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권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오뒷세우스! 내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다른 일에서도
인간들 중에서 가장 슬기로우시니까요. 우리에게 슬픔을 주신 것은
신들이세요. 우리가 함께 지내며 청춘을 즐기다가
노년의 문턱에 이르는 것을 신들께서 시기하셨던 거예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이렇게 환영하지 않았다고 화내거나 노여워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이 와서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않을까
내 가슴속 마음은 언제나 부들부들 떨었어요.
사악한 이득을 꾀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요.
제우스의 딸인 아르고스의 헬레네도 아카이오이족의
용맹스런 아들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도로 데려올 줄 알았다면, 낯선 남자와 사랑의 잠자리에서
동침하지 않았을 거예요. 확실히 어떤 신이 그런 수치스런 짓을
하도록 그녀를 부추기셨던 거예요. 그때까지 그녀는 결코
그런 비참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어요.
우리의 슬픔도 처음에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당신과 나 그리고 단 한 명의 하녀,
말하자면 내가 이리로 올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고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튼튼하게 지은 신방의 문을 지켜주었던
악토르의 딸 말고는 어떤 다른 인간도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잠자리라는 확실한 증거를 당신이 말씀하시니
마음씨 냉담한 나로서도 당신의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네요.”
그녀는 이런 말로 그의 마음속에 더욱더 울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에 맞고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를 울며 끌어안았다. 마치 바람과 부푼 너울에 떠밀리던
잘 만든 배가 포세이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탓에 바다 위를
헤엄치던 자들에게 육지가 반가워 보일 때와 같이
-몇 사람만이 잿빛 바다에서 뭍으로 헤엄쳐 나오고
그들의 몸에서는 온통 짠 바닷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들은 재앙에서 벗어나 반가이 육지에 발을 올려놓는다-
꼭 그처럼 그녀에게는 남편이 반가웠다. 그녀는
그의 목에서 영영 자신의 흰 팔들을 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우는 사이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나타났을 것이나,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네가 다른 것을 생각해내어
밤을 서쪽 끝에다 오랫동안 붙들어두는 한편, 황금 옥좌의
새벽의 여신을 오케아노스에다 붙들어두어 인간들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걸음 잰 말들에게, 새벽의 여신을 실어다주는
망아지들인 람포스와 파에톤에게 멍에를 얹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모두 완수해야만 하오.
내가 전우들과 나 자신을 위해 귀향을 구하고자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던 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이 내게 그렇게 예언했소.
그러니 여보! 우리 이제는 침상으로 가서
달콤한 잠으로 휴식을 즐기도록 합시다.”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잠자리는 당신이 마음속으로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당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을 거예요. 신들께서 당신을 잘 지은 당신의 집과
당신의 고향 땅에 돌아오게 해주셨으니까요. 그런데 방금 당신이
마음에 떠올리셨고 신이 당신의 마음속에 일깨워주셨으니,
내게 그 고난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나중에 어차피
알게 된다면 지금 안다고 하여 더 나쁠 것은 없을 테니까요.”
…
그는 먼저 자신이 어떻게 키코네스족을 제압했고, 그 뒤 어떻게
로토파고이족의 기름진 나라에 도착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또
퀴클롭스의 모든 짓거리와 그자가 인정사정없이 잡아먹은
강력한 전우들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보상 받았는지 이야기했다.
또 자신이 어떻게 아이올로스를 찾아갔는지 이야기했다.
아이올로스는 그를 반가이 맞아주고 호송해주었으나 아직은 그가
사랑하는 고향에 돌아갈 운명이 아닌지라 다시 폭풍이 그를
낚아채 크게 신음하는 그를 물고기가 많은 바다 위로 날랐던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어떻게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텔레퓔로스에 도착했는지
이야기했다. 그자들이 그의 함선들을 부수고 훌륭한 정강받이를 댄 전우들을
모조리 죽인 까닭에 오뒷세우스는 혼자 배를 타고 도망쳤던 것이다.
이어서 그는 키르케의 계략과 수많은 책략을 이야기했고
또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에게 물어보고자 자신이 어떻게
노가 많은 배를 타고 하데스의 곰팡내 나는 집으로 내려가서
모든 전우들과 그리고 자기를 낳아서 어릴 적에 길러주셨던
자기 어머니를 만나보았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또 자신이 어떻게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어떻게 플랑크타이 바위들과 무서운 카륍디스와
사람들이 무사히 벗어난 적이 없는 스퀼라에게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또 어떻게 자기 전우들이 헬리오스의 소들을
죽였으며, 어떻게 높은 데서 천둥을 치는 제우스가 연기를 내뿜는
번개로 날랜 배를 쳐서 훌륭한 전우들이 모두 한꺼번에 죽고
자신만이 사악한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났는지 이야기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오귀기에 섬과 요정 칼륍소에게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는데, 칼륍소는 그를 남편으로 삼으려는
욕심에서 속이 빈 동굴 안에다 그를 붙들어두고 부양하며
그에게 영원히 죽음도 늙음도 모르게 해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의 가슴속 마음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또 어떻게 자신이 천신만고 끝에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가게 되었고, 어떻게 그들이 자기를 진심으로 신처럼 존경했으며
청동과 황금과 옷을 충분히 준 다음 배에 태워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호송해주었는지 이야기했다. 이것이 그가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였다. 그때 갑자기 사지를 풀어주는 달콤한 잠이
그를 엄습해 마음의 근심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