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이고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초여라
- 두보
이것은 어쩌면 지난여름 지구로 투신한 어떤 유성이 꾸었던 꿈인지도 모른다.
야나체크가 잠 못 드는 건 그가 아직 단 한 곡도 완성해본 적 없는 아마추어 작곡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별들의 음악소리를 듣기 위해, 그는 깨어 있었다. 지구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자전하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구인은 없다. 너무 큰 소리는 너무 작은 소리와 마찬가지로 가청 주파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야나체크의 비좁은 작업실 창 너머로 흐르고 있는 저 블타바강을 찻잔 속에 모두 담을 수 없듯 소리라는 존재는 광대하고 인간의 귀는 협소했다. 찻잔 속에 담긴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면 야나체크는 벌써 수많은 곡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가 정말 들려주고 싶은 소리는 그러나,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깊은 밤, 창공에 별이 돋아나는 순서 그대로 오선보 같은 블타바강 물결 위에도 별들이 내려앉는다. 야나체크도 서둘러 오선보 앞에 앉는다. 펜에 잉크를 묻힌다.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인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해 숨소리도 절제한다. 그의 귀가 우주를 향해 활짝 벌어진다.
야나체크의 실내화를 타고 올라와 이제 막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진입하려던 벼룩 한 마리, 우주를 향해 귀가 열리던 순간의 굉음에 놀라 추락한다. 낡은 나무 바닥재, 미세하게 벌어져 있던 비좁은 틈새로.
지구인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가 벼룩에게는 잘도 들렸다.
틈새를 빠져나오면, 드넓은 창공이다. 벼룩은 전속력으로 날고 있다.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절부터 그것은 벼룩의 꿈이었다. 뛰어봤자 벼룩이라니 맞는 말이지만 만약 뛰지 않고 날 수 있다면 더 이상 벼룩이 아닐 테니까.
기습적인 철퍼덕 소리에 진성은 하마터면 속도를 높일 뻔했다. 한라산 영실코스 쪽에서 내려오는 1100도로 내리막길에서였다. 담배를 피우려고 차창을 열자마자 말벌 한 마리가 왼쪽 사이드미러로 달려들었다. 초고속 인터넷 광케이블이 머쓱해질 만큼 빠른 속도였다. 전속력으로 날아온 말벌은 그대로 사이드미러와 충돌했다. 철퍼덕. 완숙 토마토를 패대기치기라도 한 듯 찰진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동시에 말벌의 육즙이 진성의 광대뼈께로 튀었다. 사이드미러에도 말벌의 잔해가 얼룩으로 남았다.
그러나, 말벌이 충돌하던 순간은 선명히 남아 있었지만 말벌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울 위의 얼룩은 다이빙 선수가 입수한 직후 물 위로 번져가던 파장을 닮아 있었다. 어쩌면 말벌은 거울을 향해 정말로 다이빙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기 동료로 착각했든, 지상을 달리는 자동차 따위보다 느리게 날 수는 없다며 날것으로서의 자존심을 발동했든, 어쨌든 거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죽자고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자기가 말벌을 친 것만 같아 손이 떨렸다.
어림짐작으로 광대뼈께에 묻은 육즙을 닦아내는데 농축된 과일 향기 같은 것이 났다. 그것은 말벌이 일생에 걸쳐 축적한 기억이었다.
백만 송이 장미에게 구애를 했던 시간. 밀감나무와 석류나무, 포도나무 응달에서 맡았던 각기 다른 냄새들. 다리털을 적시던 아카시아 꿀. 그리고 버찌, 본능적인 벚꽃의 꿈.
벌들의 기억 속에서 꽃들은 열매를 꿈꾸는 중이다.
부르고뉴의 처녀들이 포도주를 빚기 위해 포도를 밟고 있다. 정제된 흰 설탕 같은 햇살이 처녀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처녀들의 몸은 수플레처럼 부풀어 오르고 목소리는 타르트처럼 바삭거린다. 모두가 햇살 탓이다. 공기조차도 설탕을 적당량 넣은 오후의 차만큼 감미롭고 따뜻하다.
