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자연법
이런 모든 법 이전에 자연의 법이 있다. 자연의 법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인간 존재의 구조에서만 유래하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법을 잘 이해하려면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간을 고찰해야 한다. 자연의 법은 이와 같은 상태에서 인간이 수용하는 법일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창조자의 관념을 새겨주고, 우리를 신에게로 인도하는 그 법은 ‘자연법lois naturelles’의 순서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중요성에 의해 자연법 중 첫 번째 법이 된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지식을 갖는다기보다 오히려 인식 능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관념이 사변적인 관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기 전에 자기 존재의 보존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인간은 먼저 자신의 나약함밖에 느끼지 않으므로 매우 소심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경험적 증명이 필요하다면 숲 속에서 발견된 미개인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 앞에서 두려워하고 도망친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지 서로 평등하다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서로 공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야말로 첫 번째 자연법일 것이다.
홉스Thomas Hobbes가 인간은 서로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지배와 통치의 관념은 매우 복잡하고 또 다른 많은 관념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인간이 본래부터 갖는 관념은 아닐 것이다.
홉스는 “만약 인간이 본래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인간은 항상 무장하고 또 무엇 때문에 집의 문을 잠그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묻는 것은 사회가 성립된 다음에야 나타나는 것, 그때서야 비로소 서로 공격하고 방어할 동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사람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열등하고 약하다는 감정에 이어서 육체적 필요의 감정을 갖게 된다. 따라서 두 번째 자연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앞에서 나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겁이 많아서 서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단 알게 되면 인간들은 서로 접근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인간 역시 동물이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에게 접근할 때 느끼는 쾌감처럼 상호 접근에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욱이 양성兩性이 성적 차이에 의해 주고받는 매력이 이 상호 접근의 쾌감을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양성이 항상 서로를 부르는 이 자연적인 갈망이 세 번째 자연법이 될 것이다.
인간은 우선적으로 갖는 이러한 감정에 더해서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른 동물과 달리 제2의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를 결합하게 될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며, 사회적 삶을 살려는 욕구가 네 번째 자연법을 이룬다.
제3장 실정법
인간은 사회적 삶을 살게 되면서 곧 그들이 열등하고 나약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평등은 사라지고 전쟁 상태가 시작된다.
각 사회는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되고 이것이 민족과 민족 사이에 전쟁 상태를 초래한다. 각 사회 내의 개개인들도 자신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그 사회의 주된 이익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고자 한다. 이것이 또한 그들 사이에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두 종류의 전쟁 상태가 인간 사이에 여러 가지 법을 제정하게 한다. 서로 다른 민족의 존재가 필연적인 만큼 광대한 행성의 주민으로서 인간은 민족이 서로 간에 가지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을 가진다. 이것이 곧 만민법萬民法, droit des gens이다. 유지되어야 할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 사이에 갖는 관계로서의 법을 가진다. 이것이 정치법droit politique(공법)이다. 그들은 또 모든 시민이 그들 상호 간에 갖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을 가진다. 이것이 시민법droit civil(사법)이다.
만민법은 마땅히 다음의 원칙 위에 성립한다. 여러 민족은 각자의 참된 이익을 손상하는 일이 없이 평화 시에는 서로 최대한의 선을, 전쟁 시에는 서로 최소한의 악을 행해야 한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고, 승리의 목적은 정복이며, 정복의 목적은 (인간) 존재의 보존이다. 이 원리와 이보다 앞서는 원리에서 만민법을 형성하는 모든 법이 파생되어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만민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포로를 잡아먹는다는 이로쿼이족도 만민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외교 사절을 보내거나 받아들이며 교전권交戰權과 강화권講和權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만민법이 올바른 원리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구상의 온갖 사회에 관련되는 만민법 외에 각 사회에는 그 나름대로 정치법[통치법]이 있다. 사회는 정부gouvernement 없이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라비나Gian Vincenzo Gravina가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모든 개별적 힘의 결합이 정치 상태[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단 한 사람의 손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의 손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 부권父權을 만들었으므로 일인통치一人統治의 정체가 가장 자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권의 예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설사 아버지의 권력이 일인통치의 정체와 관련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후에는 형제들의, 형제들의 사후에는 사촌들의 권력이 다수통치多數統治의 정체와 관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력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문의 연합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가장 부합하는 정부는 그것이 설립되는 목적이자 이유인 그 인민의 체질에 가장 잘 맞는 특별한 구조를 갖춘 정부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의지가 결합하지 않으면 개별적 힘은 결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그라비나는 “이 의지들의 결합이 시민 상태라 불리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올바르게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법은 인간 이성raison humaine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민을 지배하는 그 이성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각 나라의 정치법과 시민법은 이 인간 이성이 적용되는 특수한 경우들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법과 시민법은 그것이 적용되는 인민에게 적합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한 민족의 법이 다른 민족에게 적합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법과 시민법은 이미 수립되었거나 수립하고자 하는 정체의 성질과 원리와 어울려야 한다. 곧 정치법은 정체를 구성하는 역할로서 시민법은 (기존의) 정체를 유지하는 역할로서 그 정체의 본성과 원리에 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법과 시민법은 한 나라의 물리적 조건, 즉 춥거나 덥거나 온화한 기후, 토지의 성질·상태·규모뿐 아니라 농부, 사냥꾼, 목축인과 같은 사람들의 생활양식 등과도 관련되어야 한다. 또한 제도가 허용할 수 있는 자유의 정도, 주민의 종교·성향·재산·수효·상업·풍속·습관 등과도 어울려야 한다. 끝으로 정치법과 시민법은 그것들 상호 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이 법들은 그것들 자체의 기원, 입법자의 의도, 법률 제정의 토대가 된 사물의 질서 등과도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치법과 시민법은 이 모든 관점에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