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가 네 살짜리 사내아이를 물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설날 밤 열시경으로, 경북 봉화군의 한 농가에서였다. 농가가 있는 마을은 경북 봉화에서도 북쪽으로 치우쳐 있어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었다. 족제비에 물린 꼬마는 서울 아이로, 설을 맞아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봉화군의 할아버지 집에 왔다가 사고를 당했다.
현장에서 운 좋게 족제비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김영부 씨였다. 이 집의 주인이자 네 살짜리 꼬마의 할아버지였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족제비를 때려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침 당일은 설날이었고 음력으로 새해 첫날부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마늘과 비닐하우스 딸기, 벼농사를 짓는 김영부 씨에게는 양력보다 음력이 더 소중했다. 그에게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은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음력으로 설을 쇤 후부터였다. 게다가 급한 것은 족제비에게 물린 손자였다. 그래서 하룻밤을 묵혔고, 그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도끼나 삽, 혹은 몽둥이로 때려죽일 작정이었다. 날이 밝았을 때 족제비에게 물린 꼬마의 아버지이자 김영부 씨의 큰아들인 김기조 씨는 아버지에게 족제비가 어떤 세균을 갖고 있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만큼 아이를 데리고 읍내의 병원에 다녀올 때까지 족제비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김기조 씨는 텔레비전을 많이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혹시 족제비가 엄청난 병균을 갖고 있다면, 그 족제비를 살려두어야 치료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름대로 쓸 만한 생각을 해냈다. 따지고 보면 이러나저러나 별반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말하자면 아이를 물어 상처를 낸 족제비가 엄청난 질병을 보유하고 있다면 설령 족제비를 살려둔다고 해도 그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자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읍내 병원에 다녀온 큰아들 김기조 씨는 아버지 김영부 씨에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큰아들은 설 연휴라 문을 연 병원을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면서 파상풍 예방 주사를 비롯해, 감염 위험이 있는 모든 종합 예방 주사를 맞혔노라고 했다. 아이는 손을 붕대로 친친 감고도 사탕을 얻어먹어서인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김영부 씨는 이제 족제비를 때려죽이기 위해 적당한 연장을 찾고 있었다. 물론 손자에 이어 할아버지까지 물리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쌀자루 속에 족제비를 가둬둔 채로 밖에서 쌀자루를 두들겨 죽일 작정이었다. 김영부 씨가 곡괭이 자루를 단단히 움켜쥐고 족제비를 가둬둔 쌀자루를 요리조리 살피고 있을 때 제 아이를 방안에 데려놓은 큰아들 김기조 씨가 걸어나왔다. 큰아들은 제 아들의 상처가 대수롭지 않다는 읍내 의사의 말에 한결 기분이 나아진 듯 했다. 큰아들은 막 곡괭이 자루를 휘두르려는 제 아버지 김영부 씨의 팔을 잡으며 은근히 웃었다.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풍류를 모르십니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축제처럼, 신나게 하셔야지요.”
아버지 김영부 씨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얼굴로 아들을 보았다. 손자의 그 앙증맞고 작은 손을 물어뜯어 피가 나게 한, 어쩌면 뼈에 심각한 상처를 줬을지 모를 족제비를 패 죽이는 일에 풍류라니? 애지중지 길러온 닭을 물어가는 족제비를 때려죽이는 일에 축제라니? 온 가족이 뭇매를 때리듯 한 대씩 혹은 두 대씩 족제비를 번갈아가며 때려죽이자는 말일까? 그래서 분풀이를 통해 축제 기분을 좀 내자는 말일까? 뭐 그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아내가 그런 꼴을 용납할지 어떨지… 아들은 김영부 씨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족제비를 그냥 패 죽이면 재미가 없으니, 우리 집에서 대대로 길러온 혈통 좋은 진돗개에게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큰아들 김기조는 족제비를 그냥 단칼에 때려죽이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난 밤 손을 물려 크게 놀란 자신의 네 살짜리 아들을 위로할 만한 적당한 처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혈통 좋은 우리 집 진돗개가 지금까지 야성을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 분명한 만큼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를 풀어주자고 했다. 큰아들 김기조는 덧붙이기를 요즘 농촌엔 재미있는 놀이가 없다. 이렇게 심심한 겨울날 동네 주민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대단히 공익적이며, 서울에서 이벤트 사업을 크게 하는 자신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큰아들은 특히 이제 세월이 변한 만큼 설날이라고 무작정 윷놀이를 하거나, 방구석에 들어앉아 화투패만 잡는 전근대적이고 한국적인 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말도 했다. 김기조는 이것은 방구석 문화, 담벼락 문화를 넘어 광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곧 이웃 간의 벽을 허무는 시민 행동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무척 어려운 말을 덧붙였다.
“분노를 분노로 드러내지 말고 한바탕 잔치로 승화하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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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조두진
정유재란 당시 순천 인근 산성에 주둔한 일본군 하급 지휘관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2005년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단편소설 「게임」으로 2001년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98년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남자의 시신과 함께 발굴된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4백 년 전 조선 남녀의 안타까운 운명과 사랑을 재구성한 『능소화』, 임진왜란 말기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통해 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를 담아낸 『유이화』, 소소한 일상의 사건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의 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단편들을 수록한 『마라토너의 흡연』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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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영부 씨는 이 말라비틀어진 산골 출신인 아들이,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 큰 사업을 무리 없이 해내는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하물며 족제비 한 마리를 두고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이벤트를 생각해낸 모습에 놀랐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김영부의 자식이라면 마땅히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각 집집마다 연통을 돌렸다. 큰아들과 둘째 딸은 물론 군대에서 제대한 이래 삼 년 동안 꼬박꼬박 집에서 돈을 타가며 대도시에서 놀고먹는 막내아들까지 나섰다. 그래도 혹시 빠진 집이 있을 것을 염려해 마을 이장에게 특별 방송을 부탁했다. 연통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오후 1시에 김영부 씨 집 마당에서 사악한 족제비와 혈통 좋고 용맹한 김영부 씨의 진돗개 간에 피 튀기는 한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니 동네 주민 및 멀리 대처에서 오신 가족 친지 여러분의 많은 참관 바랍니다. 김영부 배상.’