오크통 속에는 포도꽃이 꾸었던 꿈인 포도송이가 한 가득이고 그 꿈을 짓밟으며 처녀들은 또 다른 꿈을 꾼다. 포도 밟기는 올해로 마감하고 안나는 파리로 갈 것이다. 겨우 파리? 소피는 코웃음 친다. 파리는 더 이상 중심이 아냐. 해 뜨는 곳에서 시작해 해지는 곳으로 갈 거야, 나는. 네가 무슨 해바라기니? 소피의 말을 들은 처녀들은 발밑에서 물컹하게 밟히는 포도 과육처럼 탱글탱글 웃어댄다. 안나처럼 언젠가 파리에 가고 싶은 쥴리만 웃지 않는다. 쥴리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그림만 그릴 생각이다. 간밤에도 그녀는 그림을 그리느라 밤을 꼬박 밝혔다. 다른 건 몰라도 발목에 물든 포도빛깔 만큼은 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포도를 밟으면서도 쥴리는 깜빡깜빡 졸고 있다. 잠이 깊어지면 꿈속에서 포도를 밟는 기분이었고 화들짝 깨어나면 역시 현실에서 졸아가며 포도를 밟고 있던 게 확실했다. 꿈의 입구에서 포도알은 가끔 어떤 짐승, 혹은 모든 짐승의 눈알이 되었다. 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포도알은 단지 눈알이 아니라 이목구비를 모두 갖춘 어떤 여자의 얼굴로 변모했다. 어느새 백일몽에 빠져버린 쥴리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세게 발을 놀린다. 꿈에서 낭떠러지가 나타나면 뛰어내려야 하고 맹수를 만났다면 물려야 한다. 칼이 있으면 찔려야 마땅하다. 그것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작가 소개
김현영
1997년 <문학동네> 하계문예공모에 단편소설 「여자가 사랑할 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냉장고』가 있다. 1999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
한쪽 발을 그냥 얹었을 뿐인데도 마이의 갈비뼈는 과자처럼 부서졌다. 뭐야, 뭐가 이래. 조금 전 갈비뼈에 닿았던 발을 떼어 정강이께로 들어 올린 채 재복이 중얼거렸다. 이 여자는, 이상했다. 뺨에다 손바닥을 댔을 뿐인데 누가 벗어버린 옷가지처럼 몸뚱어리 전체가 방바닥 위로 널브러졌다. 재복의 주먹이 코와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코피를 쏟아내기도 했다. 재복은 몸에 힘을 싣지 않았다.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이는 왜 저렇게 자꾸 구겨지고 터지고 부서지는 것일까. 꿈일까. 그래, 꿈일 거야. 재복은 들어 올렸던 발을 다시 갈비뼈에다 내리 꽂았다. 마이는 들릴락 말락 작은 소리로 메, 메, 메 울었다. 재복의 두 다리는 떡메처럼 마이의 갈비뼈를 계속해서 찧어댔다. 오른발로 왼쪽 갈비뼈를 수십 번, 왼쪽발로 오른쪽 갈비뼈를 또 수십 번. 꿈에서 깰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발길질은 때때로 빗나가 이미 곤죽이 된 마이의 얼굴을 몇 차례 더 건드리기도 했다. 터무니없게도 그때마다 포도주를 빚기 위해 맨발로 포도를 짓이기고 있는 이국의 처자들이 떠올랐다. 그녀들 중 누군가가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 속에서 포도를 밟다가 잠시 낮잠을 자고 있는 건 아닐까. 잠을 자면서도 여전히 포도를 밟아대는 바람에 꿈에서조차 웬 여자의 얼굴을 짓밟고 있는 건 아닐까. 재복은 발길질에 제법 힘을 싣기 시작했다. 어차피 꿈이니까 화끈하게 꾸고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이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재복은 발길질을 멈추었다. 바짓단이 과즙 같은 핏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마이는 정말로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까지 짓이겨진 포도송이처럼 장판 위에 고여 있었다. 누군가가 사람 형태로 게워놓은 토사물 같기도 했다. 마이는 더 이상 재복이 알고 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재복은 방구석에 뭉쳐 있던 이불을 가져다 여자를 덮어버렸다. 마침내 마이의 존재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재복을 둘러싼 풍경은 그대로였다.
