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유의미한 일자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갈수록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생계수단을 공급해야만 한다는 확신으로 쉽게 연결된다. 이러한 확신을 실현하는 데는 두 가지 아주 다른 방식이 있으며, 그중 하나는 아주 매력 없는 것이다. 이는 16세기에 생겨난 과거의 공공부조 모델을 확장한 것으로, 예를 들어 조건부 최저소득 보장제도guaranteed-minimum-income scheme 같은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가난한 가구에서 노동을 통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얻는 소득을 보충해줌으로써, 가난한 이들이 사회가 규정한 일정한 문턱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최저소득 보장제도는 포괄적인 것이든 가난한 일부 계층에 제한된 것이든, 극도의 빈곤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에는 제한 조건이 붙기 때문에 그 수혜자들을 영구적인 복지수당 청구자 계급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극빈 상태에 빠져 있고 그것이 비자발적인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정부가 공짜로 나누어주는 지원금을 계속 해서 받을 자격을 얻는다. 그 대신 이들은 상당히 간섭이 심하고 모욕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노동과 연관된 사회보험 시스템이 잘 발달된 국가에서는(이 경우 사람들이 연금이나 기타 주기적인 형태의 지불을 받을 자격이 있으려면 일정 기간 동안 피고용자 혹은 자영업자self-employed로서 일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영구적인 복지수당 청구자로 눌러앉게 되는 효과가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로 국한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 추세가 지속되면서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 인구의 범위도 점점 더 넓어지게 됐다. 실제로 불안정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개인적 유대에 기초한 수많은 비공식적 안전장치들이 계속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경제가 해체되는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핵가족의 크기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확대가족은 지리적으로 더 넓은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고 지역 공동체들도 잠식당하게 된다.
이렇게 유의미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미래의 추세인데,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뿐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본래 우리를 노동에서 해방시키도록 고안된 기술의 진보라는 것이 오히려 갈수록 더 많은 인구를 노예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을까?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는 동시에 전례 없는 기회를 품고 있기도 하다. 만인의 자유를 스스로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최저소득 제도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무조건적인 종류의 최저소득 제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브라질의 최저소득 운동가인 에두아르도 수플리시Eduardo Suplicy는 “밖으로 나갈 때는 문으로 나가면 된다the way out is through the door”라는 유명한 문구를 널리 알렸다. 이 말이 뜻한 바는, 기본소득의 공급이야말로 빈곤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마치 누구의 집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이 그 집 문을 통해 나오는 것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서 결정적 핵심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무조건적이라는 형용사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기존 제도들 중에도 이미 ‘무조건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는 그 형용사의 약한 의미에서만 그러할 때가 많다. 먼저 이러한 제도들은 사회보험이 아니라 공공부조의 한 형태이므로 사회보험 수당의 자격이 될 만큼 납부금contribution을 지불한 이들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또 그것을 제공하는 국가의 시민들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타 법적 지위를 가진 거주자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지불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라고 한다면 이 ‘무조건적’이라는 형용사에 몇 가지 의미가 더 추가된다. 이는 가구의 경제 상황과 연계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개인적 수급권이며, 소득 조사 혹은 재산 조사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또한 일을 할 의무와 연계되거나 일을 할 의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것이다.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우리가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쓸 때는 곧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이러한 세 가지의 추가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