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역사학자 크리스티안 마이어Christian Meier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일어난 시민권의 정치화를 통한 정책 구상 방법의 변화를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의 모습은 귀족과 문화 공동체의 구성원, 농민과 상인, 영주와 평민, 가장과 부모 등과 같은 지위와 조건에 따라 규정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시민권의 행사가 사회적 정체성의 기준이 되었다.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예컨대 그리스 정치의 정체성은 아주 특이하다. 이 정체성 안에는 개인은 시민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도적 형태로 함축되어 있다. 경제적 또는 종교적 공동체를 토대로 형성된 그룹 구성원은 정치 무대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민주주의 시민들이 정치 생활에 열중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이해했다. 폴리스와 폴리테이아(고대 그리스의 국제), 시민과 시민권은 상호적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따라서 시민권은 하나의 활동과 삶의 형태가 되었고, 이 삶의 형태를 통해 폴리스, 즉 도시는 집을 지칭하는 이른바 오이코스(공적 영역으로서의 폴리스에 대비되는 사적 생활 단위로서의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부문으로 자리잡았다. 정치는 말 그대로 필요성이 지배하는 사적인 영역과 반대로 자유로운 공적 영역이 되었다.” 마이어는 이러한 정치화 과정, 특히 그리스의 정치화 과정이 유럽 정치에 유산으로 전해졌으며, 비록 신분의 고하를 드러내는 것이긴 했지만 시민권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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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분화는 우리 도시 거리의 감시카메라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장치는 지문과 마찬가지로 감옥용으로 설계된 것이지만, 점차 공공장소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영역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기에, 공적인 성격을 전혀 지니지 못한다. 이를테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감옥과 포럼 사이의 회색지대이다. 이러한 변환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생체정치 쪽으로 기울고 있는 현대 권력의 일탈이 주요 원인이다. 생체정치는 단지 영토에 대한 주권만 행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생물학적 삶(건강, 생식능력, 성性 등)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삶의 개념이 정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은 신체적 정체성이 정치적 정체성보다 우위를 차지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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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위를 결정할 수 없는 일은 더 이상 17세기처럼 ‘국가이성’으로 불리지 않고 ‘보안이성’으로 불린다. 따라서 비록 경찰의 정의가 공권의 교리에서 블랙홀이 되고 있지만, 보안국가는 경찰국가이다. 18세기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니콜라 들라 마레Nicolas de La Mare의 경찰 조약과 경찰학이 등장하며, 경찰이 본래의 어원인 폴리테이아로 회귀해 실제 정치를 지칭하게 된다. 한편 ‘정치’란 용어는 오로지 국제 정치만을 지칭했다. 따라서 폰 유스티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 맺고 있는 관계는 폴리티크(정치)라 불렀고 한 국가가 스스로와 맺는 관계는 폴리차이(경찰)라 불렀다. “경찰은 한 국가가 자신 스스로와 맺는 힘의 역학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