다섯 평짜리 반지하 원룸, 주워온 철제 침대, 중고품 가게에서 산 행어, 행어에 걸려 있는 마이와 재복의 옷가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던 양은냄비, 냄비가 처박힌 개수대, 개수대에 뚫린 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장마철의 하수구 냄새, 악취마저 덮어버린 피 냄새, 피, 핏물, 여자의 피. 그제야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재복의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찬란한 햇살, 포도가 담긴 오크통, 포도를 밟는 처자들의 웃음소리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꿈이 아니었다. 꿈이라 해도 죽기 전에는 깨어날 수 없는 꿈이었다.
재복은 피로 물든 옷가지를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코끝에서 희미하게 맡아지는 새물내가 생경하기만 했다. 아무런 의식 없이 50년 가까이 옷을 갈아입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재복은 번번이 앞뒤를 둘러 입었고 다리를 제대로 꿰지 못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여겨졌을 때 재복은 그제야 옷 입기를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복은 모자를 눌러썼다. LA다저스의 파란색 야구모자였다. 아주 오랫동안 써왔던 것이지만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박찬호에 열광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자를 쓰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서 누군가에게 얻어 쓴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언젯적 일인가를 따진다는 건 무의미했다. 20대 때나 30대 때나 구리에 머물 적에도 창원에 머물 적에도 재복의 하루는 언제나 막노동과 외로움, 그리고 또 막노동과 외로움, 뿐이었다. 매일매일 똑같았던 날들을 마치 다른 날인 양 구분해줄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늘 한결 같았던 그 날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재복은 깨달았다. 포도주가 포도로 되돌아가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듯.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깊을수록 점점 거세어졌다. 비 때문에 낮에도 해가 뜨지 않았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비 때문에 별조차 뜨지 않아 그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집을 나오긴 했지만 재복에게 딱히 갈 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길고 고독했던 옷 갈아입기를 해낸 보람도 없이 그의 바짓단이 급속도로 젖어들었다. 발밑이 질척댔다. 여전히 마이를 짓이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을 잊으려고 애써 잠을 청했다가 현실보다 더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막을 때리는 빗소리조차 마이의 유언처럼 들렸다. 쩌이어이, 쩌이어이, 또이부온, 또이부온… 재복의 발길질에 메, 메, 메 울면서 되뇌던 말들. 말인지 비명인지 신음인지 구분이 가지 않던 소리. 정말로 비명이며 신음이었을지도 모를 말들. 재복이 유일하게 알아들었던 마이의 말은 이것뿐이었다.
나, 베트남 가요.
그것은 재복이 영원히 듣지 않기를 바랐던 말이었다.
**************************************************
양철지붕을 두들기던 빗물, 카페 통유리창에서 미끄럼을 타던 빗물, 완두콩 이파리에 구멍을 내던 빗물, 피에 젖은 바짓단은 씻어주고 아직도 새물내가 물씬 풍기는 바짓단은 더럽히던 빗물들이 모여 웅덩이를 이룬다. 찰팍, 웅덩이를 찍고 간 구두 밑창에 대한 기억을 품은 채 빗물은 하수구로 흘러든다. 설치류의 배설물과 계면활성제, 젖은 휴지와 그림물감… 잡다한 성분과 한 몸이 된 물의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 강으로 바다로 제각각 꿈길을 좇아 흘러간다. 잠든 강을 깨우고자 누군가는 한강에 소주병을 투척한다. 누군가는 현실이란 이름의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기꺼이 템즈강에 몸을 날린다. 토막 난 시체들을 품은 채 서쪽 바다는 악몽을 꾸고 북해는 꿈속에서 청어를 길러낸다. 그리고 청어는 북해 연안의 여느 유리병 안에서 발효되어 암스테르담의 홀스트씨 입으로 들어간다.
홀스트씨와 암스테르담, 생물 청어와 발효된 청어는 모두 암스테르담의 운하가 꾼 꿈들이다.