일이 그렇게까지 틀어지고 커진 것은 바로 그 연통 때문이었다. 나중에 김영부 씨는 그때 그냥 곡괭이로 때려죽이고 말 것을, 내가 뭣에 씌어도 단단히 씌었지, 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어쨌든 50호 남짓한 이 마을의 모든 집에 연통을 돌렸고, 시계는 정오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소시민인 김영부 씨는 진돗개와 족제비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남몰래 족제비 다리뼈를 부러뜨려 놓을 작정을 했다. 물론 정직하게 싸운다고 해도 선대부터 대대로 길러온 자기 집의 용감하고 혈통 좋은 진돗개가 이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싸움 중에 진돗개가 상처라도 입는다면 막심한 손해였다. 어차피 족제비는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럴 바에야 족제비 앞다리를 남몰래 부러뜨려 놓음으로써 승리를 따놓고 시작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사람의 세계든 동물의 세계든 어디나 존재하는 ‘홈 어드밴티지’로 충분히 용인 가능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홈 어드밴티지를 생각해낸 김영부 씨는 인근의 대도시인 대구의 매천 시장에 고추를 내다 팔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트럭 장사꾼에게 사온,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본 일이 없었던 커다란 멍키 스패너를 찾아냈다. 멍키 스패너는 족제비가 아니라 송아지 다리라도 분질러 놓을 만큼 크고 단단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자동판매기에서 뽑아온 커피를 홀짝거리던 날 멍키 스패너의 반들반들한 빛깔과 쇠비린내가 마음에 들어 사온 것이었다. 그걸 사왔던 날 십 원 한 푼 쓰는 일에도 바들바들 떠는 아내의 타박을 녹록치 않게 듣기도 했다.
‘당신이 농사꾼이지 기계 정비공이냐? 대체 그 멍키가 어디에 쓸 데가 있다는 말인가?’
아내의 요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얼마나 쓸모 있는 물건인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연장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자신의 선견지명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김영부 씨가 멍키 스패너를 들고 족제비를 가두어 매달아둔 쌀자루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집집마다 연통을 돌리고 막 마당으로 들어서던 큰아들이 놀란 눈을 뜨고 달려왔다.
“아버지 뭐 하시려고요?”
“뭐, 별거 아이다, 쪼매 조처를 취해 놀라꼬.”
“무슨 조치 말씀입니까?”
김영부 씨는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우리 집 진돗개가 싸움 중에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는 것이다. 어디 망신뿐이냐, 이게 무슨 재산상의 손실이란 말이냐.
“내가 나이를 노름판에서 개평 뜯어서 먹은 게 아니다. 세상을 오래 산 아버지의 지혜이니 너는 그렇게 알고 구경이나 해라.”
김영부 씨는 그렇게 말하고 족제비를 잡아가둔 쌀자루를 조심스럽게 열려고 했다. 사람이 다가서자 안정을 되찾아 얌전하던 족제비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족제비가 설치는 바람에 자루가 거칠게 출렁댔다. 놀란 김영부 씨가 들고 있던 멍키 스패너로 족제비를 두들기려는 찰라 큰아들 김기조 씨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멍키 스패너를 빼앗았다.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동네 개싸움입니까? 이건 엄연히 설맞이 특별 이벤트입니다. 관중을 수백 명 끌어 모아놓고 판을 벌이는데, 반칙을 쓰겠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게 들통 나면 우리 집 망신은 어쩔 겁니까? 진돗개가 좀 상처를 입으면 치료하면 되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진돗개가 싸움에 져서 죽으면 곱게 묻어주면 그만 아닙니까?”
“임마야, 그기 말처럼 쉬운 일이가? 그라고, 어차피 죽을 족제빈데 앞다리 좀 분질러 놓는다고 무슨 문제란 말이고? 저리 비키라.”
“아버지, 지금 우리는 단순히 족제비 한 마리를 때려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죽일 바에야 진돗개하고 싸움을 뭣 하러 붙입니까? 곡괭이로 때려죽이면 그만이죠. 이건 엄연히 관중을 위한 설 특별 이벤트다, 이 말씀입니다.”
“이벤트? 정신 좀 챙기라 임마야, 이벤트가 뭐 그리 중요하노? 그라고 우리 집 진돗개가 어디 보통 진돗개가? 전국적으로 혈통을 보증받는 진돗개다. 그런 진돗개를 잃으면 손실이 너무 크다, 이 말이다.”
“진돗개, 그거 얼마 합니까? 제가 돈 드릴게요.”
“내가 임마야, 꼭 돈 때문에 이 카나? 너그 돈은 우리 집 돈 아이가? 뭐할라꼬 쓸데없이 니가 돈을 쓴단 말이고? 마, 입 다물고 아부지 하는 거 구경이나 해라.”
“아버지요. 아버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쪼잔한 사람이 됐습니까? 아버지 딴 말씀하지 마이소. 이번에는 제 말씀대로 하셔야 합니다. 공연히 족제비 다리라도 분질렀다가 사람들이 그걸 알기라도 하면, 저는 서울 가서 이벤트 사업 못합니다. 집집마다 설 쇠려고 서울서 내려온 자식들도 많을 건데, 서울 바닥에 소문나는 거 금방입니다. 서울 바닥이 아무리 넓어도 사람 혓바닥보다는 좁습니다. 아버지, 절대 안 됩니다. 족제비 한 마리가 문제가 아니고, 인간 김기조, 아버지의 장남, 한국 이벤트 컨설팅 대표의 장래가 걸린 문젭니다. 절대! 안 됩니다.”
