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명’과 ‘문화’는 (특히, ‘경작이나 재배’라는 통상적인 옛 형식에서 보면) 사실상 18세기 후반에는 같은 뜻의 용어들이었다. 제각기 성취된 상태와 발전이 이룩된 상태라는 문제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이에 틈이 벌어진 데는 몇 가지 원이 있다. 첫째는 ‘문명’을 피상적인 것이라고, ‘자연적인’ 상태와 구분되는 ‘인공적인’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문명을 보다 많은 ‘인간적인’ 욕구와 충동들에 대립하는 ‘외적’ 특성들─공손함, 사치스러움─을 키우는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이었다.
루소로부터 낭만주의운동을 거치면서 이 공격은 ‘문화’의 한 가지 중요한 또 다른 의미─‘외적’ 발전과 구분되는 ‘내적’ 또는 ‘정신적’ 과정─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즉, 종교, 예술, 가정, 개인의 사생활 등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새 의미를 지니게 된 ‘문명’이나 ‘사회’와 구분되거나 혹은 실질적으로 대비되는 것들이었는데, 이들이 문화와 연관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완전한 함축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적’ 발전의 보편적 과정이라고 해야 할 ‘문화’가 그 발전의 수단과 업적을 기술한다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기까지 확대된 것은 바로 이상과 같은 의미의 맥락에서였다. (17쪽)
2.
‘문화’라는 개념은 매우 복잡하다. 그것은 ‘지적인 삶’과 ‘예술’에서 예상되는 행위작용으로 특수화된 ‘내적’ 과정을 뜻하는 명사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전반적인 삶의 양식’에서 예상되는 구성작용으로 특수화된 일반적 과정을 뜻하는 명사이기도 했다. (21-2쪽)
- 레이먼드 윌리엄즈, 『문학과 문화이론』, 박만준 역, 경문사, 2003.
(*)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 1921-1988): 역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이며 문화연구가. 정치, 문화, 매스 미디어, 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한 그의 평론은 문화유물론의 발전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