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남았다. 실종자가 6명, 사망자가 502명, 부상자가 937명인 이 놀라운 확률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무너진 동에서 무너지지 않은 동으로 이동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가끔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이 ‘그때 기분이 어떠했냐’고 물어온다. 솔직히 말해, 책이나 영화에서처럼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심정이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고 그렇지는 않다. ‘아, 나는 살았구나. 근데 왜 살았을까’ 정도의 의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고 이후 지나간 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죽음 근처에 다녀온 후에는 항상 살아 있는 오늘이 중요하지, 어제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말한다. 과거를 살지 말고,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라고.
말이 쉽지, 악령 같은 과거를 끊어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계속해서 노력하며 살 뿐이다. 나 역시 그렇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후회가 많다. 그중에 가장 아쉬운 점은, 사고 직후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그까짓 돈은 없으면 벌면 된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내 마음에 드리워진 우울의 그림자는 지난 세월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고 차마 어떻게 해도 끊어내지 못했다. 그뿐인가. 아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 시절의 우울은 쳐내고 쳐내도 한평생 내 삶에 엉겨 붙을 텐데. (239~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