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
정치적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더 정치적입니다.
시민, 인민, 국민, 민중. 한 사회의 구성원을 일컫는 말은 이처럼 다양합니다. 이 낱말들은 명확히 구분 짓기는 여러모로 힘들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을 보통 시민으로 부릅니다. 국민은 그 사회가 민주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 국가의 구성원을 뜻합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구성원을 국민이라 부를 수 있지만 시민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대표자를 자기 손으로 뽑기 힘들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민과 민중은 국민이 되기 전, 그러니까 근대 국가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사람들을 뜻합니다. 백성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죠.
이에 비해 시민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고, 피통치자로서 국가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정부가 시민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선거나 집회 등을 통해 정부를 ‘해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민주주의 사회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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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임에도 민주주의에 관한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한 형식적인 민주주의 교육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학교 현장에 널리 퍼져 있는, 정치 중립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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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정치의 영역에서만큼은 무색무취여야 하고, 학교라는 교육 현장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야만 할 것 같고, 또 그래 왔던 것 같습니다. 허나 이는 허구에 불과합니다. 정치를 금하고, 정치에서의 중립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오히려 학교는 그 정치색을 강렬하게 내비칩니다.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정권의 구미에 맞는 ‘정치 교육’을 평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