아버지 김영부 씨와 아들 김기조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김영부 씨 집 마당으로 모였다. 사람들을 기다리게 해놓고도 얼마든지 족제비의 앞다리를 부러뜨릴 시간은 있었다. 족제비를 가둬 매달아 둔 쌀자루를 창고 안으로 몰래 들고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창고 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눈여겨볼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김영부 씨에게는 그럴 틈이 없었다. 이 동네 출신으로 설을 쇠기 위해 서울서 내려온 사람 중에 수의사이며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를 맡고 있는 송종호가 거품을 물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김영부 씨 집 대문으로 헐레벌떡 들어서면서부터 큰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이건 안 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송종호는 다짜고짜 김영부 씨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큰아들 김기조와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한 송종호는 거의 애원조였다. 김기조가 송종호를 떼어놓았다. 워낙 덩치가 작고 사람이 야윈 탓에 송종호는 어릴 적부터 별명이 송사리였을 만큼 몸에 힘도 없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뱃살이 붙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작고 힘은 없었다. 김기조가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잡아당겼을 뿐인데, 송종호는 맥없이 김영부 씨를 부여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러나 송종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서울에서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를 맞고 있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야생동물을 어째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계통도, 질서도 없이 지껄였다. 물론 김영부 씨와 큰아들 김기조는 송종호의 오랜 설득에 조금도 감동 받지 않았다.
“어르신, 아니 기조야, 이런 싸움은 너무 잔인하다. 이런 잔인한 싸움을 내가 몰랐으면 모를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집 손자 아니, 기조 너의 금쪽 같은 아들이 족제비에게 물린 것은 정말이지 분하고 애통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큰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영구 장애가 발생한 것도 아니지 않으냐? 세상에 족제비가 뭘 알고 그랬겠냐? 족제비가 이 집에 무단 침입해서 닭을 잡아먹으려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배가 고파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니 족제비를 그냥 야생으로 돌려보내라. 앞으로 너희 집 닭들이 더 이상 족제비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내가 닭장 수리비를 부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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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호가 김영부 씨의 손을 부여잡고, 김기조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설교를 늘어놓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마당을 반 이상 메울 만큼 모여들었다. 아이들 중에는 더러 족제비가 담긴 쌀자루를 툭툭 쳐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김영부 씨는 족제비 앞다리를 부러뜨려 자신의 진돗개에게 ‘홈 어드밴티지’를 제공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김영부 씨는 화가 났다. 그는 매달리며 애원하는 송종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송종호는 갑자기 냉랭해진 김영부 씨의 태도에 기가 꺾인데다 웬일인지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 큰아들 김기조가 송종호를 달래 자리에 앉혔다.
“송사리야. 네가 너무 흥분한 모양이다. 그만한 일로 무슨 눈물까지 글썽거리냐? 기껏 해야 족제비 한 마리다. 게다가 알다시피 우리가 산으로 들로 나가서 조용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착한 족제비를 납치해온 것이 아니지 않니? 족제비가 한밤중에 우리 집에 침입한 것을 우리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잡았을 뿐이다. 네 말대로 족제비가 우리 집을 침입하고, 닭장을 노린 것이 동물적 본능이라면, 족제비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생각도 지극히 인간적인 부성애라 할 수 있지 않겠냐? 그러나 나는 오직 내 아들의 손가락을 물어뜯은 동물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분별없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오늘 족제비와 우리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 간에 한판 싸움을 벌여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우리 고향 어른들에게 즐거운 추억의 이벤트를 제공해드리고 싶은 것이다.”
“기조야 너는 사람이고 족제비는 짐승이다. 족제비는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족제비에게 무슨 죄가 있겠니? 니가 오늘 족제비를 죽이면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인 내 체면은 뭐가 되냐? 제발 내 얼굴을 봐서라도 족제비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다오, 부탁한다, 기조야.”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 송종호는 애원했다.
“송사리야, 네 얼굴을 요모조모 아무리 뜯어봐도 족제비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어쩌겠냐? 그리고 넌 자꾸 본능이니 체면이니 하는데, 그러자면 나도 본능이 있고 체면이 있다. 난들 금쪽 같은 내 아들의 손가락을 물어뜯은 족제비를 죽이고 싶은 본능이 조금이나마 없겠냐?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제 와서 족제비 싸움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이벤트 사업가로 서울에서 이름을 날리는 내 체면은 뭐가 되겠냐? 너는 어째서 여태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족제비는 구구절절 이해하면서 불알친구로 콩 한쪽까지 나눠 먹었던 내 입장은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는 거냐? 게다가 어째서 동물 보호협회인지 뭔지 모를 네 입장은 생각하고, 이벤트 사업가인 내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거냐?”
이때 김기조와 송종호의 고향 중학교 후배이자 법대 졸업생으로 사법 시험에 일곱 차례나 실패한 박형조가 이 흥미로운 언쟁에 끼어들었다. 그는 진작부터 두 고향 선배의 언쟁이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식한 놈들이 무식한 짓거리를 하고 앉았구만.’