운하에는 암스테르담의 건물과 거주자, 가로수와 행인, 창공과 창공에 균열을 내며 날아가던 비행기, 구름과 구름을 미는 바람,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운하에 비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선 홀스트씨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홀스트씨는 부재하는 것이다.
꿈이 없다면 실재도 없다.
새벽녘, 낌칸은 요의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뻗자마자 문고리가 손에 잡혔다. 밖으로 나오면 발밑이 바로 바다였다. 아직 해를 띄우지 않은 바다는 타르처럼 검었다. 낌칸은 바다 위에 오줌을 누었다. 잔잔하던 수면이 잠꼬대하듯 잠시 요동했다. 마려웠던 것에 비해 소변은 시원치 않았다. 나올 것이 더 있는데도 그냥 고여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또 방광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장사를 다니려면 소변 따위는 당연히 참아야 했다. 배와 배에 실을 물건을 사느라 빌린 돈 700만동을 갚으려면 더더욱 그래야 했다. 배라기보다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에 가까웠지만 어렵게 마련한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700만동을 빌리는 일도 마이가 한국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마이가 형편이 좋아지면 어려운 친정을 모른 척 하지 않으리란 추측이 담보라면 담보였다. 물론 딸을 한국으로 시집보낸다고 갑자기 형편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돈을 빌린 낌칸이나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농촌에서 살며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거나, 드라마와 달리 한국남자들이 여자를 거칠게 다룬다는 얘기도 못 들은 건 아니다. 다행히 마이는 도시 남자와 결혼했고 서로에 대한 필요에서 시작된 결혼이지만 애정도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믿음직한 건 마이와 한국남자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변을 본 뒤끝이 개운치 않은 탓인지 금방 잠이 올 것 같진 않았다. 낌깐은 공연히 한 번 더 치마를 걷어 올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사위는 온통 흑과 백, 두 가지 색깔뿐이었다. 고군분투 끝에 요도가 몇 방울의 오줌을 내보냈다. 어쩐지 검은색에 가까워 보이는 소변이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혈뇨였는지도 모른다. 날이 밝는 대로 여기서 배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하롱만 근처로 후이 노인을 찾아가봐야 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유유자적 배를 타고 다니다가 아픈 사람을 만나면 공짜로 약을 지어주는 노인이었다. 전쟁 희생자와 유공자들의 뼈를 묻고 있어 탑골공원이라고 불리는 섬이 노인의 약방이었다. 주된 약재는 온갖 나무뿌리들. 섬에 묻힌 뼈들과 나무뿌리들이 모종의 결탁이라도 맺은 듯 약효는 혀를 내두를 만큼 확실했다. 살아온 내력은 고사하고 나이가 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노인이었지만 확실한 약효야말로 진정한 그의 신분증이었다.
낌칸이 노인의 존재를 인식하기보다 그저 감각하고 있던 순간, 마이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바다의 해 뜨는 방향에서 마이는 빨간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탓에 흑백 사진 같은 풍경 속에서 어떻게 마이에게만 색이 칠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빨간색에 대한 낌칸의 감각은 헛것이 아니었다.
마이, 여긴 어떻게 온 거니? 설마 헤엄이라도 친 게야?
바다에서 막 빠져나와 공중 부양으로 수상가옥의 현관 앞에 선 마이를 보고 낌칸이 물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투는 평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낌칸의 오감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탓이었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무슨 소리냐? 넌 방금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니?
어머니, 저건 바다가 아니라 자동차 기름인 걸요.
그러고 보니 석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바다가 바다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 다친 덴 없고?
흰옷을 입고 나왔는데 붉게 변했어요. 그게 다예요.
천만다행이구나. 그나저나 편지를 쓰면 될 걸 뭐 하러 직접 왔느냐?
너무 늦을까봐서요.
진즉 뭍으로 갔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형편 되는대로 전화도 놓을 수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후회해서 어쩌겠어요. 전화보다 빨리 올 수 있어서 저는 다행인 걸요. 자요, 이 약이 필요하셨죠? 오는 길에 후이 노인에게 들렀어요.
