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나무란 놈에게는 한 가지 엉뚱한 구석이 있다. 어느 해가 되면 갑자기 열매 맺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병충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토양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꼭 삐친 사람처럼 꽃도 제대로 안 피우고 열매 맺는 것도 영 시원찮다. 실한 열매를 기대하고 가을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런 나무의 모습에 그만 맥이 빠지고 만다.
나무가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것. 이를 가리켜 ‘해거리’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열매를 맺지 않고 해를 거른다는 뜻이다. 어느 해에 열매를 너무 많이 맺고 나면, 다음 해 가을에는 어김없이 빈 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큰 열매 하나를 맺는 데는 최소한 수십 개의 잎사귀에 해당하는 영양분이 필요하다. 광합성 등 나무의 모든 생명 활동이 잎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잎을 희생한 열매의 가치는 다른 것과 비교할 게 못 된다. 나무에게 열매는 최고의 재산인 것이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쳐 열매 맺는 데만 온 힘을 다 쏟으면 어떻게 될까.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 안의 자생력은 사라지고 점차 기력을 다하게 된다.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의 상태가 계속 나빠져 어느 순간 한계치에 달했을 때 나무가 또다시 열매를 맺으면 그 나무는 그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해거리를 통해 한 해 동안 열매 맺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그리고 해거리 동안 모든 에너지 활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오로지 재충전하는 데만 온 신경을 기울인다. 그동안 물과 영양분을 과도하게 옮기느라 망가져 버린 기관들을 추스르고, 헐거워진 뿌리를 단단히 엮으며, 말라비틀어진 가지들을 곧추세운다. … (중략) …
삶에서 진정한 휴식은 흔히 생각하듯 놀고먹는 게 아니다. 삶에 대해 반성하고 더 큰 도약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휴식이다.
― 우종영,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메이븐2021,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