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의 고틀로프 프레게.
하필이면 그는 자신의 저서 《산술의 기본법칙》 제2권을 인쇄하라는 확답을 주기로 한 바로 그날…
…나의 역설을 읽었다.
그는 나의 발견이 지닌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프레게 역시 볼차노의 단순한 집합 개념을 기초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기초가 썩어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프레게는 논리학에 집합을 도입함으로써 치명적인 독을 주입한 셈이었다. 알고 보니 《산술의 기본법칙》에는 토대가 없었다.
“뭐, 뭐라고요? 인쇄판들을 부수라고요?”
“지금 당장! 귀먹었소? 틀렸단 말이오! 이건 치욕이오! 기괴한 엉터리라니까!”
“교수님, 우리는 이 일을 몇 년째 해왔어요! 교수님 자신의 노력이 아깝지 않으시다면, 적어도 내 노력은 아까워해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교수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결국 프레게는 《산술의 기본법칙》 제2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부록을 덧붙였다.
나는 평생 동안 지식인의 정직한 행동을 많이 목격했지만, 나의 역설에 대한 프레게의 반응만큼 정직한 행동은 보지 못했다.
지식인의 가장 큰 용기는…
…진리를 다른 모든 것 위에 두는 것이다.
부록
자신의 저술을 완성한 후에 그 체계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만큼 학술 저자에게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인쇄가 마무리되어갈 무렵에 버트런드 러셀의 논문으로 인해 그런 처지에 놓였다.
러셀 씨의 역설은 나의 법칙들 중 하나를 무너뜨렸다. 이로써 내 산술의 토대뿐 아니라 유일하게 가능했던 산술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