그러나 마이의 손은 비어있었다. 마이는 빈손으로 킴깐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킴깐은 불현듯 또 요의를 느꼈다.
얘야, 잠깐만…
그리고, 킴깐은 잠에서 깨어났다. 팔을 뻗자마자 문고리가 손에 잡혔다. 밖으로 나오면 발밑이 바로 바다였다. 바다는 막 해를 띄우는 중이었다. 낌칸은 바다 위에 오줌을 누었다. 소변줄기는 시원하게 바다로 직행했다. 혈뇨가 아니라 밋트 과육과 흡사한 담황색 오줌이었다. 방광이 깨끗하게 비워졌음을 확인한 순간, 낌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심해에 품고 있던 태양을 하늘로 쏘아 올리기 무섭게 바다는 잠이 들었다. 아침햇빛을 받은 바다는 거울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거울 속에는 낌칸의 초라한 수상가옥이 들어 있었다. 낌칸의 옆집도 있었다. 탑골공원도, 수천 개에 이르는 하롱만의 섬과 석회암, 기암들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바다가 꾸는 꿈속, 바로 그곳에.
**************************************************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을 때 마이는 달랏의 고원을 떠올렸다. 고원 가득 펼쳐진 발 위에 누워있던 반짬들이 마르면서 발과 분리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라이스페이퍼로 잘 알려진 반짬이 마르는 소리는 열대야를 씻어내는 소나기만큼 청량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참혹한 상황이었기에 마이는 더더욱 참혹하지 않은 것들을 꿈꾸는 중이었다.
달랏은 재복과 짧은 신혼여행을 떠난 곳이었다. 다른 커플들은 하롱만에서 크루즈를 즐기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끝냈지만 재복은 달랐다. 베트남에서 꿈의 신혼여행지는 어디인지 알고 싶어 했고 가고 싶어 했다. 너무 먼 곳이라 겨우 하루밖에 묵지 못했지만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스언흐엉 호수에 고요히 침잠해 있던 소나무 숲. 호숫가에 만발한 자스민꽃. 시의 운율을 맞추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호수 주위를 돌던 마차. 바이크 택시를 타고 찾아간 프랑스풍 카페. 달랏의 고원이 키워낸 커피원두의 향기. 야시장에서 어린아이처럼 깔깔대며 집어먹었던 짜조와 딸기.
그러나 그 모든 낭만보다 마이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든 것은 한 존재에 대한 전적이고도 무한한 책임감이었다. 베트남도 처음이고 베트남어도 모르는데다 과묵하기까지 한 재복에게 마이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언어인 배고픔을 접점으로 마이는 재복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쳐주었다. 다행히도 식사 시간은 규칙적으로, 그리고 자주 그들을 찾아왔다.
퍼는 라이스누들, 반짬은 라이스페이퍼, 느억맘은 피쉬소스, 고이센은 샐러드, 두두는 파파야, 깜언은 땡큐… 마이도 한국말을 잘 모르는지라 두 언어 사이를 중계하는 것은 영어였다. 재복은 대체로 알아듣는 눈치였다. 희망적이었다. 어쩌면 재복은 생각보다 빨리 베트남어를 익히게 될지도 몰랐다. 베트남에서 마이가 그랬듯 한국에 가면 재복은 한국이 처음인데다 한국말도 모르는 마이를 위해 전적이고도 무한한 책임감을 발휘해줄 것이 분명했다.
달랏에서 마이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었다. 그 꿈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에 존재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은 채.
