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것 중의 하나는 비록 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문제에 최대한 많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거나 시청자를 대신해서 친절하게(?) 해석을 해 주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 시간에 오히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더욱 많은 애를 썼다. 물론 그러다 보니 지식채널e를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시원함'이나 '통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히 어떤 명쾌한 '해결책'이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는 앞으로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편들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드러내기'에 열성적이었던 것은 현재 우리 사회는 해결책을 이야기하기엔 사치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많이 엉켜 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는 실타래에 대해서 논할 땐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를 말하기 이전에 반드시 그것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렇게 '보여주기'만 하더라도,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해결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 그걸 굳이 '믿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도 어쩌면 우스운 일인데, 이 글을 읽는 누군가와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가 대단히 똑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바보도 아닌 것처럼, 다른 이들도 당연히 그렇다.
--김진혁 PD,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면서 수혜자, 그리고 드러내기' , 2010.09.03 16:48,
출처: http://blog.daum.net/jisike/789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