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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몇 분야에서 뉴스는 이따금 정반대로, 우리를 완전히 바보로 만든다고 비난받아왔다. 이 문제를 놓고 언론에 대해 가장 강경한 비난을 퍼부었던 이들 가운데 19세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있다. 플로베르는 대량 부수를 발행하는 신문사들이 대두하던 시기에 속한 세대다. 그가 어렸을 때 뉴스는 대중 사이에 루머 형태로 아무렇게나 퍼지거나 조악하게 인쇄된 1면짜리 소식지로 유포되었지만, 그가 삼십대가 되었을 즈음에는 증기 인쇄기가 발명되고 철로가 깔리고 검열이 완화되면서 자본력과 권위를 갖춘 신문사들이 융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신문사들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형성된 수백만 독자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플로베르가 판단하기에 이 신문들이 국민의 호기심과 지성에 저지르는 짓은 소름이 돋을 만한 것이었다. 그는 신문이 새로운 종류의 우둔함을 프랑스 구석구석에 퍼뜨린다고 믿었다. 이 새로운 어리석음은 이전의 단순한 무지보다 훨씬 더 질 나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어리석음은 수동적으로 지식을 얻기만 해서 생겨난다기보다는 지식으로부터 능동적으로 동력을 얻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플로베르의 눈에 신문은 사람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것이어서, 그는 오로지 완전한 문맹자와 무지렁이 프랑스인들만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소작농들이 중산층의 4분의 3보다 덜 멍청하다. 중산층은 항상 자기들이 신문에서 읽은 것에 광적으로 빠져들고 한두 군데 신문에서 얘기한 것에 따라 풍향계처럼 빙글빙글 돈다.”
《보바리 부인》에서 가장 역겨운 캐릭터인 약사 오메는 뉴스의 열렬한 소비자로, 날마다 ‘신문’(플로베르는 소설 내내 이 단어를 이탤릭체로 표시하는데, 이는 이 대상에 바치는 신흥 종교적 숭배를 조롱하고자 함이다)으르 공부하는 특별 시간을 갖는 사람으로 소설 초반에 등장한다. 저녁이면 오메는 지역 부르주아들이 모여 시사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장소인 금사자 여관으로 향한다. “그러고는 ‘신문’에 난 것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이 시간쯤이면 오메는 그것들을 사실상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기사 내용들을 전부 말해주었고, 거기에는 신문 사설뿐 아니라 프랑스나 외국에서 일어난 갖가지 재난에 대한 소식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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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는 신문을 증오했다. 신문이 독자로 하여금 정직한 사람이라면 결코 타인에게 떠넘기는 데 동의하면 안 되는 어떤 임무를 그렇게 떠넘기도록 부추긴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임무란 바로 생각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