재복의 발길질은 무차별적으로 계속되었다. 코뼈가 주저앉을 땐 너무 아파서 잠시라도 코를 감싸 쥐고 싶었지만 팔도 이미 부러졌는지 들어지지가 않았다. 누가 함부로 따서 버린 타인롱처럼 마이의 육신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뒹굴었다. 베트남에 넘쳐나는 열대과일들 가운데 재복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던 타인롱. 껍질은 자줏빛이고 우유처럼 뽀얀 과육에는 검은 씨가 깨처럼 총총 박힌 선인장 열매. 재복은 그것이 한국의 달랏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에서 재배된다고 했다. 재복은 낯선 베트남에서 타인롱 덕분에 긴장을 풀었다. 타인롱꽃이 필 때 한 총각이 그 꽃그늘 아래 서 있는 처녀를 보았다면 두 사람은 서로의 운명이 되며 그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마이는 알고 있었다. 순서가 전설과 꼭 같지는 않았지만 재복이 마이를 선택하던 순간 그녀의 가슴 속에서 타인롱꽃이 만개했다. 재복이 자기를 볼 때마다 마이는 언제나 그 꽃그늘 아래 서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와 달리 한국에 돌아온 재복은 더 이상 마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도시 남자인 줄만 알았던 재복은 여느 도시인과는 다르게 매일 아침 출근과 매일 저녁 퇴근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일은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불규칙적인 일 때문인지 재복은 늘 불안정해 보였다. 일이 있을 땐 피곤에 절어 잠만 잤고 일이 없을 땐 불안감을 달래려 술을 마셨다. 베트남어를 배우기는커녕 친구도 없고 장도 볼 줄 모르는 마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마이가 만든 음식을 보면 인상을 구겼고 마이가 답답해하면 가슴을 쿵쿵 치고 발을 구르며 악을 썼다.
당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지 알고 싶어요. 그래야 당신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결혼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는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아주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당신은 어쩐지 당신 옆에 내가 있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것처럼 보여요. 사실이 그렇다면 나의 노력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당신은 이혼을 원하나요? 이혼은 너무 두려운 말이에요. 나는 그 말만은 할 수 없어요. 정말 당신은 내가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건가요?
재복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렇게 말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트에 베트남어로 그렇게 적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마이의 글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재복에게 그 노트는 이해가 아니라 망상의 원료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마이는 재복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설명하려고 했다. 한국말로 옮길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문장뿐이었다. 나, 베트남, 간다. 그렇게 세 단어만 가지고도 전달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재복은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다. 이해를 돕고 싶어 마이는 여권을 꺼내 들었다. 그게 다였다. 발길질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조각난 뼛조각이 마이의 심장 전체를 점령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심장에 처음으로 뼈가 박히던 순간, 마이는 자동차에 들이받혔다고 생각했다. 죽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남편의 폭력보다는 교통사고를 택할 것이다. 마이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한 여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나마 평범하게 죽기로 했던 것이다. 교통사고가 난 장소도 이왕이면 땅굴 같은 반지하방이 아니라 동화 속 주인공이 살 것 같은 예쁜 동네로 설정했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네덜란드든 스위스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든, 여기만 아니라면, 그곳은 마이가 꿈에 그리던 바로 그곳일 테니까.
메, 메, 메!
동화의 세계로 되돌아간 아이답게 마이는 맘껏 엄마를 불러보았다. 재복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라 한들 상관없었다. 더 이상 그녀는 재복과 같은 세계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갑자기 급커브를 그린 자동차는 가로수 옆구리를 들이받고도 관성이 사라지지 않아 완전히 뒤집어진다. 전복되고도 자동차 네 바퀴는 제자리에서 허공을 질주 중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경계에서 허공의 레이스를 펼치게 될 줄은 예상도 못한 홀스트씨, 업무차 들른 벨기에의 서점에서 발견했던 일러스트 하나를 떠올린다.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듯 이런 상황에서 왜 그 그림을 떠올리는지도 그는 알지 못한다.
눈부신 햇살. 찬란한 색채. 부르고뉴 전통의상을 입은 채 포도 밟기 때 사용하는 오크통에 발을 담근 포도나무. 천진난만한 포도나무. 그 나무가 밟아 으깨는 중인, 포도알 같은 사람 머리통들. 폭소하고 오열하고 찡그리고 냉소하고 무표정하고 식겁하고 화장하고 주름지고 콧물 흘리고 젖병을 입에 문, 각양각색 머리통들. 막 으깨지기 시작한, 똑같은 얼굴들. 문득 떠올렸다기보다는 원래부터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그 그림.
