내가 시방 욕 안 나오게 생겼어.”
오씨는 숫돌에 칼을 갈며 답한다.
“그래도 쫌만 기다려봅시다.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들어간다고.”
세포댁 말이 다시 수그러든다. 밉든 좋든 지금 남편이 차가운 밤바다 속으로 들어가 직접 줄을 풀어내겠다는 것 아닌가. 말리기는 할지언정 뭐라고 지청구할 형편은 못 된다.
“아따, 살다보니 이녁이 나 걱정을 다 해주네이. 허참, 왜 인자사? 사람 뒈질 때 된께 걱정을 하기는 좀 하구먼.”
“…”
“씨부랄, 내가 들어가는 것밖에 방법 없어. 그러니 이참에 혹 나 뒤져블믄 지나가는 배 얻어 타고 가서 당신 맘대로 하고 살소.”
그렇게 유언하듯 내뱉고 오씨는 심청이처럼 풍덩 물로 들어간다. 시커먼 물방울이 화들짝 폭발하면서 한겨울 북풍한설 같은 차가운 기운이 몸을 찔러온다. 춥다기보다는 추위에 한방 제대로 얻어맞았다는 표현이 더 맞는데 그래서 그는 일도 시작하기 전에 태풍 맞은 비닐 포장처럼 떨었다.
“아, 가만히 있지 말고 불 좀 비춰.”
일단 몸을 적신 오씨는 고개를 내밀고 고함을 지른다. 짠물 한 모금 목구멍 속으로 벌컥 들어온다. 한 소리 또 들은 세포댁은 조타실 위에 켜놓은 전구를 끌어다 묶고 손전등을 찾아온다.
오씨는 흔들리는 불빛에 프로펠러 위치를 가늠하고는 자맥질을 한다. 차가운 밤바다가 그를 통째로 뒤집어 감싼다. 바닷속은 바람 대신 물살이 흘렀고 그는 떠밀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프로펠러를 잡는다. 회전축은 위에서 보던 것보다 더 단단하게 밧줄에 감겨 있다. 그는 자꾸 떠오려는 몸을 힘주어 균형 잡으며 칼을 댄다. 그러는 사이에 차가운 기운은 바늘처럼 파고들고 저 아래 깊은 바닷속에서 올라온 무서움이 척추를 뚫고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사실 할 짓이 아니었다. 세포댁 말대로 지나가는 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물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춥지 않은 날에, 별 위험 없는 마을 앞바다에서, 최소한 한낮에 하는 것이고 이래저래 여의치 않으면 배를 뭍으로 올려 손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파도치는 밤바다 속에 혼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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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차 하는 순간 죽을 정도로 위험한 짓이라는 걸, 그러니까 저체온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몸이 굳고 그대로 가라앉아 한 사흘 바닥에 누워 있다가 창자가 썩으면서 가스가 차면 부력으로 두둥실 떠올라 파도치는 대로 흘러 다니는 아주 볼썽사나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말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 정도로 춥고 무섭고 혼미하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그는 결행을 한 거였고 결행의 끝을 봐야 했기에 혼신의 힘으로 밧줄을 잘라나간다. 하지만 밧줄은 녹슨 식칼로 쉽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숨이 막히면 부랴부랴 뒷전에 머리 부딪혀가며 고개를 올려 숨 몰아쉬었고 그리고 다시 들어가 칼집 만들어놓은 곳에 재차 날을 박아 썬다.
별 한두 개가 더 뜰 정도 시간이 갔으나 작업에는 진척이 없다. 한 꺼풀 잘라내기는 했지만 뽑혀 나오는 것이 없다. 씨팔, 씨부랄 것. 그는 물속에서도 욕을 했다. 욱해서 내뱉었던,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실제 죽을 수도 있는 정황과 만나면서 말짱 사라졌지만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는 부아는 여전히 빛을 발하며 항아리처럼 동그랗게 마음속에 모여 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이 짓을 할 힘을 얻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몸은 급속도로 식어간다. 손가락이 굳고 얼마 있지 않아 손목과 어깨가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발을 놀리면 언 아랫도리에서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마 혼(魂)이 반 이상 빠져나갔으려니 싶었을 때 어찌어찌 한 토막의 밧줄이 둘로 나뉘면서 순식간에 프로펠러는 자유의 몸이 된다.
