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야누슈 코르착 ㅣ20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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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
야누쉬 코르착(Janusz Korczak)은 필명(筆名)으로 본명은 헨릭 골드쉬미트(Henryk Goldszmit)였다. 코르착은 1878년 바르샤바의 유대계 폴란드인 가정에서 태어나 1942년 2차 대전 중 폴란드에 진주한 독일군에 의해 트레블랑카의 집단수용소에서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기까지, 의료 및 교육 실천과 문학 작품 활동을 통해서 평생 동안 어린이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이해하는데 이례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에 걸쳐 화려하게 개화되었던 교육개혁운동의 시기에 살았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운동의 흐름들과 무슨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차라리 고독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는 오랫동안 현대사에 묻혀 있었다. 폴란드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알리기 시작했고, 그의 저서들과 생애가 하나둘씩 국경을 넘어 차츰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그를 발견하게 되었다. 폴란드와 이스라엘을 넘어서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 북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몰두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크고 작은 수많은 논문들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코르착 연구가 활발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독일에서 1981년 에리히 다우첸로트가 그의 전기를 썼고, 1987년에는 볼프강 펠처가 다시금 그를 조명하였다. 미하엘 랑항키는 코르착의 교육학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하였다(1994년). 한편 미국에서는 1988년 한 여류 연구가에 의해 지금까지 나온 것 가운데서 가장 포괄적인 것이라고 할 만한 코르착 전기가 출판되었다.
야누슈 코르착 지음 | 노영희 옮김ㅣ 양철북, 2002-12-18
“모르겠다”는 것은 새로운 통찰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모르겠다”는 말은 과학에서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진리에 이르는 새로운 통찰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모르겠다”는
말은 두려운 진공입니다.
나는 아이들에 관해서는 이 “모르겠다”는 말이
얼마나 신비하고 창조적인 상태인지
모든 사람이 깨닫고,
이 상태를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생명력과 다채로운 놀라움들로 가득한
이 미지의 세계를! (24쪽)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어린이는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대할 때는 진지하게, 부드러움과 존경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건 간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미지의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 *
이들은 ‘언젠가는’ ‘지금이 아닌’
‘내일’의 사람이 아닙니다. (26쪽)
사과꽃도 사과만큼 소중합니다
시장에서는 덜 자란 것들은 값을 쳐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사과꽃이나 사과나 똑같이 소중합니다.
새싹도 다 자란 옥수수 밭만큼 소중합니다. (29쪽)
─ 야누슈 코르착,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노영희 옮김, 양철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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