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서 selection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뜻의 choice와 구별됩니다. selection은 결과적으로 남겨지는 걸 가리켜요. choice는 선택에 선행하지만, selection은 선택에 후행합니다. 그래서 selection을 예전에는 도태淘汰라는 말로 번역했어요(나는 ‘선별’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도태란 ‘쌀알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리다’라는 뜻이에요. 결과의 관점에서 selection을 번역한 거죠…
…경쟁은 바깥의 다른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와의 경쟁이에요. 거듭 강조하지만, 자연선택은 기본적으로는 경쟁 논리가 아니에요.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을 경쟁 논리와 연관시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자연에서 경쟁이란 환경 급변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기 안에 다양성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우선 도킨스의 물음이 적절치 않다고 봐요. 자연선택의 단위는 개체나 유전자가 아니라 개체군이거든요. 그래도 이 문제는 도킨스가 개체를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얼마간 납득하고 넘어가겠어요. 더 큰 문제는 자연선택을 natural selection이 아니라 natural choice, 즉 choice by nature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자연이 선택한다는 은유를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죠. 앞서 그 두 개념의 차이에 유념해야 한다고 했지요? 또 의인법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요? 도킨스의 오류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자연선택은 결과의 관점에서 출발해서 계보를 찾는 거예요. 개체이건 개체군이건 아니면 특정한 형질을 지닌 유전자이건, 미리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요. 전략을 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저 변이와 다양성을 자기 안에 되도록 많이 확보하는 게 최선이에요. 그런데 변이와 다양성은 유전자 차원에서 확보될 수 없어요. 도킨스한테 유전자는 복제자로 이해되고 있거든요. 도킨스는 과도한 의인법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걸로 보입니다. 유전 자체는 동일성 전달이지만 자연선택은 차이의 선택입니다. 동일할수록 환경의 급변 앞에서 멸절하기 쉽습니다. 나는 이 점에서 도킨스가 진화론의 기본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