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야기 좀 하면 좋겠어.” 고지마가 평상시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지마의 발치에 눈길을 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쯤 풀린 끈이 고지마의 더러운 운동화에서 땅바닥으로 늘어져 있었다.
“녀석들한테 둘러싸인 너를 보면서, 나는 전혀 다른 것을 본 것 같았어.” 고지마가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옳다고 생각해.” 고지마가 말했다.
“봐, 너나 나나 녀석들하고 나이도 같고 체격도 비슷하니까, 정말 그럴 생각이면 녀석들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저항할 수도 복수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우리가 그렇게 안 한다고 생각해?”
“내가 약해서라고 생각해.” 나는 얼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고지마가 즉각 그게 아니야, 라고 부정했다.
“너도 나도 약하기 때문에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야. 녀석들이 하라는 대로 그냥 복종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복종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우리는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고. 강한가 약한가 하는 기준으로 말한다면, 그건 오히려 강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야.”
“받아들인다고?” 나는 고지마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남이 보기에는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제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고지마가 말했다.
“우리는 네 말대로…… 약할지 몰라. 그렇지만 약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잖아? 우리는 약할지 모르지만, 이 약함은 아주 의미 있는 약함이거든. 약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잖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나쁜 건지. 우리처럼 당하게 될까봐 자기 손만은 더럽지 않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애들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그 애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녀석들하고 완전히 똑같다고. 반에서 그 녀석들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관계가 없는 건 나랑 너뿐이야. 너는 아까…… 아니, 아까가 아니고, 지금까지도 쭉 걷어차이든 무슨 일을 당하든 그것을 받아들여 왔어. 그런 너를 보면서 여러 가지 일의 단단한 매듭이 풀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것 같았어. 너의 그 방법만이 지금의 이 상황에서 올바른,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내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하는데?” 나는 얄팍한 종이로 만든 글씨를 눈앞의 공간에 하나하나 붙여가듯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라고 하더니 고지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네가 옳다고 말하고 있는 거라고.”
―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헤븐』 , 비채2011, 135~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