박형조는 팔짱을 끼고 다소간 사람을 깔보는 듯한 미소를 띤 얼굴로,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 박포졸 씨는 딸 셋을 낳고 천신만고 끝에 삼대독자인 형조를 낳았다.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박포졸 씨는 아들이 장차 법관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래서 이름도 아예 형조라 짓고 옛날 같으면 형조판서라 불릴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형조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생 자격이 아니면 절대로 고향에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거듭된 실패로 부모의 지원이 끊긴데다, 사귀던 여자마저 떠나버린 탓에 끼니도 챙겨 먹기 힘든 처지였다. 형조는 설을 핑계로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를 설득하는 중이었다. 논이든 밭이든 팔아서 딱 일 년만 더 공부해보겠노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싸늘했다. 형조는 여태까지 자신이 해온 어려운 공부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산골 노인 하나 설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지극한 열패감을 느끼던 중에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쩌면 이 싸움이 아버지를 설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조는 김영부 씨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족제비와 진돗개 싸움 구경을 꺼리는 아버지 박포졸 씨를 이 집 마당으로 어렵게 모셔왔다. 아버지 옆에 나란히 서서 세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형조는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며 사람들이 모인 마당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에에. 동네 어르신 여러분,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박자 포자 졸자 어르신의 아들 박형조라고 합니다. 법대를 졸업하고 현재 사법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네 형님들과 어르신들의 다분히 감정적인 언쟁을 듣고 있자니 법률 전문가인 제가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은 복수주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내 힘으로 복수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의, 또 손자의 손가락에 지극히 심각한 상처를 입힌 족제비를 때려죽이거나 진돗개와 싸움을 붙여 죽이겠다는 낙동 어르신(김영부 씨의 고향인 경북 상주군 낙동면에서 따온 호)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미덕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건은 어디까지나 법률의 문제이며,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미덕이라는 점을 이유로 복수를 감행한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고래로 복수는 또 복수를 낳습니다. 우리가 지금 분에 못 이겨 복수를 행할 경우 우리는 복수라는 앞과 뒤,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막기 위해 우리 형법은 복수를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절마가 지금 무슨 헛소리하는기고? 누가 누구를 복수한다는 말이고? 우리가 족제비를 때려죽이기라도 하면 족제비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우리 식구들한테 복수라도 한다 이 말이가? 무슨 말이 저렇노? 배웠다는 놈이 저래 막 지껄여도 되는기가? 그 아비의 그 자식이라는 말이 딱 맞네.”
그러지 않아도 형조의 아버지 박포졸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영부 씨의 일갈에 법대 졸업생은 잠시 주춤했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 오해 마십시오. 족제비들이 떼로 몰려와서 어르신 가족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아무리 어르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또 이 자리에 모이신 동네 어르신들의 생각이 신중하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족제비를 죽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지금 족제비가 받고 있는 혐의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이 집 손자님의 손에 난 상처가 족제비의 이빨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 족제비의 난동에 놀란 손자님께서 제 풀에 설치시다가 닭장의 모서리나, 튀어나온 못대가리에 찔리신 것이라면 우리는 오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기에 앞서 사건이 발생한 닭장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엄중 중립적인 법률가 입장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집 닭장은 털이 많은 닭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사람의 피부에는 심각한 상처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여럿 있었습니다. 우선 닭장의 나무는 대패질이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사람 손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만큼 표면이 거칠었습니다. 튀어나온 못도 두 개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무로 만든 닭장의 이 거친 표면이나 튀어나온 못이 이 집 손자님의 손에 상처를 입혔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닭장 문에 붙여둔 장석은 못이 빠져서 상당히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족제비에게 일방적으로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어르신의 금쪽 같은 손자님께서 상처를 입었을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증언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손자는 아직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할 만큼 어린데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물론 사건의 당사자인 족제비는 사람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또한 사건의 거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닭들은 아무런 증언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설령 닭들이 어떤 증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법률적인 효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있습니다. 우선 닭들은 당시 매우 심각한 공포, 즉 다시 말해서 패닉 상태에 있었습니다. 패닉 상태에서 지각한, 그리고 판단하고 인식한 상황을 우리가 법정 증거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법률 전문가와 의학 전문가들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법대 졸업생의 말에 웅성거렸다. 처음 그가 마당 가운데로 나섰을 때는 한때 동네의 수재였으며, 서울 소재 대학의 법대에 입학한 걸출한 인물로 틀림없이 무엇인가 중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박형조의 말은 동네 주민들의 공감을 조금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놈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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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 도란놈(돌아버린 사람) 아이가? 여기가 법정이가?”
“설이라고 낮술을 좋게 했구만.”
“몇 년 동안 죽자고 공부만 했다고 캐쌌더니 아무래도 이래 된 가 봬.”
어떤 이는 검지로 자신의 귓바퀴의 주변을 돌렸고, 어떤 이는 혀를 찼고, 어떤 이는 키들키들 웃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자 법대 졸업생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지금 어르신들은 신중해지셔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오판의 여지가 있는 만큼 섣불리 어떤 선고를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그 형벌이 삽으로 때려죽이기나 진돗개와 싸우게 해서 죽이는 것과 같은 극단의 형벌이라면 후에 씻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법조 전문가로서 제 의견을 마치는 바입니다. 아울러…”
제 기분에 취한 박형조는 ‘아울러 저의 변론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추후에 변론 요지서를 통해 서면 제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아직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지만, 혼자뿐인 방에서 법정에 선 듯한 착각에 빠져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던 버릇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작부터 가당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김기조가 말허리를 잘랐다.
“니, 지금 무신 헛소리하는 거고? 우리가 언제 족제비를 두고 재판한다 카더나? 그냥 때려죽이자니 심심해서 진돗개와 한판 싸움이나 붙이자는 거다. 여기에 무슨 재판이고 극형이 등장한단 말이고?”
