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어느 여름날, 중국 후베이성 징먼시에서 학자들이 밤잠을 설칠 만한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전국시대 초나라의 공동묘지였던 곽점촌의 어느 무덤에서 죽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이다. 죽간이란 얇게 다듬은 대나무 조각을 말하는데, 학자들은 이를 통해 기원전 400년 무렵, 곧 지금부터 2400년 전의 문자를 생생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죽간에는 仁인 자가 사뭇 달리 쓰여 있었다. 사람의 몸을 뜻하는 身신 자가 위에 있고 마음을 뜻하는 心심 자가 아래에 있는 모양이었다. 이 글자의 뜻을 정확히 알려면 더 오래된 갑골문자의 身신 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갑골문자의 身신 자는 사람을 뜻하는 人인 자의 배가 불룩 나온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곧 임신한 여성의 몸이다. 이 모양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인’은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또 다른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 덕분에 뭔가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속은 결코 아닐 것이다. 글자의 모양대로 보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기는 마음일 테니 말이다.
함께 출토된 문헌에는 또 다른 모양의 ‘仁인’ 자가 있는데 위에 人인 자가 있고 아래에 心심 자가 있는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 또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후한 시대의 《설문해자》라는 책에는 千천 자가 위에 있고 心심 자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인仁’을 표기하고 있다. 천千은 천 명의 사람이란 뜻이니 곧 인은 천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때의 千천은 산술적인 수효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천 명이면 천 명이, 만 명이면 만 명이 모두 가지고 있는 마음이니 이런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仁)은 사람의 씨앗이다.
옛사람들은 인仁을 사람이 아닌 다른 사물에서도 보았다. 예컨대 복숭아 씨앗을 도인桃仁이라 했고 살구 씨앗을 행인杏仁이라 한 것을 보면 인은 사람을 사람이게 해주는 씨앗일 뿐 아니라 다른 사물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인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공자다. 공자 이전의 문헌, 이를테면 《서경》은 글자 수가 2만 5000자에 달하지만 ‘인’ 자는 불과 다섯 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 고대의 시 311수를 모아놓은 《시경》은 거의 4만 자가 되지만 ‘인’ 자는 겨우 두 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공자의 어록인 《논어》는 불과 1만 5000여 자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록이지만 ‘인’ 자가 무려 108회 나온다. 그러니 인을 알고 싶다면 공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인에 대해 말할 때마다 모두 다르게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번지라는 제자가 인이 무엇이냐고 여쭙자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가르쳐주었고,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나의 욕심을 이기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인克己復禮爲仁’이라 대답했다. 또 중국에게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仁’고 일러주었다. 심지어 늘 말이 많아서 꾸지람을 들었던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인’이라고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공자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이야기한 인을 하나로 묶어 핵심을 보여준 사람은 맹자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순간을 가정한 ‘유자입정’의 비유를 들어,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단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가슴 아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맹자는 이 측은지심이 인의 실마리라고 말하는가 하면 때로는 측은지심이 바로 인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혹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맹자가 인간을 너무 좋은 쪽으로만 보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에도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를테면 지하철 구내에서 사람이 철로에 떨어진 순간 어떤 사람이 번개처럼 뛰어들어 구해낸 일이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짧은 순간, 그에겐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다. 맹자가 보기에 이런 행동은 모두 타인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인의 발현이다. 설사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늘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며, 그 근거는 인간이 유달리 다른 존재의 고통에 반응한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마음은 곧 사람을 살리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것이 인이다. 2016.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