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된 단일성imagined singularity이 사용된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문명 충돌론the clash of civilization”의 지적 배경이 된 기분 분류 아이디어를 들 수 있다. 문명 충돌론은 최근에, 특히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의 영향력 있는 책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 and the Remarking of World Order』(1996)의 출판 이후 더욱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접근법은 (문명의 충돌이 합당하든 그렇지 않든) 충돌이라는 쟁점이 제기되기 이전에 그 단일한 범주에서부터 난점이 존재한다. 실로,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제는 이른바 문명권이라는 것에 의거해 분류한 단일 ‘범주’의 지배적 힘에 개념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범주는 공교롭게도 (별도의 관심이 가는 구분인) 종교적 구분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헌팅턴은 서구 문명을 “이슬람 문명”, “힌두 문명”, “불교 문명” 등과 대조하고 있다. 종교적 차이에 의한 대립이 있다는 주장은 하나의 지배적이고 확고한 편 가르기라는 날카롭게 가공된 시각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중략] 문명 충돌론이 안고 있는 난점은 불가피한 충돌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시작된다. 그러한 단일의 분류 방식이 독보적으로 적절하다는 가정을 미리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명은 충돌하는가?”라는 질문은 인류를 서로 구별되는 변별적인 문명들로 뚜렷이 분류할 수 있으며, ‘상이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심도 있는 이해 과정 없이 ‘상이한 문명들 사이의’ 관계 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해 있다.
-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이상환 · 김지현 역, 바이북스, 2009, 4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