뭔가 뒤집힌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니 차가 뒤집어지는 것도 당연해.
머리를 땅 쪽에 대고 거꾸로 앉은 채 홀스트씨는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가 갑자기 핸들을 꺾은 것은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찰나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여자에게 자살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는 여자를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여자와 눈도 마주쳤다. 그 모두를 어떻게 단번에 다했는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무튼 여자도 그 만큼이나 깜짝 놀란 두 둔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었다. 여자는 다만 길을 건너려던 것 뿐 공교롭게도 제때 자동차를 발견하지 못한 게 확실하다.
그런데 왜 여자가 보이지 않을까.
분명 여자를 치지는 않았다. 당연히 여자는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뒤집힌 자동차를 면전에 두고도 와보지 않는 여자가 홀스트씨 입장에서는 의아할 따름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돌려본다. 괜찮다. 자동차가 전복되던 순간에도 기절하지 않은 걸 보면 시각효과만 대단하고 스토리는 빈약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하찮은 사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여자의 행방을 좇는다.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던 자리에 웬 손전등 하나가 떨어져 있을 뿐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가 애청하는 라디오 방송에 고정해두었던 주파수도 언제 어긋났는지 라디오에서는 지지직대는 소음만 흘러나온다.
정말로 손전등 하나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보다 훨씬 복잡한 길이긴 하지만 왕궁 앞 도로에는 트램에 치어 죽은 비둘기 시체가 심심찮게 널려 있었다. 하지만 비둘기를 피하느라 트램이 전복됐다는 얘긴 들어본 적도 없다. 보험회사에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만 보상해주는 보험회사에다 대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들이 보장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실은 있을 수 없는 일에 더 가까우니까 이득을 남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져야 할까.
블랙홀에 빠져본 적은 없지만 홀스트씨는 왠지 그 느낌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손전등이 전구를 밝히고 있고 자동차 바퀴 위로 해가 지고 별이 뜨는 이곳이 절대 블랙홀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으니 말이다. 라디오에서 방송 대신 전파 끓는 소리만 새어나오는 것도 주파수가 잘못 맞춰진 탓이 아니라 이곳이 여기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은 방송이라 해도 지역에 따라 주파수가 다른 것은 그야말로 상식이니까.
**************************************************
그래서,
이곳에서 손전등은 손전등이다.
저곳에서는 당연히, 손전등이 아니다.
은진아!
진성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하나의 고유명사를 토해냈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고라니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심야의 1100도로를 건너던 고라니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성을 바라보았다. 간발의 차로 로드킬을 면한 주제에 어찌나 태평스럽던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영락없이 그 고라니 이름이 은진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술 더 떠 고라니는 한동안 진성을 응시했다. 사랑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충돌할지 알 수 없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더니 조금만 더 그러고 있다가는 고라니와 불타는 애정행각을 벌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야, 고라니!
진성은 차에서 내리면서 하나의 보통명사를 토해냈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은진이, 서 있었다.
기습적으로, 어떤 인과관계도 없이 동물 취급을 당한 주제에도 어찌나 무심하던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은진의 이름이 고라니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술 더 떠 은진은 진성 주위를 네 발로 어슬렁거리며 짐승의 혀를 내밀었다.
연기는, 은진의 천직이었다. 은진은 배역에 따라 웃고 울고 사기치고 운동하고 병에 걸리고 의기소침해졌다가 미쳐버렸다. 물론 작품을 하지 않는 기간도 있었다. 그럴 때도 은진은 은진이란 캐릭터를 연기했다. 은진답게 손톱을 다듬고 은진답게 게을렀으며 은진답게 사랑했다. 그리고, 은진답게 죽어버렸다. 은진에게 연기는 천직이 아니었다. 차라리, 천성이었다.
