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파괴적인 추론들
진화론에 대한 이해는 점점 깊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윈이 주장하는 맹목적이고 실수투성이며 우연에 좌우되는 진화 메커니즘에는 친구들이고 적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대했다. 이 점에서는 라이엘과 그레이도, 오언이나 아가일과 같은 입장이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다윈의 메커니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만 개의 변이 가운데 한 개가 우연히 쓸모가 있는 다윈의 “난장판” 과정에 맡겨도 인간이 진화할 시간이 충분히 나올까?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수백만 년이나 오그라뜨려 놓은 상황이었다. 우연히 생기는 변이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 데다,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었다. 라이엘은 한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고 보았고, 1859년에 다윈은 공룡이 지배했던 시대부터만 따져도 3억 년의 시간이 있었다고 상정했다. 하지만 윌리엄 톰슨이 지구는 냉각하고 있는 구체라는 전제[톰슨은 지구가 전도傳導에 의해 열을 잃고 있으며, 이러한 냉각이 지구 나이의 상한을 정하게 한다고 결론 지었다]를 바탕으로 계산한 최근의 수치에 따르면, 지각이 고정된 때로부터 1억 년밖에는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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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에 관련해서도 성가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윈은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제10판에 대한 월리스의 서평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고교회파의 『가디언』은 이미 라이엘의 온건한 다윈주의에 호의적인 서평을 썼다. 월리스는 이에 대해 “토리당원들이 급진적인 개혁법안을 통과시키고, 교회의 정기간행물들이 다윈주의를 칭찬하는 상황이라면, 천년왕국이 눈앞에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윈이 우려하는 것은, 월리스가 주장하는 영적인 힘에 의해 추동되는 진화였다. “나는” 당신의 서평이 “몹시 신경이 쓰입니다.” “당신이, 당신과 내가 공동으로 낳은 자식을 처참하게 살해하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뼈아프고 애타는 심정이 반영된 말이었다. 월리스의 서평은 4월에 나왔다. 다윈은 송장이 된 자식을 확인했으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헤쳐진 모습에 경악했다. 다윈은 월리스의 문장들 속에 수많은 탄식의 감탄부호를 꽂아넣었으며, “안 돼”라는 말을 적고 밑줄을 세 번씩 그었다.
월리스는 인류의 확장된 의식을 선택의 영역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야만인들은 필요보다 훨씬 큰 마음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고릴라의 뇌보다 약간 큰 뇌 정도면 충분하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지식인만 한 뇌를 갖고 있다. 이것은 과잉지능이다. 자연선택은 당장 쓸모가 있는 것만을 상대하기 때문에, 야만인들에게 그러한 뇌를 부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적인 힘이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존과 동남아시아에서 표본을 채집하면서 원주민과 함께 생활한 이 사회주의자는 야만인을 높이 평가했다. 다윈은 교활하고 식인 풍습도 있는 듯했던 푸에고인들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야만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월리스는 그런 견해를 공유하지 않았다. 보르네오 섬의 다야크족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월리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비문명인들을 보면 볼수록, 인간 본성에 대해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됩니다.” 그들의 뇌는 과한 선물이지만, 어떤 부족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그들을 절멸시키려 하는 이주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발달시키기도 했다.
큰 뇌는 문명의 발달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전제조건이었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앞을 내다보는 눈이 없다. 자연선택은 미래의 필요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생존에 대비할 뿐이다. 그리고 치열한 자본주의 탓에 도덕적 장애인이 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사회적 야만”을 보면, 자연선택은 더 나은 문명을 만들어낼 힘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월리스는 더 고차원적인 영적인 힘이 인류의 운명을 인도한다고 생각했다. 영적인 힘이 뇌를 진화시켰으며,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여 천년왕국으로 안내할 것이다.
“나는 슬플 만큼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다윈은 월리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확고한 진화론의 변호인이 엉뚱하게 초자연적인 지능을 끌어들이고 있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하기도” 했다. 다윈은 사정도 모르고, 뇌에 관한 문단들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삽입된 것”이라고 단언할 뻔했다. 월리스의 답장을 받아보니, 그 누군가의 손은 다름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손이었다. 월리스는 “과학이 아직 밝히지 못한 힘과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