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일수록 책을 모셔둡니다. 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책을 ‘하대’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쇄된 종이를 묶은 그 자체가 책이 아닙니다. 책 안의 활자에 담긴 의미들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들이 바로 책입니다. 그러니까 내 눈앞의 이 물리적인 종이 모음집은 마음대로 다루어도 됩니다.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책은 찢어도 됩니다. 몇 년 전, 전경린 작가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다가 어떤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메모할 형편이 안 되어서 그 페이지를 찢어서 갖고 다닌 적도 있어요.
책장을 찢는 것은 조금 극단적이지만, 책을 깨끗이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메모하면서 읽으면 더 좋습니다. 모든 책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메모하기에 정말 좋죠. 밑줄도 막 그으면서 읽는 겁니다. 저도 예전에는 밑줄이나 메모를 잘 안 했고 하더라도 나중에 지울 수 있는 연필만 썼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책을 깨끗하게 읽는 것이 결코 좋은 독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숭배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습니다. 책이란 정말 대단해, 하면서 우러러본다면 책 읽기를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요. 저는 책이란, 늘 가까이 두고 언제나 펴보고 아끼지 않고 읽고 그러다가 읽기 싫으면 집어 던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즐겁게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태도라고 믿습니다.
― 이동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위즈덤하우스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