오씨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쉬었는데 아직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어서 공기 대신 재차 물을 들이키고 만다. 그는 이제 진짜로 죽는구나, 싶다. 빨리 물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몸이 그대로 경직되어서 한끝도 움직일 수 없다. 오른손은 칼을 쥔 채, 왼손은 밧줄 토막을 쥔 채 그대로 동상(銅像)이 되어간다. 터져 나오는 기침만 본능적으로 참을 뿐으로 혼미해지던 정신은 급기야 아득해지며 저 속에서 고통이 몸부림을 치기는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그대로 가라앉아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바닷속이 조금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멀어진다. 무언가가 그를 끄집어올리고 있다.
남편이 침 맞은 병아리처럼 움직임이 없자 세포댁이 삿대를 집어넣어 갈고리로 점퍼 모자를 걸어 올린 것이다.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오씨는 재작년에 세상 버린 어머니를 만나 숨을 쉰 듯하고 북두칠성님 만나 별도 구경한 듯하고 영등 할미 만나 바람도 만난 듯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어떻게 갑판에 올라왔는지 알 길이 없다.
“정신 채리시오, 오매 무건거, 즈가부지, 여기 좀 잡아보시오.”
세포댁 소리가 만고강산 유람헐제, 이런 노래 대목으로 들리고
“미쳤어, 미쳐. 염병한다고 바다에 들어가 갖고는… 아이고, 정신 좀 채려보란 말이요”
이 말은 너는 죽었느니라, 너는 이제 씨언허게 죽어부렀니라, 이런 저승사자의 말로도 들린 듯하다.
이제 살길은 체온을 회복하는 것밖에는 없다. 어찌어찌 조타실에 누운 오씨는 여전히 정신을 놓고 으어어어, 으어어어, 얼어붙은 신음만 내뱉는다. 좁은 조타실에 무어가 있겠는가. 따뜻한 물이 있으면 좋으련만 갑판에서 기화해서 구름 되어버린 게 한참이다.
세포댁은 뒤도 안 보고 남편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어부의 딸에, 어부의 아내에 저 자신도 어부가 된 지 반평생이라 지금 무어가 필요한지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자신이 중학교 다닐 때 세상 버린 할머니를 만나 뭔가 주는 것도 받아먹고 처음 보는 팔 대조 할아버지도 만나 뭐라고 한 소리 듣기도 하고 문득 새신랑 되어서 장가들기도 하고 느닷없이 개가 되어 달 보고 컹컹 짖기도 하고 갑자기 가오리가 되어 그물에 잡히기도 하고 뜬금없이 방패연이 되어서 꽁꽁 언 채 하늘도 날고 순식간에 태어나서 어머니 젖을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프며 정신이 든다.
봄을 만난 듯 얼어붙은 어느 한 곳이 허물어진 듯하다. 따스한 기운이 살랑살랑 피부에 퍼지면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데 여전히 배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저 죽어 어디 꽃피는 곳으로 간 것 같지는 않다.
눈 떠보니 홀랑 벗겨져 있는데 똑같이 벗어 알몸인 세포댁이 언 몸을 꼭 껴안고 있는 것 아닌가. 가슴께를 누르느라 양 젖이 옆으로 잔뜩 퍼져 있고 아랫도리는 행여 물 샐 틈 있을세라 촘촘히 밀착한 상태이며 그 위로 적잖은 엉덩이 두 개가 달처럼 포실하게 떠 있는데 두 팔로 목과 머리를 껴안고 그렇게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이다. 온기는 세포댁에게서 온 거였고 그만큼 그녀는 떨고 있었다.
“정신 좀 드요?”
“이 사람아…”
그는 입이 차마 안 떨어졌다. 굳이 말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 앞뒤 볼 것 없이 군용모포 끌어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아내를 꼭 껴안는다. 석 달 만이다.
『청춘가를 불러요』에서 전재 (한창훈, 한겨레출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