서울 생활 일 년도 안 돼 경상도 사투리를 완전히 벗었던 이 집의 큰아들이자 이벤트 사업가인 김기조는 기분이 몹시 상한 나머지, 십 년 가까이 써본 일이 없는 사투리를 거르지 않고 쏟아냈다.
“그냥 우리는 이벤트나 한판 벌이면 된다. 내 방식대로 우리 집 진돗개하고, 족제비를 농약통에 집어넣고 싸움 붙일 끼다. 내 방식이 맘에 안 드는 사람은 안 보면 된다. 누가 억지로 보라 캤나? 보기 싫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우리 집 마당에서 조용히 나가면 된다, 이 말이다. 보기 싫으신 분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이소, 그라고 새해 복이나 많이 받으시소. 그라고, 니이, 형조라 캤나? 니도 시끄러우니까, 너그 아버지 모시고 얼릉 너그 집으로 가거라. 재판은 너그 집에 가서 너그끼리 해라.”
김기조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농약을 칠 때 쓰는 검은색 농약통을 창고에서 꺼내왔다. 통은 어른 가슴 높이만큼 깊은데다 지름이 1미터가 넘었다. 덩치가 큰 편인 큰아들도 그 농약통을 들지 못해 45도 각도로 기울여 빙글빙글 돌리며 마당 가운데로 끌고 왔다. 농약에 물을 백 배수나 이백 배수 정도 풀어서 섞고, 논밭에 뿌릴 때 쓰는 통이었다.
“농약통 좀 빌리도라 캤을 때는 밑이 깨져서 안 된다 카더이마, 바늘 구멍 하나 없이 멀쩡하네?”
마을 주민들 틈에 서 있던 박포졸 씨가 중얼거렸다. 박포졸 씨는 좀 전에 일장 연설을 마친 법대 졸업생 박형조의 아버지로 지난 가을 농약통을 빌리려고 김영부 씨 집으로 찾아왔지만 없다는 대답을 들었고, 그 일로 두 사람은 사이가 소원해졌다. 김영부 씨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기 그 통이가? 그 통은 깨져서 내버리고, 새로 산 기다. 하루 이틀 쓸 것도 아니고, 해마다 남의 집 농약통 빌려돌라 카지 말고 하나 사면 어디가 덧나노?”
“내 눈에는 그기 그거 같구마는, 아니면 그만이지, 짜증은 와 부리노?”
“이기 어째 그기 그거고? 눈이 있으마 좀 뜨고 봐라. 애비나 자식이나 하는 짓이 어째 그렇게 똑같노?”
“지금 뭐라 캐샀노? 거기에 애비하고 자식이 와 나오는데?”
김영부 씨의 큰아들이 아버지와 박포졸 씨를 말렸다. 큰아들은 봉화군 쌍십리 마을이 건설된 이래 최고의 이벤트가 벌어지는 마당에 사소한 싸움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말자고 했다. 김기조는 농약통을 마당 가운데 놓고 무질서하게 서 있던 사람들의 위치를 정리했다. 이렇게 질서 없이 앉아서는 제대로 구경할 수 없으니 키가 작은 사람은 앞으로 오고, 키가 큰 사람은 뒤로 가고, 대청에도 앉고, 덩치가 작은 아이들은 감나무 위에 올라가라고 사람들을 지목했다. 그래도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나 손자를 목말 태우기도 했다.
김영부 씨의 큰아들 김기조는 족제비를 먼저 통에 넣을 것인가, 진돗개를 먼저 통에 넣을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아무래도 싸움은 지형지물이 중요하다. 진돗개를 먼저 통에 들어가게 한 다음 주변 상황에 적응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진돗개를 끌고 나왔다. 진돗개를 농약통에 넣기 전에 쌀자루에 넣어 매달아둔 족제비 냄새를 맡게 했다. 곧 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진돗개에게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김영부 씨의 큰아들이 진돗개를 들어 족제비가 든 쌀자루에 코를 갖다대자 개는 몸부림쳤다. 개와 족제비 사이에는 지금까지 별다른 악의가 없었다. 그러나 개는 족제비 냄새를 맡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침을 경험했다. 물어 죽여야 할 상대가 지금 쌀자루 안에 있으며 곧 자신과 싸우게 될 것임을 알았다. 쌀자루에 갇힌 족제비 역시 막무가내로 요동쳤다. 동물적 본능으로 살의를 풍기는 상대가 가까이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김영부 씨는 몸부림치는 족제비를 삽이나 곡괭이 자루로 한 대쯤 때리고 싶었다. 그냥 싸움을 붙였다가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작아도 족제비는 야생동물이다. 그에 반해 진돗개는 아무리 혈통이 좋다고 해도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다. 매일매일 피 튀기는 싸움의 결과로 제 먹이를 챙기는 야생동물과 사람이 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비바람을 피하는 집에 사는 진돗개는 다르다. 물론 몸집으로 보나 이빨 크기로 보나 족제비는 진돗개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공연히 재산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동네에서 유일한 진돗개이며, 옆집에서 교배를 부탁해도 응하지 않았던 혈통 좋은 개였다. 그가 진돗개를 풀어 키우지 않았던 것도 동네 잡종 개들에게 함부로 씨를 뿌릴 수 없도록 함이었다. 그런 진돗개가 족제비 따위에게 진다면 체면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삽으로 한 대쯤 족제비의 대갈통이라도 때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너무 많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수백 개의 눈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만약 족제비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다면 야유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김영부 씨는 삽으로 쌀자루에 든 족제비의 대갈통을 때리는 대신 쌀자루를 빙글빙글 돌렸다. 어지럽히기라도 할 작정이었다. 김영부 씨가 족제비를 가둔 쌀자루를 쉬지 않고 돌리자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영부 씨는 흐흐 웃으며 덧붙였다.
