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찾아서 - 연금술사들
후기 스콜라 철학이 지닌 하나의 미덕은 매우 다른 전통들을 통합하고자 시도한 점이었다. 종합을 위한 아주 특별한 시도는 연금술이었다. 이것은 많은 문화들에서 발전해온 인간적 차원의 실재와 우주적 차원의 실재 사이의 가상적인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학문이었다.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조건을 바꾸는 일이다. 이것은 아마도 불멸성을 획득하거나 혹은 더 높은 정신적 차원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한 사람의 물질적 복지를 개선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예를 들어 기원전 4세기경 이래 현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비약을 사용하여 불멸성을 얻고자 하였다. 인도에서도 텍스트의 증거를 통해 연금술이 신비주의적인 열망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이것이 나중에 서구의 실천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아랍과 헬레니즘 세계의 연금술사들은 특히 금보다 못한 물질들로 금을 만드는 데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유감스럽게도 보통 연금술은 이러한 한정된 목적관 연관되곤 한다.
단지 실용적인 차원일지라도, 연금술은 화학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추진력 혹은 토대를 마련하였다. 실로 (점성술과 천문학의 경우처럼) 연금술과 화학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없었으며, 연금술은 많은 중요한 화학적 및 약학적인 발견들을 촉진하였다. 연금술이 물질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현재 우리가 ‘화학약품’이라 부르는 부산물들 중에서 ‘주정 酒精(에틸알코올)은 원래 한 사람의 본질을 정화시키기 위한 증류용액이었다. 연금술사들의 목적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생명수(오드비eau de vie는 프랑스어로서 포도주나 포도주를 만들다 남은 찌꺼기를 증류하여 만든 알코올 농도 40도의 증류주를 가리킨다 - 옮긴이)는 환영할 만한 실용적인 결과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칵테일’ 용으로 소비하는 알코올 음료이다.
서양의 연금술 전통은 그 뿌리가 아랍어로 쓰인 텍스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메랄드 서판’書板으로 불린 이 텍스트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 ‘트리스메기투스’는 ‘세 배로 위대한’이라는 뜻)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텍스트는 서로 다른 차원의 실재들 사이의 상응(호응)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위에 있는 것처럼 아래에도 있다.” 연금술 텍스트의 용어는 상징적이고도 문학적인 해석을 자극했다. 금을 만드는 일은 ‘위대한 작업’으로 기술되었다. 금으로의 급속한 변환을 일으키는 물질은 ‘현자의 돌’이라 불렸다. 그리스도교 당국은 결국 연금술을 위협적인 것으로 보기는 하였지만, 교회 자체는 서양에서 연금술의 전통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즉 수도원에서는 연금술 텍스트들을 정성들여 필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마스의 스승이었던 알베르투스는 연금술을 아주 진지하게 다루었으며, 과학자였던 수사 브루노(1548~1600)와 아이작 뉴턴도 마찬가지였다.
서양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연금술사 및 합성가 중의 한 사람인 마르실리오 피치노(1433~99년)는 피렌체 성직자였다. 피치노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것으로 알려진 저작과 플라톤의 몇몇 작품을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이 둘의 사상과 플로티노스의 사상까지 종합한 세계관을 창안하였다. 피치노는 창조를 신으로부터의 유출로 보는 신플라톤주의의 관점과, 우주를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차원들의 위계질서로 본 연금술의 우주론을 결합시켰다. 따라서 피치노는 점성술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피치노는 인간을 우주적 위계질서의 중심에 두었으며, 이런 사상을 인본주의 관점의 토대로서 옹호하였다. 인본주의란 바로 인간은 특별한, 우주적이기까지 한 존엄성을 지녔다는 관점이다.
피치노는 이상적 삶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구성하는 데 플라톤의 이데아를 모델로 삼았는데, 특히 『향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연설로부터 모델을 구하였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더 높은 수준의 진리로 올라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을 일견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관조는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다. 동시에 관조는 적절한 도덕적인 전망을 보장한다. 플라톤이 가르쳤듯이, 관조는 우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지향한다. 사랑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신은 자신이 아름답게 창조한 이 세계를 사랑하다. 그리고 신의 피창조물 역시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면 사랑에 따라 움직인다. 특히,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상승을 도울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인간의 선량함과 아름다움에 사랑으로써 응답할 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피치노의 우정, 혹은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이론은 타인과의 영적 교류를 통해 우리가 신과의 영적 교류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장 세속적인 수준의 관계조차 궁극적인 관계를 반영한다.
피치노는 인간의 정신이 더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으로 상승하도록 촉발시키는 데서 예술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였다. 피치노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은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처럼, 더 높은 실재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대신, 예술은 우리가 주위 사물들의 형상적 특징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이것은 이미 한 단계 더 높은 진리로 나아가는 발걸음인 것이다. 피치노는 고대의 텍스트들에 대한 신플라톤학파의 우화적인 해석을 강조하였다. 이 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효한 파우스트(약 1480~약 1540)는 연금술의 역사에서 좀 더 모호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지식과 힘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던 독일의 마술사 이야기와 영원히 연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인물이 그런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요술, 점성술, 그리고 남색과 연금술을 실제로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외설적인 『파우스트편』Faustbuch(1587년 출간)은 중세의 현자들과 마술사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메리스토펠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크리스토퍼 말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헥토르 베를리오즈, 프란츠 리스트 및 토마스 만 등이 악마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의 전설을 자신의 예술작품에서 이용하였다. 비관적인 역사학자인 오스발트 슈펭글러(1880~1936) 역시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근대 서양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여기서 ‘쇠퇴’를 보았는데, 이것이 곧 지식과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시킬 수 있는 서양 사회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