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 넘게 이어져온 한센병 관리 정책의 역사는 곧 인간의 신체 그리고 한 사회에서 병균을 제거했던 역사이자, 한센병에 걸린 이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며 종국에는 격리했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내내 한센병 환자들은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경제적 관계가 끊어진 채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쫓겨나 거리를 떠돌거나 시설과 병원에서 살아가야 했다. 모욕과 비난은 일상적이었고,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었기에 생존 자체가 쉽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려 쫓겨 들어간 소록도라는 공간 역시 치료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죽음의 공간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은 광복 이후 지속되다가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DDS제는 수천년 동안 끈질기게 인류를 괴롭혔던 한 질병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했고, 더 나아가 한센인을 둘러싼 불합리한 정책을 끝낼 수 있다는 의미도 가져다줬다. 그러나 보건 당국과 의료 전문가들은 이미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을 통제의 손아귀에서 놓지 않았다. ‘병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은 사회 어디에나, 심지어 건강해 보이는 이들의 신체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그 균을 박멸하는 일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균이 존재하는 ‘사람의 삶’은 부차적이 됐고, 균을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겼다. 균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보건의료제도에서는 그 누구든 ‘환자’였을 뿐이다. 실제로 과거 한센병 연구에 참여한 한 학자는 ‘국민 대다수’를 한센병 보균자인 ‘환자’로 여겼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균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이 극도로 심해진 상황에서 발생한 ‘환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 김재형, 『질병, 낙인』, 돌베개2021, 406~4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