그날, 심야의 1100도로에서 두 사람은 다투었다. 은진은 은진답게, 차에서 내렸다. 은진답게, 걸어가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차라리 자기를 확 치어버리라고 은진답게, 협박했다. 진성은 말리지 않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은진의 일관성 있는 캐릭터와 철두철미한 연기에 질투가 나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고양이가 생선처럼 굴기를 바란다면 터무니없는 일이겠지만 일테면 진성은 그런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은진은 진성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추월해 오던 뒤차에 치어버렸다. 진성이 꿈꿨던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삶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죽음으로 월경해버린 것이다. 은진을 친 사람은 물론 진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성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진성이 꾸었던 헛된 꿈의 결과였으니까.
진성은 은진을 발견하고 은진을 치게 될까봐 급하게 차를 세웠지만 차문을 열고 나왔을 땐 이미 고라니였다.
저쪽 세계의 은진은 어쩌면 이곳에서 고라니였다.
은진아!
두 존재가 겹쳤다 분리되는 순간을 목격한 진성은 천연덕스럽게 고라니에게 말을 걸었다.
땡! 난 은진이 아니야.
천연덕스럽기로는 고라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 정말로 고라니?
땡! 어딜 봐서…
짐승스런 외모?
이봐, 핫팬츠!
무슨 소리야. 난 그런 건 입지도 않았어.
누가 입었대? 당신 자체가 핫팬츠란 말이지. 아까 낮에 자동차 거울에 뛰어들었던 애, 기억해?
**************************************************
아, 그 말벌.
걘 말벌이 아냐. 말벌 옷을 입은 벼룩일 뿐이라고. 조만간 또 벼룩 옷도 벗어버리겠지만.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우린 모두 죽음이 걸쳤던 옷에 불과해. 벼룩처럼 나도 그저 옷을 좀 갈아입었을 뿐이라고. 물론 당신은 아직 핫팬츠고 난 샤넬 투피스지만. 지금처럼, 당신은 그때도, 날 차로 들이받지 않았어. 나를 친 건 나야. 그 누구도 아니야. 그러니 하루 종일, 며칠이고 여기를 왔다 갔다 하는 짓은 이제 그만둬. 그러다가 정말 고라니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래?
고라니는,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1100도로의 무한궤도에 갇혀버렸던 한 남자를.
좀 치지 뭐. 그래봤자 옷인데.
진성은 모처럼 농담을 던질 수 있었다.
용서 좀 받았다고 간이 배 밖이야. 그냥 확 철분보충제로 먹어버리기 전에 냉큼 집어넣고 어서 조명이나 좀 밝혀봐. 이래봬도 고라니 역할에 꽤나 충실한, 갈 길 먼 고라니란 말이야.
은성도 모처럼, 농담을 받아쳤다.
연인의 마지막 무대를 위해 진성은 기꺼이 조명을 켰다. 고라니가 밤의 숲속과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진성은 오래도록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연인이 퇴장하는 장면에는 역시 눈빛 조명이 가장 적절할 테니까.
연인을 떠나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진성을 위해 하늘도 기꺼이 조명을 밝혀주었다. 어쨌거나 하늘의 별도 괜히 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별이 빛나는 밤, 야나체크는 블타바강에 몸을 담근 채 강심에서 별을 건지고 있다. 그의 하체는 강물에, 상체는 천공에 속해 있다. 그러나 블타바강의 품속으로 쏙 안겨버린 천공과 그 블타바강을 품은 지구별을 품고 있는 천공이 하나인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그는 분열되지 않는다. 그는 별을 낚는 한밤의 낚시꾼이고 낚싯대에 매달린 지렁이이며 미끼를 문 물고기이다. 한 곡도 쓰지 못한 아마추어 작곡가이고 이미 많은 곡을 만든 대가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번 다시 태어났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며 이제 막 최초로 탄생하기 직전이다.
지상의 불빛이 모두 꺼진 깊은 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서 야나체크의 방이 불을 밝히고 있다. 모두가 잠든 밤, 그의 방만 깨어 있다. 그의 방만 길 잃은 별처럼 꿈을 꾼다.
지난여름, 유성이 지구로 투신하는 바람에 우주에서 음계가 하나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지구는 새로운 화음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우주에도 새로운 화음 하나가 더해졌다. 지구는 언제나 우주의 한 음계였기 때문이다. (*)
<문예중앙> 2008년 여름호, 통권 122호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