“이래야, 족제비도 성이 좀 날 게 아닌가…”
김영부 씨의 큰아들이 진돗개를 지름 1미터짜리 농약통에 넣자 사람들은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오므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더러는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고 더러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진돗개! 진돗개!를 외치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영부 씨의 큰아들은 진돗개를 통에 넣고 족제비가 갇힌 쌀자루를 들고 마당 가운데로 왔다. 족제비의 요동이 만만치 않았다. 몸집이 큰 편인 김영부 씨의 큰아들은 두 손으로 쌀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거세게 요동치는 쌀자루를 보며 김영부 씨는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누가 나서서 이 상황에 제동을 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은 이미 두 짐승의 싸움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도, 법대생도 더 이상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내심 두 짐승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김영부 씨의 큰아들이 족제비가 든 쌀자루를 진돗개가 기다리는 농약통에 풀어 넣으려는 찰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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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마당 가운데로 뛰쳐나온 사람은 양상대였다. 이 동네에서 가장 못 사는 집안의 자식으로, 법으로야 없어졌지만 누구도 상대하지 않았던 불가촉천민으로, 구질구질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지방에서 가장 유력한 신문사인 한강이남 최고일보의 배달부가 되고, 지국장이 되고, 급기야 경북 봉화군의 주재기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동네의 또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남의 집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었으며, 또래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 이 지방 유력 신문의 배달꾼이자 읍내 술집에서 일했으며, 또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엘 갔을 땐 이 마을에 얼씬도 않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서른이 훌쩍 넘어 이 일대 일곱 개면을 영역으로 하는 지국장이 돼 돌아왔다. 물론 일곱 개면을 통틀어 봐야 그 신문을 보는 사람은 오백 명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봉화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대접받고 있었다. 군수와 부군수는 물론이고 읍내 파출소장과 면장까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지국장은 단순히 신문 배달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오지에까지 기자를 파견할 수 없었던 한강이남 최고일보는 그를 지국장 겸 무보수 주재기자로 임명했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양상대를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수와 부군수는 물론이고 파출소장과 면장까지 허리를 굽혀 절하는 양상대 기자 앞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됐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다가도 양상대가 한강이남 최고일보 깃발이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올해 나락 농사는 어떻습니꺼?”라고 물으면 자신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서며 밀짚모자를 벗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게 됐다.
“듣자니 벼멸구가 보통이 아니라 카던데? 어떻게 면사무소에서 방역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꺼?”
양상대 기자가 그렇게 물으면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방역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면 공연히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것 같았고, 방역이 잘 되고 있다면 올해 농사가 풍년이니 연말에는 대출 연장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물쭈물 하노라면, “마, 고생들 많습니더, 아무튼지 농사가 천하지대본인데, 잘 돼야 안 되겠십니꺼?”라고 말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사람들은 양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농사가 천하지본이라는 말은 좋은 말 같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문제라는 말인지, 아니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아무튼 양상대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나는 한강이남 최고일보 양상대 기잡니다. 나는 오늘 경북 봉화군 쌍십리 김영부 씨 집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을 그대로 보도할 생각입니다. 나는 오늘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 생각은 없습니다. 언론이란 언제나 엄정 중립을 취할 뿐입니다. 다만 나는 오늘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자, 하던 대로 계속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상대는 햇볕이 좋은 대낮임에도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진돗개가 갇혀 있는 농약통을 옆에서 찍고, 위에서 찍었다. 물론 쌀자루 안에서 몸부림치는 족제비도 찍었다. 김영부 씨의 큰아들은 양상대가 원하는 대로 포즈를 잡아야 했다. 족제비가 들어 있는 쌀자루 주둥이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이기도 하고, 족제비가 얼마나 사나운지 보여주기 위해 쌀자루를 흔들어 족제비가 요동치게 했다. 물론 이 사건의 최초 원인이 됐던 이 집의 네 살짜리 손자도 양상대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붕대로 친친 감은 손도 여러 차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김영부 씨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도, 신문에 얼굴이 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슬금슬금 피했지만 양상대는 언론은 공기(公器)이며, 오직 공익을 위해 움직이는 만큼 김영부 씨가 싫다고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면 ‘공무집행방해’라고 알다가도 모를, 그러나 어쩐지 무서운 말을 했다. 그날 김영부 씨 집 마당에는 많이 잡아도 백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양상대는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늘 이 집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줄잡아 이백 명이 넘는군요. 왔다가 간 사람까지 합치면 아마 삼백 명이 훨씬 넘겠죠?”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동의를 구하고 수첩에 ‘관중 삼백여 명’이라고 썼다. 물론 족제비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이 집 마당에 왔다가 간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딱 한 사람에 불과했다.
양상대는 김영부 씨에게 진돗개의 이름과 나이를 묻고, 어떤 혈통인지, 혈통을 증명할 증명서 같은 게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영부 씨는 이 진돗개가 진돗개 중에서도 상당히 고귀한 혈통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욕심 같아서는 이 진돗개의 훌륭한 조상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양상대는 어지간히 사진을 찍고 나자,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을 진행하라고 다그쳤다. 또한 자신이 카메라에 이 모든 상황을 면밀히 담아야 하기 때문에 취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새끼줄로 ‘포토라인’을 쳐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들, 특히 앞자리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꼬마들의 항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한바탕 욕을 먹은 이후로 입을 다물고 있던 법대생 박형조가 다시 나섰다.
