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나탈의 수도 마리츠버그Maritzburg에 도착한 것이 오후 9시쯤이었다. 보통 그곳에서 침대를 준비하게 된다. 역무원 한 사람이 와서 침대를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 한 승객이 들어오더니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는 내가 ‘유색인종’인 것을 알고는 곧장 나가더니 역무원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다른 역무원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나보고, “이리 와요, 당신은 저 짐차 칸으로 가야 해요”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1등표를 가지고 있는데 왜 그래요?”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다른 한 사람이 합세를 했다. “내가 저 짐차 칸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더반에서 이 칸에 타도록 허락을 받았으니까, 이대로 갈 거요.”
“아니, 안 돼!” 이 칸에서 나가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서 끌어낼 테니까.“
“그러시오. 그러나 내 발로는 안 나갈 겁니다.”
경찰이 왔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끌어냈다. 내 짐도 내던져졌다. 나는 다른 칸으로 가기를 거부했고, 기차는 떠났다. 나는 대합실로 가 앉았다. 손가방은 들고 있었고 다른 짐은 내던져졌던 그대로 버려두었다. 철도원들이 그것을 보관해두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남아프리카 높은 지대의 겨울은 매우 춥다. 마리츠버그는 지대가 높은 곳이라, 지독히 추웠다. 외투는 짐 속에 있었는데, 또다시 모욕을 당할까 봐 달란 말도 하기 싫어 나는 그냥 앉아 떨었다. 실내에는 등불도 켜지 않았다. 자정쯤 승객 하나가 들어와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하는 듯했지만, 나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의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냐, 인도로 돌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모욕은 생각 말고 그냥 프리토리아로 가서 사건을 끝낸 다음 인도로 갈 것인가?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인도로 돌아가는 것은 비겁하다. 내가 당한 고통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깊은 병의 한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라도 그 병의 뿌리를 뽑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받은 명예훼손에 대한 보상은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만 바라기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