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 ‘좋은 삶’이란 개념은 흔적만 남았다. 정치가들은 선택과 효율 또는 권리의 보호만 주장할 뿐, ‘사람들이 유익하고 좋은 삶을 누리는 데 기여하는 정책’을 말하지 않는다. 많은 교사들이 도덕적 물음이나 미학적 질문을 던져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보려 애쓰지만 학생들은 그저 지겹다는 듯 경멸조로 그런 건 각자가 판단할 일이 아니냐고 대답할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뭔가를 획득하려는 욕망을 모든 한계로부터 해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좋은 삶과 같은 것이 없다면, 획득은 절대적인 어떤 목표가 아니라 ‘누구만큼’ 혹은 ‘누구보다 더 많이’라는 상대적인 목표만 남는다. 어떤 마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의 비유를 들어보자. 그들은 도중에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계속 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오로지 옆 사람 보다 앞서겠다는 목표만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모든 내재적인 목적들이 소멸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이 남는다. 남보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도달해야 할 곳이 없다면 남보다 앞서는 게 최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