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식의 다양한 문학 장치가 등장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자는 공자나 맹자와는 처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공맹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면서 잡혀가지 않으면 좋은데, 장자는 자칫 잡혀가기 쉬운 처지였기 때문에 보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꿈입니다…호접몽은 꿈 이야기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이 대목을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연관 지어 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데카르트의 경우는 애초에 회의가 목적이 아니라 회의를 어떻게 하면 끊어버릴까 하는 아주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회의한 사이비 회의주의자입니다. 장자와는 다릅니다. 아니 반대편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주체를 강조했던 데카르트는 인간 이외의 동물은 기계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동물을 발로 차면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은 종을 쳤을 때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장자와는 많이 다르지요. 일단 장자에게는 불순한 목적의 회의라든가 그런 게 없습니다. 동물을 기계로 보지도 않고요. 둘을 비교하면 아마 서로 화를 낼 겁니다. 장자는 자신마저도 상대적인 세계에서는 나비와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겁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물화物化’는 장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물화란 내가 주체고 상대가 대상이라는 인식을 넘어선 결과입니다. 내가 온전히 상대와 같아진다는 것은 곧 나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나를 버려서 상대를 이루는 것, 그것이 장자의 물화(物化) 개념에 가깝습니다. ‘물화物化’에서 ‘물物’ 자를 빼고 ‘화化’ 자만 남기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소요유> 편 <1장>에서 ‘화’는 살아 있는 존재가 사멸하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던 것을 돌이켜보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팔랑팔랑 가볍게 나는 나비였는데 스스로 즐겁고 뜻에 꼭 맞았는지라 장주인 것을 알지 못했다. 이윽고 화들짝 깨어보니 갑자기 장주였다. 알 수 없구나.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와 나비는 분명한 구별이 있을 테지만 이처럼 장주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주가 되는 것, 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
昔者에 莊周夢爲蝴蝶호니 栩栩然蝴蝶也러니 自喩適志與라 不知周也호라 俄然覺하니 則蘧蘧然周也러라 不知케라 周之夢에 爲胡蝶與아 胡蝶之夢에 爲周與아 周與胡蝶은 則必有分矣니 此之謂物化니라
장자가 꿈을 꿉니다.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입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사람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적지適志“라고 표현한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뜻에 꼭 맞아서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장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비가 된 것이죠. 사실 난다는 표현은 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장자의 첫 이야기가 대붕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바로 장자 자신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대붕은 구만리의 하늘을 타고 납니다. 그리고 장자는 ’물화‘, 곧 나비가 됨으로써 하늘을 납니다. 구만리의 하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아주 가벼우니까요.
날 수 없는 인간에게 난다는 것은 자유의 획득을 뜻합니다…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힘이 약한 자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힘이 센 자각 자유로우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순간 더 큰 힘에 의한 지배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섬나라 멜로스를 정복했죠. 침공하기 전에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죽이겠다고 최후통첩을 합니다. 하지만 멜로스의 지도자들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그 결과 멜로스는 아테네의 공격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멜로스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너희는 너희가 우리를 대한 방식대로 또 다른 침략자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실제 그렇게 되었죠.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멸망시켰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자유와 평등이 서로 대립되는 가치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자유란 상대를 대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