형조는 양상대 기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조용히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이나 구경할 생각이었다. 언변으로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아버지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했기에 다소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양상대 기자가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형조는 어쩌면 오늘 이 사건이 산골 동네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동기들 중에, 심지어 후배들 중에도 일찌감치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활동하면서 신문에 이런저런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 기사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법률인 자격으로 전문가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를 할 때마다 열패감을 느꼈다. 물론 그 열패감 뒤에는 언제나 잘못된 사회질서에 대한 반감이 따랐다. 어째서 그 별것도 아닌 놈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신문과 방송에 낯짝을 내미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처럼 명민한 인재는 아직 그 말석에도 앉을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인가. 세상의 밝은 눈은 어째서 진정한 인재를 구별하지 못하는가? 하늘의 그물은 넓고 엉성해서 줄줄 샐 것 같으나 빠져나갈 수 없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라고 한 노자의 말은 진정 옛말이란 말인가? 형조는 그런 기분에 휩싸이는 날이면 대낮부터 술에 취해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어쩌면 오늘 이 순간이 바로 그 어정쩡하고 우울한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조는 첫 발언 후 줄곧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앞으로 나와 기자 앞에 섰다. 그는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지만, 몸은 양상대 기자를 향해 서 있었다. 처음 마당 가운데로 나왔을 때보다 한층 강경하고 열띤 어조였다. 말투도 이전의 극존칭에서 다소 사무적으로 변해 있었다.
“여러분, 제가 이 시점에서 또다시 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족제비가 이 집의 닭장으로 침범해 결과적으로 이 집 손자의 손에 상처를 낸 것을 과연 가택 무단 침입 및 절도 상해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의문입니다. 좀 전에 이 집의 큰아들이자 손에 상처를 입은 아이의 아버지인 김기조 씨는 족제비가 본능대로 행동했다면, 나도 본능대로 행동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법률적으로 말씀드렸을 때 족제비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족제비의 정신연령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형사처벌 대상인 만 십삼 세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저 쌀자루에 든 족제비가 설령 십오 년을 산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야생에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런 규범도 모른 채 살아왔음을 우리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능을 핑계로 사십 세에 가까운, 그것도 현대식 교육을 받은 성인이 족제비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법 정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사회 통념에도 크게 위반되는 바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에서 족제비를 살해한다거나 진돗개와 싸움을 벌이게 한다는 것은 사회질서와 통념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올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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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졸업생 형조가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동안 기자는 사진을 찍었다. 양상대 기자는 형조의 정면 모습뿐만 아니라 옆모습과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뒤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형조가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실감나는 현장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양상대 기자는 이 법대 졸업생을 ‘코멘트’로만 쓰고 사진으로는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마친 형조는 양상대 기자를 향해 혹시 이 기사가 연합뉴스에도 전달되느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각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하는 연합뉴스에 전달된다면 전국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양상대는 무관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풀 죽어 있던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 송종호는 예상치 못했던 우군의 등장에 힘을 얻었다. 그는 다시 한번 선처를 호소했다.
“우리는 지금 소중한 생명을 장난삼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엄연히 야생동물 보호법이란 게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저 족제비를 죽인다면 현행법에 위배됩니다. 또 여기에는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많습니다. 오늘 벌어질 잔혹한 싸움이 아이들의 가슴에 어떤 상처를 남길지 생각해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저 족제비는 즉시 야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인 저 송종호가 이 집 손자의 손가락 상처 치료비와 지금까지 이 집에서 족제비에게 물려간 것으로 보이는 닭 값을 내놓겠습니다.”
양상대 기자는 이번에도 앞뒤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의 카메라가 얼굴에 클로즈업 됐을 때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족제비 싸움 구경을 왔던 젊은 부부 중에는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아내와 아이를 집밖으로 떠미는 남편은 아내에게 집에 가서 소상히 전해주겠다는 말로 끝내 구경하겠다는 아내를 설득하기도 했다.
법대 졸업생 형조와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 송종호의 적극적인 저항과 연설로 주민들 간에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겨울 해는 짧았고 족제비와 개의 한판 승부를 기대하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점점 실망했다. 게다가 추운 날씨를 견디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까웠다.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을 재촉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반대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법대 졸업생과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는 번갈아 가며 웅변을 토했다.
“군중은 강할 뿐만 아니라 무섭습니다. 그러나 군중의 맹점은 막다른 길로, 틀린 길로 몰려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단순히 길거리 시위대에 가담한 맹목적인 군중이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나라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야생동물 피해와 그 대응에 대한 정부 정책과 사법 판단에 중요한 선례를 남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판결은 간단하나 그 여파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서 내린 판결은 두고두고 우리나라 야생동물 재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합니다. 조금 답답하고, 지루하고, 춥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법대 졸업생 형조는 시간이 갈수록 명석한 웅변을 쏟아냈다. 형조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마뜩치 않았던 태도를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또한 옆에 쪼그리고 앉은 노인이 형조에 대해 칭찬조로 묻는 질문에 간간이 미소를 지어가며 대답도 했다. 아직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시험인가? 시험 합격만 생각하자면야 내일이라도 당장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경험을 기르는 것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이렇다 할 사회적 성공을 못 거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게 모두 시험공부만 했지, 실제적인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들 형조는 장하디 장하다. 그냥 대충 합격해서 검사든 판사든 해라, 고 했지만 본인이 그럴 수는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긴다. 그 하루하루 기다리는 세월이 얼마나 가시밭길이겠는가? 그럼에도 힘든 내색 않고 사서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꾀가 빤한 학생들은 어쨌든 시험에 합격할 궁리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들 형조를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다. 내가 들은 바로 우리 아들은 합격과 동시에 대법원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이 뭐 하는 덴데?”
“뭐 하는 데기는? 판사들을 재판하는 데지. 아무데나 그저 요행수로 시험에만 합격한 판사들이 재판을 제대로 못하니까, 우리 형조처럼 공부 많이 한 판사들이 대법원에서 다시 심판하는 기라. 우리 형조는 그런 데 갈라꼬 저래 어려운 공부를 안 하나. 그런 자리는 아무나 가는 자리가 아이라.”
