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마다 삶을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 자기를 위해 길을 밝혀줄 불빛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내 빛은 오랫동안 작가 하리 마틴손*이었다. 마틴손은 굴욕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굴욕을 이겨낼 것이다……. 마틴손은 저 밖에 서서 부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밖에서 그 일을 해낼 것이다. 마틴손은 무기력해지지 않고 가장 비천한 일들을 해냈다. 따라서 나 역시 청소용 양동이에 익사하지 않고 내가 맡은 청소부 일을 해낼 것이다.
어떤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다”가 분명하다. 먹고살 정도로 돈벌이가 괜찮은 직접은 ‘자기 남편’을 먹여 살리지 못할 정도로 벌이가 아주 형편없는 직업보다 더 좋다.
일부 사람만이 살아가기 위해 구걸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법에 따르면 옳다.
똑똑한 머리와 날카로운 팔꿈치**를 갖춘 사람, 그런 사람은 급여 계층구조 맨 꼭대기에 올라갈 것이다.
어쩌면 덜 똑똑한 머리와 그리 날카롭지 못한 팔꿈치를 부여받은 사람, 그런 사람은 법에 따르면 아주 높은 급여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구걸을 해야 한다. 법은 그런 것이다. 법은 친절하기까지 하다. 빈민 구제라는 말은 사회복지라는 말로 바뀌었다. 신청자 귀에는 빈민 구제만큼이나 나쁘게 들리는 센소리 명칭이다.
* 20세기 스웨덴의 대표적인 노동문학 작가이자 197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팔꿈치사회’의 맥락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날카로운 팔꿈치로 타자他者를 치면서 사회 경쟁에서 이기려는 사람을 뜻한다.
― 마이아 에켈뢰브,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교유서가2022,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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