“좋겠네, 이 사람아. 자식 잘 키워놓았으이. 천지간에 부러울 게 없겠네. 오늘 막걸리나 한잔 내는 기 어떻노?”
형조의 아버지 박포졸 씨는 아들의 변론에 감동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박포졸 씨는 갑자기 낭만파가 돼 호기를 부렸다. 호기라기보다 ‘이 정도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 감동에 취해 있었다.
“막걸리? 막걸리가 뭐야?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지.”
“뭐? 돼지? 돼지를 잡겠다고? 못해도 한 이십만 원 할 낀데?”
“지금 이 마당에 돈이 문젠가? 나야 자식이 저만큼 해주이 고맙지. 내가 뭘 밀어준 기 있나, 다른 아아들처럼 호강을 시켜준 기 있나… 다 지가 알아서 저만 한 인물이 됐으이 내야 고마울 수밖에.”
처음엔 두 사람뿐이었지만, 형조의 언변이 터질 때마다 동네 노인들이 형조 아버지 박포졸 씨 곁으로 모여들었다. 노인들 사이에 앉은 형조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오늘 사건에 대해 법대 졸업생의 아버지다운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그런 예상 판결을 내놓은 다음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며, 오늘 이 사건은 법대를 졸업한 자신의 아들이 결론지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빨리 결론 내고 싸움을 시키든, 때려죽이든 할 것이지, 왜 이리 질질 끄노?’ 라며 불평하는 노인들에게 법률적인 문제는 이웃지간에 주먹질처럼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각별히 주지시켰다.
박포졸 씨 주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형조가 마당 가운데로 나가 낯선 법률 용어를 꺼낼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박포졸 씨는 사람들이 부러움에 찬 이야기가 처음처럼 기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기 주변으로 모이자 오히려 걱정이 됐다. 덜컥 돼지 한 마리를 잡겠다고 말했지만 부담스러웠다.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라도 했다면 돼지가 아니라 소라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은커녕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아들이 아닌가. 아무리 새끼 돼지를 잡는다고 해도 십오만 원은 들어야 했다. 거기에 소주라도 몇 병 내놓자면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었다. 옆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형조의 언변에 대해, 법률적 지식에 대해, 장밋빛 장래에 대해, 형조의 짝으로 얻게 될 미래의 어여쁜 며느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도 박포졸 씨는 건성으로 답했다. 고민하던 박포졸 씨는 문득 생각이 난 듯 좌중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아까 말이야. 장수 아버지한테도 이야기했지만, 오늘 기분이 억수로 좋다. 내 아들이 법대를 졸업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네들도 오늘 우리 아들 형조가 말하는 거 들었재? 저런 말은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못하는 기라. 법대는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나오기는 더 어려운 데라. 그런데 우리 아들은 4년 만에 딱 졸업했지. 우수한 성적으로 말이야. 내가 오늘 저녁에 막걸리 한잔 낼 끼니까, 저녁때 우리 집으로 다들 오라고. 그리고 아까 장수 아버지한테도 말했지만 내가 오늘 암탉이라도 한 마리 잡을 생각이야. 그러니 다들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박포졸 씨는 술을 내겠다고 다시 한번 공언했다. 그러나 내용은 달라져 있었다. 돼지 한 마리를 내겠다는 말은 어느새 암탉 한 마리로 바뀌어 있었다. 돼지에서 갑자기 닭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둘러앉은 사람들은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좀 전에는 돼지 한 마리라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묻는다면 오히려 자기 꼴이 우스워질 것 같았다. 돼지나 닭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저 정월 초에 이웃끼리 모여서 술 한잔 나눈다는 게 중요하지,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공연히 무안해질 것 같았다. 돼지를 고집했다가 새해 벽두부터 공짜 좋아한다는 입방아를 듣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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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와 개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김영부 씨 집 마당에 왔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당 가운데는 법대 졸업생과 야생동물 보호협회 간사, 양상대 기자, 그리고 김영부 씨의 큰아들이 둘러앉아 대책을 논의했다.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사람들은 또 그들끼리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다. 그들 모두는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야기는 제멋대로 뻗어 나갔다. 사람들은 이웃집 딸의 시집살이에 대해,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대해, 치매와 화투의 상관관계에 대해, 올해 하우스 딸기 농사에 대해, 그리고 서울 갈 길의 교통 체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 중에 작대기로 마당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발로 지우기를 거듭했다. 이야기꽃과 더불어 마당에는 갖가지 글씨와 그림이 피어나고 시들었다.
먼저 자리를 뜬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에서 설을 쇠기 위해 고향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갈 길이 급하며 연휴가 짧아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어정거리다가는 길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김영부 씨의 큰아들에게 전화번호를 남겨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이 사건의 결과를 알려달라는 당부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복작거리는 마당은 조금씩 틈이 생겨났고, 지붕 위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진작에 내려왔다. 횃불을 피우자고 했지만 땔감이 없었다. 김영부 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연탄 마흔두 장을 꺼내와 여섯 장을 한 조로 마당 여기저기에 연탄 피라미드를 세우고 기름을 부어 모닥불을 피웠다. 연탄은 횃불보다 훨씬 따뜻했다. 각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이제 빨리 결론을 내라고 다그쳤다. 이미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마당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남은 사람들의 족제비 싸움에 대한 기대는 처음 모였을 때보다 훨씬 짙어졌다. 말하자면 남은 자들은 단순 구경꾼이 아니라 오늘 사건의 결말을 지켜보겠다는 참가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